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10)
“자, 저기가 미래관이라는 곳인데! 저희 학과 수업은 대부분 저기에서 이루어져요! 앗! 우리 동생분은 학과는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오지랖이 넓은 여자 조교는 월이를 데리고 다니며 학교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자기 멋대로 시작해 버린 일이다.
“…몰라요.”
월이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월이는 설명을 한참 들으며 태주를 원망하는 눈빛을 살짝 보냈고. 태주는 시선을 피했다.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굴 줄은 몰랐는데요.”
태주는 저 뒤에서 소곤소곤 말했다.
“그러게요.”
세열 역시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근하게 구는 학생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그러게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 * *
학과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세열은 그곳에 앉아 계신 조교 한 분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혹시, 제 동생이 이곳에서 뭔가를 찾아와 달라고 말하던데… 아 동생 이름은 여정이에요.”
맨 처음에는 시큰둥한 태도에 가깝던 사람이었으나, 여정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표정이 확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앗! 여정이 오빠신가요? 그러면 아마 저번에 혹시 나오면 달라고 했던 그 학술대회 서류겠네요. 저번에 양식은 따로 나오면 주겠다고 했거든요. 걔도 참, 나온 당일에 어떻게 바로 알았지? 다음 주 월요일에 주려고 했는데.”
조교분은 그렇게 말한 뒤 대봉투 하나를 세열에게 건넸다.
“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거 본인이 찾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세열은 당황해 아무 말이나 했다. 조교는 그 말이 조금 웃겼는지 살짝 미소지었다.
“이건 그냥 양식이니까요. 정말 그런 거라면 애초에 그렇게 꼼꼼한 애가 오빠분을 시키지는 않았을 걸요? 그런데, 이거 하나 받으시려고 학교까지 오신 거예요? 어우, 너무 멀리 오셨는데?”
“어, 하하….”
세열이 할 말이 없어 말을 흐리자 뒤에서 태주가 끼어들었다.
“마침 제 동생이 대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해서요. 근처 놀러 온 김에 겸사겸사 왔죠.”
“앗! 그러셨구나. 혹시 관계가…?”
태주는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아, 사촌이에요. 저는 얘랑 동갑이고, 지금 학교 둘러보고 있는 걔는 고2에요.”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튼 태주는 적당히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면, 이 학교를 방문해 보는 건 저도 처음인데요.”
“그러셨구나? 저희 학교가 나름 넓죠? 건물은 좀 낡았지만요.”
태주는 적당히 수다를 떨며 원하는 것을 적당히 캐낼 수 있었다.
평소 여정의 평판, 그리고 성적과 성격 같은 것까지.
여우의 말에 과장은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태주는 대강 파악한 뒤 웃으며 말했다.
“아차,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업무 시간에.”
“아뇨, 괜찮아요! 그나저나 동생분이 학교를 조금 구경하고 있다고요?”
“네.”
“그럼 여정이한테도 사촌 동생이겠네요!”
“어, 네 그렇죠?”
“그럼 제가 학교 구경시켜드릴게요! 바깥만 봐서는 사실 제대로 된 견학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것까지는 태주도 예상하지 못했다.
“고등학생이라면, 학교 안쪽도 꽤 궁금하겠죠? 밖에서 보기만 해 봐야 사실 별로 보이는 건 없으니까요!”
“어… 감사합니다?”
약간 의문형의 말투로 태주는 감사 인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 * *
사촌 동생 대학교 구경시켜준다는 핑계는 꽤 잘 먹혔다.
문제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잘 먹혔다는 점이다.
“저긴 기숙사인데 겉보기만큼 낡았어요! 뭐, 조금 늦잠 자도 괜찮다는 장점은 있긴 한데요!”
“기분 이상해….”
갑자기 불려서 끌려다니기 시작한 월이는 골이 난 채로 팔짱을 끼고 돌아다녔다. 문제는, 그 골이 난 태도가 더 어린애 같아 보여 귀여운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쪽은 도서관인데, 학생증이 없으니 안쪽은 보여드리기가 어렵겠네요! 하지만 도서관 앞에는 분수가 있어요!”
거의 질질 끌려다니는 월이를 뒤에서 보며 태주는 살짝 웃었다.
구해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차피 지금은 월이가 할 일도 없는 데다, 차에서 잠도 한참 잤으니 저 정도는 고생해도 될 거다.
저렇게 끌려다니는 월이를 방치한 채로 태주는 말했다.
“뭐, 이렇게 되면 확실하긴 하네요. 여우가 ‘너무 잘 했다’라고 한 말이 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요.”
세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보통 저렇게까지 해 줄까요?”
붙임성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저러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본인에겐 조금 익숙한 사람일 거예요.”
“익숙하다고요?”
“손님 말이에요.”
태주는 조금 뒤에서, 조교를 유심히 살폈다.
“귀찮은 표정에서, 얼굴을 보고 일차적으로 마음이 조금 풀렸어요. 손님은 잘생긴 편이니까요.”
세열은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운 것이다.
“그다음에 손님의 정체를 안 순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풀렸어요. 아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마 내적인 친밀감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상태일 거예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많이 들으면 상대방과 직접 만난 적이 없더라도 그만한 호의를 가지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아마 손님 이야기를 꽤 많이 들은 적 있는 거겠죠.”
그리고 그건 저 사람이 그만큼 세열의 여동생과 친하다는 말이고, 그건 여우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세열은 그 사실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저렇게 자리를 비우셔도 괜찮은 걸까요?”
자신들의 거짓말, 물론 사소하다고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대가 무리해서 저러는 것은 조금 미안하다.
세열의 그 표정을 본 태주는 설명을 조금 덧붙였다.
“물론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것도 심심한 김에 좋은 핑곗거리다 싶기도 하겠죠. 보니까 굳이 여러 사람이 있을 필요 없는 상황인 것 같던데.”
아무리 호의가 있다 하더라도 자리를 굳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니 저러는 것이긴 할 거다.
설마 자기 할 일도 내팽개쳐두고 오진 않았겠지. 태주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고는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된 김에 아까 하던 이야기나 조금 할까요?”
태주의 말에 세열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알바를 어디서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신다고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세열은 결국 동생이 어디서 알바를 하는지는 떠올리지 못했다. 가본 적도 없고, 이야기로 지나가듯 듣기만 했던 것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아, 네. 뭐 하는지는 기억이 나지만요.”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음식점 서빙이라고 한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타임은 어떻게 되죠? 주말만 하시나요?”
“어… 주말 끼고 평일에도 할 때가 있다는데… 일단 매일은 아니에요. 금토일이라 했던가?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요.”
“그런가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조금 알 것 같네요.”
“뭐를요?”
“여우와 동생분의 정확한 관계요.”
태주는 웃었다. 반면 세열은 긴장했다.
“저희는 지금까지 동생분이 하는 일들을 살폈어요. 다는 살피지 못했지만, 그래도 짐작 가는 부분은 있죠.”
세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여동생분이 통학한다고 하셨던가요?”
세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아마 아닐 거예요.”
“네?”
태주의 말에 세열은 당황했다. 그러나 태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말이 안 되잖아요.”
통학에 쓰는 시간이 하루에 다섯 시간이다. 학과 성적을 챙기면서 장학금도 챙긴다. 학회 관련 활동을 받으며 연구비 같은 것들도 받아 챙긴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 가족까지 친하게 여길 만큼 대인관계도 좋다.
“이 모든 걸 한 사람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물으면, 할 수는 있을지도 몰라요. 건강이라거나, 취미라던가 이런저런 것들을 포기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죠.”
그러나 세열에게 들은 여동생의 인상은 그런 초인이 아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흔한 고민을 하는 그런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도저히 처음에 여우에게 대인관계를 부탁하던 소심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로 보이지 않는다.
“여우라면 그게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의문을 세열은 입에 담았다. 그러나 아니다.
“가능했겠죠. 하지만 여우는 저한테 말했어요.”
여우는 분명히, 성적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돕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소한 학교 성적에 관련된 부분은 여우가 하고 있지 않았어요. 어떤 부분은 본인이 해내고 있다는 말이죠.”
세열의 말처럼 여동생은 무력하기만 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 모든 걸 해내고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냥 그걸 다 하기엔 시간과 체력이 모자라요.”
세열 역시 그 점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세열은 그저 조용히 태주의 말을 기다렸다.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그렇겠죠.”
세열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세열은 그 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가는, 결국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럼 그 말은?”
“네. 여우와 동생분은, 둘이서 하나를 연기했을 거예요.”
태주는 거의 확신하며 말했다.
“사실 그렇죠. 가족 중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건, 정말로 여우가 완벽한 연기를 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건 본인이 적극적으로 돕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고요.”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도, 대본이 없고 캐릭터를 정확히 주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다.
“본인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여우에게 도움을 준 거예요.”
태주의 말에 세열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처음엔 도왔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면요?”
“그건 여우 입장인데요.”
“어어?”
태주의 말에 세열은 당황했다. 생각해 보면 자기 자리를 돌려주고 싶다고 말한 건 여우 쪽이다.
“그리고 여우에게 동생분이 처음으로 요청한 건 대학교 적응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어요. 가족들과 친해지게 해달라는 게 아니고요.”
“그럼….”
“네. 여우는 가족들 사이에서 연기할 필요가 없었어요. 원래는요.”
그럼에도 여우는 가족들 사이에서 연기하고 있다.
“여우는 부탁을 하나만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여우는 분명, 여정의 부탁이 대학교 가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이상 여러 개의 부탁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중간에 동생분이 다시 부탁했기 때문이겠죠. 이유는 짐작이 가요.”
태주는 말했다.
“동생분은 자취를 하고 있는 거예요.”
“자취요?”
“네. 가족이 싫은 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독립해 보고 싶다는 그런 욕심은 다들 가지잖아요? 학교도 꽤 멀고 말이에요.”
학교를 갔다 오면, 왕복해서 다섯 시간을 까먹는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7시간이라 치고, 거기에 통학에 쓰는 시간을 합치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열두 시간이다.
“통학하게 되면 지금 동생분이 하고 계신 것 중 많은 것을 포기해야겠죠.”
“기숙사는….”
세열의 의문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살핀 눈치지만 기숙사는 정말로 최후의 선택지 같은 취급이던데요.”
낡은 시설과 그리 싸지 않은 금액, 그리고 무엇보다 쓸데없이 엄격한 규칙.
“그쯤 되면 자취가 낫죠. 시설이야 비슷비슷하게 구리다 쳐도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자취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죠.”
문제는, 멀쩡한 막내딸의 자취를 아무렇지도 않게 허가해 줄 만큼 세열의 가족들이 프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네요.”
보수적인 부모님이라고 욕할 수도 있긴 하지만, 막내딸 홀로 저 멀리서 사는 것이 걱정되는 것을 꽉 막힌 부모라 욕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때, 여우가 자기 굴을 하나 파 버린 거예요.”
태주는 웃었다.
여우는 자기가 나중에 살 집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 여동생이 있다고 말했다.
“주소를 보니 꽤 좋은 위치더라고요. 학교에서는 꽤 가깝고, 집까지 교통편도 괜찮고요.”
근처에 있는 조금 노선이 긴 광역버스 한 번이면 집에 갈 수 있다.
여우는 아주 최적화된 위치에, 가장 적절한 방을 구한 것이다.
“과연 적당한 빈집을 발견한 동생분이 그곳에서 자취를 해버리고 싶다는 욕심이 안 생겼을까요?”
그 질문에 세열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