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8)
“유령이 불을 끄는 조건이라도 알았다는 말이냐?”
“음, 일단은요?”
노인의 질문에 미연은 애매하긴 해도 긍정했다.
“제가 연기를 시작하려고 하면 그 때서야 불이 꺼져요.”
“뭐? 네가 무대 위에 혼자 남을 때?”
노인은 조금 눈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런 걸 누가 몰라? 그딴 멍청한 소리를 하려고 그랬나?”
“아뇨! 좀 달라요!”
미연은 반발했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 저는 한번 심호흡을 해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뭔가가 일어나지 않아요. 그리고 정말로 연기를 시작하려고 하는 그 순간에, 불이 꺼져요.”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저밖에 모르는 그 타이밍에 정확히 불이 꺼진다는 말이에요.”
“너밖에 모른다… 글쎄.”
“진짜예요! 방금도 그랬거든요?”
미연은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아직 두 번밖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확실한 공통점이긴 하다.
미연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노인은 영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왜요!”
“겨우 두 번 가지고 통계를 내는 얼간이가 어디 있어?”
노인의 말에 미연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건 너무 근거가 빈약해.”
노인 역시 흥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불은 그렇다 쳐도 박수는 왜 쳐?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그 타이밍은 정해진 게 있었나?”
“어….”
거기서부터 미연은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게요?”
“에잇, 알 수 없는 것 투성이군.”
노인은 투덜거렸다.
시아는 자신들이 뭔가 물어볼 필요도 없이 자기들끼리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해버리는 것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크흠.”
시아는 헛기침을 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무안한 표정이 되었다.
“이거, 미안하군. 우리끼리만 이야기해 버렸어.”
“아니오, 어차피 저도 질문드리고 싶었던 것들이 포함된 내용이었으니 오히려 좋습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조금 생각에 잠겼다.
“마침 그 부분도 미연 씨에게도 드려야 했던 질문이고, 다른 분들께도 드려야 했던 부분이니 상관은 없겠습니다만.”
어차피 유령이 언제 돌발행동을 하는지는 시아 역시도 알아내야 할 과제다.
“흐음, 그런가? 아예 헛소리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 셈이라 그나마 다행이군.”
노인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면 곤란할 것 같기는 합니다.”
조심스러운 시아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래도 계속 내가 있으면 방해만 될 것 같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성격이 조금 급하거든.”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일어나서는 말했다.
“그럼 나는 일어날 텐데 혹시 대신 해 줬으면 하는 게 있나?”
“있습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노인에게 부탁했다.
“혹시, 유령과 만난 적 있는 사람이 있는지 조금 알아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질문들도 함께 던져 주시면 더 좋습니다.”
한명 한명 시아가 전부 돌아다니며 조사를 해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속도 문제가 있다.
“다음 주가 공연이라면 해결은 최대한 빠른 편이 좋을 테니까요.”
시간상으로는 일주일이 안 된다. 아무리 주말을 끼고 있다고는 해도 그렇다.
“확실히 그렇군. 그건 그냥 내가 하지. 자네들이 질문하고 돌아다니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으니.”
노인은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물어보고 오겠네.”
노인이 자리를 비운 뒤, 미연은 조금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말도 맞긴 하네요. 겨우 두 번 가지고 그게 정확한 타이밍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미연은 자신감을 조금 잃은 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버릴 필요는 없는 가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뭐어, 그렇다고 검증이 어려운 내용도 아니니까요. 그건 그냥 한번 실험을 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태주의 말에 미연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실험이요?”
“예,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 해볼 만해 보이잖아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방법이야. 정말로 재현할 수 있는 거라면 말이야. 마침, 불이 꺼지는 장면은 미연씨 홀로 연습하는 장면이니 시도하는 건 비교적 쉽겠군.“
“밤에 한 번씩 연습하는 건 늘 하는 짓이니 상관 없지만,”
미연은 그렇게 말한 뒤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그럼 새벽까지 여기 계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저야 어차피 연습하다 보면 그러는 게 일상이라 괜찮은데….”
“괜찮습니다. 저희도 밤새는 거 익숙하거든요.”
태주는 조금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보통 이런 놈들이 밤에 나타나잖아요?”
“아하.”
미연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히려 좋네요!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거죠?”
“네, 물론이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다들 열심이시네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이에요.”
“그렇죠?”
미연은 살짝 웃었다. 놀랍게도 그렇다.
단장의 그런 말도 안 되는 폭언과 제멋대로의 지휘에도 밑에 사람들끼리는 엄청나게 훈훈하다.
“제가 막내인데도, 텃세 한번 부린 적이 없어요. 저한테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에요.”
“단장님은요?”
태주의 질문에 미연은 조금 흐린 눈이 되었다.
“음, 으으으음… 아무래도 조금 어렵죠. 그래도 부단장님이나, 혹은 다른 몇몇 분들은 단장님과도 꽤 친하지만요. 삼십 년 넘게 같이 일한 사람들이니. 아, 하지만 어려워한다는 게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 오히려 존경하고 있다구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참을 갈굼 받은 미연은 오히려 노인을 변호했다.
“그렇습니까?”
“그래요. 어쨌든, 그분이 아니면 여기도 없으니까요.”
미연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럼 연습 좀 하고 올게요! 저녁에 더 할 수 있다고는 해도, 제가 있어야 다른 분들도 합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세요.”
태주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미연 역시 마주 손을 흔들며 무대 앞으로 뛰쳐나갔다. 시아는 옆에서 그 광경을 무심코 보다 말했다.
“…그나저나 네가 그렇게 밝게 웃는 거 처음 보는데?”
“어, 그래요?”
“그래, 내가 너를 오래 봤는데도 그런 표정은 처음 본다. 왜, 반하기라도 했냐?”
시아의 짓궂은 질문에 태주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으음, 거기까지는 모르겠네요. 무대 위에서 되게 멋있다는 생각은 들던데. 일단은 순수한 팬심이에요. 솔직히, 저런 무대를 보고 어떻게 팬심을 안 품겠어요?”
태주의 변명은 다른 사람이 듣기에 꽤 구차할 수 있었지만, 시아에게는 먹혔다.
“하긴, 연기가 보통이 아니긴 하더군.”
시아 역시 함께 그 무대를 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배우에 비할 바는 아니라지만 두 사람도 간단한 생활연기 정도는 가능하기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래서 아쉬워.”
“아쉽죠.”
두 사람은 같은 말을 했다.
“그건 이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날 연기야. 내가 배우들을 잘은 모르지만, 최소한 이 무대에 한해서 이보다 대단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던데.”
미연의 연기를 일반적인 TV드라마에서 보면 그저 그런 연기일 수도 있다. 미연이 보여주는 연기는 그런 자연스러운 종류의 연기와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래도 다른 연기를 아예 못 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긴 하지만요.”
허나 미연이 보여주는 건 이 극장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감정과 상황의 전달에 최적화된 연기다.
누구나 연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렇기에 오히려 표현을 극단적으로 강화한 그런 연기.
이 극장에 한해서, 미연은 최고의 여배우다. 호흡도, 표정도 몸짓도 섬세하게 모두를 보여줄 수 있으니 감정의 과잉이 그냥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분이 이 극단에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이건 이 극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연기에요.”
몸 전체를 사용한 연기와 동작을 보여줄 수 있고,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자세히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극장이다.
만약 이런 극장이 아니라면 진가를 드러낼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그런 장소다.
두 사람은 그래서 미연의 연기가 조금 아쉽기도 했다. 다른 극장에서는 이런 퍼포먼스를 보일 수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곳과 같은 크기의 다른 극장이 있을까요?”
“모르겠군, 있기야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연극을 위한 극장일지는.”
잘은 몰라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이야.”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의 말마따나 지금 해야 하는 건 미연의 연기에 대한 품평이 아니라, 무엇의 유령이 왜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이니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
오늘을 제외하면, 공연이 재개되기로 한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4일의 시간여유밖에 없다.
“당일 오전 리허설도 포함한다면 4.5일이라 해야 할까?”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네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오늘 저녁에, 소득이 있을 수 있을까요?”
“뭐, 일이 어떻게 굴러가든 소득이야 있겠지. 상황 재현에 성공한다면 좋고, 성공의 어머니라도 나쁘지는 않을 테니.”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네, 그렇죠.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조금 기묘하긴 하니까요. 일단 미연 씨는 유령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아예 무감정한 건 아니지만요.”
오히려 미연과 이 극단의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노인이다. 유령 따위가 아니다.
“뭐어, 애초에 그렇게 살벌하게 탈탈 털리는 광경을 보고도 유령 따위를 신경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여기 유령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태주가 본 극장 사람들이었다.
“흐음, 하지만 그렇다면 더 이상하군.”
시아는 팔짱을 끼고는 생각에 잠겼다.
“대체 이번 유령의 목표가 뭐지?”
누구인지를 모르면, 어떤 한을 가진 유령인지를 알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전혀 사지 않고 그냥 연극의 연습만 가끔 방해하고 있는 게 다인 모양새니, 목적을 알 수가 없다.
“그냥 꼬장을 못 피워 한이 된 유령일 리는 없을 텐데….”
“장난질을 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도깨비 같은 게 나와야 하겠지만요.”
“그런 거라면 티가 나겠지.”
재미로 하는 거라면 재미로 하는 일 특유의 바보 같음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담백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야.”
물론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손 놓고 있다가 재현에 성공했네, 실패했네 할 생각은 없다.
“일단, 우리도 할 일을 해야지.”
“예. 아침에 해 놓은 건 상황 어때요?”
“몇 시간 전까지는 없었는데. 지금은 또 아직 살피지 않아 모르겠군.”
시아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그것도 한 번 보고, 오늘 저녁에도 불이 꺼지는지 한번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