14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3)
노인에게 미연의 등장은 아주 바라던 일이었으나, 동시에 너무 늦었다.
이미 장르 자체가 죽어버린 뒤, 그 장르에 잘 맞는 천재가 나타난 것이다.
이미 죽은 것이 미연을 품어봐야 살아날 수 없다.
“미연 씨가 한 십 년만 빨리 나타났다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면 억울하지 않을 리 없지요.”
그러니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조금은 밉다.
“늦게 나타났더라도, 어떻게 되살리기라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요.”
“뭘 안다고….”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미련이 남아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노인은 가능한 시도는 모두 다 해보고, 그러고 난 뒤에 포기했을 것이다. 미련 없이, 가능성을 다 시도해 본 뒤에 연극을 서서히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미연 씨가 나타났지요. 마음의 정리를 했다 쳐도, 그걸로 깔끔하게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노인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겠네. 젠장, 말년에 좋은 꼴을 못 보는군.”
노인은 한숨 쉬듯 말하고는 일어났다.
“알아서 하게. 유령에 관해서 나머지는 다 맡기도록 하지.”
“다 맡긴다?”
시아는 처음으로 노인에게 조금 짜증을 냈다.
“무책임하군요.”
“뭐?”
노인은 얼빠진 채 중얼거렸다.
“무책임하다고?”
“예, 그렇습니다.”
시아는 확실하게 말했다. 노인은 조금 찌푸린 표정이 되었다.
“연극에 대해서 내가 무책임하다니, 그것만큼은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노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연극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미연 씨 말입니다. 당신 때문에 다른 곳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시작해 버린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고, 그저 맡긴다니? 그게 무책임이 아니라면 뭡니까?”
시아는 눈을 찌푸렸다.
“물론, 당신 입장에서는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노인에게 있어 미연의 등장은 그저 우연이었다. 길가에서, 무료 세트업 쿠폰을 주운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우연.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고는 해도, 곧 그만둘 연극이라 해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견물생심… 이라고 하면 조금 그렇지만, 감독자의 입장에서 천재 배우를 가진다는 것은 인생에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경험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노인의 입장만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거절하는 편이 맞았습니다. 미연 씨는 순진한 사람이니까요.”
선하고, 순진하다. 어린 마음에 아름답게 본 연극을 그저 따라 하다가 이곳에 와버릴 만큼.
“사실상 이미 끝나버린 장소에서, 자신이 조금 더 잘 하면 이 연극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벼리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운 곳에서, 겨울에는 추운 곳에서 자며 말 그대로 담금질하고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더는 여기에 없는데.”
시아는 한숨을 살짝 쉬고는 말했다.
“잠시, 미연 씨 이야기를 해 볼까요. 미연 씨는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마치 조금 무언가에 몰려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지요.”
유령이 있는데도, 차라리 같이 있어 달라고 말할지언정 그 자리를 뜨지 않는다. 명백히 비정상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연습을 하는 모습은 대단한 일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배우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연극에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한다는 말이니. 하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다급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막연히 대단하다 여기고는 넘겼던 부분이지만, 보다 보니 조금씩,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자신이 이 자리를 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
“어지간한 사람보다 훨씬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이곳에서 살고 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유는 단 하나라 봐야겠지요.”
미연은 알고 있다.
“자신이 이 자리를 뜨는 순간, 완전히 끝난다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미연 씨를 대하는 태도도 의미심장하지요.”
“의미심장?”
노인은 멍하니 되물었다.
“그저 잘 지내고 있지 않나? 생활에 부족함이야 있지만….”
“당연히, 사람들과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미연 씨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질투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미연은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라 평했고,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모두와 그런 좋은 관계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질투하는 마음을 품지 않아요. 자기 앞에 훨씬 잘난 사람이 있는데 그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건 이곳에 계신 모두가 성인군자라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럴 이유가 없다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그저 귀여워하는 것 아닌가.”
“그저 귀엽고 대단한 막내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만은 아닙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보는 시선임과 동시에, 조금 안타까운 것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다.
“불쌍히 여깁니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려는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후배를. 그래서 경계하거나, 밀어내지 않는 겁니다.”
시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그 시선들은 적나라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천재를, 불쌍히 여길 수 있을까요.”
뻔하다.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이유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본인의, 그러나 또 온전히 본인의 잘못이라 말하기에는 조금 다른.”
듣는 사람이 앞에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이 무대에서 가장 최고의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곳에 간다면 최고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미연 씨의 연기는 이곳에 너무 특화해 있어서, 다른 방향으로 진출하기 애매하다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느 하나가 수준급에 달하면 다른 것들 역시 어느 정도는 잘 하게 된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미연의 연기는 일반인에 비할 바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연 배우가 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견디기 힘들지도 모르지요. 밑바닥부터 시작해도 되는 나이가 있다지만, 미연 씨는 이제 슬슬 그 나이를 넘길 만한 상황이지요.”
그리고 사실은, 원래대로라면 이런 걱정은 더 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가 봐도 아쉽긴 합니다. 이 연극이 계속 지속될 수 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가 없었을 텐데.”
정말로 안타까운 부분은 그 부분이다.
그것이 아무리 압도적인 재능이라도, 마음대로 펼칠 수 없다면 그야 불쌍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정심을 가질 뿐입니다. 그런 것에 질투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노력하는 천재가 자기 재능을 펼칠 수 없다. 그것도 그저 시대적 상황이 본인의 재능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은…. 예,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아름다웠지요. 그러나 치명적입니다. 배우 개인의 실력 성장이라는 측면을 떼어 놓고 보면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것은 경력으로 인정되더라도, 이곳에서 연기한 것이 경력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시아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그런데 당신이 그런 걸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침몰하는 배에 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리 없습니다.”
이미 미연을 아주 오랜 기간을 봐 온 노인이다. 연극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채찍질한다.
“미연 씨의 연기가 이렇게 굳어지기 전에 당신이 재빨리 밀어냈어야 했습니다. 아니라면, 아예 이 분야의 정점이 되도록 도와주던가, 아예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일도 병행하게 하거나.”
그러나 미연은 어느 쪽도 아니다. 이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 뿐이다.
“본가에 돌아가지 못한다더군요. 연기하겠다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고생길이 뻔한데도 나온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미연 씨만은 말 그대로 연기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어요.”
“난, 난….”
물론 노인도 고민이 컸을 것이다.
“예, 당신은 자신이 연극을 저버리는 것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평생 해온 일이니, 쉽게 버릴 수도 없었을 테니. 미연 씨를 놔 주면 다시 잡은 기회 역시 놔 버리는 셈이니까요.”
어느 한쪽을 확실하게 포기한다면, 어느 한쪽은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인은 그러지 못했다. 그저 허둥지둥했을 뿐이라고 시아는 말했다.
“쫓아내려고 혼을 냈다 하셨지만, 배우로서 갈고 닦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어중간한 태도니, 당연히 미연 씨가 견뎌낸 것이지요.”
결국은 그것 역시도 애매한 태도였다.
“당신의 결정은 너무 늦었습니다. 미연 씨의 등장이 늦은 만큼. 아니, 오히려 더 늦었지요.”
노인은 결국 받아들였던 연극의 끝을 다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으며, 미연은 다른 장르로 넘어간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다.
“그러니 그렇게 당신이 물러난다면, 무책임한 것입니다. 제가 틀린 말을 했습니까?”
노인은 침묵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아는 그 이상으로 노인을 괴롭히지는 않기로 했다.
“유령은, 잡겠습니다. 그것이 처음 부탁이었으니 말입니다.”
엉거주춤한 노인의 자세를 본 시아는 말했다.
“공연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겁니다. 하지만 글쎄, 당신이 원하는 일일지는 모르겠군요.”
* * *
“누나, 대체 뭐라고 했어요?”
태주는 조금은 당황한 눈으로 시아를 쳐다봤다.
“어떻게 말을 했길래 저런 분이 멘탈이 완전히 나간 거예요?”
이야기가 좋게는 굴러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태주였지만 저 정도로 심하게 멘탈이 나갔을 줄은 몰랐다.
“글쎄, 최소한 미연 씨에게 하던 갈굼보다는 약할 거다.”
“그런데 사람이 저렇게 돼요?”
“흥.”
시아는 팔짱을 꼈다.
“암튼 내 탓은 아니야. 기분이 나빠서 좀 더 적나라하게 까내린 건 있지만.”
“뭐가 그 탓이 아니에요. 그것 때문이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어떤 이야기가 전달될 줄 알았던 태주도 당황하는 마당에, 다른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훨씬 크다.
“너무 심했어요. 봐요, 지금 다 주변에 술렁거리는 거.”
“어차피 개인연습이니 상관없지 않나. 단장이 없어도.”
시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누나가 기분 나쁜 이유는 알겠지만요.”
아무래도 지금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인지, 태주는 알고 있었다.
“옛날 생각 나서 그렇죠?”
“그래.”
시아는 거짓말하지는 않았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저울질하다, 결국 자신이 지키려 드는 것을 고른다. 그리고 그 결과로 둘 다 잃는다. 다신 보고 싶지 않았는데.”
시아는 짜증을 냈다.
“에잇! 이런 일 따위나 가지고 오니 내가 어머니를 싫어하는 거 아냐!”
“글쎄요.”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확실한 건, 저분은 어머님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계시고, 성향도 비슷하시다는 거죠.”
“그러니 친구겠지.”
시아는 툴툴거렸다. 태주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또, 미연 씨는 누나랑 전혀 다른 사람이잖아요?”
“…물론 미연 씨는 나와 전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이지만 말이다.”
시아는 혀를 살짝 찼다. 사실 조금 욱해서 더 몰아붙인 감이 있다. 조금 혀를 찬 시아는 태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네 쪽은 어떻게 됐지? 그대로 해 준다 하던가?”
“당연히요. 애초에 이쪽은 누나처럼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가 될 이유가 없다구요. 유령이 있고, 이제 곧 잡을 테니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말에 굳이 남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있겠어요?”
곧 이곳에는 두 사람만이 남는다. 조금 이르지만, 연습을 다들 접고 집으로 갈 것이다.
이곳을 집 삼아 사는 한 명을 빼고.
“하던 것들만 정리되면 다들 곧 자리를 비울 거에요.”
“그런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불렀…는데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와줄 사람? 그런 게 필요한가?”
“네, 뭐.”
태주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시면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