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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110화 (110/269)

11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1)

흡혈귀는 들떠 있었다.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얼마 만인지 본인조차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맨 처음 자신이 흡혈귀가 된 이후로는 처음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그분께 구원받은 뒤로 처음 드는 기분이야.”

이상의 신부를 찾았다. 그건 지금까지 하던 여행중의 시도들이 모두 쓸모없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으나, 동시에 기회였다.

그러니 이전까지 하던 일을 모두 버리는 것은 전혀 아쉽지 않다.

“그 여자가 있다면 나는 그분의 시선을 다시 한번 받을 수 있겠지.”

흡혈귀는 씩 웃었다.

얼굴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분이 아니라면 다 의미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성질이다.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단 말이야.”

이유는 모르지만, 자꾸 눈길이 가고 호감이 생긴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그분께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그 여자를 손에 넣을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대화를 해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당당하지만, 건방지지 않다. 그 여자야말로 자신이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여자다.

그렇다면 이제 붉은 마스크는 필요 없다.

연화를 붉은 마스크로 만들기 위해 한 일들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상관없었다.

“무릇 장인은 미흡한 물건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흡혈귀는 그런 소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건 단순히 본인의 가치만이 아니다.

“음, 음. 이건 운명이나 다름없지.”

자신이 찾아 헤매던 것들에 대한 정보. 아주 자세하지는 않지만 실마리로는 충분할 정도의 정보를 그 여자는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 늑대를 조사하는 게 막막하던 차에, 꿈에 그리던 여자를 찾은 데다, 그 여자가 늑대에 대해 알고 있기까지 하다니.

이건 실로 말도 안 되는 우연이다. 단순히 운이 좋다는 말로 끝낼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형편이 좋은 일이기도 하다.

암시를 당했으니 진실을 말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자체를 잘못 알고 있을 수는 있다.

그렇기에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학교에 그 늑대가 정말로 있는지 확인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늑대는 그 학교의 학생이었다.

“심지어는 마침 내가 붉은 마스크로 만든 여자 역시 그 학교의 학생이니,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마스크를 만드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군.”

흡혈귀는 웃었다.

“세상에 남은 마지막 라이칸스로프가 학교 따위나 다니고 있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란 말인가!”

자신과는 다르다. 자신은 흡혈귀가 되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 늑대는 고작 사람처럼 굴고 있다.

“물려받은 것만 따지면 나보다도 대단한 것으로부터 물려받지 않았나. 왜 굳이 그런 약자들의 것을 고집하는 것인지….”

흡혈귀에게는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에 걸맞은 것을 누리면 될 텐데, 고작 평범한 인간 따위처럼 그렇게 굴고 있다니.

“하지만 그렇기에 알기 쉽다.”

흡혈귀는 비웃었다.

“고작 사람만큼 알기 쉬운 것도 없지.”

그러니 흡혈귀는 더더욱 질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기습은 꽤 놀랍긴 했지만 그게 다다.

고작 팔을 자른다고, 심장을 찔린다고 해도 자신은 죽지 않는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을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 늑대와 완벽하게 비긴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상성 상 우위다.

여자는 말했다. 다른 더 강한 자는 없다고, 그곳에서 가장 강한 자는 늑대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된다.

“무리를 만들고 싶은 거겠지.”

늑대는 자신보다 약한 이를 지켜야 한다. 우두머리라면 마땅한 책무다.

그러니 늑대는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을 지킬 것이다. 자신은 늑대를 죽일 수는 없지만, 늑대가 지키는 것은 죽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은 내가 이기는 것 아닌가. 흡혈귀는 웃었다.

“만약 이곳에서 기다리는 중에 그 늑대가 나타난다면 그 여인의 말은 전부 사실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여자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늑대가 자주 순찰하는 영역이다. 사실이라면 이곳에서 늑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여자가 사실을 조금 잘못 알고 있었을 뿐이다.

여자의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큰 문제는 없다. 거짓이라도 얻어갈 것은 있고, 진실이라면 얻어갈 것이 더 많을 뿐이다.

어느 쪽이든 흡혈귀가 큰 손해는 없다.

“하지만, 사실인 것 같군.”

흡혈귀는 웃었다.

작게, 기척이 느껴진다. 소리라고 하기도 뭐한 정도의 아주 작은 소리지만 집중하면 들을 수 있다.

자신의 감각이 늑대인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알고 있다면 처음처럼 기습에 당해줄 리가 없다.

맨 처음에는 그런 상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당했을 뿐이다.

지금처럼 나타날 것을 알았다면 당할 리가 없다.

“나오지 않겠는가? 공주여?”

흡혈귀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엔 기습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

“이번에는 기습은 통하지 않으니, 그렇게 숨어서 이 나를 지켜보는 것은 의미 없는 짓이라네.”

“야!”

약한 도발에도 반응이 좋다. 흡혈귀는 웃었다.

“뒤진다, 진짜!”

흡혈귀가 바라마지 않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야.”

* * *

작전에 돌입하기 전, 태주는 월이에게 말했다.

“네가 해야 하는 일은 앞에서 시선을 끄는 거야.”

“시선을 끈다니?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사실 별일은 안 해도 돼. 너는 그냥 흡혈귀 앞에서 적당적당히 상대의 말을 받아주기만 하면 되거든. 물론 너무 무시하지는 말고, 적당히 열받아 하면서.”

태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제로 열받아도 돼. 아주 냉정할 필요도 없어. 네가 도발을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앞에서 헛소리나 좀 들어 줘.”

“그걸로 충분해?”

“준비되기 전까지는.”

월이는 고작 그것만 하면 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월이는 정말로 그 이상으로 뭔가 하면 안 된다.

“만약 그 흡혈귀가 급발진해서 네 뒤에 있는 사람을 노리기 시작하면 그건 막아야겠지. 하지만 작전에 관해서는, 그래. 다른 뭔가를 더 할 필요는 없어.”

흡혈귀를 마지막에 상대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그렇다.

“지금 흡혈귀는 설이를 원하고 있어. 그건 우연히 눈에 띄어서 그런 거지만, 이제는 아마 그 이상의 의미가 있겠지.”

“그 이상의 의미라니?”

월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흡혈귀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할 거야. 설이를 차지하는 걸로”

월이는 웩 하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여러 가지 의미로 혐오스럽다.

“왜 하필 나야?”

“너는 일종의 정통 후계자고, 저 녀석은 그런 게 아니니까.”

어쨌든 월이는 왕이 직접 물어서 만든 후계고 그 흡혈귀는 모두 죽은 틈에 자리를 차지한 찬탈자일 뿐이다.

“당연히 자격지심이 있지.”

월이는 그 표현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그제야 이해가 가는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공주 운운한 건가?”

“그래. 본인이 그 콤플렉스를 자각하고 있는 건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널 공주라고 부르는 건 그런 이유도 있을 거야.”

그렇기에 이번에 흡혈귀가 경계하는 건 월이이며, 또 우월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월이다.

“그래서 너는 일부러 더 못난 척해야 해.”

“방심하게 하도록?”

“그래. 이번에 네가 뭔가를 더 하려고 하면 할수록 흡혈귀는 경계할 거고, 네가 못나 보일수록 상대는 방심할 거니까.”

“기분 나쁘네….”

결국 그 말은 한동안 일방적으로 그 흡혈귀의 헛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헛소리가 다 너한테 자격지심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기분은 나빠.”

하지만 납득은 한 듯 월이는 끄덕였다. 얼굴은 찌푸린 채지만 그렇다.

“그래, 그 나쁜 기분을 숨길 필요도 없어.”

태주는 조금 미소지었다.

“그놈 앞에서 그냥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돼.”

* * *

“뒤진다 진짜!”

월이는 으르렁거렸다. 상대에 대해 잘 모르던 때도 상대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더 나쁘다.

“또 이번엔 혀라도 한번 잘려볼래?”

월이는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흡혈귀는 이번에는 그저 상대를 깔볼 뿐이다.

“흠, 거 참 무섭군. 하지만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흡혈귀는 비웃었다.

“제대로 된 무기도 없고… 게다가 나를 만날 줄 알았다면 그 되다만 것을 데리고 오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월이 뒤에는 붉은 마스크가 굳은 채 서 있었다. 마치 흡혈귀를 만날 줄 몰랐던 것처럼…. 물론 완전히 연기는 아니지만.

누구나 저런 것 앞에 서면 당연히 두려움에 떤다.

"정말로 그저 순찰이로군…. 정말로 그 여자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야. 점점 더 마음에 드는데.”

흡혈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나서는 다시 월이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것의 어디가 마음에 든 거지? 시녀가 필요했나?”

시녀라는 말에 월이는 욱했다. 애초부터 그냥 단어 선정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

“꼭 헛소리해서 기분 잡치게 할래? 빨리 안 꺼져?”

쉿쉿 소리를 내며 월이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내가 너 엿먹이기 위해서라도 얘는 못 건드리게 할 거니까, 꺼져!”

그러나 흡혈귀는 정말로 개의치 않는 듯 어깨만을 한번 으쓱하는 태도였다.

“뭐, 원래는 내가 처분하려 했지만 이런 식으로 넘겨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뭐? 넘겨줘?”

월이의 기가 막힌다는 말에도 흡혈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이어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말하기 딱 좋은 기회로군.”

흡혈귀는 선언했다.

“그대가 지금 집착하고 있는 여인에게서 손을 떼시게. 그렇다면 그 되다만 붉은 마스크 정도는 넘겨 줄 수도 있다네. 무리를 불리는 게 목적이라면, 숫자는 맞을 테니 그 정도 양보는 할 수 있지 않나?”

다시 한번 ‘넘겨 준다’는 말을 한 흡혈귀의 말을 듣고 월이는 잠시 조용해졌다.

더 이상 말하는 것을 그만둔 것이다.

다만 그 분노는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회색으로 변한다. 눈이 붉게 변한다.

“흠, 이게 그렇게 화가 날 정도인가? 아무래도 그게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군.”

흡혈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런 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데 말이야.”

“저런 것?”

“아차, 아직 그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었지?”

흡혈귀는 자상한 말투로 말했다.

“인간성을 버리게. 그대는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이니, 우리는 인간을 잡아먹고 사는 존재라네.”

너무도 친절한 말투였다.

“인간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버리게. 언젠가 분명 그 인식이 그대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네. 내 안타까워서 해 주는 말이야.”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라는 듯 거들먹거리며 말하는 흡혈귀의 모습을 본 월이는 순간적으로 뛰쳐나갈 뻔했다.

뒤에 사람이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달려들지 못하는 태도를 그저 경계심으로 이해한 흡혈귀는 자만할 뿐이었다.

“한번 그대도, 사람을 물어보면 알게 될 게야.”

“인간이 특별하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네요.”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흡혈귀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저희 만나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태주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양손은 다 들어 올린 채였다. 위협이 될 일은 없다는, 그런 포즈다.

“그래, 만나기로 했지.”

흡혈귀는 말했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건 내일인 데다, 애초에 네가 아니다만.”

“제 동생이라면 뒤에 있지 않습니까.”

흡혈귀는 태주의 뒤에 누군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았다.

“갑작스럽군. 이곳으로 온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분위기를 보면 낄 자리가 아니라는 건 알 텐데.”

“네, 뭐 상황을 보니 낄 자리는 아니네요. 하지만 원래 약속 시각보다 조금 빨리 나가는 것이 예절 아니겠습니까.”

태주는 대담하게 미소지었다.

“말은 잘 하는군. 그래, 왜 온 거지?”

“당신이 저희에게 해야 할 것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전해야 할 것이 있었기에.”

태주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먼저 드려야 할 말씀은 뒤를 조심하라는 말이네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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