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극장의 유령 (1)
미연은 눈을 한번 감고는, 심호흡을 했다.
무대에 처음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만큼 긴장된 적이 없다. 맨 처음 별 것 아닌 작은 역할을 맡게 되어 올라갈 때보다, 이미 수십 번은 더 올라간 경험이 있는 지금이 더 긴장된다.
왜냐하면, 오늘은 미연이 처음으로 주연이 되어 관객 앞에 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후우… 잘하자! 화이팅!”
긴장된 나머지 혼자서 크게 외치는 모습을 본 주변 배우들은, 귀엽다는 듯 웃기도 했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쁘게 보고 있지는 않아 보였다.
주변 사람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미연은 막이 아직 오르지 않은 무대 위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이제는 채 몇십 분도 남지 않았다.
“십오 분 남았습니다! 배우들 준비해요!”
시설 담당자 겸 부단장이 대기실에 들어와서는 말했다. 머리에 흰머리가 종종 보이는, 나이가 꽤 있는 중년의 남자다.
“뭐어, 알아서들 잘 하고 있겠지만!”
“아 맞다! 부단장님! 저 질문이요!”
미연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오늘 관객 수는 어때요?”
“평소와 같지. 별로 없어.”
“그런가요?”
뭐 그런 것을 새삼스럽게 묻느냐는 표정을 지은 부단장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마음 편히 먹어. 어차피 실수 좀 해 봐야 눈치챌 만한 사람도 별로 없다고.”
무책임한 말이지만, 저 말 역시 긴장을 조금 풀라는 의도로 하는 말이다. 미연은 난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 사실 그렇긴 하지만요. 문제는 관객분들이 아니죠.”
미연의 말을 들은 부단장은 혀를 살짝 찼다.
“쯧, 그렇지. 단장님 마음에 안 들면 그 양반 또 지랄을 할 텐데.”
“그래도 틀린 지적은 안 하시니까요.”
“그게 더 무섭지 않냐?”
짓궂은 질문이다. 미연은 고개를 저었다. 평가라는 것은 늘 조금씩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섭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게 무서우면 배우 하지 말라고 하실 걸요?”
“어우, 대단해 대단해. 천상배우야. 난 들을 때마다 질리던데.”
조금은 감탄한 표정이 된 부단장은 미연의 복장에 잘못된 점이 있는지 날카로운 눈으로 한번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이상 무.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가 잘 할 거라 생각해서 단장님도 널 주연으로 삼은 거 아니겠냐? 진짜 그런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 맡으면서, 지금까지 고생했다.”
부단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잘 해봐. 막내. 넌 잘 할 거야.”
“…네!”
* * *
부단장의 믿음대로, 무대는 상상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다른 배우들도, 실수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던 미연도 실수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넘는 긴 연극이었지만 이 정도면 제아무리 깐깐한 단장이라도 불만을 표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드는, 그런 괜찮은 무대.
“오오, 그대여! 왜 그대는 이곳에 없습니까?”
그러나 미연에게 진짜 어려운 부분은 지금부터다. 상대역이 이 장면을 마무리하고 퇴장하면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그리고 나서는 무대에 미연은 오직 홀로 남는다.
그리고 약 삼 분 정도를 온전히 홀로 미연이 극을 닫아야 한다. 그걸로 연극이 끝난다. 부담스럽고도 명예로운, 그런 역할이다.
“나는 그대를 찾아, 어디까지고 가리다!”
그 대사를 마지막으로 상대 배우가 퇴장한다. 그리고 천천히, 미연이 무대의 중간으로 걸어 나선다.
아주 잠시, 무대 위에서 객석을 쳐다본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이고, 그 가운데에는 단장이 앉아 있다.
무표정한, 그러나 날카로운 눈으로 노인은 미연을 쳐다봤다.
마지막이다. 이 장면만 수천 번은 연습했다. 그렇게 미연이 대사를 치기 위해 고개를 위로 드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퍽!
미연을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꺼졌다. 갑작스러운 일이다. 수천 번을 연습하는 동안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이건 분명히 누군가의 실수이거나, 사고다. 어느 쪽이든 의도한 바는 아니다.
미연은 그대로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애드리브를 해야 하나, 아니면 극을 중지해야 하나.
무언가를 결정 내리기에는, 미연의 경험은 너무 적었고 시간도 불충분했다.
관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연극의 한 이벤트로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박수소리 비슷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뭔가 이상한 소리다.
박수소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큰 소리다. 마이크와 음향기기를 이용한 배우의 목소리보다도 큰 소리.
짝-! 짝-! 짝-!
그만한 크기의 박수소리가 단 한 사람이 치는 박수소리일 리가 없는데도, 그런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지?”
그제야 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앞에서 소리가 들린다면 여전히 극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볼 수 없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휙휙 바뀐다. 결국 객석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어떤 자식이, 이따위 장난을 치나!”
단장은, 그 나이의 노인이 낼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의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야! 불 켜!”
* * *
저벅저벅 하는 발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태주는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금 이곳에는 너무나 의외의 사람이 나타나고 말았다.
“…내 취향의 차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내오나?”
나이든 무당의 말에 태주는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아뇨, 네.”
그 전까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태주는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구나.”
화려한 무복, 그리고 손목에 오색 실이 달린 끈을 매단 나이든 무당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태주를 노려봤다.
“왜, 진짜 귀신으로 나타났어야 했나?”
“아뇨, 뭘 드려야 할지 생각하다가 말이에요? 그으, 뭔가 원하시는 게 있다면 당연히 그걸로 드리죠, 아, 하하하.”
횡설수설하면서 어떻게든 마른 웃음을 지은 태주의 표정을 본 무당은 좀 더 못 미더운 표정이 되었다.
“이전에는 잘만 나불거리더니, 이번에는 왜 그리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지 원.”
“그게 그, 그때는 제가 좀… 착각을 했잖아요?”
태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미숙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이라고 아주 뛰어난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부끄러워진다. 태주는 고개를 한번 좌우로 세게 털고는 물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상한 소리를 다 하는군. 여기에 다른 용건이 있는 사람이 오나? 의뢰하러 왔지.”
“네?!”
태주의 말을 들은 무당은 한층 더 찌푸린 표정이 되어서는 되물었다.
“왜, 나는 의뢰 하면 안 되냐?”
중년의 무당은 날카롭게 말했고, 태주는 조금 움츠러들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전에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아뇨,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요….”
“뭐, 됐다. 그나저나, 내 딸은 어디로 갔지? 이번 의뢰는 그 애한테 하러 온 것인데 말이다.”
무당의 말을 들은 태주는 잠시 움찔하고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하….”
“사내놈이 한숨부터 쉬냐? 이게 뭐 그리 곤란한 일이라고.”
무당의 핀잔에 태주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뇨, 생각하시는 그런 이유도 없는 건 아닌데, 누나 지금 다른 먼 곳에 가 있거든요.”
“시아가 멀리 가? 왜?”
무당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태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으, 냥 뭐랄까 우리 신입 교육 겸 해서… 언제 돌아온다는 말이 없었거든요?”
차라리 아주 늦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태주는 말했으나 무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 올 거다. 오늘이 길일이라는 정도는 점치고 왔으니.”
단언하듯 말하는 무당의 말을 들은 태주는 되물었다.
“…그런가요?”
“그래.”
그렇다면 사실이긴 할 거다. 태주는 무심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어허, 이 녀석이. 복 날아간다?”
“저는 그 말 안 믿으니까 괜찮아요. 아니, 애초에 한숨을 쉬는 사람은 이미 복이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본능적인 반박이다. 해 놓고 나니 아차 싶었지만, 오히려 무당은 킬킬 웃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말을 들으니 나한테 그렇게 대들었던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
태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자신감 비슷한 거라도 조금 되찾았다면 제일 자신 있는 걸로 내와 봐. 무릇 사람은 잡기술에도 조금 능해야 하는 법이니.”
“으음, 마침 좋은 원두를 오늘 오전에 좀 구해 놓긴 했는데요.”
“좋군, 확실히 길일이기는 한가 보구나.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좋은 물건이라면 티는 나겠지.”
무당의 말을 들은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한 잔 내어 드리고 잠시 연락 좀 하고 올게요. 누나한테 연락은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려무나.”
무당은 느긋하게, 그러나 여전히 곱지만은 않은 눈길로 태주를 바라봤다.
“어디 다른 데 들렀다 오지 말라고, 꼭 전하거라.”
노려보는 무당의 시선을 견디면서, 태주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태주는 커피 한 잔을 내렸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사무소 앞으로 향했다. 잠시 멍때리던 태주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말했다.
“아니, 이렇게 정신 놓을 때가 아닌데.”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아, 누나. 지금 시간 괜찮죠? 괜찮은 거 맞죠?”
[갑자기 왜 이래?]
시아는 당황하는 태도로 대답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어마어마한 일이 있는가 본데.]
실제로 그랬다. 시아의 예상대로, 태주는 폭탄발언을 던졌다.
“놀라지 말고 들어요, 어머니가 오셨어요.”
태주의 말을 들은 시아는 잠시 침묵했다. 태주 역시 더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잠시 뒤, 시아는 입을 열었다.
[혹시 네… 아니, 네 어머니는 안 계실 텐데.]
“아니, 누나! 말조심 안 하면 삽시간에 인간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만다구요! 요즘 그런 말 조심해야 하는 거 몰라요?”
[아니, 그,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좀 당황해서.]
시아는 조금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원래 의도는 태주 네 어머니는 아닐 테니 자신의 어머니냐는 질문을 하려던 것이었으나, 말이 꼬이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양반이 왜?]
조심스러운 말투로 시아는 질문을 던졌다.
“그으, 뭐냐.”
태주는 입맛을 한번 다시고는 말했다. 이게 어떻게 들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뢰 하러 오셨다는데요?”
[의뢰?]
시아는 말문이 막힌 듯 잠시 헛숨을 들이키더니 핸드폰 너머로 소리를 쳤다.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인간문화재 수준의 괴물이 왜 우리한테 의뢰를 해? 본인이 직접 안 하고!]
“저한테 너무 따지지 마요. 그냥 들은 대로 전달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저도 혼란스러워서 죽겠는데.”
[끄으응….]
시아는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고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냥 나 없는 사이에 네가 대충 해결해 주면 안 될까?]
“어, 이런 말 전해서 미안하지만 안 돼요. 누나 보러 왔다는데요?”
[이런 씨…]
“그, 어쩌면 좋은 기회 아닐까요?”
어색한 태주의 말에 시아는 날 선 태도로 말했다.
[…화해 비슷한 말이라도 꺼내면 돌아가서 혼난다?]
“그럼 아무 말도 안 할게요. 하지만 두 사람이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제가 힘들다구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끼어들었을 때 이후로, 두 사람이 만날 때마다 중간에 껴서 늘 고통이다.
“화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온건하게 대하는 정도는 안 될까요?”
[싫어.]
시아의 말을 들은 태주는 한숨을 내뱉었다.
“와서도 그러지는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