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3)
“이걸로 딱 한 번 만 찌르면 돼요.”
그렇게 말하며 태주가 내민 것은 애매한 사이즈의 갈퀴였다.
“진짜 딱 한번이요.”
그걸로 상대가 죽지는 않는다. 많이 아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찌르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걸 제가 찔러야 한다고요!?”
연화는 경악했다. 자신이 조금 돕는 일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아예 흡혈귀에게 공격까지 해야 할 일인지는 몰랬다.
“왜 제가 찔러요? 저기 저분이 더 강하잖아요!”
아무리 봐도 조금 이상하다.
“심지어 이거 무기도 아니고 농기구잖아요.”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한데.”
태주도 별로 연화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은 아니긴 했다.
“상대방을 속여먹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거든요.”
이미 얼굴을 아는 태주가 뭔가를 들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월이가 뭔가를 들고 있는 것 역시 숨길 수 없다. 아마도 절대로 맞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명백히 아랫것으로 보고 있는 무언가가 손에 쥐고 있는 사소한 물건 따위를 흡혈귀가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한다고요?”
“네. 아마도 한번, 상대는 등을 보일 거예요. 그 정도 틈은 만들 수 있어요.”
태주는 조금 날카로운 눈을 떴다.
“상대방에게 받은 힘으로 상대방을 엿먹이는 거, 조금 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등 관련한 건 그게 준 힘이 아니잖아요.”
“음….”
태주는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어쨌든 완전히 방심한 상대의 등을 노리는 것 정도는 아직 자신이 있다.
불안하긴 하지만 해볼 만한 것도 사실이다.
“딱 한 번이면 된다고요?”
“네, 딱 한방.”
태주는 조금 사악해 보이는 미소로 말했다.
“한방만 찌르면 골로 갑니다.”
* * *
정적이 흘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흡혈귀는 경악했다.
그게 엄청난 타격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공격이기 때문에 그랬다.
저 뒤에는 자신을 공격할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없었다.
아니, 아니다.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군.”
흡혈귀는 조금 감탄마저 했다.
“저 뒤에 있는 것이 붉은 마스크가 아니고 그 여인이었다면 이쪽에 있는 것이 내가 봤던 그 여인일 리가 없어.”
신기한 것을 다 본다는 눈으로 흡혈귀는 웃었다.
“꽤 건방진 짓을 다 하지 않았나.”
이 정도면 큰 타격은 아니다. 팔이 다시 자라는 자신에게 등허리에 구멍 네 개가 뚫린 것 정도는 별문제가 아니다.
내려다보는 흡혈귀의 눈은 어딘가 기묘한 눈빛이었다.
“그런 배짱이 있으면서, 사람은 죽이지 못하다니.”
이 정도라면 별로 아픈 것은 아니다. 흡혈귀의 입장에서는 그저 놀라울 뿐,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반면 연화의 손은 덜덜 떨렸다. 정말로, 자신이 흡혈귀를 공격해 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통하고야 말았다.
피가 갈퀴를 타고 조금씩 흘러 내린다. 그 피가 손에 닿기 직전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갈퀴에서 손을 뗐다. 피가 흐르자 실감이 났다.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퀴는 흡혈귀의 몸에 박혀있다.
갑자기 소름이 돋은 연화는 곧바로 태주의 뒤로 물러났다. 태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 뒤에 있어 봐야 아무런 도움은 안 될 텐데. 그래도 상관은 없다.
저걸 찔러넣은 이상 연화의 할 일은 끝이다.
“재미있는 방법이었지?”
태주는 이전까지의 정중한 모습은 버렸다. 이미 정체를 눈치챈 흡혈귀에게 굳이 존댓말을 쓸 필요가 없다.
“맨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가? 뒤를 조심하라고.”
이 정도 타격은 별문제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약간의 신음을 흘리며 흡혈귀는 말했다. 눈을 날카롭게 뜬 채였다.
“그래, 네놈 뒤에 서 있는 건 처음부터 그 되다 만 저거였던 건가. 생각보다는 간단한 방법이었군.”
흡혈귀는 곧바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스크, 그래. 마스크인가. 맹점이었군. 복장이나 머리 모양이 비슷해서 몰랐다. 저것의 얼굴 따위는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이런 패착으로 작용할 줄이야.”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다. 일단 당하고 나니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정말로 저딴 방법을 썼다는 것 자체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주술조차 쓰지 않고?”
“주술 따위는 쓰지 않았지.”
태주는 웃었다.
“그런 걸 쓰면 네가 눈치챌 테니까 말이야.”
지성이 없는 존재를 상대로 한다면 마구 써도 되겠지만, 지성이 있다면 주술의 흔적만 봐도 마땅히 경계할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잘 숨기는 게 아니라면 그냥 쓰지 않는다. 설마 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할 뿐이다.
“허,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눈치라도 챈다면 어쩌려고 이런 방법을 쓴 거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름 계산을 했지. 넌 절대 눈치 못 챌 거라고.”
설이가 마스크를 끼는 것으로, 반대로 연화가 마스크를 벗는 것으로 흡혈귀는 두 사람을 반대로 생각했다.
외관만 바뀐다면 설이에게 첫눈에 가진 호감과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호감을 착각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강조하면서, 상대의 주의를 계속 다른 곳으로 돌린다.
상대가 조금 위화감을 느끼려 할 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을 한다.
거리는 있지만 월이까지 달려들까 말까 하는 태도를 반복하고 있으니, 거기까지 신경을 쓸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이 상대라면 절대로 할 리 없는 방법이야 이건.”
사람은 분명 사람의 얼굴부터 자연스럽게 확인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아무리 연화와 설이의 체형과 머리 길이 등등이 비슷하다고 해도 조금의 위화감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사람을 자신보다 명백하게 밑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신경도 쓰지 않고 또 그렇기에 방법이 통한다.
흡혈귀는 태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작 사람한테도 안 통하는 방법에 당한 기분이 어때?”
“그래서 아무 말을 안 한 거였나!”
“그래. 오히려 목소리 정도는 기억할 테니까 말이야.”
어처구니가 없다. 이쯤 되면 용기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
“고작 한 번만 치면 죽을 인간 따위가 뭘 믿고 이런 방법을 쓰는 거지?”
만약 흡혈귀가 태주의 유도에 제대로 따라오지 않았다면, 중간에 눈치를 챘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단 한 번만 의심을 품었다면 아주 위험할 터였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생물은, 심지어 생물이 아닌 것조차 보통은 자신의 안위를 가장 우선시한다. 그런데도 저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니.
“목숨이야 아깝지. 하지만 확신이 있었거든.”
확신이 없다면 이런 목숨 내놓는 짓은 하지 않는다.
“자기반성이 없는 녀석만큼 속이기 쉬운 것도 없어서.”
태주는 짧게 말했다.
“자기반성이 없다?”
“너, 자기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걸 고치지도 않고 있었잖아?”
스스로가 틀릴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쉬운 먹잇감이다.
“처음 네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지. 인사나, 뭐 기타 말하는 거 같은 것들 말이야.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너는 귀족을 잘 몰라.”
그토록 귀족이라 자칭하는데, 그리고 귀족이고 싶어하는데 정작 귀족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표정을 보니 본인도 아나 보네?”
흡혈귀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태주를 죽일 듯 노려볼 뿐이다.
“이자식…!”
흡혈귀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굴었지만 태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는 자기가 귀족이라고,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데 말이야.”
그러나 태주가 보기에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특별하다! 나는 귀족이며, 생명을 찬탈하는 자이며, 불사성을 가진 채 영생하는 자다!”
“글쎄, 네 힘이 조금 강하고 무서운 건 사실이겠지. 까다롭기도 하고.”
그 정도는 인정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래 봐야 그게 다다.
“내가 만난 놈 중엔 가장… 아니 두 번째로 위협적인 상대야.”
하지만, 가진 힘이 그렇다고는 해도 너무 미숙하다.
“하지만 정작 너는 그만큼 위험하지는 않아.”
“뭐라고?”
흡혈귀는 조금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은 강자를 상대로는 지나칠 정도로 사리고, 자신에게 위협이 안 될 것 같은 상대에게는 지나치게 방심해.”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게 군다. 물론 그게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 전환이 너무 기계적이라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바보 같다고, 너. 경험 부족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경험 부족?”
“너, 제대로 된 흡혈귀가 아니잖아?”
태주는 일부러 내려다보는 자세로,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곳니도 없는 주제에.”
“이자식!!”
흡혈귀는 눈을 부릅떴다. 귀족적인 것처럼 구는 여유 있는 말투나 태도도 버렸다.
“지금 뭐라고 했냐!!”
“뭐긴, 너 가짜라고.”
그건 자신이 귀족이라 자칭하고 있는 흡혈귀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었다.
“송곳니가 없다는 건 꽤 알기 쉬운 근거지. 하다못해 개한테도 잘 보이는 게 송곳니야. 그런 의미에서 너는 개보다도 못한 거라고.”
태주는 비웃었다.
“나는 가짜가 아니다!”
“그래. 진짜가 다 죽었으니까. 네가 가짜라는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도 안 남았으니, 그렇게 주장 정도는 해도 되겠지.”
“주장이 아니다! 사실이란 말이다!”
이젠 여유조차 없다. 어떻게든 태주의 말을 부정하고 싶은 그런 태도.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래. 그런 태도가 바로 네가 귀족이 아니라는 증거 같은 거야.”
태주의 말에 흡혈귀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은 말이야.”
“듣고 싶지 않군.”
흡혈귀는 날카롭게 말을 끊었다. 하지만 태주는 멈추지 않았다. 멈출 이유가 없다.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었던 걸 나중에 어떻게든 가지려고 해.”
예를 들어 어릴 때 레고 하나를 사지 못 한 아이가 커서 수백만 원짜리 레고를 사 모으기 시작하거나.
또 예를 들어서 어릴 때 먹지 못했던 음식에 미련이 남아 자란 뒤에 찾아서 먹거나.
“아마 이 경우 네가 가지지 못했던 건 지금의 네 자리 그 자체였겠지.”
묘할 정도로 귀족에 집착한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절차나 인사를, 정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 버리고 만다.
“한껏 있어 보이는 인사를 하는데, 좌우가 반대야. 용어들도 어설프고, 말투도 지나치게 과장됐어. 진짜 귀족이 쓰는 고풍스러운 말투도 아니야.”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심지어는 제왕학과 군사학의 차이도 모르잖아?”
태주는 열을 낼 필요가 없다.
귀중한 것을 아끼는 사람에게 가장 화가 나는 태도는 그것이 애초부터 가짜이며, 불필요한 것이라는 지적하는 것이다.
진지하지도 않게, 그저 그건 고작 그 정도의 일이라는 그런 태도.
효과는 있었다. 금방이라도 흡혈귀는 달려들 것처럼 굴었다.
“곱게 돌아가지 못할 거다.”
가라앉은 목소리다. 화가 나다 못해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누구 하나는 데려가겠다.”
귀기가 흐르는 눈으로 흡혈귀는 말했다.
“그래, 해봐.”
태주는 비웃었다.
“거 참, 뒤를 조심하라니까 또 그러네.”
지나치게 열이 올랐다. 의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이쪽에 온전히 신경을 쏟을 줄은 몰랐다.
“목 조심은 했어야지.”
사각 하고 칼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