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0)
사무소로 돌아오니 무언가 이상하다. 태주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왜 불이 켜져 있지?”
새벽 늦은 시간이니 당연히 불이 다 꺼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무소의 불은 아직도 켜져 있다.
“…새벽 두 시인데? 무슨 일이 있나?”
아무리 월이라도 별일이 없다면 이 시간까지 깨어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뭔가 큰일이 났다면 소장이 알려줬을 텐데. 그런 의아함을 품고 문을 연 태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엥? 어머님이 왜 여기 계세요?”
“왜,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냐?”
전과 비슷한 말투로 무당은 말했다. 조금 시큰둥한, 그러나 밤이 늦어서 그런지 조용조용한 말투다.
“으음, 아뇨. 상관이야 당연히 없죠.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냐. 말투에서 이미 싫은 티가 나는데.”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월이와 설이, 그도 아니면 소장 이외의 사람을 지금 만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무당은 별것도 아닌 거로 소란을 피운다는 듯 태연한 태도로 말했다.
“상관없으면 좀 더 조용히 말하거라. 여기서 널 기다리다 잠든 아이들이 있지 않니.”
무당의 말에 태주는 할 말이 없어 잠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잘 자고 있긴 하네요.”
실제로 월이, 또 그 옆에 설이 역시도 잠들어 있었다. 태주가 들어오며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울렸음에도 잘만 자고 있다.
대강 상황을 종합해 보니 무당이 한두 시간만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태주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대체 언제부터 여기 계셨던 거에요?”
“점심 이후부터는.”
“점심이요?!”
태주가 조금 큰 소리로 답하자, 무당은 눈을 뾰족 세웠다.
“쉿. 애들 깨겠다.”
“너무 오래 계셨잖아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덧붙였다.
“게다가 잘은 몰라도 방음 비슷한 거라도 해놓으신 것 같은데요 뭘.”
설이는 몰라도 월이가 종소리에 깨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아직도 자고 있다면 이유는 뻔하다. 태주의 능청스러운 말에 무당은 눈을 조금 찌푸리고 말았다.
“그래도, 너무 시끄럽게 하면 깰 수도 있단 말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나저나, 꽤 오래 여기에 있으셨네요?”
점심시간부터라 하면 태주와 시아가 함께 나간 뒤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부터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다려야 할 엄청난 용건이 있으셨나요?”
“알면서 묻는군. 그런 건 없다.”
무당은 당당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런 대단한 용건이 있었다면 별 이유도 없이 이곳에 그리 오래 앉아있을 이유는 없지. 차라리 너희가 있는 극장으로 찾아가지 않았겠냐.”
무당의 말마따나, 뭔가 급한 일이 있는 거라면 이리 느긋하게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부 사실일 리도 없다. 태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계속 앉아있으실 이유도 없겠죠. 오신 데는 별 이유가 없다 치고, 안 가신 데는 무슨 이유가 있었나요?”
태주의 질문에 무당은 그냥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뭐, 그냥 잘 되어 가는지 구경이나 하러 왔지. 물론 처음에는 그냥 너도 딸도 없다 보니 그냥 돌아갈까 했지만.”
하지만 마침 월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혹시 자신이 여기에 있는 동안 같이 있어 줄 수 있냐고 물어봐서 그냥 함께 있어 주기로 했다고, 무당은 말했다.
태주는 월이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아마 혼자 있기 불안한 참에 뭔가 대단해 보이는 시아의 어머니가 오니 무턱대고 물어본 모양이다.
아마 ‘언니도 없으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잠만 안 자고 있었다면 한 소리 했을 텐데.”
“뭐, 너무 그러지 말거라.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나도 재미있었다. 둘 다 좋은 아이들이야.”
처음에는 월이만, 그리고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중간부터는 아마 설이도 포함해서 한참을 대화를 한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그러다 지쳐 잠든 모양이지만, 입가에 미소가 조금 있는 걸 보면 짐작은 간다.
“솔직히 나한테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애들은 처음이거든.”
“정말 꽤 화기애애했나 보네요.”
여전히 태주는 이런 부드러운 무당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월이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쟤가 저렇게 안심하고 푹 잘 정도면 말이에요.”
“너처럼 건방지지 않은 아이라서 말이다.”
무당의 뼈 있는 말에 태주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크흠… 죄송하게 됐네요.”
“뭐, 됐다. 그때 지고 난 뒤 심술부리는 것 정도에 불과하니.”
무당은 그렇게 말한 뒤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태주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으셨던 게 뭐예요?”
“뭐? 난 그냥 이 귀여운 꼬맹이가 같이 있어 주면 안 되겠냐고 했을 뿐이라니까.”
무당은 그렇게 말했으나, 조금 궁색한 변명이기는 했다.
“뭐, 그것도 거짓말은 아니겠지만요.”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러려고 오셨을 건 아니잖아요. 그냥 얘네들 말동무나 하시려고 오셨을 리는 없죠.”
무당은 작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네 녀석, 내 딸 만큼이나 내가 있는 걸 경계하는구나.”
“경계라기보다는 호기심이라 생각해 주세요. 괜히 이곳에 계신 건 아닌 것 같아서요.”
솔직히 말하자면, 태주는 무당을 조금 두려워하고 있다.
이전에 지네를 만나거나 흡혈귀 앞에서 헛소리를 할 때와는 다른, 일종의 공경에 가까운 두려움이다.
하는 행동에 의미가 없는 것이 없고, 그 행동을 했다면 분명히 뭔가 이득을 얻어가는 것이 무당의 행동 방식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태주가 되고 싶은 롤모델에 가까운 사람.
그런 사람이 무의미하게 움직일 리 없었다.
“애초에 방음까지 하시고 저를 기다렸으니, 뭔가 분명히 물어보고 싶으신 게 있겠죠. 자존심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몰라도 아직 망설이시는 것 같지만요.”
“너처럼 눈치 빠른 애송이는 싫다니까.”
무당은 그렇게 말하며 조금 눈을 찌푸렸다. 그 표정이 너무나 시아와 닮아 있었기 때문에 태주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이 녀석이? 웃어?”
“아, 아뇨. 하지만 그 표정이 너무 누나랑 똑같아서요.”
태주의 말에 무당은 더 뭐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에 태주는 무당이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지 조금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혹시 누나를 보러 오신 거예요? 아님 본인이 없더라도, 저한테 뭐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뭐, 그래.”
무당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무당은 무심코 품에서 곰방대를 꺼냈다가, 옆에 있는 아이들을 보고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작게 웃었다.
“누나는 잘 하고 있어요. 조금 헤매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그런가.”
무당은 아주 살짝,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만 미소를 지었다.
“조금 헤매고 있구나.”
“잘 하고 있다는 쪽에 집중하고 계시면서.”
“시끄럽구나.”
무당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뭐어 그 이상으로 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니, 나는 이만 가보마.”
조금은 쓸쓸한 그 모습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무당이 채 두 걸음도 가기 전에 튀어나온 말이다.
“어머님.”
무당은 그 말을 듣고는 살짝 멈춰 서서는 말했다.
“흐음, 기분이 이상한데. 사내 놈한테 그렇게 들으니까.”
태주는 대답하기 곤란한 말은 적당히 무시하고는 말했다.
“지난번에 분명히 ‘그건 내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하셨죠?”
질문을 들은 무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 같긴 해 보여요. 친구라 하셨으면, 더 그렇겠네요.”
“차라리 무당은 네가 하면 더 잘 했을지도 모르겠어. 아니면 이 애나.”
무당은 옆에 있는 설이를 힐끗 보며 말했다. 여전히 아쉽다는 눈빛이다. 태주는 웃었다. 아쉽다는 것은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에게 그걸 물려주실 생각은 안 하고 계시잖아요?”
태주의 말을 들은 무당은 잠시 먼 곳을 쳐다보다가는, 눈을 감았다.
“…그래.”
무당은 그렇기에, 이번 유령을 잡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접기로 했으니 말이다. 비슷한 경험을 그 녀석도 하게 되겠지.”
무당은 한숨을 쉬었다.
“나보단, 좀 나은 상황 같기도 하다만.”
* * *
담요를 덮은 시아는 잠시 이곳에서 함께 자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잠자리가 불편하다.
“그나마 여름이라 다행이군요.”
춥지는 않아 다행이다. 미연은 활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쵸! 겨울엔 솔직히 못 해먹을 짓이더라고요!”
이쪽은 아예 담요조차 덮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배려받은 셈이니, 더 불만을 표하기도 그렇다. 시아는 잠자코 들었다.
“저 겨울에는 얼어 죽을 뻔했다니까요?”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지나고 나면 다 웃을 일이죠, 뭐!”
어처구니없는 소리지만, 미연은 밝게 웃었다. 꽤 즐거워하는 목소리다.
“근데 저 여기서 두 사람이 새벽에 함께 있는 건 처음이에요. 게다가, 저랑 나이도 비슷한 사람이 있는 것도 처음이고요. 이곳 분들은 다들 나이가 많다 보니 말이에요.”
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이런 상황이었다면, 확실히 또래의 사람과 함께 있는 게 반가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연기는 얼마나 오래 하셨습니까?”
“저요? 여기서 한 지는 거의 오 년 넘었죠?”
성인이 되기 직전부터 계속 해왔다는 말이다.
“그 전에는 얼마나 하셨습니까?”
“그 전에요? 전에는 그냥 학교 동아리에서 하던 수준이었죠.”
미연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때도 못 한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었고, 여기 무턱대고 와도 제자 비슷한 거로 받아줄 정도로는 했나 봐요!”
순수한 열정에 조금의 자부심을 섞은 목소리다. 시아는 작게 말했다.
“꽤 힘든 일이었을 텐데.”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얼마나 스스로를 깎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얻어가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시아는 짐작이 갔다.
“그래도 이게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좋다, 인가. 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기를 계속 하고 싶으십니까? 언제까지나?”
“가능하다면요.”
미연은 그렇게 말하다가는 침묵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연기 말입니까?”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기야, 뭐 잘 하기만 한다면 어디서든 불러주지 않겠습니까? 텔레비전도 있고, 다른 극장도 있고 말입니다.”
“음, 그럴까요? 일단은 여기서 더 하고 싶….”
미연은 말을 멈췄다.
“왜 그러시죠?”
“쉿! 잠시만요!”
미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죠?”
미연의 말을 들은 시아 역시 소리를 죽였다. 그러자 확실히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발소리인가?”
유령이 내는 소리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하다. 무대 바깥에는 누군가가 있다.
“이곳을 터는 도둑 같은 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설마 오늘 생겼나?”
어처구니없는 미연의 말에 시아는 결국 엄청나게 싫은 표정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확인을 좀 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