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2)
“좀 많이 무례하시네요.”
세열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태주는 쓰게 웃었다. 방금 단어선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돌려 말한다고 덜 무례한 말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제가 이곳이 카페가 아니라고는 말씀드렸죠?”
“네. 사무소라고 하셨죠.”
세열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괴담에 연관되지 않은 사람은 오실 수 없죠.”
“그것도 말씀하셨어요.”
“조금 더 보충설명 하자면 이곳은 관련되지 않은 사람은 정말로 발견조차 하실 수 없는 곳이에요. 조금 특별한 곳이거든요.”
어제 온 손님, 그러니까 세열의 여동생에게는 확실히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어제 그 여동생은 태주에게 어떤 고민상담 비슷한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가족이나, 요즘 관심사와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참을 했다. 열심히 듣던 태주가 중간부터 그냥 지쳐버리고 말 정도로.
“그래서 어제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설마 제가 이곳의 규칙을 잘못 알고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했죠.”
태주는 혹시나 싶어 소장에게 질문 하나를 했었다. 이곳에 찾아올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조건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냐고.
‘이곳은 네가 알고 있는 대로 괴담과 관련한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은 올 수 없어.’
대답을 들을 당시에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확신이 좀 든다.
“손님께는 겪고 있는 문제가 있어요. 반대로 여동생분이 겪고 있는 문제 따위는 확실히 없었고요. 하지만 이곳에는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은 올 수 없죠.”
태주는 한 호흡 쉬고는 말했다.
“본인이 겪는 문제가 아무것도 없음에도 올 수 있다면, 간단한 결론이죠. 손님의 여동생은 사람이 아닙니다.”
세열은 잠시 침묵했다.
“사람이 아니라고요.”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표정이다.
“제 여동생이,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라고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무례하게 들렸던 건 알지만 그건 말 그대로의 의미에요. 여동생분은 사람이 아니세요. 그래서 그렇게 질문드렸던 거에요. 혹시 최근에 여동생이 다른 사람 같이 느껴지지 않느냐고요.”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면, 대답은 결국 둘 중 하나다. 마치 요즘 다른사람처럼 느끼거나, 혹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본인 같거나.
“만약 손님이 여동생이 원래 사람이라 말씀하셨다면, 여동생은 처음부터 그런 괴담 속의 존재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겠죠. 그리고 그렇다면 저도 굳이 더 터치하지 않았을 거예요.”
가끔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러나 태주의 질문에 세열은 정확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최근에야 마치 다른 사람 같다고 느끼셨다면 그건….”
세열은 눈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사람이다가 지금은 아니게 되었다는, 바꿔치기라도 당했다는 말인가요?”
“정확하네요.”
태주는 긍정했다. 세열은 어처구니없어하며 물었다.
“겨우 그것만 가지고 제 여동생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신 거예요?”
“예.”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 말에 따르면 그렇죠.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했는데, 그게 연기나 억지가 아니라면 결국 방법은 그것뿐 아닐까요?”
태주는 어제 오히려 듣는 사람이 피곤할 정도로 조잘거리던 여정을 기억했다. 그런 건 단순히 연기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물론 처음엔 원래 그런 사람인가보다 생각했지만, 세열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믿죠?”
“음, 여기가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건 조금 있다가 보여드리면 될 것 같고…. 그런데 본인도 여동생이 다른 사람 같다고 느꼈으니까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시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서 태주는 방금 세열이 원래 여동생은 소극적이라는 말을 했을 때 헛웃음을 지을 뻔했다.
“아니, 하지만… 설마요….”
세열은 제대로 반박할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하거나, 겨우 취향의 변화를 두고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둥의 반박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세열은 자신의 여동생이 머리를 물들인 이후로 커피를 마시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단 음식들을 마구 먹어치우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결국 세열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물었다.
“일단 그 말이 사실이라 친다면, 그럼 제 원래 여동생은 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건가요?”
“저도 모릅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말했다.
태주가 그렇게 말하자 세열은 이를 꽉 문 듯 입술이 약간 하얗게 변했다.
“납치나… 혹은 뭐 그런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태주의 말에 세열은 좀 더 하얗게 질렸다. 태주는 미소를 지었다.
“일단 그렇게 긴장하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셔도 괜찮아요.”
태주의 말에 세열은 눈을 찌푸렸다.
“왜죠?”
“지금 그렇게 걱정하셔 봐야 큰 도움은 안 된다… 고 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안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드리자면, 지금 그 여동생과 자리를 바꾼 그것에게 악의는 없어 보이니까요.”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세열은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악의… 라고요?”
“네. 사실 그래서 여동생이 처음부터 그런 존재였다 한다면 굳이 더 파헤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잠시 멈추도록 할까요.”
태주는 계단 쪽에서 발소리를 듣고는 말했다.
“일단 방금 말씀하신 에스프레소 하나부터 만들어 드릴게요. 참, 이야기가 길어져서 이제야 만들게 되네요.”
“갑자기요?”
세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창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것처럼 해놓고 정작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주의를 기울이니 나오는 말이 커피 한 잔 어떠냐는 말이다.
태주는 변명하듯 말했다.
“뭐, 카페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이 좋은 장비들을 안 쓰는 것도 아깝잖아요?”
* * *
오자마자 차력 비슷한 짓을 하게 된 월이는 갑자기 귀찮은 일을 시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을 꾹 닫고는 구석에 앉았다.
“동전을… 세 번 접어요…?”
“그러게요. 저는 두 번만 접으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기분이 나빴던 걸까. 월이는 동전 하나를 수제비처럼 만든 뒤 저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하지만 이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오자마자 갑자기 이런 일 시키는 게 조금 미안하긴 해도 눈에 보이는 증명이라는 건 태주에게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뭐, 두 번이나 세 번이나 저쯤 되면 마찬가지죠. 어쨌든, 증명이 되었을까요?”
“뭔가 실감은 안 나지만….”
하지만 세열의 손바닥 위에는 꼬깃꼬깃한 동전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이걸 보고 안 믿기도 어렵네요.”
세열이 쓸 수 없게 변해버린 동전을 손안에서 굴리며 경악하는 사이 월이는 툴툴거리며 말했다.
“시키는 거 했으니까 아이스크림 두 배로 넣어줘.”
“그래, 뭐 그 정도야.”
월이의 말에 태주는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더 떠 그릇에 담았다.
세열에게는 에스프레소를, 그리고 월이에게는 아포가토를 건넨 태주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맛은 어떠신가요?”
“좋은데요. 여기가 정말 카페가 아니라고요?”
세열의 칭찬에 태주는 조금 미소지었다.
반면 저쪽은 표정이 영 좋지 않다. 태주는 월이를 보며 물었다.
“넌 뭐 아직도 불만 있냐? 아이스크림 말한 대로 두 배인데?”
“음….”
어딘가 꺼림칙한 표정이다. 태주는 다시 물었다.
“뭐 맛이 이상해?”
“아니. 맛은 아니고 냄새.”
“냄새?”
태주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원두에 문제는 없을 텐데.
“뭔가… 냄새가 나.”
월이는 코를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어제 너한테서 은은하게 나던 냄새였는데, 저 사람한테서 더 심하게 나네.”
“네? 저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요?”
세열은 당황한 듯 말했다.
“하긴, 젖어서 좀 이상한 냄새가 날… 지도 모르겠네요.”
세열은 조금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그런 의미의 냄새는 아닐 거에요.”
태주는 월이에게 눈초리를 한번 주고는 말했다.
“쟤가 말하는 건 사람의 체취가 아닌 게 섞여서 난다는 말일 거예요.”
태주의 말이 맞는다는 듯 월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너는 그런 소리나 하려고 내려온 거야?”
태주는 한숨을 살짝 쉬며 말했다. 월이는 발끈하더니 말했다.
“아니, 나도 이거 궁금해서 확인 좀 하러 내려온 거거든? 놀러 온 건 줄 알아?”
“그럼 말을 좀 가려서 하라고.”
하지만 월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까보다 조금 더 크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었다.
태주가 고개를 살짝 젓는 동안 세열이 물었다.
“그나저나, 악의가 없다는 게 무슨….”
“예. 슬슬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야죠.”
태주의 말에 세열은 새삼 표정이 굳었다.
“뭐,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정말 상대에게 악의는 없어 보이거든요.”
그렇기에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곳에 대한 설명, 누구에게 들으셨죠?”
“네? 그야 여동…생이 아닌 그 누군가네요.”
세열은 조금 당혹해서 말했다.
“네. 그렇다고 말씀하셨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괴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에요. 그리고 정작, 그 해결되어야 할 본인이 손님을 이곳으로 이끌었어요.”
태주의 말에 세열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경우는 저도 본 적 없긴 하지만요.”
세열은 이내 뭔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여동…어, 뭐라 불러야 할까요?”
“일단은 그냥 가짜라고 할까요? 구분 정도만 하면 되니까요.”
태주의 말에 세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 가짜는 이곳을 카페라고 추천해 줬어요. 그냥 혼자 생각하기 좋은 카페 말이에요.”
그냥 조용하고 사람 적은 카페인데, 같이 가겠냐는 말에 세열은 거절했었다.
“아마 그냥 평범한 카페 정도로 생각했으니, 이곳이 그런 곳인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던 것 아닐까요?”
하지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마 가짜는 이곳이 그냥 카페가 아니라는 건 알았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어제 대화를 할 때부터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는 했다.
“오면서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간판이 없어요. 어디에도 홍보하고 있지 않고요.”
세열의 말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곳은 뭐 하는 곳인지 정확하게 알고 찾아오지 않으면, 설령 괴담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도 쉽게 발을 들이기는 어려운 곳이라는 말이에요.”
지나가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한다는 말은 그래서 불가능한 말이다.
“그런데도 그건 들어왔어요. 명확한 목적이 있지 않으면 그럴 수 없는데 말이에요.”
근거는 하나 더 있다.
“게다가 그때, 마지막까지 이곳이 카페라고 박박 우겼거든요. 그 가짜 분.”
자신이 이곳을 카페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같은 그런 태도.
“이전에는 이유를 모르니 왜 저러나 싶었지만, 손님을 보니까 알 것 같네요.”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이유는 확실하다.
“손님을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오도록 유도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