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2)
노인은 잠시 무슨 말인지 생각하다가 시아를 확 노려보고는 말했다.
“내가 유령을 만들었다고? 그런 말인가?”
어처구니 없어하는 노인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시아는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전에 시아는 유령이라는 것은 무언가 억울한 것이 있는 채 ‘죽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노인은 그런 사람이 없다고도 말했다.
“나는 짐작이 가는 사람은 없다고 했을 텐데.”
“예, 심지어는 다른 사람 중에는 없었겠지요. 감히 당신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소에 죽어 있는 것은 있었지요. 유령의 정체에 대해 말씀드리기 이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이 연극에 대해 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이지?”
“연극이라는 이 장르는 과연, 당신의 전성기와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노인은 날 선 눈이 되었다.
“연극은 과연, 그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왜 하지?”
“당신의 태도가 모순적이기 때문입니다.”
시아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저는 태주가 아니라서, 왜 그런지 알아내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의 태도는 적나라합니다.”
시아는 조금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당신은 미연 씨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동시에, 조금 미워하고도 있어요.”
“미워하고 있다고?”
노인은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 태도를 보니 자각도 하지 못한 채로 하는 짓이었나 봅니다.”
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노인의 태도를 보면 그 점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미연 씨에게 본인의 잘못도 아닌 걸,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만약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면, 시아도 그저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겐 꽤 공정합니다. 확실히 하지 않은 일로 시설팀을 갈구는 대신, 유령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결론이라도, 그편이 합리적이라면 받아들인다. 리더로서, 노인은 꽤 올바르다.
노인은 다른 사람에게는 엄할지언정 공정하다. 그러니 과해 보이는 피드백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불이 꺼지는 상황에서, 당신은 배우가 그 상황을 통제하지 못함에 분노했습니다.”
일견 맞는 말이다. 무대에 혼자 서 있으니, 무대에 서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배우의 일이 아닙니다. 돌발상황의 처리를 배우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지요.”
그것은, 이전까지 노인이 보여준 태도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이다.
“괜한 억지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미연 씨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러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다른 경우에는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던 당신이 대체 왜 그랬는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령의 정체를 알고 나니 알겠더군요.”
시아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죽은 것은 연극이고, 이 장소에서 가장 원통해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노인은 잔뜩 찌푸린 얼굴이 되어서는 물었다.
“뭘 근거로?”
“표정입니다.”
이전,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을 때 유일하게 밝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은 노인뿐이었다.
“고작 표정으로 그런 주장을 하나?”
노인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시아는 그것을 보며 웃었다.
“고작 표정, 이라고는 하지만 표정만큼 알기 쉬운 것이 없지요. 그러니,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희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보십시오, 지금도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배우조차도 의식하지 않으면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심지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보니 더 잘 나타날 때도 있다.
“당신만이, 이곳의 공연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책임자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가장 진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어떤 의미로는 당연하다.
“왜냐하면 당신과 미연 씨를 제외하면 다들, 부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씁쓸하게 덧붙였다.
“아니, 반대로 이쪽이 부업이라 하는 편이 더 올바를 수도 있겠군요.”
배우를 해서 먹고 살 수 있는가.
정답은 ‘아니다’였다. 사람들이 실질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이쪽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부단장조차,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 오지 못했죠.”
한 남자가 꽤 오랜 기간을 이곳에서 일하면서 살았음에도, 정말로 생계를 책임지는 그런 일은 연극이 아니다.
“흥.”
노인은 애써 시아의 시선을 외면했다.
“단적으로 말해, 이곳에서 연기하는 것을 통해 배우로 먹고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퀄리티의 저하가 생기고, 다시 더 낮은 완성도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시아는 지금만큼은, 조금 흐린 눈으로 말했다.
“최소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단장님이 뭔가 잘못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무너져 가는 장르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을 뿐입니다. 배우가 돈을 벌지 못하는 건 단장님이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겁니다.”
그저 돈이 나올 구석이 거의 없다. 배우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돈을 주고 조금씩 적자를 누적해 나가고 있는 것이 이 극장의 현실이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용한, 그런 곳이니까요.”
미연을 제외한다면 이곳의 배우들에게 노인은 뭔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인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조금 불같이 화를 내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노인에게 불만을 표하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노인은 정말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차라리 영감님의 잘못 때문에 망가져 버린 거라면, 그런 것이었다면 이 장르에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노인의 잘못이라 할 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돈 버는 데는 시야가 영 어둡다는 걸 죄라 할 수는 없다.
“정극의 시대가 갔는데도 계속해서 그런 종류의 연극을 하는 것, 돈의 흐름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잘못이라 하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이런 종류의 예술연극, 일반적으로 정극이라 표현하는 이런 연극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저, 사양 산업일 뿐이다. 재투자가 없다는 데서, 깨달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공연을 해야 하는데 리허설을 고작 몇 번 밖에 못 하다니 말입니다.”
사람이 아주 많아 스케줄을 통일하기 어려운 아주 큰 대형 극단이라도, 리허설을 몇 주 전부터 매일 같이 들어간다. 평범한 연습은 더 오래 한다.
그런데 이런 작은 극단이 리허설을 고작 일주일 전부터 할 수 있다는 건 알기 쉬운 지표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사람들의 말마따나, 이만한 경력자들이라면, 게다가 이미 몇몇 사람들은 여기에만 수십 년간 몸을 담았다면 그리 오래 합을 맞출 필요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리허설을 저번 주에 시작해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그건 그렇게 하더라도 공연을 망치지 않을 수는 있는 이유에 가까울 뿐입니다.”
예를 들어, 눈 감고 칼질하는 짓은 경력 있는 대부분의 요리사가 할 수 있다. 하지만, 주방에서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없다. 당연하다. 눈을 뜨고 하는 게 더 좋으니까.
리허설도 마찬가지다. 안 하고 할 수 있더라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다. 오히려 너무 일찍 많이 해서 더는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면 될 일이다.
이만한 기간만을 가지는 건 그냥 묘기에 불과한 일이다.
“이 극단은 이미, 리허설을 일주일 전에나 간신히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망가져 있는 겁니다. 재미없는 이야기지요. 배우는 생업이 될 수 없었다는 말이니까요.”
이유는 결국 하나뿐이다.
배우를 너무 하고 싶어 꿈을 찾은 이 사람들은, 연극만 해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순수하게 즐기는 이들만 남기는 했습니다만, 긍정적인 일이라 보긴 어렵겠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받아들였을 겁니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죽음을.”
노인은 침묵했다.
“아직 안 죽었어.”
억지로 입을 열었으나, 작은 목소리다.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닐 겁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시아는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이것 다음 공연이, 계획이 되어 있습니까?”
시아의 질문에 노인은 억지로 말했다.
“당연하지. 공연은 원래 한 번만 하지 않아. 여러 번 반복해서 하는 법이니까. 앞으로 아마 열 번은 넘게 하겠지.”
“아뇨, 그런 걸 물은 게 아닙니다.”
시아는 눈을 작게 찌푸리고는 다시 물었다.
“이 공연장에서, 이 극단이 다음 공연을 준비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물은 겁니다.”
시아의 질문에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아는 재촉하지 않았고, 노인은 작게 말했다.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작은 목소리다.
“없네. 부단장 자리를 맡고 있는 녀석은 이미 무리를 하고 있고,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본 중 가장 담담한, 그러나 노인이 감정을 숨기는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런 문장이다.
“이미 다들 무리를 하고 있어. 언젠가는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한동안은 휴식을 가져야겠군.”
아마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그런 진한 회한이 묻어나는 태도다.
“역시나 그랬습니까.”
시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그렇다면 이 극장은 어떻게 됩니까?”
노인은 잘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나도… 몰라.”
그 뒤까지 노인은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겠군.”
“거 보십시오.”
시아는 말했다.
“연극은 무기한 중지되고, 다음 연극은 기약이 없습니다. 이게 장르의 죽음이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그렇기에 나타난 유령이다.
“유령은 바로 연극이라는 그 장르이거나, 어쩌면 이 무대일 겁니다. 실제로 유령 치고는 확실히 특이한 점이 많았지요.”
시아는 말했다.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무감정한 유령입니다. 말로 호소를 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그저 공연의 끝을 막을 뿐이니까요.”
그런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이, 사람이 죽어서 된 유령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나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묘할 정도로 연극에 필요한 장비를 잘 알면서, 쉽게 고칠 수 있는 고장만을 냅니다. 배우에게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존중도 하지요. 하지만, 이 공연이 끝나는 것만은 막습니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듯, 그런 아주 소극적인 저항.
“그저 소극적인 방어본능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 같은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없습니다. 그나마 감정표현이라 할만한 것은 박수 정도가 다군요.”
이 극장과 극단은 사실상 이미 죽어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무엇이 죽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억울해하고 있는가.
“알고 나면 이렇게 간단한 것을.”
시아의 말에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유령이라 생각하니 이런 결론이 나오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이나 식물도 죽기는 하지요. 조금 더 나아간다면, 문화나, 조금 더 나아가서는 언어조차 죽기도 하지요.”
“…그래, 우리가 잡아야 하는 것은 연극이라는 장르의 유령이다, 이 말이로군.”
노인은 간신히, 말을 뱉었다.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이란 말인가.”
“가능합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지 않고는, 이 장소에서 하는 연극은 계속해서 방해받을 겁니다.”
“그렇겠지.”
노인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이곳에, 이 극장의 유령이 있다는 말인가? 이미 죽어서?”
“유령은 지금까지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그렇겠군요.”
“집착 때문이란 말인가. 끝내야 할 것을 끝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
노인은 처음으로, 그 나잇대의 노인처럼 보였다.
“그것뿐만은 아니지만, 예. 그렇습니다.”
시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맨 처음, 이 연극을 서서히 축소시키고 있던 그때까지는, 아마도 노인은 원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미연 씨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