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4)
“꺄악!”
흡혈귀의 1/3 정도 잘려나간 목을 보고 연화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번이야말로 제대로 된 일격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기회였던 것 치고는 조금 아쉽다.
“아예 두 동강을 내려고 했는데.”
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흉흉한 소리를 했다.
마지막 순간 흡혈귀는 살짝이나마 반응했다. 그렇기에 목 앞쪽만 몇 센티미터 깊이로 베이는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물론 그 몇 센티미터가 사람이라면 치명상이 될 만한 깊이의 상처다.
피가 흩날려 바닥에 떨어졌다. 흡혈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변신 못 하겠지?”
멀리서 태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 대책 없이 우리가 왔을까 봐?”
그 말처럼 흡혈귀는 연기가 되거나 가루가 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짐작은 갔다.
되다 만 것이 찌른 그 한방이 어떤 역할이 있었던 거겠지.
흡혈귀는 빼려고 시도도 해 봤지만, 상처가 벌어질 뿐 빠지지 않았다.
목이 잘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흡혈귀는 입만 뻐끔거릴 뿐 말하지 못했다.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어 봐야 손해만 더 입을 뿐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반도 활용하지 못하는 흡혈귀는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기에 월이에게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너, 혀를 자른다고 했잖아?”
사나운 표정으로 월이는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혀를 자르는 건 너무 어렵고 더러운 거 같더라고?”
칼날이 빛난다. 이번엔 비상용 따위가 아니다. 제대로 준비한 새 물건이다.
“그래서 대신 도망 못 가게 하려고.”
월이는 곧바로 칼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목과 같은 곳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저번에 너, 팔 잘렸을 때 시간 끌더라?”
흡혈귀는 눈을 크게 떴다.
“아무리 불사신이니 뭐니 해도 낫는 데 시간은 걸리지?”
월이는 흉포하게 속삭였다.
“잘난 척은 있는 대로 다 하더니, 지금 칼 맞는 동안은 그런 식으로 도망 못 간다는 거 아냐?”
말할 수 없다. 흡혈귀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 진짜 잘 걸렸다. 공주? 다신 그딴 소리 못 하게 해줄게.”
지극히 개인적인 원한을 담아, 월이는 난도질을 시작했다.
* * *
“끔찍해요…”
연화는 눈을 찡그린 채 말했다. 이 장면만 보면 마치 월이가 악역 같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만만한 상황은 아니다. 저 정도로 하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다. 그만큼 까다로운 존재다.
“그래요?”
태주는 조금 건성으로 말했다.
“원래 폭력이라는 게 보기 좀 그렇죠.”
연화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같은 짓을 하실 뻔했어요.”
“그건…”
연화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그랬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자신이 할 뻔했던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대부분은 저놈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슨 짓을 할 뻔했는지는 기억해 두세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조금 굳은 표정을 지을 뿐이다. 태주는 쓰게 웃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결판이 났는데….”
약 이십여 초, 그 사이에 흡혈귀는 상당히 큰 피해를 봤다.
많은 피를 흘렸고 팔 한쪽은 완전히 잘려 저 멀리 날아가 있으며 양다리 모두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목이 나았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낫는 것이 목이라니.
그게 조금 웃겨서 실없이 흡혈귀는 웃었다.
“내가 너희를 얕본 건 인정하마.”
약간의 쇳소리와 함께 흡혈귀는 말했다.
“하지만 너희도 나를 얕봤구나.”
흡혈귀는 웃었다.
“그래, 나는 방심했다.”
“갑자기 인정한다고 봐주지는 않는데.”
월이는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내가 방심하는 이유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불사다.”
“알아 멍청아.”
“그 불사라는 것의 의미가 뭔지, 너희는 잘 모르는 것 같군.”
흡혈귀는 다시 웃었다.
“또 팔 한쪽 잘려놓고 위세는 좋다 너?”
“당연하지.”
한쪽 팔로 흡혈귀는 손톱을 세웠다.
“그걸로 뭐 어쩌라고?”
이제 와 손톱 가지고 월이를 이길 수 없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대는 월이를 압도하는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웃는다. 뭔가 방법이 있나? 월이는 무슨 공격이 날아올까 싶어 조금 경계했다. 그러나 월이가 본 것은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이렇게 하지.”
흡혈귀는 손톱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뭐?”
심장을 찌르는 것의 의미는 당연히 단순한 자살이 아니다. 불사를 얻어낸 시점에서 흡혈귀는 자살 역시 허락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흡혈귀는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 그것이 흡혈귀의 결심이었다.
* * *
흡혈귀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그분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목표였다.
나머지는 전부 곁다리다. 이상의 신부를 만드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조차 그보다는 후순위다.
그걸 위해서는 이런 곳에서 당할 수는 없다. 보은을 위해서는 이런 곳에서 당해줘서는 안 된다.
태주의 예상대로, 괴물은 처음부터 흡혈귀였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정말로 흡혈귀가 된 시점은 월이가 늑대인간이 되어버린 시점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수십 년을 살았다고 말은 했지만, 흡혈귀로 산 것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흡혈귀가 모두 죽던 날, 괴물은 늑대가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 생각하지 않을 만큼 하찮은 것이었기에 살 수 있었다.
괴물은 그저 그런 존재였다. 귀족이 있다면 섬기는 이도 당연히 있을 거라는 그런 인식이 바탕 된 그런 있는 듯 없는 듯한 희미한 것.
하지만 존재하는 이상 흡혈귀들을 귀족으로 모시도록 애초부터 정해져 있던 그런 것.
흡혈귀 이야기에서 파생되어 살아있는 그런 아주 자그마한 존재.
그러니 늑대가 굳이 죽이려 들 이유가 없다.
어차피 흡혈귀가 없다면 알아서 사라질 작은 존재니 귀찮게 굳이 손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도 좋다. 자신은 살고 흡혈귀는 죽었다.
흡혈귀가 모두 죽은 날, 아직 흡혈귀가 아니었던 괴물은 그래서 웃었다.
자신 역시도 곧 죽고 말 것이지만 상관은 없다. 자신이 그 빌어먹을 흡혈귀들보다 오래 살았다.
“하하, 하하하하!!”
이렇게 웃어 본 적은 처음이다. 애초에 크게 소리를 내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서는 연약하기 그지없으며, 흡혈귀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의존적인 존재가 흡혈귀 사이에서 존중을 받을 리 없다.
그렇기에 그것은 완전히 무시 받으며 살았다.
흡혈귀에게 허가받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귀족들에게 허락받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다.
괴롭히는 것조차 별로 재미가 없어서 살아있을 뿐인 그런 약자로서 괴물은 살았다.
당연히 사람도 아니니 사람들 틈으로 도망갈 수 없다.
죽고 싶은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물은 살고자 했다.
모멸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괴물은 견뎠다. 언젠가 저들이 모두 죽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괴물은 살았다.
그저 상상에 불과한, 그냥 하지 않으면 도저히 지금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하는 그런 상상이었다.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이 살아서 그 모두를 비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 년, 이십 년이 넘어서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그것은 계속해서 상상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정말로 오고 말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침착하게 미쳐버린 한 늑대 때문에.
“정말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는가!”
하나도 빠짐없이, 비참하게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모두 살해당한 것이다.
충분한 행운이다.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꼴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뭘 해야 할까.
그것을 괴물은 알 수 없었다.
애초부터 뭔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 죽는 꼴을 언젠가 보고 싶었던 게 다였다.
새로운 목표라 할 만한 게 없다.
그렇기에 괴물은 그냥 눈을 감았다.
원래부터 흡혈귀라는 종족에 의존하던 존재다. 이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대로 자신이 끝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아, 조금 늦어버렸나? 하긴 뭐 어쩔 수 없지.”
여자의 목소리였다.
괴물은 흡혈귀가 아닌 여자의 목소리는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자신은 곧 죽는 것이다.
“그래도 뭐 하나는 건질 수 있겠는데.”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직 살아있는 거지? 아무래도 나는 별로 아는 게 많지가 않아서….”
괴물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여전히 생각하지 못했다.
“눈 뜨면 안 잡아먹지~?”
괴물은 그제야 눈을 떴다. 주변에 말을 들을 수 있는 남은 게 자신뿐이라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와, 역시 살아있잖아?”
여자는 까르르 웃음소리를 냈다. 막 뜨기 시작한 해 때문에 눈이 부신 건지, 죽어가는 몸 때문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디 보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여자가 뭐라 말하자 곧바로 괴물의 몸 상태는 괜찮아졌다.
“음음, 이 정도로 강화하는 건 역시 문제가 없네. 그래도 가끔 원인 모를 이상한 문제가 터진단 말이지.”
“누구신가요?”
몸이 건강하다. 아프지도 않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떨떨한 감정으로 괴물은 물었다.
“나? 나를 부르는 말은 세상에 조금 많은데.”
장난기가 도는 얼굴로 여자는 말했다.
“너는 내가 뭐 같아?”
“…행운?”
망설인 끝에 한 그 말이 조금 웃겼는지 여자는 깔깔 웃었다.
“행운, 행운이라! 다음엔 한번 그렇게 자칭해볼까?”
그게 그렇게 웃긴가? 괴물에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그렇게 웃던 여자는 괴물에게 물었다.
“아 재밌었다. 그래서, 원래는 흡혈귀들한테 물어보려 했던 건데 말이야.”
“흡혈귀는 이제 없어요. 아마도….”
“맞아. 다 죽었어. 내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그놈이 그렇게 물렁한 녀석은 아니라서.”
한다면 제대로 했겠지- 하고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곧이어 여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것도 인연이니 대신 너한테 물어보려고. 날 도와줄 생각이 있어? 나를 조금 도와주면, 나는 네가 원하는 걸 이루어줄게.”
괴물에게 다른 선택지는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그리고 괴물은 흡혈귀처럼 되기로 했다.
그것은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거대한 은혜였다.
흡혈귀는 과거를 기억했다. 자신이 미약하기 그지없었던 때를, 그리고 자신이 새로운 삶을 받았을 때를.
그 은혜는 갚아야만 했다.
‘그러니 수단은 가리지 않는다.’
흡혈귀는 눈을 감았다.
고작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이렇게 실패할 수는 없다.
져서는 안 된다. 아니, 져도 되지만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 그분을 도울 수가 없다.
전신이 꽤 아프다. 고통에 익숙하다고 하지만 신체의 결손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자신에게 이런 수단을 쓰게 한 만큼은 얻어가겠다.
복수심을 불태우며 흡혈귀는 눈을 감았다.
다음에 눈을 뜨는 곳은 저 앞이다.
* * *
스스로 심장을 찌른 흡혈귀의 모습은 꽤 비참한 모습이었다.
팔 한쪽이 없고, 다리 양쪽은 걷지 못할 정도로 부숴 놨다.
남은 한쪽 팔은 가슴 한복판에 깊게 박혀 있다.
그리고 아직도, 갈퀴는 몸에 박혀 있다.
아무리 불사라고 해도 이래서야 살아날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시체인 것 같은데? 이거 불사라고 하지 않았어?”
시체가 되어버린 흡혈귀를 보고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아직도 안 살아나는데?”
“그래? 부활하는데 시간이야 조금 걸리지만 그래도 살아날 텐데.”
무려 소장이 보증한 불사다. 이렇게 길게 반응이 없을 리는 없다. 뭔가 조금 이상하다. 그 낌새를 태주가 느꼈을 때는 이미 조금 늦었다.
“갈퀴가…?”
사라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태주는 더 주의 깊게 시체를 살폈다. 월이 역시 흡혈귀가 언제 눈을 뜰지를 살피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걸 가장 먼저 본 것은 연화였다.
“저, 저거!”
“뭐?”
월이는 연화의 눈을 보고, 그 시선을 따라갔다.
“이런 미친!”
저 멀리 날아갔던 팔 한편에서 몸통이 자라났다.
태주도 이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저거, 자라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는 거였어?”
이미 흡혈귀는 옷을 제외한 전신을 그대로 복구했다.
“이건 좀 의외인데.”
그러나 몸에는 아직도 갈퀴가 박혀 있다. 한번 완전히 몸을 재구성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의외지만 상관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잡다한 능력이 아니다.
“이게, 내 비장의 수단이다.”
흡혈귀는 달렸다. 세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있다면, 한 사람만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당연하다.
“저 알몸 변태새끼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