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3)
“어렵다고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머님이요?”
자세히 들으니 더 알 수 없는 이야기다. 태주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는데 하기 싫은 거예요? 아니면 진짜로 못 하겠는 거예요?”
“어느 쪽이든 맞는 말이다. 하기도 싫고, 난 못하겠어. 그러니 시아에게 맡기려 하는 거 아니겠나?”
무당은 그렇게 말한 뒤 문 쪽을 봤다.
“슬슬 때가 됐는데.”
쾅—!
정말로 무당이 말을 끝마칠 때쯤, 문에서 거의 폭발음이 났다. 사나운 발소리와 함께, 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시아 언니!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문한테 그러면 어떡해요!”
혹시라도 문이 망가지는 것 아닌가 싶어 안절부절하는 설이를 뒤로 한 채 시아는 도끼눈을 뜨고는 무당의 앞에 섰다.
“잘도 오셨습니다?”
태주는 곧바로 손으로 눈을 덮었다. 와서는 그러지 말라니까, 전혀 성질머리를 죽이지 않고 왔다.
“그래. 잘 왔다. 그런데? 허어?”
무당은 그렇게 말한 뒤 설이를 빤히 봤다.
“네, 네??”
방금까지 수행을 마치고 와 꾀죄죄한 모습의 설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진득한 시선에 당황했고, 시아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말했다.
“안 줘요.”
시아는 설이를 자신의 뒤에 놓고는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어머니에게는! 절대! 안 넘깁니다!”
“어, 어. 죄송합니다?”
시아가 이렇게 나오자 설이는 영문도 모른 채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거절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과하지 마. 어쨌든 이렇다는군요, 어머니.”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라. 그런 결의에 찬 표정으로 시아는 무당을 노려봤다.
“뭐, 그래. 일단은 이런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지. 시선이 바로 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능이지만.”
무당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이었으나, 그래도 애써 시선을 돌렸다.
“아쉽다만, 권유는 하지 않겠다. 본인이 원치 않는 것을 강요하면 어떤 꼴이 나는지 이미 한번 겪어 봤으니.”
시아가 순간적으로 당황할 정도로, 무당은 쉽게 물러났다.
“…진짜 포기?”
마치 월이 같은 말투로, 시아는 질문했다.
“이 녀석, 아무리 그래도 나를 너무 못 믿는 거 아니냐?”
무당은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지금은 후계를 찾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 나는 그저 친구를 대신하여 네게 의뢰를 하러 왔을 뿐이고, 네가 문제 해결을 하는 데 방해되는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단다.”
꽤나 온건한 말투다. 시아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납득은 가는 이유였는지 천천히 손을 내렸다.
“…옛날에 그런 소리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시아도, 무당도 그 이상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설이와 월이는 갑자기 왜 이런 분위기가 되는지 몰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은 모든 상황을 알면서 제삼자인 태주밖에는 나설 사람이 없다.
“저기, 어쨌든 일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의뢰 내용은 그래서 문제를 대신 해결해 달라 이 말씀이신가요? 소극장의 유령 이야기 말이죠?”
물론 화해하라는 말을 꺼낼 정도로 대담하지는 않았으므로 적당한 화제전환 정도에 가까운 말이다.
“그래. 처음에 말했듯 말이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부탁한다고? 굳이?”
시아는 사납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시지요, 어머니. 왜 내게 이런 일을 시키십니까?”
시아는 내용을 아직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세히 알지 않고도 짐작 가는 부분은 있다.
“왜 굳이 저입니까? 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아닐 텐데, 왜 제 앞에 나타나서 이러십니까?”
“글쎄,”
무당은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말했다.
“가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시험이라 생각해도 될 게다.”
“시험?”
“그래, 시험.”
무당은 넌지시 말했다. 시아는 골이 난 채 말했다.
“시험이라? 나를 아직도 제자로 생각하는 겝니까? 나는 어머니께 시험을 받아야 할 입장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지. 그러니 거절해도 괜찮단다. 친구 부탁이라 왔을 뿐,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곤란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에게 온 이유라면, 그것뿐이다.”
더 이상 자신과 똑같은 길을 가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호기심 정도는 드는 건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며 무당은 말했다.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좋아.”
물론 무당은 이미 살아있는 전설이니, 시아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일을 부탁할 사람은 수없이 많다.
“거절한다고 내가 곤란해지는 건 아니거든.”
“하!”
시아는 짧게 소리를 낸 뒤 말했다.
“차라리 거절해서 곤란하다면 거절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설이는 어느새 월이 옆으로 가서 소근소근 물었다.
“우리 의뢰 거절도 할 수 있었어?”
“아니? 한 적이 없는데? 근데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는 나도 몰라.”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시아는 잠시 그쪽을 노려봤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시아가 저렇게 구는 걸 두 사람은 처음 봤다.
“어쨌든, 좋습니다. 받아들이지요.”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의뢰를 했다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어디 원하는 대로 해 드리지요.”
“그래, 좋구나. 그렇다면 나중에 다시 오마.”
무당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극장의 주인에게, 연락은 해 두마. 아마 매표소에서 나에 대해 말하면, 곧바로 안내받을 수 있을 게다.”
* * *
무당이 돌아가고 난 뒤 문 바깥에 소금을 뿌리려는 시아를 말리고, 돌아오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허둥거리는 설이를 달래고, 일단 피곤하고 힘들고 꾀죄죄한 상황이니 샤워하고 나오면 맛있는 거 만들어준다고 꼬신 뒤에야 태주는 한숨을 돌렸다.
“어우, 지친다.”
“어,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생했어.”
월이조차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볼 정도다. 태주는 조금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월이를 쳐다봤다. 아마도 이번에 가장 속 편한 사람이었을 거다.
“너 그런데 대체 어떻게 했냐?”
“뭘?”
“그분이랑 어떻게 그렇게 편하게 대화를 했느냐는 말이야.”
태주의 말에 오히려 월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 엄마 아냐?”
월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어렵나?”
모든 이해관계를 떼놓고 보면 사실 그렇기는 하다.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랄까 저분이 보통 분은 아니셔서.”
지은 죄도 있는 데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기에 태주도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지 못한다. 그러나 월이는 그 말을 듣고 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물었다.
“보통 분이 아니면 뭐 어때서? 여기 보통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다. 단순무식하지만 맞는 말이다.
“그렇긴 해.”
“좋은 아주머니던데. 근데, 언니랑은 왜 그래? 싸웠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월이라도 그 정도는 눈치챈다. 월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음 조금 옛날에. 크게 싸운 적이 있었어.”
차마 자기도 거기 껴 있다는 말은 하지 않고 태주는 말했다.
“그 정도 이야기는 너도 그 꼴을 봤으니 알겠지만.”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늘만 해도 수명이 한 삼일 정도는 줄었을지도 모른다.
“에엥, 좀 아쉽네.”
월이는 칫 하는 소리를 냈다.
“언니 어릴 때 사진 보여주면서 놀리려고 했는데.”
하지만 분위기가 이 모양이라면 아무리 월이라도 장난을 치기에 확실히 부담스럽다.
“어쨌든 둘이 화해했음 좋겠다. 좋은 분이셨다구.”
“으음, 아니 진짜로?”
“진짜 좋은 사람이지! 가짜로 좋은 사람이 어딨어!”
월이의 사람 구분은 조금 단순한 면은 있으나, 아주 틀리지는 않다.
“좋은 아주머니 맞다니까!”
물론 화기애애한 모습을 봤으니 그게 사실일 거라는 생각이야 당연히 들지만, 아무래도 경험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이 강력하다.
이전에 태주가 경험한 시아의 어머니는 솔직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으으으음… 아니 나는 그게 잘 상상이 안 가서 그래.”
“너는 내 말을 안 믿는 경향이 있어.”
월이는 조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 응, 그건 미안하긴 한데.”
하지만 그만큼 태주에겐 그 장면이 충격이다.
“별 특별한 방법은 안 썼다는 말이지?”
“그냥! 처음에 시아언니 어머니냐고 물어본 게 다야! 근데,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잖아!”
“그렇긴 하지.”
눈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볼 거다. 시아 본인 딴에는 달라 보이고 싶기 때문에 스타일을 최대한 반대로 하고 다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하다.
“근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된 거야?”
“으음, 뭐랄까.”
아무래도 프라이버시도 있고 하니 자세히 설명하기는 조금 그렇다. 태주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면서 말했다.
“누나의 독립 과정이 꽤 다사다난했다는 것만 말해 둘까. 어쩌면 너만큼이나.”
“그렇다는 건… 혹시 언니, 가출소녀였어??!”
월이는 깜짝 놀라 말했다. 태주는 반박하려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가출은 맞는데 소녀가 아니었지.”
아마도 본인이 들었으면 경을 칠 만한 멘트지만, 본인이 없으니 상관은 없다.
“가출은 맞아? 어쩐지! 나랑 다르게 집에 돌아가질 않더니!”
월이는 비밀을 하나 알아냈다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태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혹시 너도?”
“뭐가?”
“너도 가출소년이야?”
“아냐.”
가출도 아니고, 소년도 아니다. 태주는 한숨을 살짝 쉬었다.
“근데 맞잖아! 너도 집에서 나와서 사는 거 아냐?”
월이의 말에 태주는 잠시 침묵했다.
“아니, 집에서 나와 사는 거긴 한데.”
일반적으로 독립이지만, 집에서 나왔다는 의미로는 가출이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다. 태주는 반박할 수 없는 이 현실이 화가 났다.
“에잇, 그래도 나는 가족들이랑은 별문제 없이 그냥 독립한 거라고. 상황이 달라.”
이쪽도 아무 일 없이 이런 곳에 발을 들인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아와는 엄연히 사정이 다르다. 월이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태주를 쳐다봤다.
“야! 진짜라고!”
“그래, 네 상상 속에서 말야…. 근데 나 저렇게 개빡친 언니 첨 봐.”
“그래?”
성인이 되고 가출 소년취급은 처음이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두 번째로 봐.”
쾅!
복도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지야 뻔하다. 아무래도 며칠 있다가 문을 한번 전수조사를 해야겠다. 어느 하나는 갈아야 할지도 모른다. 태주는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여전히 기분이 나빠요?”
성질이 뻗친 것처럼 보이는 시아는 아직도 투덜거리며 말했다.
“너 같으면 좋겠냐?”
태주는 시아에게 곧바로 평소보다 조금 더 달달한 프라페를 하나 갖다 바쳤다. 스트레스에는 당분이다. 칼로리 때문에 평소에는 시럽을 덜 넣으라고 말하곤 하지만, 지금은 넣지 않으면 서로 견디기 힘들 거다.
“수행은 어땠어요?”
태주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원래는 도착하면 그것부터 물어보려 했던 것이었으니 아예 딴소리이기만 한 것도 아니기는 하다.
“수행의 결과는 만족스러웠고, 본인도 잘 따라왔다. 네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몸은 더없이 피곤해도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일 정도였지.”
물론 지금은 기분도 좋지 않다. 시아는 여전히 곱지 않은 눈으로 태주를 바라봤다.
“그 유령이야기나 해. 말 돌리지 말고. 이건 자존심 문제야.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한다. 지명이기도 하고, 소장이 별말 안 하는 거 보면 그래도 되겠지.”
시아는 잔잔하게,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목소리에는 조금 불쾌한 감정이 섞인 채다.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휴, 저는 데려가요.”
한숨 쉬며 하는 말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까지만 데려가지.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한다. 넌 보험이야.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보여주겠어.”
이전까지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지만, 폭주한 시아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월이는 결국 중간에 끼어들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 이제 누가 여기 앉아 있어 주나.”
월이는 공허한 눈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