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4)
극장 앞에 선 시아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이미 외관을 살피기 위해 주변 한 바퀴를 돌아봤지만, 다시 봐도 대단하다.
“이런 극장이 아직도 있나?”
시아가 조금 놀랄 정도로 소개받은 극장은 낡고 작은 곳이다.
“사람이 오긴 하나?”
“어, 저한테 물어봐도 곤란한데요? 낡았다는 이야기는 미리 듣기는 했지만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태주 역시 연극 관련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중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단체관람 했던 이후로는 극장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많이 오진 않겠죠.”
태주는 허름한 외관을 보며 말했다.
“이게 잘 나가는 극장의 모습으로 보이진 않잖아요.”
“그렇긴 하지.”
단순히 낡은 게 문제가 아니라 겉면에 페인트가 듬성듬성 떨어졌거나 색이 좀 바래 있다. 관리할 여력이 없거나, 애초에 신경도 못 쓰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시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왜 철거가 안 되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인데.”
“그러게요. 100% 확률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낡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처음에 자기 소유의 극장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 돈이 있는 극단일 거라 생각했으나, 가지고 있다는 극장의 모습이 상상 그 이하다.
태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임대료가 안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겠는데요?”
말이 좋아 독립 극단이지 그냥 거지 아닌가 하는, 그런 아주 실례되는 생각마저 든다. 시아 역시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극장 건물을 지켜보다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뒤 말했다.
“뭐, 우리가 이 사람들 밥 먹는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지.”
“그렇죠. 우린 유령 문제 해결하러 온 거니까. 근데 이걸 어디다 이야기하지?”
“뭐, 매표소에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성큼성큼 먼저 걸어갔다. 태주는 뒤를 따랐다.
“유령 이야기 때문에 왔습니다.”
시아가 매표소에 이야기하자, 하품하며 앉아있던 여직원이 눈을 빛내며 일어나더니 외쳤다.
“단장니임-!”
단순히 매표소 직원이라 보기에는 조금 발성이 좋은 큰 목소리다. 큰 목소리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자, 마찬가지로 큰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뭐? 왜?!”
“그분들 오셨는데요! 그, 말씀하셨던 분들이요!!”
“뭐?!”
대답이 들린 뒤, 채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노인이 나왔다. 시아는 자연스럽게 영업용 미소를 지었지만 이어지는 말에 표정이 굳었다.
“오오! 확실히 그 친구를 꼭 닮았구만. 미인이야! 미인!”
시작부터 지뢰다. 태주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시작부터 들은 시아는 겉으로는 약간의 미소를 계속 유지하고는 있으나, 그대로 굳은 상태다.
“그으, 런가요? 아무래도 스타일이 전혀 다르지 않을까요?”
태주가 어떻게든 분위기 전환을 하기 위해 말해 봤으나, 노인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한소리 했다.
“아니! 꼭 닮았지! 사람이 양복만 입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줄 알아?”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콧방귀를 한번 뀌고는 말했다.
“복장이라는 건 결국은 예의이고, 또 마음가짐이야! 그것이 정중한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지, 동양풍인지 서양풍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지!”
“아이고, 그건 알겠는데요.”
태주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결국은 빠르게 화제 전환을 했다.
“그으, 래도 어쨌든 지금은 그런 것보다 유령 이야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조금 억지스러운 화제전환이지만, 애초에 노인도 그냥 반쯤은 인사 느낌으로 하는 말이었기에 태주의 강제적인 화제 전환에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음, 하긴 그렇지.”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두 사람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태주는 멈춰 선 시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무 그렇게 티 내지 마요!”
“후… 그래 미안하다.”
다행히, 본인이 눈앞에 있을 때처럼 화를 내는 건 아니다. 그 점에 조금 안심한 태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오고 뭣들 하나?”
“아, 갑니다!”
* * *
극장의 이곳저곳을 둘러 보면서, 태주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이 했을 가능성은 없다고요?”
“그래. 전달받지 못했나?”
확인차 던진 질문에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전혀 없어. 누군가의 실수일 가능성도 마찬가지야.”
노인은 이미 사람이 했을 만한 가능성을 모두 검토를 마쳤다.
“확실해.”
“물론 저도 그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사실 그게 유령보다 사람이 할 만한 짓에 좀 더 가까워 보여서요.”
“스토커 같은 녀석들? 그래,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노인은 합리적인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 배우를 너무나도 선망해서, 결국은 따라다니고 마는 망할 녀석들이 생기는 건 내가 스토커라는 단어를 알기 이전부터 있었어! 처음엔 나도 그런 거라 생각했지. 우리 배우들도 그랬고.”
늘, 시대를 가리지 않고 한둘씩은 꼭 있었다면서 노인은 말했다.
“허나 날 따라다녔으니 알 수 있지 않나? 여긴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여긴 소극장 중에서도 가장 작은 수준이니!”
대형 극장이라면,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도 사람이 어디 숨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곳에 오페라의 유령처럼 숨어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는 없다.
“만에 하나라도 사람이 한 짓일 수는 없어!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걸리지 않고 숨어있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비밀 통로나, 이전에 폐쇄한 방 같은 것도 없어.”
이 극장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정말로 평범하게 낡아 있는 오래된 극장일 뿐이다.
그러니 신기한 기능을 가진 무언가는 없다. 대단한 첨단 장비는 있지도 않으며, 애초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자네들이 본 게 다야. 우리만 아는 그런, 관계자 외 출입금지 지역은 없어.”
장비가 들어갈 자리도 없어서 못 넣으니, 사람이 몰래 숨을 만한 장소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 유령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태주는 장소를 살짝 복기하며 물었다.
“무대 뒤에 이어지는 건 작은 대기실과 복도, 그리고 계단이었던가요?”
그래도 극장은 극장이기에 중고등학교 대강당과 비교할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구조 자체는 그와 비교해도 될 정도로 단순하다.
“그래, 그리고 그 복도에 있는 직원용 문을 열면 기계실이 있지. 무대를 모니터링 하면서 조명 컨트롤도 겸할 수 있는 장소야.”
구조가 단순하다. 한 번만 대강 돌고도 이 장소의 구조는 손쉽게 기억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예, 어느 쪽이든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숨을 정도로 대단한 공간이 없겠네요.”
“정말로 요즘 극장 같지는 않군요.”
잘 모르더라도 이게 아주 오래된 장소라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시아가 무심코 던진 짧은 감상평을 들은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요즘 극장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지. 하지만 옛날엔 이런 연극만을 위해 건물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던 시절이 있었다네.”
노인은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아주 충분한 장소야.”
하지만 노인의 자부심과는 별개로 이 장소에 누군가 숨을 수 없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노인이 평생 한 번도 믿은 적 없었던 유령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그런 상황인 것이다.
“흐음, 장소에 대해서는 이해를 했습니다.”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은 그거면 충분하다. 사실 유령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건 목격담이다.
“혹시 당시 상황을 가장 잘 기억하는 분이 단장님 말고 더 있습니까? 한 분의 목격담만으로는 아무래도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시아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 말고? 다들 기억이야 하지.”
그런 사건을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충격적인 일이기도 한데다, 애초에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글쎄,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본 사람이라고 하면 나 말고는 한 명밖에는 더 없겠군. 도움이 될 사람이라 하면 한 명뿐이겠어.”
“한 명 말입니까?”
지나다니면서 본 스태프가 한둘이 아닌데, 고작 한 명이라는 게 이상하다.
“너무 적지 않습니까?”
“적지. 하지만 정말 그런 걸 어쩌란 말인가?”
노인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한 뒤 말했다.
“이곳은 사람 수가 적어.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큰일이 나지. 각자 자기 맡은 역할을 신경 쓰고 있다 보면 하늘이 무너져도 바로 살필 수가 없단 말이야.”
“인력 부족이라는 말이군요.”
어딘지 익숙한 말이다. 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결국 무대 전체를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단둘뿐이다.
“하나는, 나다. 당연하지, 일종의 감독역이니까. 내가 살피지 않으면 안 돼.”
“다른 하나는 누굽니까?”
“무대에 서는 한 명. 우리 주연 여배우지.”
가장 중요한 역할이지만, 동시에 그 순간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당사자지. 그 애가 딱 무대에 서서 뭔가 하려던 찰나에 불이 꺼졌으니 말이야.”
“흐음, 그렇다면 그분과 이야기를 조금 해 봐야겠군요.”
“그래, 뭐. 상관이야 없지.”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말했다.
“흐음, 하긴 지금이 딱 적당한가? 조금 있다가, 리허설을 한번 해 볼 생각이니까 말이야.”
“리허설 말입니까?”
“그래. 일주일 뒤부터 연극을 재개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 가운데에 빈 시간을 놀릴 수는 없지 않나? 우리가 그저 놀고 먹으려고 모인 건 아니니까 말이야. 어쨌든, 지금 사람들 분주한 게 보이지?”
지금 가장 분주한 것은 배우들보다는 시설팀이라며 말했다.
“연습이 불충분하다면 배우 놈들이 죽어나야겠지만, 사실 연습량은 부족하지 않은 상태야. 그도 그럴 게 원래대로라면 이미 연극을 계속 하고 있어야 했던 상황이니까. 그래서 배우들은 좀 시간 여유들이 있어.”
지금은 그래서, 각자 연습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각자 간단한 일들 정도는 돕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중에 그분이 계신 건가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태주의 모습을 본 노인은 킬킬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은 없어. 하지만 자네들은 이미 만난 적 있지.”
“네?”
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매표소에 앉아있던 그 애가 바로 주연 역할을 맡았던 그 사람이니까 말이야.”
“아하.”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매표소 직원 치고는 발성이 너무 좋더라고요.”
“흥, 여기서 그런 표 관리만 하는 직원 같은 걸 뽑을 수 있을 줄 알아?”
노인은 그렇게 말한 뒤 손짓했다.
“그 애한테 가 봐. 이후 이야기는 그쪽에서 듣는 게 훨씬 낫겠군.”
“무대 이야기 말씀이시죠?”
“그래.”
노인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미연이가 바로 내가 찾던 최고의 배우다. 과언이 아니야! 텔레비전 같은 데서 보던 거랑은 차원이 다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