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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30화 (130/269)

13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13)

“있을 곳?”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있을 곳. 목적이 다 비슷비슷하니까 여우를 구분하는데 큰 의미가 없다는 거야.”

태주는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우가 어떤 동물인지 설명해 줄 만한 이야기가 하나 있지.”

한때 나름 유명했던, 지금도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다. 태주는 여우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그렇다고는 해도 당신네 기준으로는 극히 최근이겠지만 이런 기사가 있었어요.”

어느 날, 여우를 밀수하는 사람이 잡혔다. 우연히 잡힌 것이지만, 생각보다 꽤 대단한 사건이었다.

“평범한 밀수인 줄 알았지만, 그 사람이 키우던 여우를 분석해 보니 멸종한 줄 알았던 토종 여우였던 거죠. 새끼까지 치며 키우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본인도 그게 그리 대단한 여우인지는 몰랐겠죠.”

이건 단순히 없던 여우를 국내로 가져왔다는 데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 이미 그 여우는 국내에서 몇 번씩이나 제대로 번식하는 데 실패했었던 적이 있어요. 전문가, 연구진들이 붙어도 계속 실패만 했었죠. 그렇게 포기하고 있던 순간에, 그걸 한낱 밀수꾼이 성공시켜버리고 만 거예요.”

당시 전문가들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밀수꾼은 본인도 모르게 위업을 이뤄낸 거예요. 물론 밀수가 잘한 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밀수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어버렸죠.”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가.

그 방법을 알아낸 사람을 그냥 감옥에 처박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밀수꾼은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실제로 복원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실질적인 선처를 받을 수 있었다.

“방법이 뭐였게?”

태주는 갑작스럽게 월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뭽?”

빵을 먹던 월이는 급히 빵을 삼키며 말했다.

“나야 모르지?”

“그런 대답 할 거면 천천히 대답해도 되지 않았냐?”

그래도 입안에 있는 걸 삼키고 말하는 걸 보면 그럴 때마다 한소리 한 게 효과가 슬슬 나오는 것 같아 태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방법이었어.”

노란색의 튼튼한 플라스틱 박스가 있으니 여우들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그게 다야? 고양이처럼 박스 하나면 된단 말이야?”

월이의 미심쩍은 표정에 태주는 조금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랑은 조금 다르긴 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박스를 뒤집어서 어두컴컴한 내부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했다던데?”

알고 나면 허탈할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지만, 아무도 이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박스가 여우굴 역할을 대신했다는 말이야.”

여우에게 필요했던 건 엄청난 무언가가 아니라 오직 자신이 들어갈 굴이었다는 말이다.

“그걸 알게 된 이후에, 여우 요괴 이야기들을 보니까 감이 좀 오더라고.”

천년을 수행하는 여우도, 하늘에 자기가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짓이다.

사람들 틈에 숨는 여우 역시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있을 곳을 마련하기 위해 하는 짓이다.

심지어는 사람을 해치는 종류의 여우 역시 욕심과 악의가 섞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살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하는 짓이다.

여우 요괴는 결국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틈에 섞이고자 하는 요괴인 것이다.

“있을 곳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여우가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이란 말이야.”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여우의 행동들을 해석하다 보면 조금 감이 온다.

“당신은 수행을 포기했어요.”

그 성공할지 아닐지 모를 끝없는 수행을 해서 과연 자신은 있을 곳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 의심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떨쳐내지 못한다면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당신은 의심을 떨쳐 낼 수 없었고 깔끔하게 포기한 거겠죠.”

그 과정이나 혹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면, 어느 쪽이든 여우가 그따위 수행을 그만두기엔 충분한 이유다.

“그래서 결국 당신은 사람들 틈에 끼어들려고 열심히 해 봤던 거에요. 하지만 그땐 그러기에 좋은 시대가 아니었죠.”

자신의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람들 틈에 끼어드는 것까지는 무난하게 가능했겠지만, 그 이상이 힘들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낯선 이웃을 아무 의심도 하지 않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은 여우이니 사람들 사이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단 말이죠.”

그것을 알았기에 여우는 계속해서 돌아다녔을 것이다.

자유롭다는 말은 동시에 한 곳에 정착하여 살 수는 없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차피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다면 그냥 되는 대로 놀면서 돌아다니자는 심리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죠.”

그러다 결국 봉인을 당했지만, 여우에게는 어떤 의미로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한참을 갇혀 있다가 나왔더니, 놀랍게도 지금은 개인이 이웃을 알아내는 시대가 아니었죠. 이전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고도 당신은 사람들 사이에 섞일 수 있었을 거예요.”

공식적인 신분 등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그저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 하나를 연기하는 건 여우가 겪은 이전의 그 어느 시기보다 쉬웠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꺼내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죠. 직접 본 건 아니라 왈가왈부하기 좀 애매하긴 하지만, 최소한 당신이 있을 곳이 되어주기엔 충분했죠.”

“그 여동생분?”

“그래. 여정 씨.”

여정의 부탁에 여우는 단순히 조언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여정의 역할을 종종 대신하기도 하면서 친근하게 굴었다.

“처음에는 이용할 생각 정도는 했을 거예요. 사람이라도 그 정도 생각은 할 테니까요.”

그러나 여정은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여우에게 자신의 몫을 흔쾌히 내어줄 수 있을 만큼.

“그게 당신에겐 정말로 감동적인 일이었겠죠.”

여우가 눈을 빛내며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게 그렇게나 감동적이라고?”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흠, 하는 소리를 살짝 내고는 말했다.

“여우는 옛날부터 욕으로도 쓰였지. 너도 알지?”

“그치.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불여우년, 여시같은 계집 등의 욕설은 분명히 젊은 욕설은 아니지만, 심지어 지금까지도 자주 쓰인다.

“그 욕은 대체로 어떤 느낌이지?”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아! 시어머니가 며느리 갈구는 드라마에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뭐, 그것도 있지.”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여우라는 종류의 욕은, 여성이 여성에게 하는 욕이야. 대체로.”

월이 말대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여우라는 욕을 하는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 드문 편이지. 애초에 남자가 욕할 때는 좀 더 원색적이고 강한 욕설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근데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잠시 이야기가 탈선할 뻔했다. 태주는 이야기를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어쨌든 여우는 그런 성질이 있다는 말이야.”

동성에게 욕을 먹고, 살아남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의심받아 배척당한다.

“그런데 여우가 만난 이번 사람은 본인을 의심하지도, 낮잡아 보지도 않고 그 성질을 비난하지도 않아.”

정체를 처음부터 알고도, 의심 없이 도움받으며 순수하게 돕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여우가 꿈꾸던 그런 관계.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자리를 여정 씨는 흔쾌히 내어준 거예요.”

물론 여기까지 전부 추측이다.

“아마도요.”

“아마도? 그런 말로 거기까지 자신 있게 말해요?”

여우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잘 찍는 사람이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네요.”

“숨길 의도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죠.”

집의 계약유지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으며, 학교에서도 평판 유지가 잘 되고 있다. 아르바이트도 한 장소에서 같은 일을 쭉 유지하고 있으니 잘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가 없다. 보금자리를 원하는 여우에게도, 자취를 바라는 여정에게도 만족스러울 상황이다.

그러니 여우가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 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눈치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갑자기 문제가 생긴 척을 해야 했을까요?”

태주의 말에 여우는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삐쭉 다물려다가, 빵을 한번 크게 베어 물었다. 태주는 그 표정에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정말로 원하는 것을 ‘모두’ 마련했다면 그 이상으로 크게 위험한 다리를 건널 이유가 없을 텐데요.”

지금까지 여우가 조금 속임수를 쓰거나, 혹은 위험한 다리를 건넌 부분은 오직 한가지 목적만을 위한 것이다.

“당신이 저희와 접촉하면서 하고자 했던 건, 이미지 메이킹인 거죠?”

그 의도를 파악하면 결국 뻔하다.

“당신은 두 분에게 지금의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오빠분을 여동생과 다시 가까워지도록 만들고 싶은 거예요.”

“엥? 생각보다 착한 이유네!”

월이의 말에 여우는 뜨끔 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새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그럼 착한 이유였으니까 빵값 좀 빼줘요.”

“그건 빵을 들고 온 본인한테 말씀하라니까.”

“엑? 난 돈 없어! 전에 유리창 값 물어내느라 다 썼다구!”

월이는 자랑스럽게 자랑이 아닌 말을 했다.

“깨 먹은 유리창이 생각보다 비싸더라구?”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할 뿐이다.

“저렇다는데요?”

태주 역시 대신 내줄 생각은 없다.

“으으, 괜히 그런 말을 해서….”

태주는 조금 미소지었다.

“근데, 그렇게 분해하시기엔 그게 이유의 전부는 또 아니잖아요?”

그 말에 여우는 어떻게 알았냐는 듯 눈을 똥그랗게 떴다. 태주는 그 태도를 보고 더더욱 확신을 가지면서 말했다.

“그 둘이 다시 가까워졌으면 하는 이유가 따로 있잖아요.”

“그, 그런 거 없어요! 저는 그냥 남매를 돕고 싶었던 착한 여우라구요!”

“에이- 여우에게 굴이 생겼다면 다음에 할 일은 뻔한데, 뭘 이제 와서 숨겨요?”

놀리는 듯한 태주의 말에, 여우는 부정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빵을 먹었다.

“뭐야, 왜 나만 몰라? 뭘 숨긴 건데?!”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월이가 다그치듯 물었다. 태주는 그런 월이에게 물었다.

“여우가 지금까지 뭘 하고 다녔지?”

“엉? 몰라?”

월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뭘 몰라. 네가 제일 이야기 열심히 들어놓고.”

“내가?”

“봉인에서 풀려난 지금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 뭘 했느냐는 말이야.”

월이는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을 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뿐이다.

“어… 연애질…?”

조심스러운 말투다. 이게 정답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정확하네.”

태주는 씩 웃었다.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봤다.

“여우는 연애를 하고 싶었던 거야.”

여우는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사람이 쉽게 안 변하듯, 여우도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요.”

세열이 처음 찾아온 날 여우비가 내린 이유는, 결국 너무나도 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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