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2)
“와 진짜 안 내키네.”
전화가 끝나고도 잠시 현실부정을 하며 멍때리던 태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사무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안쪽 분위기는 험악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나게 훈훈했다.
어느새 내려온 월이가 웃으면서 무당과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정말로 놀라 눈을 평소보다 두 배 정도 크게 뜨고 말았다. 저 사람이 저렇게 훈훈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우와- 이게 진짜예요?”
월이는 정말 순수하게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사진을 빛에 비춰가며 구경했다.
“이거 위조나 합성 아니죠?”
“후후후, 이런 필름 사진에 위조가 어디에 있겠니?”
“와, 그럼 진짜네요!?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그래. 진짜다. 쯧, 그땐 귀여웠는데.”
아주 살짝 혀를 차기는 했지만, 이렇게 훈훈한 미소는 처음 본다. 태주는 내가 본 게 진짜가 맞나 잠시 혼란스러웠다.
일단 월이가 그새 내려온 줄도 몰랐고, 둘이서 저렇게 화기애애하게 시아의 옛날 사진을 보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을 줄은 더 몰랐다.
“야! 이거 봐! 누나가 이랬던 시절도 있었어!”
월이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사진을 태주에게도 보여줬다.
사진 속에는 아마도 이제 막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조금 불량한 표정의 시아가 있었다. 몸에 딱 맞는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는 그때도 단발이었다.
질풍노도 사춘기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이다. 태주도 웃음이 새어 나올 정도로,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이때는 정장이 아니었구나?”
신기하다는 말투로 월이는 혼잣말을 했다.
“누가 저 나이에 정장을 입어?”
“무슨 소리야? 한복은 입고?”
하긴 어느 쪽이든 평범한 복장은 아니니,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다. 태주는 입맛을 다셨다. 월이는 이 사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 것인지, 사진을 들고 다시 무당 앞으로 달려갔다.
“저 이 사진 가져도 돼요?”
“미안하구나. 나도 이걸 줄 수는 없어서.”
“그럼! 그러면! 저 사진 찍어 놔도 괜찮아요?”
“흐음, 그래. 그 정도는 괜찮지.”
무당은 느긋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품에 있던 다른 사진까지 꺼내 월이에게 넘겨줬다. 월이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받아서는 신나는 사람의 포즈를 지었다.
“대체 저 자세는 뭐지?”
태주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무당은 태주에게 이전과 같은 날카로운 태도로 말했다. 월이를 대할 때랑은 천지차이의 모습이다.
“뭐냐니? 그저 조금 재미있어 보이는 아이와 담소를 조금 나누었을 뿐이지. 그나저나, 전화만 하고 온 것 치고는 오래 걸렸구나?”
말투를 듣자 하니 그새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태주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 뭐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 길어져서요.”
사실은 들어가기 싫어서 조금 땡땡이쳤던 거지만. 태주는 무심코 월이를 쳐다봤다. 월이는 여전히 희희낙락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시아는 뭐라고 했지?”
“어어, 음- 지금 오고 있다는 것 같아요.”
험악한 말 일부는 굳이 전하지 않고, 태주는 적당히 내용만 걸러서 전달했다. 오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무당은 그래도 안심했는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렇군. 내 점도 아직 완전히 한물간 건 아닌 모양이야.”
“아, 아뇨, 설마요. 어머님 점이 틀리면 믿을 거라고는 세상에 없잖아요?”
태주의 말을 들은 무당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태주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그냥 걸어 다니는 서낭당 같으신 분인데요.”
과장도 비유도 아니다. 눈앞의 사람은 정말로 그런 대단한 무당이다. 자신은 무슨 배짱으로 이 사람한테 개겼던 걸까. 태주는 옛날의 자기 자신이 미쳤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후, 그 표정을 보니 조금 옛날 같구나.”
태주의 표정을 본 무당은, 마치 월이를 봤을 때처럼 웃었다.
“그리 긴장할 것 없다. 나는 정말로 아주 평범한 의뢰를 하러 온 것 뿐이니 말이다.”
태주가 질문하기도 전에, 무당은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 그냥 대신 의뢰를 하러 온 거다. 내 지인 한 명이 내게 부탁을 했지만, 그건 내가 하기엔 조금… 문제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희한테 대신 의뢰하러 오셨다고요?”
태주는 조금 어려운 표정이 되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인 무당이 곤란한 일을 들고 오면, 이 쪽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수준의 일인데요?”
“별 건 아니다. 어렵다기보다는 내가 하면 안 될 일일 뿐이야.”
태주는 눈을 찡그렸다. 어쨌든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이 들린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사건을 겪은 본인도 데리고 오시… 면 좋긴 했을 텐데요.”
태주는 중간에 잠시 말을 흐렸다. 그런 걸 눈앞의 이 사람이 모르고 했을 리는 없다.
“그게 가장 좋다는 걸 내가 몰랐겠느냐? 그러나 나한테 부탁했다는 것만 들어도 알겠지만, 그 양반은 나이가 조금 있거든.”
그렇다고 하루하루 죽을 날 바라보며 골골대는 것은 아니지만, 체력 문제는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대가 노인이라면 그렇게 끌고 다니는 게 어렵기는 할 거다.
“하지만 그 분이 어머님께 연락을 했다면, 이번 문제는 귀신 문제인가요?”
태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당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귀신에 대한 문제… 라 하면 귀신이지만, 이번에 나는 굳이 이렇게 표현하고 싶구나.”
이번 상대는 유령이다. 그렇게 말하는 무당의 말에 월이는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귀신이랑 다른 거예요?”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무당이니 말이다.”
귀신이라는 것은 무당에게는 전문 분야이며, 단순히 사람이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귀신이라 표현하는 것은, 틀리지는 않지만 너무 거창하지.”
“그럼 이번 건 뭐가 어떻게 다른데요?”
그래도 월이는 궁금한 듯 물었다. 태주는 저 천진난만한 태도에 저래도 되나 불안함에 떨었지만, 무당은 월이가 정말로 마음에 든 듯 친절하게 말했다.
“흐음, 그래. 원론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닐테니, 이렇게 말해야 하겠구나.”
무당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한 소극장에,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공연을 방해하는 것이 있단다.”
“아! 그건 유령 맞는 것 같아요!”
월이도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책 제목 정도는 안다.
“오페라의 유령 맞죠?!”
“후후, 비슷하구나.”
이름을 제외하면 전혀 비슷한 것이 아님에도, 무당은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러나 오페라는 아니고, 그저 정말로 한 작은 극장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 * *
무당에게 처음 사건을 의뢰한 노인은, 한 극단의 주인이었다.
낡고 허름한, 그러나 자금이 독립되어 있어 당장 굶어 죽을 걱정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극단을 운영하는 것이 바로 이 노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부유한 건 아니다. 건물이 자기 것이라 살아남을 수 있는 극단일 뿐이지, 실질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상황이다.
지금 앉아 있는 이 좌석조차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만하다. 빈말로도 편하다 말할 수 없는 좌석에 앉아 있던 무당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얼 그리 망설이시나. 하루 이틀 보던 사이도 아닌데.”
무당을 부른 노인은 한참이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당이 재촉한 끝에야 노인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으음, 아니.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라서.”
노인 역시 부르기는 했으나, 이 일을 진지하게 설명하려고 하니 곤란한 듯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말하지 않을 거라면 일어나겠네. 요즘 좀 한가해졌다고는 해도, 이리 시간낭비를 해도 괜찮은 수준은 아니거든.”
“아니, 아니. 그냥 설명하기가 조금 어려우이….”
노인은 그렇게 잠시 한숨을 쉰 뒤 입을 열었다.
“최근에, 유령이 나타난 것 같네.”
“유령?”
“그래, 유령.”
무당은 짧게 침음성을 흘린 뒤 물었다.
“유령이라, 어디서 어떻게 만났지? 직접 만난 적도 있나?”
“그래, 바로 어제 만났어.“
노인은 앞을 보며 말했다. 객석에 앉아있다 보니 고개만 들면 무대가 바로 보인다. 무당은 그 시선을 따라가며 말했다.
“저기서 만났나 보군?”
“조금 달라. 만났다고 말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노인은 잠시 신음을 흘린 뒤 설명했다. 공연 중,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그 뒤에 있었던 일까지.
“그 결과로, 우리 배우들은 크게 놀랐고 시설 담당들은 밤샘 작업을 했지.”
관객들을 돌려보낸 후, 노인은 노발대발하며 극단의 전원을 갈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노인이 화를 낸 건 실수에 가까웠다.
“결론만 말하자면, 준비에 미흡했던 거라 할 수는 없다는 거였어.”
“왜지?”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끄려고, 장비 쪽을 살짝 망가트렸으니까. 그걸 정비 부족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망가트린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아니, 그럼 일이 편하겠지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
일종의 밀실 기물파손이라며 노인은 짜증을 냈다.
“거기에 그 기묘한 박수소리까지 낸 게 동일인… 인지 동일 뭐시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지.”
“그래서, 결론이 유령이 한 짓이라는 말인가? 재미있군, 자네가 이런 일로 진지하게 귀신 같은 걸 믿는 꼴은 상상이 가질 않는데. 나한테 처음에 이 극장 인수하면서 굿하는 돈도 아끼려던 양반 아닌가.”
“옛날이야기를.”
노인은 눈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일부러 망쳐놓은 것은 확실한데, 사람 중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유령의 짓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자네가 옛날에 그런 거 믿는 인간들은 죄다 멍청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
“젠장, 하지만 진짜 그래. 바보가 된 기분이야. 이딴 일로 공연을 멈춰야 한다니. 원래는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일 텐데.”
“자네는 바보가 아니니까.”
무당의 함축적인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또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래도 되겠지.”
이미 한 번, 관객들에게 티켓값을 환불해 줬다.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다면 치명적인 피해다.
“한번은 견딜 만해. 하지만 두 번은 큰일이야.”
원인을 모르는 일이, 재발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노인은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책임자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그냥 공연을 강행하는 것도 바보짓이지. 그렇지 않은가?”
“안 해도 바보 아닌가? 어느 쪽이든 바보구만.”
“흥, 맘대로 말해. 그래서, 도와줄 수 있겠지? 어쨌든 이런 일이라 한다면 자네가 전문 아닌가.”
그러나 무당은 노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무당은 눈을 감았다.
“어렵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