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여우비가 내리던 날 (1)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태주는 문 바깥을 힐끗 내다보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갑자기 비가 다 오네.”
기분이 안 좋은데 날씨도 그리 좋지 않다. 태주는 하품을 하면서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영 의욕이 나지 않는다.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
시아는 설이를 데리고 수행을 하러 갔다. 며칠 걸린다고 했으니 아직 돌아오려면 멀었다.
월이야 방에 있었지만, 1층에 내려오지 않아 이곳에는 태주뿐이다.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누구 안 오려나?”
정작 또 너무 심각한 사건이 들어 오면 곤란하겠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딸랑—
마침 종이 울렸다. 태주는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저기, 죄송하지만 여기 수건 있어요?”
꽤 잘생긴, 머리를 짧게 쳐낸 젊은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그런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흠뻑 젖어 있으니 그대로 안에 들어오기가 미안했던 모양이다.
태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있긴 한데, 위층에 있어서요. 잠시만요.”
“하하,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네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쾌활하게 말했다. 여유롭다 못해 느긋함에 가까워 보이는 태도다.
이번 일이 그리 급한 일은 아니겠다 싶어 태주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태주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어? 뭐야! 자리 비우고 올라와도 돼?”
자기 방에 널브러져 있던 월이가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슬그머니 나왔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손님 한 분 오셨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꽤 젖으셨더라. 그래서 수건 좀 챙겨가려고.”
“아, 밖에 비가 와?”
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하품했다.
“근데 나도 내려가도 돼?”
“웬일로 내려온다 그러냐?”
“아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단 말이야! 되냐고 안되냐고!”
태주와 마찬가지로 설이 역시 심심했던 모양이다.
“그럴 거면 먼저 내려와 있지 그랬냐? 나도 심심했는데. 어쨌든 당연히 상관은 없으니까 내려와도 괜찮아. 대신 입은 다물고 있어.”
월이는 눈을 조금 찡그렸지만, 그래도 방에서 누워만 있게 좀이 쑤셨던지 내려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럼 나도 갈래! 근데 지금은 말고 좀 있다가.”
“그러던가.”
월이는 자기 방 안에 들어가서는 잔뜩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내려오겠거니 싶어 태주는 월이를 기다리지 않고 내려갔다.
* * *
“어휴, 감사합니다.”
수건이 있더라도 여전히 손님의 옷은 축축이 젖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물이 뚝뚝 떨어지지는 않는 정도는 될 수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비가 올 줄은 몰랐거든요. 이 근처 오니까 갑자기 비가 내리더라고요?”
손님의 말에 태주는 슬쩍 창밖을 보았다.
“그러게요. 심지어 아직도 해가 떠 있는데 말이에요.”
해가 쨍쨍한 채로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일기 예보에도 오늘 비가 올 거라는 말은 없었는데 말이에요.”
“뭐,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손님은 담백하게 이야기하고는 성큼성큼 걸어와 태주의 앞 의자에 수건을 깔고 앉았다.
“그런데 여기, 뭐가 맛있나요?”
“네?”
태주는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했다.
“음, 하하. 어지간한 건 다 잘해요. 특히 커피 종류가 자신 있습니다.”
“그럼 저는 에스프레소에 각설탕 좀 넣어서 주실 수 있으신가요?”
손님의 말에 태주는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런데 말이죠,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손님는 뭐가 잘못됐냐는 듯 태주를 바라보았다.
“이곳이 카페가 아닌 건 아시죠?”
“네? 카페가 아니라고요?!”
남자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죄송합니다! 제 여동생이… 어제 좋은 카페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거든요! 엄청 실례를 했네요!”
얼굴이 붉게 변한 채 사과하는 손님에게 태주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오해하실 수 있죠, 하하. 그리고 여동생이라면… 누구 말씀하시는지 알겠네요.”
태주는 어제 온 지나칠 정도로 유쾌했던 손님을 떠올렸다.
“그분, 제가 어제 카페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그 손님은 여기가 카페가 아니라는 태주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태주는 어제의 대화를 떠올렸다.
‘하지만, 봐요. 여기 아무리 봐도 카페인데요? 테이블도 있고, 커피 머신도 있고! 손님은… 좀 없네요! 장사가 잘 안되나?’
‘저… 그런데 진짜 카페 아니에요…. 저희는 간판도 없고,’
‘에이, 요즘 그런 거 많다는데! 간판 없는 카페가 한둘인 줄 알아요? 앗! 저 여기가 뭔지 알 것 같아요!’
‘…뭐 같으세요?’
‘그그, 감성카페요! 간판 없고! 사진찍기 좋고! 커피 맛은 그냥 사실 평범하고!’
거기서부터 태주는 그냥 더 반박하기를 포기했었다.
“여동생이라 하셨던가요?”
“네.”
“제발 그분께 대신 전해 주세요. 여긴 카페가 아니라고요.”
“제 동생이 정말 실수를 했네요. 제가 다시 일러두겠습니다.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건 감사했습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남자를 보고는 태주는 느긋히 말했다.
“아니에요. 어차피 밖에 비도 오는데, 제가 내린 커피 맛보고 가세요. 이대로 돌아가실 수도 없잖아요?”
태주의 말에 남자는 멈칫했다.
“어….”
“우산이 없으시잖아요. 일단 앉으세요. 천천히 이야기하면 될 테니 오히려 잘 됐죠.”
“뭐가 잘 돼요?”
남자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태주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요. 이제야 좀 알 것 같거든요.”
어제부터 태주가 가졌던 의문의 해답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진짜 손님은 어제 오신 분이 아니라 손님이었던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냥 어떻게든 이곳에 오셨다면, 거기서부터는 저희 손님이라는 말이에요.”
이어지는 태주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비가 그칠 때까지는 있어도 되겠다 싶어 자리에 앉았다.
“저는 태주라고 합니다. 강태주요.”
“저는… 세열이라고 합니다.”
“네, 세열 씨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여긴 사무소라고 해요. 카페가 아니고요.”
“사무소요?! 어휴, 말씀 들어보니까 제가 정말 한참 잘못 들어왔었구나 싶네요.”
“아뇨, 오실 수만 있다면 잘못 찾아오신 게 아니에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태주는 이어 말했다.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시는 것 같아서 설명 드리는 건데요.”
“네.”
“이곳은 괴담과 관련 있는 분들이 오실 수 있는 곳이에요.”
“괴담이요?”
세열은 의아한 말투로 질문했다.
“남에게 상담하기엔 애매한 이상한 일 전반… 을 해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이어 말했다.
“그나저나, 지금 드릴 질문은 방금 드린 말의 연장 선상에 있는 말인데요.”
“네.”
“혹시, 여동생이 다른 사람 같다고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으셨나요?”
“네?”
“제 생각에, 꽤 많으실 것 같은데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세열은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꽤 있긴 있어요.”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지만, 숨기지는 않는다.
이미 본인도 꽤 많이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제 제 여동생을 보고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세열의 질문에 태주는 대답했다.
“엄청나게 활기찬 사람이구나 싶었죠.”
어제 세 시간 넘도록 혼자 재잘거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답했다. 태주의 그런 말에 세열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금은 그래 보이죠? 하지만 제 여동생은 원래 좀 소극적인 아이였거든요. 제 동생은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한마디도 안 할 정도였죠. 어느 날 갑자기 변해 있더라고요. 머리도 염색하고, 성격도 바뀌고, 취향도 바뀌고….”
그런 변화가 가족으로서는 좋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전의 의기소침한 모습보다는 지금처럼 밝고 활기찬 모습이 낫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도 좀 들기는 했다.
정말로 여동생이 맞나?
“옛날에는 커피우유 같은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입에도 안 대요.”
“어제도 그랬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맛있냐고 물으셔서 커피를 추천하니까 바로 에이드 시키시더라고요. 시럽 많이 타서요.”
“역시 그랬나요? 그럴 때마다 위화감은 좀 있어요. 바뀌어서 잘 됐다 싶다거나, 많이 성장했구나 싶은 부분은 있어서 좋지만요.”
“혹시 여동생이 중간에 병을 앓거나 하신 건 아니죠?”
“네? 하하, 설마요.”
세열은 농담이라고 생각한 건지 조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계기가 있었다면 별로 다른 사람 같다는 이야기는 안 하겠죠.”
“계기가 없이 변했다, 는 말씀이시죠?”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사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세열의 대답은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태주는 조금 눈을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다뇨?”
“제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변한 거긴 한데. 정말로 갑자기 변했나? 하고 물으면 그걸 모르겠거든요.”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동생이 혹시, 혼자 멀리 살던 분이셨나요? 유학이라거나, 뭐 그런 거?”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남자는 조금 웃었다.
“굳이 말하자면 떨어져 있던 쪽은 제 쪽이죠.”
남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군대 갔다 오니까 애가 완전히 바뀌어 있더라고요.”
“앗.”
그렇다면 하루아침에 변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만도 하다.
“그러면 어쩔 수가 없겠네요. 전역을 언제 하셨죠?”
“이제 한 달 정도 됐죠?”
“짧아도 한 달인가….”
짧은 머리를 보고 짐작을 해야 했는데. 태주는 잠시 반성했다. 하지만 도저히 눈치챌 수가 없었다. 손님의 그 짧은 머리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다행이다.
“일단은 다행이네요.”
“전역이요? 다행이죠.”
세열은 씩 웃으면서 말했지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여동생분이요.”
“네? 여동생과 제 전역이 상관이 있나요?”
세열은 정말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자체는 상관이 없는데, 기간은 상관이 있을 것 같아서요.”
세열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이내 더 궁금한 것이 있는지 태주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건 어떻게 아신 건가요?”
“그거라뇨?”
“제 여동생이 이전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거요.”
처음에는 자신의 고민을 콕 집어주니 반가운 마음에 좋다구나 이야기했지만, 말하다 보니 신경이 쓰였다.
“어제 제 여동생이랑 이야기하셨다고는 해도, 아니 원래 제 동생이랑 아는 사이셨나요?”
어제 처음 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위화감을 느낄 수 있을 리가 없다. 세열은 뭔가 이해가 잘 안 되는 표정을 지었다.
세열의 말에 태주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저도 어제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그냥 찍은 거긴 한데.”
태주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찍었다고요?”
세열이 눈을 찌푸리자 태주는 덧붙였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손님의 여동생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