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9)
저녁 아홉 시부터 시도한 모든 방법은 결국 죄다 실패했다. 잠시 바깥에 나갔다 온 시아가 물었다.
“안 나왔냐?”
“네. 안 나오는데요?”
“역시 안 나왔나.”
시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단순 연습으로는 유령이 나오지 않는 건가?”
“최소한 이게 정확한 조건이 아닌 것 같다는 건 알겠네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미연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으으,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한창 연기를 시작하려던 미연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저번에는 이러니까 나왔어요!”
무대 위에서 미연은 외쳤다.
“분명히 나왔단 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에 귀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 참.”
도와주기 위해 남아 있던 부단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실제 공연처럼 세팅까지 맞췄지만, 이걸로는 안 되는 건가.”
“…그러게요.”
미연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유령이 나오는 조건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시아는 잠시 생각했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 걸까.
“흐음, 어렵구만.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인데 말이야. 하긴, 단장도 처음이라고 하니 당연한 일인가.”
중년의 남자는 그새 자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부단장님이시라고요?”
태주의 질문에 남자는 웃었다.
“뭐, 그냥 경력순으로 달고 있는 것뿐이야.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귀찮은 감투 하나지. 단장 빼면 어차피 나머지는 그게 그거거든. 일주일 전부터 하는 리허설 같은 거, 단장이 못 보는 부분을 대신 봐 주고, 겨우 그런 역할이야.”
부단장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일단 가보도록 하지. 아무래도 이 이상 시간을 쓰긴 어려울 것 같아.”
“앗, 고생하셨습니다!”
미연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부단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내일은 쉬는 날이시죠?”
“쉬기는, 다른 일 하러 가지. 그래도 오후 출근이라 조금 오래 있을 수 있었던 거뿐이야.”
부단장은 그렇게 말한 뒤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너도 너무 오래 연습하진 말고. 문단속 잘하고!”
“제가 하루 이틀 이곳에 있었나요?”
미연은 밝게 웃었다.
“어쨌든 금요일에 봐요!”
부단장은 사람 좋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흔쾌히 도와주기는 했지만 이미 새벽까지 협력해 주신 분이니 더 오래 붙잡고 있기도 미안하다.
“일단 미연 씨도 먼저 가시죠. 저희는 좀 더 남아 있겠습니다.”
이미 늦게까지 고생한 사람은 부단장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태주는 말했다.
“네?”
“둘이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한데, 아무래도 이다음에 시도할 일은 별로 썩 안전한 일은 아니라서요.”
두 사람만 있다면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미연도 있다면 조금 곤란한 일이다.
“제가 어딜 가요?”
미연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에 안 가세요?”
“아, 혹시 시간이 늦어 집에 돌아가기 힘드신 거라면 저 녀석과 함께 돌아가시죠. 어딘지는 몰라도, 차가 있으니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어, 아뇨 정말로 괜찮아요!”
예상치 못한 거절에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다니요? 새벽이라 대중교통도 없지 않습니까? 거절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중교통도 다 끊긴 상황이니 차가 있는 쪽이 조금 수고를 하는 게 맞다.
“차를 조금 얻어 타신다고 실례가 되지는 않으니 그냥 타세요.”
이어지는 태주의 권유에도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정말로 괜찮아요. 저 여기서 살거든요.”
“?”
두 사람은 완벽하게 동시에 함께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이… 곳에서요?”
“네, 그런데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아, 혹시 여기 사람 살 만한 방이 따로 있나요?”
억지로 상황을 조금 이해해 보려는 태주의 말도 통하지 않았다.
“아뇨? 정말 그냥 대기실에서 자는 건데요? 샤워실이랑 화장실은 있지만요.”
“어어?”
태주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고, 시아 역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벌렸다.
“여기 이 허름… 아니, 이 말은 실례겠군요. 하지만 그래도 보안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데 이곳에서 혼자 계신단 말씀이십니까?”
“아하하, 허름하긴 하죠. 괜찮아요! 사실이니까! 하지만 보안이야 괜찮아요. 이 건물을 보고도 들어올 도둑이 어디에 있겠어요?”
두 사람의 표정은 조금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미연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제정신 박힌 도둑이라면 이곳을 굳이 털러 올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은 이곳에 아무런 보안 장치도 없다는 거로 들리는데요?”
“으음, 없긴 하죠! 돈 들잖아요. 그런 데 쓸 돈이 어디에 있어요?”
미연의 말을 들은 태주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태주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이 뭐라고 안 하세요?”
“네. 안 하시던데요? 단장님이 아예 여기 살아도 된다고 했어요!”
태주는 영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원래 집이 어디신데 계속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부천 쪽이에요! 본가 쪽이지만요.”
거리가 그리 아주 먼 것도 아니다. 차를 이용한다면 이 시간에는 정말로 금방 갈 수 있다. 조금 빨리 걷는다면 걸어서도 출근할 수 있다. 엄청 피곤하겠지만.
그런데도 거절하는 걸 보면 이 사람은 여기에 정말로 살고 있다는 말이다.
태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다니까요?”
“안 괜찮을 거 같은데.”
“진짜 괜찮아요! 봐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잖아요?”
자신이 멀쩡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근거로, 미연은 주장했다.
“으음….”
하지만 그 한 번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이곳에 혼자 있다면 큰일이 나는 거 아닌가. 태주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신음을 흘렸다.
“곤란하네요.”
태주는 힐끗, 시아 쪽을 바라봤다. 시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곤란합니다.”
“왜요?”
미연의 질문에 시아는 이걸 뭐라 전달해야 할지 입술을 뻐끔거리다가는 그냥 큰마음 먹고 말했다.
“여기엔 유령이 있습니다.”
“...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 미연은 말했다.
“그래서 오신 거 아니에요?”
“예, 그래서 왔지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자마자, 이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경계선도 하나 쳐 놨지요.”
“경계선이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 건 아닙니다. 그냥, 그 선을 통과하는 잡귀 같은 것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거였습니다. 뭔가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이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닌 물건이지요.”
지나가고자 하면 그냥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간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기록이 남는다.
시아는 조금 말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선을 통과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그 경계를 만든 이후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넘은 기록이 없었습니다.”
중간에 잠깐씩, 혹시나 싶어 방금까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 결과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이 안에서 유령이 불을 끄고 박수를 치는 동안, 사람이 아닌 것 중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나가지도 않았다.
“그럼… 그 말은…?”
미연은 입을 헤 벌리고 말했다. 유령이 이 안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니,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 뿐이다.
“예, 유령은 이 안에 있습니다.”
마치 추리 소설의 탐정과 같은 말을, 시아는 했다.
“그리고 아마, 이전에도 계속 있었을 겁니다.”
유령이 이 안에 있다. 미연은 소름이 돋은 듯 부르르 떨었다.
“이 안에 있었다고요? 지금까지 계속요? 중간에 왔다가 간 게 아니고, 그냥 쭉?”
“예. 그리고 아마 오늘만 그랬던 것이 아니겠지요.”
시아의 말을 들은 미연은 조금 더 표정이 일그러졌다.
“으으, 좀 소름 돋네요. 저 계속 여기 살았는데.”
“흐음.”
시아는 그렇게 잠시 소리를 내고는 다시 물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있겠습니다. 유령은, 미연 씨를 방해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겠군요.”
그런 목적이라면, 아예 이곳에서 살고 있는 미연이 유령과 수십 번은 마주쳤어야 했다.
“공연을 방해하는 것… 그중에서도 미연 씨가 혼자 연기하는 것을 방해하는 거라 생각하기보다는, 그 장면을 막으려 한다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겠습니다.”
“그 장면이요?”
두 번의 시도 중 두 번 다 같은 순간, 불이 꺼졌다. 그런데 요인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해당 장면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거의 끝부분이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기는 합니다만.”
“아하.”
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그거 거의 끝이 아니에요.”
“예?”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해서 정말로 끝이에요. 커튼콜이죠.”
약 오 분 정도를 혼자서 연기한 뒤, 무대는 완전히 끝이 난다.
“그러니까, 사실상 그건 엔딩이에요.”
미연의 말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유령이 하려는건 연극의 끝을 막는 것이로군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혹은 정 안된다면 모레 검증 가능할 것 같다.
“어쨌든 그런 것이 유령의 목적이라면 지금은 어차피 무리였겠군요.”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연극을 할 수는 없다.
“그럴…지도요?”
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검증은 내일로 미루긴 해야겠습니다. 미연 씨가 있는 곳에서 뭔가를 더 하기도 그렇고 말입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곳에는 유령이 있는데 계속 여기 계시겠습니까?”
시아의 질문에 미연은 잠시 침묵했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만.”
“저 집엔 못 가는데.”
“그렇다면 다른 곳에 방을 잡으시는 것도 방법이지요.”
“그럴 돈은 또 없어요.”
결국은 별수 없는 상황이다. 미연은 한숨을 쉬었다.
“…저 진짜 갈 데가 없는데요. 그렇다고 밖에서 잘 수도 없고 말이에요.”
시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눈을 조금 찌푸리고는 말했다.
사무소로 함께 가는 것도 방법이라면 방법이지만 아무래도 본인이 거기까지 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군. 오늘은 그냥 너 혼자 돌아가. 그리고 내일 아침에 와. 오늘 하려던 건 내일 하도록 하지.”
“네? 저 혼자 돌아가요?”
“한 명은 여기 남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다. 애초에 유령은 좋은 의미로 미연이 여기 사는 것에 큰 관심은 없어 보이니, 그리 위험할 건 없겠지.”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태주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네가 남을 순 없지 않을까?”
“어, 그렇죠.”
태주는 당황해 말했다.
“그게 그림이 조금 이상하긴 하죠?”
“조금만 이상하냐? 헛소리 말고 사무소로 돌아가.”
시아의 말에 태주는 잠시 눈을 굴리다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사무소 쪽도 별로 다를 건 없지 않아요?”
그쪽도 소장을 떼 놓고 생각해 보면 남녀 성비가 조금 이상하다.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이 자식 이거 헛소리를 다 하네.”
시아는 도끼눈을 뜨고는 말했다.
“빨리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