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7)
일요일 저녁
태주는 혼자 사무소에 남아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제각기 할 일을 하러 갔지만 태주는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사건 자체는 거의 끝났지만 아직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사건이 끝나는 것은 손님이 돌아오고 난 뒤의 일이다.
마침 딸랑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제가 너무 늦었나요?”
하루를 꼬박 쓴 지훈은 조금 지친 듯 보였다.
“아뇨. 늦더라도 확실한 게 좋죠.”
태주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훈이 돌아왔으니 이젠 정말로 마무리가 되었다 할 수 있다. 태주는 인사차 물었다.
“잘 끝내셨나요?”
소장의 요청대로, 지훈은 이번에 일을 조금 해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길어야 하루 정도면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네… 부탁하신 대로 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연화 씨는요?”
태주의 기억상으로는 분명 둘이 함께 나갔던 거로 기억하는데 돌아온 것은 하나뿐이다.
“나는 거기 다신 안 들어가고 싶다던데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곳에서 경험한 것들이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닐 거다.
“…저기.”
“왜요?”
“그 상자, 제가 잘 숨긴 걸까요?”
지훈은 조금 불안한 듯 물었다. 하지만 태주도 그건 모른다.
“글쎄요.”
위치를 지정해 준 것이 아니니 태주도 모른다.
“저희한테도 말씀하시면 안 되는 부분이라 저도 모르겠네요.”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땅에 묻으셔도 좋고, 어디 구석에 방치해 놔도 괜찮아요. 물속에 던지는 건… 그것도 상관없겠네요. 그냥 누구도 그걸 찾지 못하게만 만들어 두시면 상관없어요. 다시 찾는 걸 전제로 숨길 필요가 없단 말이죠.”
꽤 부피가 있고 무겁지만 그래 봐야 상자다. 아무리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도 고작 그 상자 하나를 숨기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무도 못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시나요?”
태주의 질문에 지훈은 조금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긴 한데요.”
“그럼 됐어요.”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정확히 뭔지 아는 사람은 그 상자가 숨겨진 장소를 모른다. 그리고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 상자가 숨겨진 장소를 안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한 사람의 지식을 모두 털어낸다고 하더라도 흡혈귀를 찾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다시 흡혈귀가 부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흡혈귀가 자연발생 하는 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런데, 그 상자 안의 내용물이 뭔가요?”
지훈은 조금 불안한 듯 물었다.
“음, 원래는 말씀드리면 안 되는데.”
어떤 표현으로 잘 돌려 말할 수 있을까. 태주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일종의 건어물 같은 거예요. 못 먹는 거긴 하지만요.”
“건어물이요?”
아무리 잘 모른다고는 해도 그게 진짜 건어물일 리는 없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차마 그게 무엇의 건어물인지 묻지 못하는 사이 태주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더 묻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결국 지훈은 거기에 대고 더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것만 하면 되는 건가요?”
원래 하려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네, 그게 다인데요.”
태주의 대답에 지훈은 오히려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신가 보네요?”
태주는 지훈의 마음을 짐작한 듯 물었다.
“솔직히 그래요.”
너무 거창한 뭔가를 지불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 준 것에 비해 너무 사소한 것을 내고 끝내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흡혈귀를 잡아 주신 거에 비하면 제가 너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아서요.”
지훈은 조금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지만 태주가 보기에 이번에 지훈은 많은 일을 했다.
“연화 씨가 붉은 마스크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고, 그 후유증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만드신 건 본인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종의 할인 찬스라고 생각하세요.”
“할인 찬스요?”
“그 흡혈귀, 안 그래도 저희 소장도 붙잡아야 했던 녀석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굳이 지훈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분명 잡아야 했을 상대다. 두 사람이 학생이다 보니 타임어택이 조금 강하게 걸렸을 뿐, 일의 총량이 크게 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대단히 받아낼 것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훈 씨를 돕는 건 저희 입장에서는 일이 조금 덤으로 붙은 수준이지 아예 다른 하나의 새로운 일을 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았어요.”
“덤이요?”
갑자기 덤으로 도움받았다는 말을 들어도 곤란할 뿐이다. 지훈이 조금 얼빠진 표정을 짓는 사이에 태주는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저희 입장에서도 그리 대단한 걸 요구하기도 미묘한 거죠.”
“그런가요.”
“연화 씨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제한 때문에 짧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 데다, 또 그만큼 도움받기도 했으니 더 많은 걸 요구할 수도 없다.
장사로서는 어떤가 싶기는 하지만 애초에 소장이 이번엔 그 정도면 되었다고 하고 있으니 태주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
“그러면 정말 끝인 건가요?”
“흡혈귀에 관한 거라면 그렇죠.”
“…다른 게 있나요?”
조금 불안한 듯 지훈은 물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실 텐데, 거긴 이제부터 시작 아닌가요?”
지훈은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렇다.
“모의고사는 그렇다 쳐도 기말고사가 얼마나 남았죠?”
“…그러게요.”
기말고사라니. 며칠 전까지 사람이 죽네 사네 하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라서 잊고 있었다.
한참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가 띵하다.
“아무리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시간은 가니까요.”
“…그러네요. 생각보다 얼마 안 남았어요.”
결국 지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뭐, 그래서 빨리빨리 끝내려고 했던 거니까요.”
안 그래도 지훈 역시 연화가 너무 크게 손해를 볼까 걱정이 되어 굳이 도와주러 왔던 것 아닌가.
“많이 피곤하실 테니 이만 가 보세요.”
태주는 두 잔의 아이스라떼를 넘기며 말했다.
“저녁이라 일부러 디카페인으로 드렸으니 들고 가시면서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지훈은 무심코 감사인사를 했지만 이내 조금 의아하다는 것처럼 물었다.
“근데 왜 두 잔이에요?”
지훈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태주는 조금 웃었다.
“나가 보시면 알아요.”
* * *
이쯤 되니 익숙한 풍경이다. 가로등이 조금 깜박거리고, 골목은 어둡다. 그리고 가로등 밑에는 연화가 서 있다. 이젠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으니 느낌은 다르지만, 순간적으로 지훈이 깜짝 놀랄 정도는 됐다.
“왜 그렇게 놀래?”
“너 안 갔냐?”
지훈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응?”
연화는 그 질문에 역으로 의외라는 듯 물었다.
“무슨 말이야?”
“아니, 안 들어온다길래 먼저 갈 줄 알았더니.”
“안 들어간다고 했지 먼저 간다고 안 했는데?”
“어.”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자연스럽게 돌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돌아가겠다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기다리는 줄 알고 있었던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면서 왜 커피는 두 개 들고 있어?”
연화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하나 뺏어갔다. 지훈은 그제야 태주가 왜 굳이 커피를 두 잔 넘겨줬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굳이 더 오래 말하지 않고 바깥으로 자신을 내보낸 건 이래서였나.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연화는 조금 찌푸린 눈으로 지훈을 바라봤다.
“아니 그냥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뭐가?”
“정말 이대로 돌아가면 되냐고 물어보고 왔지. 뭔가 실감이 안 나서.”
“시키는 거 다 했으니까 된 거 아냐?”
지훈이 그런 의문을 가지는 반면 연화는 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 흡혈귀가 숯덩이가 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기절하기 전까지의 장면들을 기억하는 연화는 조금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네가 그거 못 봐서 그런 질문이나 하는 거지. 애초에 문제없으니까 가도 된다고 말한 거 아냐?”
“그렇긴 해.”
“그러고 보니 상자 안에 든 것도 물어봤어?”
연화는 불안함을 안은 채 물었다.
“설마 흡혈귀는 아니겠지?”
마침 물어봤던 질문이었다. 그 정도라면 대답할 수 있다. 지훈은 대답했다.
“글쎄. 흡혈귀는 아니래. 못 먹는 건어물 비슷한 거라고 하던데?”
“건어물?”
더더욱 상상이 안 간다. 설마하니 진짜 건어물일 리는 없다. 진짜 건어물을 그렇게 자신들에게도 위치를 알리지 말고 묻으라 시킬 리가 없다.
아마 분명 뭔가 끔찍한 걸 텐데… 연화는 중얼거렸다.
“미라 같은 건가?”
“모르지 나야. 알면 다칠 것 같기도 하고…”
지훈은 말끝을 흐렸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알면 다칠 것 같아.”
“그래서, 너는 왜 따라왔어?”
지훈은 물었다. 연화는 굳었다. 이내 멈춘 것이 풀리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어색한 태도였다.
“뭐가? 상자 묻는 거? 흡혈귀를 잡는 대신 우리한테 시킨 일이니까 해야지.”
“그건 우리가 아니라 나한테 시킨 일이잖아.”
상자를 숨기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올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너한테 부탁한 일은 그 흡혈귀를 잡을 때 다 끝났던 거 아냐?”
“그렇긴… 한데.”
“그럼 집에서 쉬는 편이 낫지 않아?”
지훈은 연화가 기절까지 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흡혈귀가 붙잡혀 오는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꽤 엄청난 일이 있었겠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따라온 걸 보면 이유가 있을 텐데.”
연화는 천천히 끝까지 커피를 빨았다.
“그걸 원샷 때리네.”
그러고 난 뒤 연화는 주변을 막 두리번거렸다. 꽤 황급한 모습이었다.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한 일이다. 지훈도 주변을 슥 둘러봤지만 아무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뭐해?”
“아니, 저번에 이러다 뭐가 나와서 혹시 이번에도 뭐 나오나 했지.”
“너 흡혈귀 잡히는 거 직접 보지 않았어?”
“…그렇지.”
“거기다 왜 그렇게 떨어? 추운 것도 아닐 텐데.”
“카페인 때문이야 카페인,”
“이거 디카페인인데.”
“…”
이쯤 되면 연화가 뭔가 주저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아니, 그냥 뭐랄까.”
연화는 조금 긴장한 듯 말을 더듬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고.”
“미안?”
“그, 나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까….”
사과하고 싶었다.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렇기에 용기가 잘 나지 않아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여기까지 붙어있었으면 상대도 눈치를 채고 마는 것이다.
“안 죽을지는 몰라도 다칠 수도 있었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건 흡혈귀의 탓이다. 누가 뭐래도 그렇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과조차 안 하는 건… 내가 너무 미안해서.”
이전에 용서는 이미 했다지만 사과는 별개의 문제다. 돌이켜 보면 그렇다.
지훈은 연화를 위해 많은 것을 감수했다. 물론 스스로 알고 감수한 것이니 사실 사과를 받거나 해야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화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거기에 대해서 아무 표현도 하지 않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연화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고, 고마워.”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지훈은 멋쩍은 듯 미소지었다.
“그래도 들으니까 좋네.”
간질간질 하지만 확실히 나쁜 기분은 아니다. 지훈은 미소를 띠고는 말했다.
“슬슬 들어가야지. 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 월요일이니까.”
“끔찍하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화는 작게 웃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자.”
“그래, 내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