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6)
“불이 지금 꺼져서는 안 될 텐데요.”
“연출의 일환은…. 아니겠군.”
집중하고 있었으니 알 수 있다. 지금은 불이 꺼져도 되는 장면이 아니다.
기분이 팍 식은 시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순한 사고일까요?”
“글쎄,”
시아는 침착하게 말했다.
“우린 이곳에 와 본 것이 처음이니 말이야.”
아직은 그저 연극이 중단되었을 뿐, 무언가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이 무언가를 알아내기에는 너무 정보가 부족하다.
“하지만 이게 정말로 그냥 사고일 리는 없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하.”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당연하죠.”
갑작스럽게 뒤에서 박수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야기로 들은 것과 완전히 같은, 그런 상황.
짝, 짝, 짝
짧고 강한 소리의 박수는 분명 태주와 시아의 몇 칸 뒷좌석에서 들렸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냐! 대체 누가 이따위 장난을 치나!”
노인의 일갈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윽고 불은 켜졌다. 연극의 조명이 켜진 것이 아니라, 그냥 객석을 밝히는 불이 켜진 것이다. 연극은 중지다.
이제 더 기다릴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확인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네요.”
“그래.”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사람의 장난질은 아닌 모양이야.”
여전히 뒤에는 아무도 없다. 시아는 작게 물었다.
“처음에도 분명, 뒤에 아무도 없었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한번 확인을 했으니, 확실해요.”
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배우도, 연출자도 가리지 않고 다들 무대의 앞쪽에 달라붙어 있었다.
연기의 평가나, 혹은 보완해야 할 것들을 체크하기 위해서는 다들 가까이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을 제외하면 가장 뒤쪽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노인조차도 두 사람보다 열 칸은 더 앞에 있었다. 그러니 그중 가장 뒤에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다.
“박수를 친 사람이 몰래 문으로 나갔을 가능성은?”
“더 없죠. 어두운 곳에서 문이 열리면 그만큼 잘 보이는 게 없는데.”
애초에 들어오면서 문도 한번 확인을 해 봤다.
“게다가, 여기 문이 꽤 뻑뻑해요. 여닫는 게 꽤 힘이 들 뿐만 아니라 시끄럽기까지 하다고요.”
“그렇다면 정말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긴 하군. 네가 아니라 설이를 데려오는 게 나았으려나.”
시아가 살짝 신음을 흘리자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뭐, 방학을 즐기지도 못하고 수행하고 왔는데 그 정도는 쉬게 내버려 두죠?”
자존심이니 뭐니 말하긴 했지만, 그 밖에 설이도 조금 쉬게 해 주고 싶어 일부러 놓고 온 것도 있다.
“우리, 원래 설이 없이도 일 잘 했잖아요?”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하고 있자 노인은 성큼성큼 걸어 두 사람의 앞에 왔다.
“두 사람이 박수를 쳤을 리는… 혹시라도 없겠지. 젠장, 미안하네.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군.”
“괜찮습니다. 뒤에서 소리가 들렸으니 오해하실만하지요. 하지만, 소리가 들린 건 저희가 있었던 곳보다도 뒤쪽입니다.”
“처음 이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렇게 변명할 필요는 없어. 차라리 지금 재현이 되어 다행이군. 일단 조금 있다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아무래도 당장은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말이야.”
노인은 엄청나게 짜증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전체 집합! 위에 있던 놈들이랑, 무대 뒤로 기어들어 간 놈들까지 싹!”
* * *
“누군가 불합리하게 혼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꽤, 기분 나쁜 일이군.”
시아는 짧게 평했다.
“저도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태주 역시 눈을 살짝 찌푸릴 만큼 노인의 ‘조언’은 살벌했다.
“내가, 불이 꺼진다고 그대로 주저앉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미연은 고개를 떨군 채 반박하지 못했다.
“겨우 그 정도에 머무를 거냐? 평생? 그럼 그냥 그러고 살아도 괜찮지! 앞으로는 그렇게 할까?”
“아니요!”
“뭐가 아니야? 너 하는 꼴이 딱 그건데.”
노인의 갈굼은 집요했다. 시아는 더 보기 싫다는 듯 눈을 감고는 말했다.
“조금 심하군, 저런 취급을 당해야 할 정도의 연기가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러나 기분과는 별개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아니라서요.”
결국 저기서 미연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주변 동료들뿐이지만, 그중 아무도 미연을 돕지 않는다. 조금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지만 그게 다다. 시아는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잘 해야! 이번 공연은 성공해! 주연이란 건 그런 거야!”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이유로 혼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태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다. 시아와 생각이 똑같으니까.
“그래도 봐요, 슬슬 끝났나 보네요.”
노인은 큰소리로 외쳤다.
“시설팀 놈들! 전원 따라와!”
사색이 된 표정으로 배우가 아닌 사람들은 노인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진짜 살벌하네요. 저렇게 살핀 뒤에, 유령이라는 결론이 나왔단 말이죠?”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에게 그런 반박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아마 같은 결론이겠군.”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이쪽으로 다가온 미연을 보고는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미연은 조금 울상이었으나, 그래도 괜찮아 보였다.
“조금, 심하게 혼나셨군요.”
“아뇨, 그래도 이거면 저번보다 나은데요? 아마 손님분들 계셔서 좀 마일드하게 가지 않았나 싶어요.”
“이게요?”
태주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진짜요?”
“진짜예요. 그리고 죄송해요. 좋은 무대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네?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죠. 박수야 그렇다 쳐도, 그 이전에 조명이 그렇게 되어버리면 연기가 불가능하니까 말이에요.”
눈에 조금 실망이 담긴 채로 미연은 웃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다.
“아하하, 하지만 제가 생각해도 조금 그래요. 애드리브를 못 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그냥 멈춰버렸으니까요.”
애드리브를 할 정도로 능글맞게 굴지는 못하는 것이 당연히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되어버린 건 자기 잘못이 맞다며 미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쪽이 더 당연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태주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태주가 그 감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프로 배우로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던 거라면 거기에 남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불합리해 보이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이지만 본인도 그렇게 느낀다면 그 과도한 지적에 대해 할 말은 없다.
결국 태주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하지만 공연을 마지막까지 보지 못한 건 저도 정말 아쉽네요.”
“정말요? 별로 그러실 것 같지는 않던데.”
미연은 조금 미심쩍다는 투로 물었다.
“공연 전에 봤을 때는 별 기대 안 하시는 것 같던데요.”
배우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태주는 역시 들켰나 싶어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어요. 그런데, 보다 보니까 엄청나게 몰입이 되더라고요? 이런 정극 연기를 보는 건 처음인데도 말이에요.”
“앗, 정말요?”
미연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예, 최소한 저희가 그 연기에 빠져들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시아 역시 맞장구를 쳤다.
“와, 정말 감사한 말이네요. 이래서 관객이 있어야 연기가 재미있다니까요?”
미연은 방금까지 짓던 표정이 거짓말이라는 듯 웃다가, 표정을 굳혔다.
“그런데, 곤란하긴 하네요. 이대로면 다음 주에도 공연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미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는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끝을 망치면 다 망친 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연극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음, 이게 위로가 되는 말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아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는 말했다.
“이번 유령에 대해서 그래도 조금은 알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정말요?”
미연은 눈을 반짝였다.
“그럼, 다음 주엔 정말로 공연할 수 있는 거예요?”
“예, 지금과 같은 식으로 갈 수 있다면 아마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단장님을 불러와 주시지요.”
* * *
노인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찾아내지 못했어. 젠장, 유령이라는 결론을 내야 하는 게 너무 화가 나는데.”
“불이 꺼진 원인은 알아내셨습니까?”
시아의 질문에 노인은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굳이 따지자면, 조명의 배전 쪽 문제라 해야겠지. 관리부실이라면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조명 팀이 감히 노인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암튼 제 탓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건 대처 불가능한 일이다.
“나도 평생 연극 하면서 그런 곳이 자연적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 그러니 그걸 실수라 할 수 있나. 정말로 유령이라도 되는 녀석이 건드린 거라고 하는 편이 나을 정도니.”
노인은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또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원… 하지만 자네들은 알아낸 게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군.”
노인은 점점 더 화가 치솟는지 표정관리도 하지 않고 말했다.
“이미, 삼 일을 버렸어. 공연 당일을 포함해서 말이야.”
공연 당일, 원인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둘째 날 무당을 불러오는 데 하루를 썼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두 사람이 왔다.
“솔직히 말해 이번 주는, 그래도 괜찮아. 일부러 얼마가 걸릴지 몰라 최대한 넉넉하게 연장한 거니까. 하지만 이번 주 내로 해결이 되지 않는 건 곤란하단 말이지.”
노인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그래서, 설명을 좀 해보게. 알아낸 게 뭔가?”
노인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치고는 꽤 드물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게 다인가? 드문 유령이라고? 젠장, 그 정도는 나도 말할 수 있겠는데.”
노인이 조금 실망한 말투로 말했지만,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하시는 것보다 좀 더 신기한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령이 가지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시아는 조금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이전에 들었을 때도 느낀 것이기는 합니다만, 이번 귀신은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지 않습니다. 정신을 직접 압박하는 것도 아니지요.”
재미있게도 지금까지 귀신이 낸 소리는 하나같이 귀신이 낼 법하지 않은 소리뿐이다. 불을 켜고, 끈다. 그리고 박수소리를 낸다.
“이게 바로 특이한 점이지요.”
“그게 왜?”
노인은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이어지는 시아의 말을 듣고는 조금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 되었다.
“이것들은 어떠한 물리적인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소리입니다.
그저 목소리로 나는 소리가 아닌, 몸이 있는 존재가 낼 수 있는 소리란 말입니다.”
“허, 딴에는 그렇구만.”
노인은 그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밤중의 처량한 울음소리 같은 것은 이번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확실히 유령이 내는 소리는 보통 울음소리 같은 거라고 들었는데.”
“예, 그래서 유령치고는 꽤 드문 일이라 말씀드린 겁니다.”
유령이라고 단순히 물건을 옮기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박수는 확실히 이야기가 다르다.
“유령이 물건을 옮기거나 하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입니다. 거기까지는 확률이 낮을 뿐 여전히 평범한 유령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몸이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렇기에 유령치고는 아주 드물다.
“박수를 칠 수 있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유령이라 말씀드린다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 겁니다.”
드러나는 인격은 희미하지만, 오히려 육신은 있어 보인다.
“유령이라는 확신을 이미 듣고 온 게 아니면 다른 것이 아닌가 한 번 검토했을 만큼, 특이한 현상이지요.”
“그렇군,”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유령치고도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는 말인가.”
노인은 조금 감탄하고 나서는 시아의 어깨를 툭툭 짚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도 하긴 해야겠군.”
노인은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유령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