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11)
허가받지 않은 자취. 아마 여동생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 정도일 거라며 태주는 말했다.
세열은 잠시 침묵했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되네요.”
본인은 먼 곳에서 자취를 하면서, 여우를 대신 집에 보낸다. 그야말로 완벽한 알리바이다.
“그럼 여우가 자리를 돌려주고 싶다는 건?”
“사실은 자기가 구한 거나 다름없는 그 집을 돌려받고 싶다… 는 거겠죠.”
아마도 알바를 한 것은 여우일 것이다. 수업 성적과 관련한 부분은 개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금전 관련한 부분은 아마 대부분 여우가 해내고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시겠지만 집 구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냥 월세방이라고 해도 기반 하나 없이 마련하는 건 꽤 고생해야 하는 일이죠. 그게 아주 작은 단칸방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세열은 문득 깨달은 듯 말했다.
“그럼, 여우가 처음에 말했던 문제들은?”
인간관계를 도와달라 했던 말. 그 말은 그럼 거짓말이라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태주는 웃었다.
“거짓말은 아니었을 거예요. 여우에게 부탁한 일은 처음에 정말 그런 거였겠죠.”
그러나 여우는 정말로 맡은 임무를 잘 해냈다.
“다행히 극복해냈을 거고요. 최소한 여우가 지금 연기하고 있는 만큼은요.”
“그건….”
어쩐지 조금 의외처럼 들리는 말이다. 세열은 갑작스럽게 들은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뭐,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직접 두 분이 대화하시는 편이 조금 더 깔끔할 것 같기도 하고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세열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그게 여우가 구했다는 집의 주소에요.”
“이게요? 진짜로 여기서 그리 안 머네요?”
이 정도 거리라면 지금부터 혼자서도 갈 수 있을 만한 거리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를 손님 혼자서 가 보세요.”
“저 혼자요?”
당연히 같이 갈 줄 알았던 세열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네. 손님 혼자요. 아무래도 혼자서 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거든요.”
태주는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여자분 사시는 데 제가 껴서 가기도 그렇고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거기는 자취방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세열은 주저하는 표정이 되었다.
“괜찮을 거예요. 애초에 제가 가면 방해라서 그래요. 가족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시려면 그편이 낫잖아요?”
자신이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데 방해만 된다. 그런 뉘앙스로 태주는 이야기했다.
“음….”
세열은 결국은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별일 없겠죠?”
“갑자기 찾아가는 거니까 동생분이 당황할 수는 있겠지만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세열에게 강조했다.
“물론 한가지 질문은 꼭 해주셔야 하는데요.”
태주는 잠시 뜸을 들인 뒤 한마디 말을 던졌다.
“여동생분을 만나면, 이 말을 물어봐 주세요.”
“무슨 말이요?”
“여우가 나한테 뭘 하려는지 아냐구요.”
세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태주 씨요?”
“아니, 손님 본인이요.”
“아, 저 말하는 거였나요? 근데, 뭘 하려는 건데요?”
“짐작이긴 한데.”
태주는 웃었다.
“일단 지금은 비밀이에요. 그런데, 그걸 그 여동생분이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면 조금 일이 편해질 것 같거든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여동생이 거짓말을 잘 하시는 분인가요?”
“아뇨. 거짓말하면 티 엄청 나는데요.”
세열의 말에 태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방금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정확하게 들으실 수 있겠네요.”
“어… 그렇죠?”
“여동생이 거짓말을 한 것 같다면, 잠시 후 제 연락은 꼭 받아주세요.”
어딘가 장난기 있어 보이는 태주의 말에 세열은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를 받으면 된다는 거죠?”
* * *
월이가 본격적인 학교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것은 세열이 여동생의 집으로 출발한 뒤였다.
“나만 버리고! 뒤에서!!!”
월이는 학교를 안내해주던 분이 안내를 마칠 때까지 풀려나지 못했다. 바깥만 돌아다닌다면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지만, 학교 구석구석 죄다 돌아다니며 시설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데다 앞으로도 알아봐야 쓸모없을 것 같은, 심지어 재미까지 없는 기나긴 설명을 듣던 월이는 결국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월이는 뒤에서 씩 웃으며 지켜보고 있는 태주의 표정을 보자마자 씩씩대며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래도 학교 구경은 재밌게 하지 않았어? 학교에서 진행하는 견학보다 훨씬 알찬 구성이었을걸?”
“싫—거든! 나는 그냥 외관만 보고 감탄하면 충분했단 말이야!”
월이는 왁왁거리며 시끄럽게 굴었다.
“이렇게 자세하게 학교 같은 걸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다구! 분수 정도는 멋있었지만!”
“그럼 됐지 뭘 그러냐? 그리고 너도 그럭저럭 재밌어했잖아.”
애초에 태주는 뒤에서 월이가 오오 하는 표정을 짓는 걸 몇 번 봤다. 그렇게 싫어하는 표정이기만 했으면 학교 투어를 시켜주는 사람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월이를 데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월이는 여전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표정을 찌푸렸다.
“어쨌든 별로야. 에잇! 난 이번 일 뭔가 맘에 안 들어! 계속 손해만 보는 기분이라구!”
“언제는 맘에 들어서 일했냐?”
월이는 태주를 살짝 째려보기는 했지만 맞는 말이기에 특별히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고생했어.”
태주는 웃으며 덧붙였다.
“늦었어. 사람 비웃기나 하고 말이야.”
그러나 그 정도 말로도 어느 정도는 기분이 풀린 듯 월이는 조금 태도를 풀었다.
“그나저나, 그 사람은? 먼저 갔어?”
“그래. 다음에 할 일은 손님이랑 있으면 오히려 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태주가 그쪽에 있으면 방해가 되듯, 세열이 이곳에 남아 있어도 방해가 된다.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여우한테 솔직한 반응을 조금 이끌어내고 싶거든. 그런데 그쪽이 있으면 아무래도 그걸 들을 수가 없을 거라.”
“솔직?”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거짓말 안 한다며?”
“못 하는 거긴 한데, 그렇다고 사람 못 속이는 거 아니잖아. 너도 기억하지?”
“하긴 너 그런 거 잘하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놈 같잖아.”
“방금도 나 팔아넘겨 놓고….”
“그거야 뭐, 내가 대학교 구경 다닐 나이는 아니잖아? 어쩔 수 없었어.”
태주는 변명하듯 말했다. 사실, 변명이다. 월이가 한소리 더 하기 전에 태주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어쨌든, 여우는 그 손님 앞에서는 절대로 솔직해질 생각이 없을 거야. 그러려면 손님을 조금, 저 멀리 치워 둘 필요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이번 사건은 위험한 구석이 전혀 없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보낸 거야? 혼자서 가라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언뜻 듣기는 했는데.”
“귀도 좋네.”
“시끄러. 학교 설명하는 거 듣느라 거의 못 들었다구.”
월이는 그 기나긴 학교 설명이 다시 떠오르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근데 나도 좀 궁금해진 부분인데.”
“오, 어떤 부분이?”
“여우는 집을 왜 구한 거야?”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
“어라.”
“뭐가 어라야?”
“엄청나게 핵심적인 질문을 제대로 던져서.”
가끔 월이는 이런 운인지 실력인지 모를 질문을 던지곤 했다.
"뭐, 운도 실력이겠지.”
“뭐라는 거야? 대답 안 해?”
“대답할 거야. 내가 설명을 조금 미룬 적은 있어도 안 한 적은 없잖아.”
“가끔 너무 미루잖아.”
“확실하지 않은 걸 말할 수는 없잖아? 물론 가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긴 한데.”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맞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지금 물어보는데.”
“뭐?”
월이는 또 뭘 시키려는 거냐는 듯 태주를 쳐다봤다.
“페X리즈 냄새 같은 거 주변에서 안 나?”
물론 태주의 코로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지만, 월이라면 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월이는 어라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나.”
월이도 주의 깊게 맡으려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냄새를 지운 모양이지만, 생각보다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여우는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건 또 어떻게 알았대?”
여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뭐예요?”
“조금 잘 찍는 사람이요?”
어제 여우는 세열의 근처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잡혔다. 그렇다면 오늘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해서 대충 던져본 말인데 맞아 떨어진다.
“운이 좋았네요.”
태주의 대답에 여우는 또다시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운이라는 말을 믿으라구요?”
“아뇨. 그래도 반반 정도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여우는 한숨을 쉬었다.
“같이 그냥 바로 그 집으로나 가시지 왜 또 여기까지….”
태주는 웃었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잖아요? 저도 그냥 속아주기에는 성격이 좀 나빠서. 뭔가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으면 못 참거든요. 그게 싫으시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요?”
“저도 똑같거든요. 물론, 뭐 좋은 여우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 이제 와서는 확실히 이해가 가긴 하는데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여우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유도에 넘어가 줄 만큼 태주는 무심하지 못하다.
굳이 대학교에 먼저 방문한 이유는 그런 것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여우가 알려준 장소로 간다면, 분명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인지 모를 여우의 노림수에 그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에잇! 쩨쩨하게!”
여우는 자기 수에 넘어가 주지 않은 태주가 야속했는지 작게 야유했다.
“그러게 맨 처음에 저한테 이상한 유도를 하지 마셨어야죠.”
여우는 처음에 마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세열은 그 말을 부정했다.
“차에서도 혹시나 싶어서 그런 대화를 했죠.”
‘부모님의 재혼 말씀이신가요? 그거야 원래 엄청나게 옛날 일이라서요, 굳이 지금 말씀드려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아니거든요.’
남아 있는 영향 같은 것이 있냐는 질문에도 세열은 고개를 저었었다.
“정말로,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새삼스러운 수준의 문제일 뿐이었어요. 실제로 당신은 직접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안 했죠.”
사실만을 가지고 상대를 속이려 시도를 한다. 태주도 처음에는 그냥 별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만큼 꽤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은 저도 많이 써먹은 방법이라서요. 뭐, 그리 크게 탓하지는 않을게요. 의도를 대충 알 것 같으니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여우에게서 악의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속이려 들었음에도 이렇게 유하게 대하는 것이다.
“당신은 좋은 사람… 은 아니고 좋은 여우처럼 보이고 싶어 했어요. 그대로도 충분하지만, 원래보다도 더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죠.”
여우는 눈을 찌푸렸다.
“그것 때문에 티가 나게 된 거죠. 자세한 이야기는 근처 카페로 가서 할까요? 월이한테도 설명을 해 주려면 앉아서 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요.”
“그래요, 뭐 한 잔 정도는 사드리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