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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44화 (144/269)

14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1)

다음날 아침, 태주는 극장의 문을 열었다. 낡은 극장 문은 생각보다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오늘은 리허설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주하다. 전체 리허설은 아니더라도 연습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나, 자기 할 일은 다 해 놓고 반쯤 놀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많이들 나오셨네.”

“왔냐.”

시아는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왔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저녁에, 유령을 만났거든.”

“유령이요?”

태주는 당황했다.

“전화를 하시지, 그럼 바로 갔을 텐데.”

“뭐어, 그렇게 엄청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됐어. 아주 사소한 일 뿐이었으니.”

시아는 정말로 별일은 아니었다는 듯 그저 하품을 할 뿐이었다.

“미연 씨는요?”

“별일 없다. 나보다도 멀쩡해.”

“누나가 좀 피곤해 보이긴 하네요.”

“뭐, 늘 있는 일 아니냐.”

시아는 한 번 더 하품한 뒤 이어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조금 하자.”

“이야기요?”

“그래. 내가 알아낸 것이 그럴듯한 이야기가 맞는지, 네가 한번 판단을 좀 해 다오. 그 뒤에 단장님을 불러와 이야기하도록 하지.”

시아는 아주 당연한, 그런 말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령은 사람이 아니다.”

* * *

몇 시간 뒤, 불려온 노인은 자초지종을 들은 뒤 미연에게 호통을 쳤다.

“그럼 당연히 재현이 안 되지 얼간아!”

“엑?”

미연은 갑자기 혼날 줄은 몰랐기에 당황했다.

“그게… 왜요?”

“공연이 끝날 때를 재현한다고? 그러려면 공연을 시작해야 증명할 수 있는 거 아냐?”

“예, 그래서 그 장면을 연기했잖아요?”

“관객이 없으면 그게 어떻게 공연이야!”

노인은 소리를 빽 질렀다.

“리허설이라고는 해도 저번엔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그리고 처음 유령이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야.”

“…그렇네요?”

이미 마지막 장면을 뺀다면 전부 본 상태인 데다, 애초에 사건을 분석하려는 두 사람은 다음부터는 관객이 될 수 없다.

“젠장, 그렇다면 그 유령은 관객만 오면 방해를 할 거라는 말인가. 큰일 날 뻔했군.”

노인은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리허설 할 때는 안 나온다고 안심하고 공연을 했다면 아주 큰 일이 날 뻔했어!”

노인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이걸 어제저녁에 알아낸 거라고?”

“예, 그렇습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전된 게 있긴 하니 그나마 다행이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를 모르겠지만.”

노인의 삐딱한 말에 시아는 위축되지 않고 말했다.

“시간에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신을 얻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뭐, 오늘은 리허설도 없으니, 시간이 넉넉해.”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뭔가?”

“아, 잠시 그 전에 저도 따로 미연 씨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자리를 비워도 괜찮죠?’

태주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어? 어, 네?”

미연은 영문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리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노인은 기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상한 연기를 하는군. 저 애가 들으면 안 되는 건가?”

“역시, 연기를 평생 보신 분 앞에서는 저런 허접한 연기는 통하지 않는군요.”

사실 숨길 생각이 없으니 연기라 하기도 그렇다. 시아는 살짝 웃은 뒤 말했다.

“하지만, 그렇습니다. 억지로라도 잠시 떼 놓을 필요는 있었지요.”

시아는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미연 씨를, 굳이 왜 이 극단에 받아주셨습니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잡으라는 유령은 안 잡고.”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그게 중요한 문제인가?”

“어쩌면. 그렇습니다.”

“도저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답변하기 어려운 건 아니지.”

노인은 조금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봤으니까 알지 않나? 그냥, 잘 해서 뽑았다. 그런 사람을 안 뽑는다니, 말이 돼?”

“그저, 미연 씨가 잘 해서 뽑으셨다고요?”

“그래. 내 평생에, 내가 본 사람 중 재능만 보면 가장 최고야.”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적인 실력을 기준으로 하면 더 잘 하는 사람도 있지. 그렇지만 경력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더 어린 시절부터, 더 오래 연기를 한 사람도 미연보다 확실하게 연기를 잘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이상의 완성도를 가진 사람의 수 자체가 얼마 없을 것 같은, 그런 영역.

“이미 여기선 가장 잘 해. 그 녀석이 자만할까 봐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천재는 천재야. 그런 사람을 왜 뽑았냐니?”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 헛소리나 할 거면 유령이 나올 만한 곳이라도 살피면 어떤가?”

“잡담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시지요. 어차피 지금은 시간이 많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노인의 짜증 섞인 말에도 시아는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말했다.

“게다가 지금 하는 말이 아무 말이나 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유령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이게?”

불신의 눈으로 노인은 시아를 바라봤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령의 행동 원리를 알아냈습니다. 자기들 입으로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어설픈 사람이 헤맸다면 아마 공연 당일까지도 정확히 알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걸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잡담과도 같은 말들에서 정보를 모았기 때문이라면서 시아는 주장했다.

“결국 이런 모든 것들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고, 장소를 보고. 그러다 보면 제아무리 불가사의해 보이는 일도 단서가 잡힙니다. 지금 하는 질문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말은.”

노인은 짧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더 이상 타박하지 않았다.

“좋아, 도움이 된다면야 대답이야 해 주겠네. 하지만 조금 의문은 남는군. 그런 질문은 왜 던진 거지?”

“왜냐니요?”

시아는 웃으며 되물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태주는 진작에, 그리고 시아는 조금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다.

“여기, 계속할 생각 없으셨던 것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극장을 말하는 거냐? 확실히 이 건물 자체가 수명이 다한 느낌은 있다만.”

“아니, 극장도 극장이지만 이 극단 자체 말입니다.”

딴소리하는 노인의 말을, 시아는 가차 없이 잘라냈다.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그럴 리 없는 부분들이 꽤 있지 않습니까?”

장비나 건물에 재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 흔한 외관 페인트도 칠하지 않았다. 솔직히, 무리한다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은 단순히 가난한 것과는 다릅니다. 솔직히, 밖에 페인트칠하는 비용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적은 금액도 아니라지만 투자라고 한다면 못 할 것도 없는 금액입니다.”

그건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난 문제다.

“페인트칠만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시설과 설비들도 그렇지요. 게다가, 홍보도 거의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흔한 동영상이라도 올리거나, 그건 좀 어렵다 쳐도 극장을 온라인 예약할 수 있도록 하거나 하는 일도 이곳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옛날에 이미 만들어졌어야 했을 것들이, 이곳에는 없다.

굳이 매표소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자동 매표기 같은 것이 없어서였다.

“한참 동안 이곳에는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투자가 없다는 말은, 그 사업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말이고, 또 더 오래 지속할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하는 데까지만 하다가 철수하는 사업이 그렇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돈이 없는 극장이 아니다. 이 극단은 더 이상 미래를 보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신입을 뽑았습니다. 완전히 일을 처음 시작하는 신인을, 당신은 받아주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경력직이라거나, 그런 거라면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이 장소를 유지하는 데 사람이 필요했다면 곧 접을 사업이라도 한 사람쯤 뽑는 것이 말이 되지요.”

신입에게는 당연히 연기 이외에도 가르쳐야 할 것들이 많다. 심지어 이곳은 배우가 연기 외의 일들을 함께하곤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런데도 노인은 미연을 그냥 뽑았다.

“실제로 몇 년 동안은 사람을 안 뽑았습니다. 미연 씨보다 몇 살 많은 정도의 사람은 아예 없습니다. 허리가 비었지요. 미연 씨 또래나, 그보다 더 어린 사람은 당연히 없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노인은 이 극단에 사람을 뽑을 생각이 없었고, 사실은 지금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저 잘 하기에 뽑았다는 건, 그러니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뽑았는지가 궁금한 겁니다. 저는.”

“꽤, 잘 보고 다녔군. 잡으라는 유령은 안 잡고.”

시아의 말을 들은 노인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 말이 맞아. 오래지 않아 이 연극도 접을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 애는 안 뽑기에는 지나치게 잘했거든. 열의도 있었고.”

애초에 채용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미연은 제 발로 찾아왔다.

“제 발로 찾아와서는 당당하게 나에게 연기를 시켜달라고 말했다.”

“본인이 찾아왔다? 그래서 뽑았습니까?”

“그래.”

노인은 끄덕였다.

“내가 대체 왜 이런 곳에 왔냐고, 물어봤지.”

처음에는 노인 역시,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시아의 말마따나 이 극단은 그냥 있는 사람들끼리만 공연하다가, 그게 불가능해지는 순간 그만둘 생각으로 계속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그 애가 이곳에서 옛날에 공연을 봤다고 하더군.”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리고는 그 애가 뭐라고 했는지 아나?”

“저야 모르지 않겠습니까.”

“이곳에서 자기가 연기를 시작해야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런 말을 하더군.”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건방지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저런 어린 녀석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켜 봤어.”

묘할 정도로 자신감이 강해 보였기에. 노인은 어디 한번 해보라며 시켰다.

“그런데, 정말로 잘 하더군. 내가 본 중 최고의 초보였어. 어설픈 경력자보다 훨씬 나았지.”

미흡한 점이야 있지만, 동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능성의 덩어리.

“원래는 못 하니까 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정도로 잘했다. 그래서,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고.”

불쾌할 정도로 귀찮은 일들을 시켰다. 일부러 배우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들도 막내라는 명목하에 시켰고, 혹독하게 혼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다 견뎠어. 실력은 더 늘고, 무리한 일도 다 해냈지.”

그런 것을 눈앞에서 본 노인은 받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녀석은 시킨 일을 다 했고, 그러니 나도 안 뽑을 수 없었지.”

“그렇군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억울할 만도 하셨겠습니다.”

시아의 말을 들은 노인은 시아를 쳐다봤다.

“뭐?”

“아니, 분명 억울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시겠군요.”

“무슨 말이야?”

“이곳에 억울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단장님 당신이라는 말입니다.”

시아는 느긋하게, 그러나 확실한 태도로 말했다.

“이 극장의 유령이 대체 무엇인가, 이젠 확실히 알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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