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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40화 (140/269)

14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7)

“애초에, 유령이란 뭔가?”

뒤에서 듣고 있던 미연은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단장님도 참, 유령은 죽은 사람이잖아요?”

유령이란 무엇인가.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종류의 질문이다.

“내가 노망이라도 든 줄 알아? 나도 그건 알지!”

미연의 말에 노인은 짜증을 냈다.

“그런데 이런 데서 죽은 놈은 없어! 유령이 왜 나오는지를 모르겠다는 말이야.”

노인은 팔짱을 꼈다.

“아니면, 다른 데서 죽은 사람한테 원한 산 녀석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유령을 직접 만나서 알게 모르게 흥분하고 만 것인지 노인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멀리서 배우들이 움찔하고는 힐끗 쳐다볼 정도로.

“말씀도 참….”

미연은 눈을 찌푸렸다.

“여긴 그럴 만큼 나쁜 사람이 없어요!”

“그건 모르지. 물론 나도 내 극단에 누구한테 원망을 크게 살 성격의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미연 씨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유령은 당연히 죽은 사람이니까요.”

시아의 말에 미연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거봐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미연의 입꼬리는 조금씩 내려갔다.

“하지만 단장님의 의문도 꽤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유령이 그냥 죽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미연에게 물었다.

“유령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으음, 뭐 처녀귀신이나 뭐 그런 것들이요?”

미연은 양손을 앞으로 늘어트리며 말했다. 시아는 살짝 웃었다.

“당연한 이미지군요.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유령이라 생각하면 될 겁니다.”

시아는 그렇게 웃은 뒤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다른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으십니까?”

“햄릿이 조금 떠오르는군.”

노인의 말에 시아는 조금 웃었다.

“그건 참.”

역시 희곡부터 떠올린다는 점이 특이하다. 창작물이긴 해도 그 역시 맞는 예시다. 유령에 대해 설명하기에 적절한, 그런 사례다.

“예, 햄릿에서도 남동생에게 독살당한 왕의 유령이 나오지요. 그 죽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 나이에 죽었다는 것이, 혹은 권력에 눈이 먼 남동생이 자신을 살해했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 유령의 등장 원인인 셈이다.

“모든 죽은 사람이 유령이 되지는 않습니다. 억울하게 죽는다는 것이 유령의 등장에 중요한 요소인 셈이지요.”

“그러니까 억울이고 자시고 죽은 사람이 없다니까? 오십 년 동안 없었어!”

노인의 성급한 말에 시아는 작게 웃었다.

“예, 사실 단장님은 모르겠지만 이곳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곳에서 아마도 반세기를 지내시는 동안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 했던 분이 하는 말이니 확실하겠지요. 제가 하려던 말은 그런 게 아닙니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과연 모든 억울한 사람이 유령이 될까요?”

“그건 무슨 말이지?”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한이 있는 채 죽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은 여성의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지만, 서울역 노숙자 귀신 이야기 같은 것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죽은 유령의 이야기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과연 사업에 실패하여 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처녀귀신보다 한이 적기 때문에 그렇겠습니까?”

꼭 그런 노숙자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대회 전날 억울하게 사고로 죽은 보디빌더 유령이나, 씨름선수 유령 같은 것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 태자귀라는 것이 있지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태아가 생명이니 아니니 하는 이야기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건 그 이전의 문제다. 과연 태아는 한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상태인가?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간 의문이 있다. 정말로 그런 억울함이 있는 사람만이 유령이 되는 것인가.

이쯤 가면 사실 점점 더 애매해진다.

“그럼 이제 아까의 질문을 다시 던져야겠지요. 정말로, 원한을 가진 사람이 유령이 되는 거라 생각하십니까?”

시아의 말을 들은 미연은 눈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유령은 정말로 원한을 가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원한은 있었을 수도 있고,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정말로 죽은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큰 관련이 없습니다.”

시아는 천천히 말했다.

“그저 확실한 건, 유령은 누군가가 한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기에 나타나는 거라는 겁니다.”

노인은 그 말을 듣고는 말했다.

“한을 가진 누군가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예, 아마 그것만은 확실할 겁니다.”

시아의 말을 들은 노인은 팔짱을 끼고는 생각했다.

“그건 좀 말이 되는 것도 같군. 누군가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유령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지?”

정확하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만, 그렇기에 아직 그것이 누구의,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유령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조금 특이한 유령이라는 점 정도는 나도 들어서 알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내가 모르는 다른 사건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도 나는 모르겠군.”

물어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노인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주변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이 있는 사람 있으면 냉큼 튀어와 봐!”

갑작스러운 말에 단원들은 움찔하면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될 뿐이었다.

“없어?!”

“보통은 없지 않겠어요?”

오십 대쯤으로 보이는, 그나마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남성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으면 옛날에 유령 이야기 처음 나왔을 때 분명 언급이라도 나왔을 걸요?”

“에잇! 너도 모르냐? 그럼 없겠지. 없으면 됐어!”

노인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단원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별로 당황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없다는군.”

“어, 아니, 그렇군요.”

오히려 갑작스런 큰 소리에 놀란 건 시아 쪽이다.

“하지만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런 사람이 있을 확률은 엄청나게 적겠지요.”

“그래. 응? 아니, 아니지. 확률 문제가 아니야. 내 앞에서 일부러 거짓말을 할 녀석들은 없어.”

“으음, 정말로 없는 건지, 있는데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태주는 조금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일일이 물어 확인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겠다.

“조금 어렵게 됐네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살짝 눈을 흘기고는 말했다.

“그래. 하지만 일반적인 유령이라면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경우라면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있지.”

독특한 유령이니까, 어느 부분이 특이하고 다른 행동을 보이는지를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정체 역시 알 수 있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 유령만이 가지는 특이한 점을 조금 더 생각해 볼까요. 방금 말씀드린 부분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시아의 말을 들은 노인은 말했다.

“극장 설비를 만지는 유령은, 특이한 점인가?”

“만진다…고 표현하지만 물건의 상태를 바꾸는 것 자체는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특이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요.”

시아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유령은 지금까지 극장의 설비들을 만져서 불을 껐습니다. 켜기도 했지요.”

“그랬지.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그랬으니 말이야.”

노인은 침음성을 흘렸다.

“특히나 유령이 한 짓은 단순히 스위치를 조작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설비를, 금방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만, 그러나 확실하게 불을 끌 수 있게 망가트렸다는 말이니까요.”

그건 생각해보면 꽤 특이한 일이다.

고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만을 정확하게 망가트리고는 금방 고칠 수 있는 상태로 방치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웃기지만, 연극에 대한 지식이 꽤 있는 유령인 셈이다. 사람이 있어도 도저히 신경 쓸 수 없는 부분을 찔러서 목적을 성사시킨다는 말이니까.

“연극에 필요한 것에 꽤 조예가 깊은 유령이라는 말인가.”

“그렇지요. 그리고 박수를 쳤다는 점과 그걸 함께 고려하면 또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유령은 아예 연극이 싫은 건 아닐겁니다.”

“그야 그렇겠지.”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일주일 안에 도저히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장비를 망가트리는 방법도 있었을 테니까. 아니, 애초에 돈이 없으니 제대로 망가졌다면 고칠 수나 있을런지.”

그런 상황이 상상도 하기 싫은 듯 노인은 얼굴을 확 구긴 채 말했다.

“적당한 방해는 하고 있지만, 공연을 못 하게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예. 오히려 공연 자체를 하는 건 좋아하는 것도 같습니다.”

박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찬사의 의미다. 단순히 흥에 못 이겨 박자를 맞추는 데 쓰는 경우나 이목을 끌기 위한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굉장히 기묘하다.

“유령은 연극을 방해하고 있지만, 동시에 존중도 하고 있습니다.”

현시점에서는 그렇게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연습은 막지 않습니다. 연극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로 이러는 것인지, 그것만 안다면 꽤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군. 어떤 때 방해받고, 어떤 때 방해받지 않는지를 알아낼 수가 있다면 동기를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겠다는 말인가.”

단순 연습은 방해하지 않지만, 본 공연이나 리허설은 막는다.

“그리고 어쩌면 유령에 대해 끝까지 알지 못하더라도 공연 자체는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노릇이고.”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니 알아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아는 손가락을 두 개 폈다. 태주가 자주 하곤 하는 손버릇이다.

“하나는 이것이 대체 누구의 유령인가.”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는, 그 유령은 대체 무엇을 원망하고 있는가. 그 두 가지를 알아낸다면 이번 문제를 유의미하게 해결할 수 있겠지요.”

곤란한 문제다. 노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누구의 무엇인지도 모를 원한을 알아야 한다… 곤란한 일이로군. 그런데 그냥 퇴치하는 건 안 되나? 내가 처음 부탁한 그 녀석이라면 아마 그랬을 것 같은데.”

노인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노인의 말마따나, 시아의 어머니라면 그냥 힘으로 밀어버렸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번에 그건 정답이 아니다.

“물론 퇴치는 지금도 가능은 합니다만. 당장은 안 됩니다.”

“왜지?”

“한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풀지 못한다면, 다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유를 모른다면 예측은 불가능하다.

“유령이 왜 나왔는지 모른다면, 다시 나온다 해도 불평 말고는 할 게 없지요. 만약 도박수를 던지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기는 합니다만.”

“극단장에게 연극을 가지고 도박을 하라니, 받아들이기 어렵군.”

“그렇다면 조금, 확실한 방법으로 돌아가는 게 맞겠지요.”

“그게 올바르지.”

노인은 쳇 하고 혀를 찼다.

“저어, 근데 하나 알 것 같아요.”

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중간부터 조용하더니 갑작스럽게 던진 말이다. 노인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유령이 누구인지? 아니면 왜 그러는지?”

“아뇨, 그 두 개는 다 모르겠는데요.”

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유령이 언제 불을 끄는지는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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