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3)
“당황스럽네요….”
“못 믿으시겠나요?”
“알긴 알겠는데, 여전히 실감은 안 난다고 해야 할까요?”
악의가 없다는 건 이해했다. 그리고, 그 가짜가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는 사실도 이해는 했다.
그저 실감이 안 난다. 갑자기 들은 충격적인 말에 더해, 사실은 그게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더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실감이야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시게 되겠죠.”
세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되나요?”
세열은 기대를 담은 눈으로 태주를 바라봤다.
“뭐 해결책이 있나요?”
“글쎄요. 저도 당장은 모르겠네요. 지금 제가 말씀드린 건 일종의 서비스 같은 거라서요.”
자신이 무슨 문제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의뢰를 받을 수는 없을 뿐이라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당장 제가 짚어드릴 수 있었던 부분은 그 정도뿐이에요. 그 이상은 아무래도 공짜로 해 드릴 수 없어요. 커피 정도는 서비스지만요.”
아무리 돈은 안 받는 일이라지만 원칙은 원칙이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세열은 배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지 이야기해 주셨으면 뭔가 더 방법 정도는 알려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반대죠. 여기까지 공짜로 이야기해 줬으면 이제 뭔가 더 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어….”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이 억지 부리던 것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기에 세열은 말문이 막혔다.
“의뢰, 하시겠어요?”
태주의 질문에 세열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여기까지 들어 놓고 나는 그냥 앞으로 가짜 여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겠다고 그냥 돌아가는 것도 말은 안 된다.
“참고로 보수는 후불입니다.”
“후불…. 대충 견적이 어느 정도로 나오나요?”
“뭐, 얼마가 나올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군인 월급 모은 정도로도 부족하진 않을 거예요.”
“그 정도라면야 뭐.”
태주의 말에 세열은 별로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죠, 뭐.”
* * *
잠시 고민한 끝에 세열의 의뢰는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 내용으로 결정되었다.
여동생을 찾아달라. 그리고 돌아오게 해 달라.
“굉장히 단순한 의뢰네요.”
“복잡하게 의뢰할수록 나중에 좀 더 비싼 걸 내야 할지도 모른다면서요?”
세열은 조금 불만스럽게 말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게다가 오히려 이 정도가 딱 좋을 지도 모르겠네요. 뭔가 잘못될 여지가 없어 보이니까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그새 아이스크림을 다 퍼먹고 늘어져 있는 월이를 보며 말했다.
“야, 심심하면 옥상에 한 번 올라가 봐.”
태주의 말에 월이는 눈을 가늘게 뜬 뒤 물었다.
“옥상?”
“그래. 너무 멀리 가진 말고.”
태주의 말에 월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숟가락에서 땡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야! 유리 깨지겠다!”
“아! 안 깨졌잖아!”
마지막까지 틱틱대던 월이는 불만 가득한 발걸음으로 계단으로 다시 올라갔다.
“에잇! 괜히 내려왔다가!”
“안 내려왔어도 어차피 전화로 시켰을 거거든!”
태주는 올라가는 뒷모습에 대고 그렇게 말했고, 월이는 올라가다 말고 손가락 욕을 한번 날리고 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세열에게 태주는 말했다.
“쟤는 신경 쓰지 마시고 우리는 우리의 고민을 해야죠. 일단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건 지금 그 가짜여동생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거겠네요.”
“진짜 여동생이 어디 있나가 아니고요?”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동생분이 어디 있는지는 당장 정확히 알 수 없잖아요.”
지금은 정보가 너무 적다.
“하지만 상대가 무엇인지를 알아낸다면 추정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죠. 상대방의 특징이나, 습성 같은 걸 알면 쉽게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상대가 뭔지는 어떻게 알죠?”
“글쎄요.”
다 알 것처럼 말한 태주가 그런 식으로 나오자 세열은 눈을 한껏 찌푸렸다. 그 눈을 본 태주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짐작 가는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확신이 없어요.”
“하지만 제 여동생이 사람이 아니라는 건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건 그냥 찍은 거라서요. 뭔가 새로운 정보가 더 필요해요. 예를 들면, 맨 처음 위화감을 느낀 순간이 있겠네요.”
세열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요.”
“뭐, 비는 아직도 오고 있으니 천천히 말씀해 주시면 되겠네요. 본인이 중요하다 생각하시는 시점부터요.”
* * *
세열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에 여동생, 그러니까 여정은 꽤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맨 처음 휴가까지는 그래도 익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전까지 봤던 모습과 크게 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여동생.
그때 동생은 아직 머리가 검었다. 고등학생이었고, 이제 곧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나….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스런 말에 세열은 대충 하품하면서 그런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났다.
“혼자는 무슨… 알아서 잘 다니겠지.”
“하지만 뭔가 가족 중에서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란 말야. 다른 오빠들은 직장인이구.”
동생이 불만스럽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세열도 그 마음은 이해를 했다.
“그거야 뭐, 어쩔 수 없지.”
네 남매 중 셋째와 넷째. 두 사람만이 공감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더 친하고 편했다.
다른 가족들과는 세대가 달랐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두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을 때가 많았고, 반대로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는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좀 더 가까운 사이였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의 나이부터 센다면 사실 동생과 세열이 함께 있었던 시간이 온 가족이 다 함께 있었던 시간보다 길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걱정에 대해 가장 잘 공감해 줄 수 있는 것은 세열 뿐이기도 했다.
“한번 대학 가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굴어 봐. 이미지도 한번 바꿔 보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떡해?”
“이상하게 보면 뭐 어떠냐? 평생 볼 사람들도 아닌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그렇게 이상하게 볼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교성이 적어 처음 가까이 가기는 힘들지만, 좋은 아이인 건 확실하니까.
좋은 친구를 사귀는 건 본인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쉬울 거다.
하지만 세열의 그런 말에 동생은 눈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게 쉬운 줄 알아?”
“그렇다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잖아?”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세열은 그렇게 킬킬 웃다가 결국은 우울해져서 부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 말문이 막힌 건 세열 쪽이었다.
세열은 변해버린 동생의 모습에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조금 붉게 염색한 머리, 변해버린 성격과 취향, 세세한 말투의 차이. 이전과는 키도 얼굴도 같지만 인상이 전혀 달랐다.
변해버린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맥주 한 캔을 하면서, 세열은 결국 못 참고 물었다.
“대학 입학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머, 오빠가 한번 이미지 체인지를 해 보라고 했으면서?!”
그렇게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몰랐다.
“어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이렇게까지 변할 수도 있나?”
“있는 거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 보기 나쁘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아 세열은 이렇게 말했었다.
“뭐, 잘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고생 꽤 했겠네.”
“고생?”
“자기를 바꾸는 건 꽤 힘든 일이니까.”
“생각보단 힘들지 않았는데.”
여동생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열은 단언했다.
“힘들지.”
분명 어마어마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럴 수는 없었을 거다. 세열은 이어지는 침묵이 조금 부끄러워져 덧붙였다.
“근데, 저번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겠더라.”
“뭐?”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있는 그대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뭐 그런 말이야. 어쨌든 무리하지 말고. 정 힘들면 나도 도와줄 테니까.”
그 말에 여동생은 조금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저 말을 할 때쯤은 맥주를 세 캔 째 마셨던 시점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진 그래도, 위화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너무 힘들면 말해. 뭐, 나도 지금은 늘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긴 한데. 들으려는 노력 정도야 계속… 할 거 같으니까.”
대충 그런 말을 하고 잠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떠올리면 조금 쪽팔린다.
본격적으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다음 휴가쯤이다.
“꺄- 오빠!”
“…미친 건가?”
아무리 들어도 이건 여동생의 말투가 아니다.
이전에도 크고 작은 위화감을 몇 가지씩 느끼곤 했지만 아무래도 그러려니 했다.
아무래도 일 년 반 넘는 기간을 따로 떨어져 있다 보면 사람이 조금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아무리 그래도 완전히 다른 사람 아닌가.
“이번이 마지막 휴가인가?”
“어, 음 그렇지?”
“충청도 쪽이랬나? 한번 가도 돼?”
“말년에 무슨 면회야? 귀찮으니 됐어.”
“오빠는 여동생이 귀찮아?”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 질문이다. 세열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거절했다.
“절대 오지 마.”
그때, 그 여동생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여동생은 저렇게도 삐질 수 있는 사람이었나. 이제 와서는 세열은 알 수 없게 되었다.
* * *
“그리고 나서가 지금 상황이죠.”
“음….”
태주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세열은 역시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을까요?”
세열은 영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말하고 보니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죠. 거기까지 들으니까 대충 짐작은 가는데요.”
그렇기에 태주의 그 말에 세열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요?”
“짐작이 간다고요. 드리고 싶은 말은 조금 있는데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는 게 낫겠네요.”
“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셔도 되는데.”
“아뇨. 그냥 타이밍 문제에요. 정말로 이건 나중에 말씀드리는 게 낫겠다 싶거든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이것부터 알려드려야겠네요. 지금 여동생의 자리를 차지했다… 고 할 만한 존재가 뭔지 말이에요.”
“네? 이걸로요?”
세열 입장에서는 정말 별것도 아닌 이야기들뿐이었지만 태주 입장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뻔한 이야기들이다.
“네, 뭐 상대가 딱히 숨기고 싶은 생각을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태주는 살짝 헛웃음마저 났다.
“다른 것일 확률은 거의 없고, 여우 중 하나겠네요. 어떤 종류의 여우인지는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여우요?”
“네. 여우요.”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감정으로 태주는 말했다.
“그냥 대놓고 드러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