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5)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시아가 작게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호기심이 넘치는 표정을 지은 여배우는 자기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미연이라고 해요. 이번 연극에서는 주연을 맡은 사람이에요.”
여전히 매표소에 앉아있는 미연은 살짝 웃었다.
“주인공이 매표소에 앉아있다니, 이건 또 새롭네요.”
“하하, 주연 이전에 막내니까요! 제일 재미 없고 지루한 일은 다 제 몫이죠, 뭐.”
“막내요?”
“네. 보셔서 알겠지만, 여기서 제가 제일 어려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제야 자기소개를 했다.
“아차, 저는 시아라고 합니다. 옆은 태주라고 하고요.”
태주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미연 역시 한번 목례했다.
“그, 유령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구요?”
미연은 호기심이 넘치는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영험한 사람 모셔온다고 하셨는데, 꽤 젊으시네요! 저는 분명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이 올 줄 알았는데.”
“으음….”
예상치 못한 말에 시아가 잠시 신음하는 사이 태주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 그분이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 하셔서 저희가 대신 왔어요. 뭐, 그분만큼 영험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실패한 적은 없네요.”
“그럼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그 유령인지 뭔지는 금방 잡히겠어요.”
미연은 웃었다.
“그런데 유령은 어떻게 잡는 건가요? 옛날 영화 보면 이상한 청소기 같은 거로 빨아들이던데.”
“으음, 아무래도 그런 방식은 쓰지 않지요.”
시아는 떨떠름하게 웃었다.
“그건 영화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미연은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유령인지 뭔지는 몰라도 연극을 망쳐 놓은 건 꽤 화가 나는 일이에요. 우리 단장님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유령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바닥 수준인데도, 유령의 존재를 믿고 있다.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기에 태주는 물었다.
“그 불을 끈 게 유령이라는 걸 전혀 의심하지 않으시나요?”
“어, 글쎄요? 사실 저도 이전까지는 믿은 적이 없는데요. 하지만 단장님이 유령이 한 짓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으면 그건 진짜예요.”
“진짜라니요?”
“으음, 뭐랄까. 단장님이 연극에 있어서는 귀신같은 사람이라서.”
미연을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귀신이라고요?”
그건 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이름이다. 태주의 그런 민감한 반응을 눈치챘는지 미연은 아예 꺄르르 웃었다.
“아하하, 유령 이야기랑은 전혀 상관없어요. 그냥 연기나 연출이나 할아버지 앞에서 대강 넘기고 지나가려고 하면 다 걸리고 말거든요. 그리고 걸리면 아주 탈탈 털리는 날이고요.”
본인에 더해서, 양옆에서 그걸 눈치채지 못한 사람들도 덤으로 혼난다. 연좌제라고 볼 수도 있으나 반발하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변명도 할 수 없다.
차라리 잘못된 지적을 하는 거라면 역으로 당당하게 나갈 여지라도 있겠지만, 잘못되지 않은 부분은 전혀 지적하지 않고 냉정하게 혼내기 때문에 더 무섭다.
“그렇습니까?”
“그런 분이세요. 솔직히 말하면 가끔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미연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살짝 쉬었다.
“어쨌든, 그분이 직접 극장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그런 결론을 내렸으면 그건 정말이에요. 의심할 구석이 없었다는 말이니까요.”
미연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손님들 다 돌려보낸 직후에, 시설팀 전원 집합해서 누가 실수한 건지 전수조사를 했죠. 저야 뭐, 거기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고요.”
당시 노인은 정말로 화가 난 표정으로, 모두를 앞에 앉혀두고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유령이 한 짓 같다.’
유령이 한 짓이라는 결론이니 관리 부실처럼 명확히 탓할 대상이 없다.
“그래서 당시에 혼난 건 저뿐이에요.”
“예? 갑자기 불이 꺼진 걸 배우 탓을 했다는 말인가요?”
“아뇨, 불 꺼진 거 말고요. 불이 갑자기 꺼졌다고, 그냥 갑자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어쩌냐고 혼났지 뭐에요?”
“그건 좀….”
갑작스런 일에 대응을 못 했다는 거로 혼나는 건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시아의 그런 표정을 본 미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한 이십 초 정도 아무 말도 못 했으니까요. 애드리브를 잘 치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돌발 상황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홀로 무대에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혼난 거거든요. 조언 정도죠 뭐.”
저지른 일 치고 크게 혼난 건 아니었다며 미연은 그 이야기를 대강 넘겼다.
“어쨌든 그런 사고가 있고 나서도 시설팀의 누구도 혼나지 않았어요.”
초대형 사고라 오늘 누구 하나가 죽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지만, 그런 결론이 나왔다.
“살벌한 분위기로, 유령이 한 짓이라는 결론을 내리시는데, 그분을 아는 사람이 그 모습을 봤다면 의심할 수는 없을 걸요?”
“그런데 왜 하필 유령이라는 결론이었나요?”
태주의 질문에 미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근데, 유령 이야기가 이전에 없던 건 아니었어요.”
“이전부터 유령 이야기가 있었다?”
이쪽은 조금 그럴듯한 이야기다. 시아는 눈을 반짝이고는 물었다.
“어떤 이야기였습니까?”
“으음, 그냥 여름이라서 하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한데요.”
그냥 소수의 인원이 하는 소리였다는 걸 강조하면서 미연은 말했다.
“사실 그냥 별 거 아닌 정도의 이야기에요. 그저 허락받지 않은 관객이 하나 있다거나, 밤에 누군가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에요.”
어쨌든 별 실속은 없는 이야기다. 시아는 살짝 실망해서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걸로 뭘 결론 내릴 수는 없겠군요.”
“아하하, 사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어렵겠네요.”
미연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노인이 말했다.
“곧 리허설이 시작이니까요.”
“다들 준비! 배우들! 모여!”
마침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극장 특유의 메아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매표소까지 울리는 큰 목소리다.
준비가 모두 끝난 듯, 이전까지 설비를 만지던 사람들이 여유로워졌고 반대로 배우로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저 그러면 가볼게요!”
여배우는 밝게 웃으며 무대로 떠났다.
“기대하세요! 조금 있다 다시 만나요!”
* * *
“준비해! 오늘 리허설은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노인이 마치 선장처럼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오 분 정도의 시간은 더 필요하다.
마치 진짜 공연처럼, 불까지 꺼졌다.
자연스럽게 객석에 앉게 된 두 사람은 소곤거리며 대화했다. 실제 연극이 진행 중이라면 엄청난 비매너겠지만, 지금은 그저 리허설일 뿐인 데다 자리엔 정말로 두 사람뿐이다.
애초에 나머지 사람들은 분주하여 두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
시아는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하나 알 것 같아. 이곳의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 연출자도, 연기자들도 그렇군.”
태주만큼 사람을 자세히 살피는 버릇은 없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막내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로 미연 씨 또래의 누군가는 없어.”
시설 쪽에도, 배우 중에도 없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나마 어려 보이는 사람들도 최소 일곱 살 정도는 차이가 나 보이긴 하네요.”
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까지는 당연히 없으나,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젊은지 물어보면 절대로 아니다.
태주가 자신보다 어리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방금까지 무대 위에 있었던 여배우 한 명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런 생각이 별로 잘 안 드는데.”
평균적인 나이 수준이 한참 높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시아는 그게 왜 그런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표정들이 좋네요.”
자신이 생각하려던 것을 옆에서 태주가 먼저 말해버렸다. 시아는 뭔가 배신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잇! 조용히 못 해?”
“어어? 아니, 이 정도도 말 못 해요?”
“뭔가 생각하던 걸 뺏긴 기분이란 말이다!”
시아는 살짝 눈을 흘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확하긴 하네.”
한소리 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태주의 말대로다.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긴장감도 있고, 부담감도 있으나 동시에 그 이상의 기대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미소다.
십 대나 이십 대 초반에나 종종 볼 수 있는 미소를, 이곳에서는 사십 줄이 넘은 아저씨에게서도 볼 수 있다.
“즐거운가 봐요? 저는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만.”
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무심코 노인을 쳐다봤다.
“모두가 즐거운 건 아닐지도 모르겠어.”
* * *
기대하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불이 꺼지고 본격적으로 막이 오를 때까지도 두 사람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허름한 무대, 리허설이기에 완전하지 않은 복장 상태, 그리고 대충 그 자리에만 놓여 있는 소품들. 그래 봐야 리허설이라는 생각 때문에 별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연극이 시작하고 난 뒤, 어느 순간부터 여자 주인공의 복장이 제대로 된 드레스가 아닌, 연습복인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남자 주인공이 꺼내는 것이, 나무 막대기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무대는 완성되지 않았을지라도, 배우들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그저 연기에 압도된다는 말이 무엇인지, 태주는 느낄 수 있었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며, 태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다른 관객이 있다면 꽤 눈살을 찌푸릴 수 있을 법한 행동이지만 이곳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다.
“무시할 건 못되네요.”
무시하려는 생각은 없었으나 은연중에 얕보던 것은 있었다. 건물의 외양에서, 그리고 허름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별 볼 일 없을 거라는 지레짐작 정도는 했다. 어찌할 수 없는 선입견이라는 것은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기는 꽤나 충격적이다. 처음에 가졌던 선입견을 말 그대로 박살 낼 수 있을 만큼.
“…그렇네.”
시아 역시, 지금만큼은 순수하게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했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도 없는, 내용도 모르는 연극이니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노인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이만한 연기를 하는 배우를 데리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곳의 외벽의 상태나, 의자의 불편함 따위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만한 무대를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노인의 말대로, 차원이 다르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이렇게 허름하다고?”
정말로 유령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어버리고 말 만큼의 엄청난 기백이다.
미연은 말 그대로 반짝거리고 있다. 방금 만난 그저 활기찬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긴박한 장면.
미연에게는, 기대하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이들이 준비하던 것은 그런 무대다.
자신도 모르게 태주는, 그리고 시아는 다음 장면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천재네요, 저게.”
장면은 점점 진행되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무대의 하이라이트가 나올 것이다.
미연의 몸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떤 몸짓을 할까.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퍽-
그러나 두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제 곧, 조금만 더 있다면 아주 중요한 장면이 나올 터였는데. 두 사람은 동시에 숨을 내뱉었다.
“유령이 나타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