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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17화 (117/269)

11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8)

“자, 그럼 보너스 말인데.”

소장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거 꼭 지금 이야기해야 돼요?”

태주는 솔직히 그 이야기를 나중에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태주는 그동안 계속 사무소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도 좀 쉬다 오고 싶은데.”

하지만 소장은 웃으며 주변을 보라 손짓했다.

“왜, 너 말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월이는 밤을 새워도 멀쩡하고, 설이는 한숨 자고 왔으며, 누나는 어차피 이 안에서만 준비하느라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나중에 할까? 태주가 나중에 하자는데.”

“싫습니다.”

“싫은데요.”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아 이런 젠장.”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설이라도 자기편이면 모르겠지만 눈치를 보니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너도 지금 하고 싶지?”

“어, 헤헤, 네. 사실 좀 궁금해서.”

차라리 솔직하니 좋다. 설이마저 조금 미안하다는 말투로 이렇게 말할 정도면 기대가 큰가 보다.

“…혹시 요즘은 다수의 횡포라는 표현을 안 배우나?”

작게나마 태주가 불평했지만 그래도 3대 1의 상황이다. 소장도 3의 편인 것 같으니 실제로는 4대 1이다.

“에이 진짜. 맘대로 해요.”

태주는 결국 맨 뒤에서 의자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보너스 뭔데요, 그래서. 빨리빨리 하고 끝내자구요.”

피할 수 없으면 빨리 끝내자. 태주는 그런 생각으로 말했다.

“그래. 잠깐 고민도 해 봤지만, 이게 좋겠지.”

소장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에게 질문할 권리를 주도록 할게.”

아, 역시 이런 식인가. 오래 걸릴 줄 알았다. 이렇게 되면 절대로 빨리 끝날 리가 없다. 태주는 빨리 끝내는 게 불가능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실망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서 실망했다.

“와, 이걸 실망하네?”

소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월이가 발끈했다.

“아니! 왜 실망 안 할 거라고 생각한 건데요!”

“이거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권리인데? 정말 뭐든지 알려줄 수 있는데? 넌 돈으로 줄까?”

“…잠시만요.”

정작 또 돈으로 받자니 뭔가 아쉽다. 월이는 잠시 끙끙대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시아가 물었다.

“또 대답 안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소장이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들어서 위험한 거 아니라면 무조건 알려주고, 알려줄 수 없는 건 알려줄 수 없는 이유라도 알려주지. 그 정도면 되나?”

가능한 한 성실하게 답하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대답해줄게.”

“질문 몇 개요?”

설이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소장은 웃었다.

“하나. 나는 관대하니까 지금 여기까지는 질문으로 안 쳐줄게.”

“와, 하나라고? 너무한데.”

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질문 단 한 개가 보너스라니. 너무 짜다.

“그 하나로 최대 얼마를 벌어갈 수 있는지 모르는구나?”

소장은 웃었다.

“물어만 보면 로또 번호도 불러줄 수 있는데?”

“…진짜요?”

“진짜.”

월이는 순간 눈을 빛냈다. 하지만 미성년자는 복권을 살 수 없다. 월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저 하나 질문요!”

무슨 질문을 해야 하나. 나머지 사람들이 고민하는 사이 가장 먼저 질문한 건 설이였다.

“소장님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고작….”

월이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생각해보면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소장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소장을 쳐다봤다.

“여기 대표,”

“?”

“?”

“?”

“….”

“… 같은 말로 퉁치지 않을 테니까 눈 그렇게 뜨지 마. 거, 부하들 무서워서 대표 노릇 하겠나.”

눈총을 받아도 소장은 낄낄대며 웃었다.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 안 한다고 했잖냐. 일단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약속한 것부터 말해 줄게. 그게 설명하기 순서가 좋겠다.”

소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 흡혈귀 이야기부터 잠시 할까. 그건 원래 일종의 요정 같은 거였어. 흡혈귀라는 존재를 섬기는 무언가. 집요정같은 거지.”

짐작은 했지만 그랬다며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월이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듯 말했다.

“됐어. 그런 놈 사연 하나하나 듣다 보면 지겨워서 어떻게 다 들어?”

월이는 입을 내밀었다.

“결국 그놈 때문에 사람이 죽었고, 더 죽을 뻔했던 거 아냐.”

“그래, 그렇게 간단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소장은 작게 웃었다.

“하지만 월이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사람들은 납득이 잘 안 가겠지?”

“알면 빨리 말해 주시죠.”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흡혈귀에게 섣불리 동정할 정도로 미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출신이 그렇다면 생기는 의문은 분명 있다.

“일단 흡혈귀가 되고 난 뒷부분은 대부분 이해가 가요.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힘을 가지고 난 뒤 변해버린 흡혈귀에 대해 의문점은 없다.

하지만 대체 그 힘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흡혈귀가 모두 죽었다는 것과 그 힘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명백히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 누군가 그걸 대신 해 줬을 거예요.”

최소한 맨 처음 한 번만은 다른 누군가가 해낸 일일 것이다. 마치 그 흡혈귀가 붉은 마스크를 만들었던 것처럼, 다른 누군가가 그걸 흡혈귀로 만들어줬을 것이다.

“누가 왜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가 의문이에요. 어떻게 불사라는 어마어마한 걸 줄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고요.”

“거기까지 했으면 사실 알 수 있는 건 다 알아낸 건데. 솔직히 감탄스럽네.”

소장은 환하게 웃었다.

“근데 이게 소장 이야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시아의 당연한 질문에 소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 이야기를 하려면 그 어마어마한 걸 줄 수 있는 녀석에 대해 이야기도 같이 해야 하거든.”

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늘 모든 일에 대해서 그저 당연한 것처럼 구는 소장이 이런 식의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소장이 이러는 건 또 처음 보는데.”

월이가 무심코 그런 말을 던질 정도로 소장은 뜸을 들였다. 옆에서 시아가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월이를 툭 쳤다. 월이는 알겠다는 손짓을 하며 입에 지퍼를 채우는 제스쳐를 보였다.

그게 조금 재미있었는지 소장은 살짝 웃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녀석이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불사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만들어서 줬는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

“무슨 말이지?”

입에 지퍼를 채우는 포즈를 취한지 몇 초나 지났다고 월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일단 그 사실에 대해 알아두라는 말이야. 어쨌든 나에 대해 질문했으니 나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볼까. 너희들 내가 뭐든지 알고 있는 건 알고 있지?”

“‘거의’ 뭐든지 아니었습니까?”

시아는 지적했다. 소장은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소장은 그러나 지금만큼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원래는 뭐든지가 맞아.”

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는 원래 전지해.”

보통은 자뻑이라 표현할 만한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소장의 지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아무도 몰랐으니까.

“종이?”

월이만 못 알아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대신 설이가 물었다.

“전지전능할 때 그 전지요?”

“그래. 전지전능할 때 그 전지.”

소장은 짧게 긍정했다.

“그건, 거의 신과 같은… 아니 어지간한 신도 그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시아는 당황했다. 전지함 혹은 전능함은 신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다.

“정말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시아의 질문이었지만 목소리는 둘이다. 소장은 시아의 말을 완벽하게 따라 말했다. 억양도 타이밍도 완벽하게 같았다.

“이걸 증명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조금 충격은 받았을까?”

“세상에.”

그 말을 한 시아는 놀라 딱딱하게 굳었고 월이나 설이 역시 말을 잃었다.

“사실 정확히는 당장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냐. 원하면 세상 모든 걸 알 수 있을 뿐이지. 평소에 모든 걸 다 이미 알고 있으면 머리가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다 알 수 있는 것과 다 아는 것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너무 당황스러운 말이다.

그나마 쇼크상태에서 가장 먼저 회복한 것은 설이였다.

“전지가 있다면 전능도 있나요?”

설이의 질문에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말했던 거야. ‘어떻게 집요정 출신인 불사의 흡혈귀를 만들 수 있는가.’ 전능한 사람에게 어떻게 했는지 묻는 게 의미가 있겠어?”

“그건…”

그건 확실히 의미가 없다.

“그 친구는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지. 방법을 아는 거라면.”

방법을 안다. 시아는 쓰게 웃었다.

“반대로 그쪽은 전능하되 전지하지 않은 겁니까.”

“그래. 그래서 그쪽은 날 원해.”

“소장님을요?”

“그래. 정확히는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내 힘을. 자, 그럼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는데, 그런 전능한 사람은 왜 집요정을 불사의 흡혈귀로 만들었을까?”

“모르죠,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태주는 질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소장이 일부러 이야기를 길게 해서 자신을 놀려먹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뭐, 이건 아무래도 내 이야기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것까지 알아내면 그거야말로 말도 안 돼.”

소장은 실실 웃었다.

“내가 평소에 다 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거의 다 안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애, 아니 요즘 사람들은 전능이라고 부르니 나도 그냥 전능이라고 할까. 어쨌든 전능에 대한 것을 직접 알 수가 없기 때문이야.”

“알 수 없다는 건?”

“말 그대로야.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뭘 먹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같이 알 수 없어. 물론 간접적으로 알아내거나 혹은 주변을 조사해서 결론을 내리는 건 가능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능도 나에게 개입할 수 없지. 최소한 직접은.”

동격이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전능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나 하나를 찾으려고 전 세계를 뒤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최소한 혼자서는 무리겠군요.”

시아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것이 왜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지.

“흡혈귀가 소장을 보자마자 어떻게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군 게 그래서였군요.”

방심하고 두들겨 맞고 보니 자신이 찾던 이가 눈앞에 있으면 그야 눈이 돌아갈 만도 하다.

시아는 이제야 이번 일이 조금 이해가 갔다. 소장은 전능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며칠씩이나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일로 며칠이나 자리를 비운 건 아니잖아요.”

태주는 늘어진 채 말했다.

“아무리 그 전능인지 뭔지를 직접 알 수는 없다 해도 고작 흡혈귀 하나 조사하는데 며칠씩 걸릴 리가.”

“없지. 뭐 다른 것들도 확인할 게 좀 있었으니까.”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전까지는 그런 게 없었어서 신경 안 쓰고 있었지만, 만약 부하가 있으면 그게 하나만 있을 리가 없잖아.”

“어.”

월이는 조금 당황한 듯 소리 냈다.

“흡혈귀가 더 있어요?”

“아냐. 왜 부하가 다 흡혈귀일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러네?”

“전능이 직접 만든 부하는 총 셋. 하나는 잡혔지만 다른 부하가 둘 더 있어. 이것들은 미리 알려주지는 못하겠지만, 엮이고 나면 알려줄게.”

소장은 늘 말하는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

“말하면 무서운 사람이 찾아오거든.”

소장은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거 농담 아니었네요.”

설이는 조금 떨떠름한 말투로 말했다.

“농담 아니지.”

소장은 웃었다.

“자, 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을까?”

* * *

“피곤하다더니 자러 안 가냐? 다른 사람들은 다 자러 갔는데.”

어느새 일 층에는 태주와 소장뿐이었다.

“자기 전에 질문이나 하나 하려고요.”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소장은 짓궂게 물었다.

“그거 보너스 쓴다는 말이야?”

“아뇨, 그냥 평소 같은 질문이에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킵이에요, 킵.”

태주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게 아니면 혼자 남은 이유가 뭐야?”

“왜 제 이야기는 안 해요?”

태주는 대뜸 물었다.

“전지 이야기를 하시길래 제 이야기도 할 줄 알았는데.”

“그야, 그건 네가 하는 게 맞지 않겠냐?”

소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그건 네 이야기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연히 나올 줄 알았기에 의외다.

“반쯤은 소장 이야기기도 하다 보니….”

“반은 네 이야기면 그건 내가 맘대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뭐래요? 다른 사람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도 다 아는 분이.”

소장에게 비밀을 만드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다.

“하여튼 그건 나중에 제가 직접 하라는 말이죠?”

“그래.”

소장은 조금 미소지었다.

“그건 생각보다 중요한 부분이거든.”

* * *

“아.”

전능이라 불리는 여자는 문득 잠에서 깼다. 자신을 돕는 세 부하 중에서 하나가 갑자기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걔, 없어졌네?”

조금 아쉽다.

“제일 잘 따르던 애였는데.”

하지만 이미 그렇게 되었다면 어쩔 수 없다. 잘은 모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어디서 없어졌는지 나중에 확인하면 되니까.”

하품하며 여자는 다시 잠들었다.

*다음 이야기*

남자는 계속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괜한 의심 같기도 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는 남자에게, 여동생이 호기심이 인 듯 물었다.

“오빠 뭐해?”

“응? 아니, 생각 조금 하고 있었어.”

“정말? 무슨 생각? 내 생각?”

“야, 징그러워. 하지 마.”

장난스러운 말로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남자는 지금 여동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이 아이가 자신의 여동생이 맞는 걸까?

얼굴은 같다. 키도 같다. 하지만 그 외에 모든 부분이 달랐다.

지금도 그렇다. 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이 약간 소름 돋는다. 자신이 아는 여동생은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을 뿐이야.”

“진짜? 아! 내가 생각하기 좋은 곳을 하나 알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나랑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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