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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21화 (121/269)

12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4)

“아아아!! 귀찮아!! 괜히 냄새 신경 쓰여서 내려갔다가!”

월이는 얼굴을 찌푸린 채 복도에서 소리를 쳤다.

“괜히 일이나 하고!”

이럴 거면 차라리 그 냄새를 모른 척했던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모른 척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이게 그냥 나쁜 냄새면 어쩔 수 없는데….”

월이는 눈을 찡그렸다.

그저 나쁘기만 한 냄새가 아니다. 신경을 간질간질하게 긁는 그런 냄새. 특별한 악취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조금 거슬리는 종류의 냄새다.

그러니 신경이 쓰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비도 오는데… 귀찮게 말이야.”

— 끼익

옥상 문을 열고 나가니 아직도 비가 부슬부슬하게 내린다. 빨간 우비를 입은 채 월이는 걸어 나섰다. 양말이 슬금슬금 젖어가는 게 기분이 나빴다.

“여우인지 뭔지는 몰라도, 근처에 있단 말이지?”

월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리 월이라도 이게 여우비라고 불리는 건 알고 있다.

“비가 좀 와도 냄새가 이만큼 거슬리면 찾아볼 만한 것 같기도 한데.”

월이는 목을 한번 좌우로 크게 꺾고는 여우가 있을 것 같은 곳을 대충 한번 훑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잡으면 페X리즈에 한번 담갔다 빼야지.”

* * *

“여우라고요?”

안절부절못하는 세열의 앞에서 태주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여우요.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여우 요괴가 되겠네요. 여우 요괴에도 종류가 있다 보니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판단을 못 내리겠지만요.”

하지만 여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며 태주는 말했다.

“카페인을 못 먹는다는 점이랑, 단 것과 과일들을 좋아하는 것, 방금 그 친구가 맡은 이상한 냄새, 머리 색깔과 같은 변화 등등 전부 그게 여우라는 걸 가리키고 있어요. 바뀐 머리 색이 붉다는 건 특히나 더 ‘나는 여우요!’하고 외치는 꼴이죠.”

조금 붉은 듯한, 금발쯤 되는 머리 색깔은 여우의 털 색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치만 머리는 그냥 염색,”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방금 건 상대의 정체를 여우라고 처음 짐작하게 된 이유일 뿐이고, 상대가 여우라는 확신을 얻은 건 다른 이유에요.”

말이 가로막힌 세열은 살짝 입맛을 다시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괴물은 무서운 존재지, 영리한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가요?”

“거의 그렇죠. 보통은 그저 강할 뿐이에요. 강한데 현명하기까지 하면 사실 인간이 대처할 방법이 없다 보니 그런 건 이야기로 남지 않죠.”

그러니 이야기로 남는 괴물은 대체로 그저 무식하게 강하다.

“하지만 예외는 있어요. 영리함을 주 무기로 삼는 종류의 괴물들이죠.”

예를 들어,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아가는 괴물 이야기들이 있다. 태주는 말했다.

“어떤 괴물이 사람의 자리를 대체하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건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연기를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니까요.”

듣고 보니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확실히 많지 않다.

“그런 게 여우라는 말씀인가요?”

“물론 그런 게 여우만 있는 건 아니에요. 여우가 대표고, 너구리나 쥐 같은 것들도 있죠. 도플갱어 같은 건 성격이 너무 다르고요.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부분까지 종합하면 결국은 여우가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겠네요.”

지금까지 보여준 다른 특징까지 종합한다면 사실 정체가 뻔할 정도다.

“마지막으로, 이건 덤 같은 거지만 손님의 가족 구성을 보니까 좀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가족 구성이라뇨?”

“부부에, 삼 형제에, 막내딸이 있는 이야기. 전래동화에도 있는 이야기니까요.”

꽤 유명한 이야기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다.

“여우누이….”

세열마저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다.

“네. ”

“진중문고로 읽었어요. 근데 그 이야기는 좀….”

“아, 물론 거기 나오는 여우와는 성향이 다를 것 같으니 그 이야기는 가슴 속에 묻어두셔도 괜찮습니다. 그저 정체를 추정하기 좋았다는 이야기일 뿐이에요.”

애초에 여우누이 이야기는 악의로 똘똘 뭉친 여우 이야기니 지금 상황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에서는 여동생이 구미호라고 나오던데요. 그럼, 제 여동생은 구미호일까요?”

“거긴 또 구미호라고 나와 있나요? 이게 또 버전마다 나오는 게 다르다 보니….”

태주는 머리를 긁었다.

“구미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어쨌든 여우라는 것 이상으로 깊게 파헤치는 건 무의미한 짓이에요.”

“의미가 없다뇨?”

“음 그러니까요….”

원래는 시아가 이런 부분을 설명하지만, 여우 이야기는 워낙 메이저한 탓에 태주도 그럭저럭 아는 이야기다.

“손님이 아는 여우 요괴는 뭐가 있나요? 이런 쪽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매구나 불여우 등등에 대해서도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처음 들어요.”

세열은 전혀 모른다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뭐,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그냥 여우라고만 알고 계시면 돼요. 구미호니, 매구니 하는 이야기들이 한국에서는 사실 그리 중요하게 구분되지 않거든요.”

문헌마다 이야기나 묘사가 다 다르다. 이야기가 애초부터 많이 섞여 있다. 그러니 그 구분은 어렵기도 하고, 의미도 별로 없다.

“조선이 선비의 나라라 그랬던 건지, 호랑이가 나오는 나라에서 여우같이 사소한 동물은 아무래도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느 쪽인지는 이제 와 알 수 없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그러니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여우요괴들이 공유하는 특징뿐이라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하나하나 세분화하여 특징을 분리할 이유가 지금으로서는 없다.

“그럼 그런 특징이 뭐가 있나요?”

“가장 당연한 것부터 말씀드리자면, 잔꾀를 그렇게 부린다는 거죠.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요.”

“여우누이도 결국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의미에서 여우요괴는 천부적인 사기꾼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겠네요. 선악과 별개로 사람을 골탕 먹이는 걸 좋아하니까요.”

이야기 속의 여우는 사람을 속이는 것을 좋아하고, 그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종류의 요괴다.

그 결과가 장난으로 끝일 때도 있지만, 종종 실질적인 재산이나 생명의 피해까지 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여우는 요주의 대상이다.

“그럼… 제 여동생처럼 구는 그 여우도 뭔가를 속이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세열의 질문에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문제는 그걸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에요.”

“모른다고요?”

“이게 여우가 자기 정체를 숨기다가 탄로 난 게 아니잖아요?”

“어, 그렇죠.”

생각해보니 그렇다. 세열은 다시 알쏭달쏭해지고 말았다.

“뭔가 크게 속여먹으려고 했으면 자기 정체를 사실 마지막까지 숨겨야 하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죠.”

뭔가 목적이 있는데,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여우가 사람을 해치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민담보다는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살피다 보면 신선 비슷한 게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여우도 있죠. 한 천년 정도 걸리는 짓이지만요.”

“어, 구미호 이야기랑 비슷하네요. 꼬리 아홉 개를 모으려면 천년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것도 아마 여우라는 이유로 묶어서 말하다 보니 섞인 게 아닐까요? 어쨌든 그런 여우라면 사람을 해칠 필요가 없죠. 목적이 다르니까요. 그렇게 놓고 보면 손님이 만난 여우는 이쪽일 거라는 확신은 들고 있어요.”

이런 종류의 여우는 사람에게 굳이 악의적으로 굴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그런데 그런 여우라도 사실 손님 여동생인 척을 할 이유가 없죠.”

여우라는 건 알겠지만 여전히 목적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상대가 어떤 여우인지 구분해야 하는 게 아니라, 무슨 목적인지 확인하는 거겠네요. 그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태주는 바깥을 보면서 말했다.

“네? 왜요?”

“비가 그쳐서요.”

세열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꼈지만, 태주는 마침 잘 되었다며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대로는 어차피 더 진전이 어려울 것 같으니 손님의 댁에서 뭘 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갑자기요?”

세열은 한참 여우이야기를 하다가 뚝 끊기니 당황했다.

“방금까지는 여우에 대해 알아봤다면, 이제부터는 손님의 여동생분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차례니까요.”

여우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문제의 중심이 아니다.

“사실 여우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손님께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에요. 그랬죠?”

“…솔직히 말하면요.”

세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가 길게 이야기하는 동안 세열은 그리 집중하지 못했다.

“탓하려는 건 아니에요. 당연한 일이죠. 사실 진짜 문제는 왜 여동생이 어째서 여우와 자리를 바꿨는가 하는 문제니까요.”

여우가 협박이나 납치 같은 강제적인 수단으로 여동생을 숨기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일 리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여우는 절대로 세열이 이곳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여우에게는 당장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 일이 발생한 진짜 동기는 여우가 아니라 여동생에게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렇지 않나요?”

세열은 말문이 막혔다.

“네, 이 말씀을 드리려고 지금까지 이 길고 긴 여우 이야기를 드린 거예요.”

태주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분석해본 바로는 여우는 악의가 없고,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어요. 여우의 정체가 사악한 쪽이든, 혹은 조금 신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수행하는 쪽이든 최소한 여우에겐 여동생분과 자리를 바꿀 이유는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여우가 나타난 건 결과라 봐야 해요.”

“결과요?”

“네. 손님이 안 계시는 동안 이미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건 아무리 여우를 분석해도 알 수 없겠죠. 그건 높은 확률로 여동생분이 가진 문제일 테니까요.”

태주는 어쩌면 여우는 여동생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거나.

물론 근거가 없으니 굳이 손님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으나 세열 역시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 듯 표정이 굳어졌다.

긴장이나 불안이 아니라,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이다.

“그래서 여우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리 긴장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여우는 아마 여동생을 해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전혀 없을 테니까요.”

태주는 세열을 살폈다. 세열은 확실히 상황을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당장 급해도 의미가 없었던 거고요.”

“그런 거였군요.”

“네, 일부러 천천히 할 필요는 없지만 억지로 급할 필요도 없어요. 가신 김에 식사도 좀 하시고, 또 다른 가족분들이 그 여동생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알려주세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네. 손님의 말에 따르면, 다른 가족들은 손님과 비슷한 의심을 하고 있지 않은 거잖아요?”

태주의 말에 세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예 바뀐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면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건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

둘 중 어느 쪽이냐에 따라서 해야 할 일이 달라질 수 있다. 태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세열을 보며 말했다.

“내일, 문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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