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109화 (109/269)

10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0)

“응? …그러고 보니 없었네.”

지금까지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상대가 송곳니가 없다는 사실은 아예 염두에 뒀던 적도 없다.

“생각도 못 했어.”

“그래. 보통은 사람의 얼굴에 송곳니가 부각 되어 보이지는 않으니까.”

그러니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얼굴에 송곳니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히 어색하지 않다.

월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연화나 지훈이 증언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송곳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눈치채지 못하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송곳니가 크지 않다는 걸 먼저 생각하겠어? 눈에 딱 보이지 않는 이상에야 당연히 생각 자체를 못하지.”

송곳니가 특별히 튀어나오지 않았다는 걸 특징이랍시고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가 흡혈귀라면, 그 송곳니가 언급조차 안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처음에는 숨긴 건가 싶었어. 하지만, 그럴 리도 없지. 상대방에게 자신이 흡혈귀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녀석이 흡혈귀의 가장 큰 특징인 송곳니를 숨길 리가 없잖아?”

저 녀석은 자신이 흡혈귀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냈다. 굳이 송곳니의 존재를 숨길 이유가 없다.

그러니 송곳니가 없는 것은 절대로 숨길 의도로 한 일이 아니다. 그건 정말로 그저 송곳니가 없는 것이다.

“그럼 상대가 뭐라는 건데? 흡혈귀가 아니라는 말이야?”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진 아니고… 최소한 처음엔 그랬을 거라는 말이야. 일단 지금은 흡혈귀라 생각해야지. 원래 뭐였는지 알아내는 건 이제 와서는 알 수 없고, 의미도 없으니까.”

그러나 송곳니가 없다는 점에서, 태주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약자였겠지.”

“약자라고요?”

설이가 의아하게 되물을 만큼 지금 흡혈귀를 보고는 떠올리기 힘든 단어다. 하지만 태주는 확신할 수 있었다.

“송곳니라는 건 동물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 중 하나야. 육식동물에게는 사냥을 수월하게 하고, 초식동물에게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니까.”

태주가 아는 한 치아를 가지고 있는 동물 중 송곳니가 없는 포식자는 없다. 오히려 송곳니가 있는 초식동물은 있지만.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한 초식 흡혈귀라는 건 성립할 수가 없어. 확신을 얻은 건 그 부분이야.”

초식 흡혈귀라니, 농담 같은 수준의 단어 조합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농담 같은 존재이기에 약점이 없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렇기에 써먹을 방법이 있다. 이미 옥분 씨가 깔아준 판이 있다. 하지만 영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기에 태주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진짜보다 까다로운 가짜라니,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일이야.”

그때 딸랑, 하고 종이 울렸다.

잠시 나갔던 시아가 돌아온 것이다.

손님을 보호하는 일 역시 흡혈귀를 붙잡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더 중요한 일이었다. 태주는 두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을 중지하고는 말했다.

“일은 다 해결했어요?”

“다라고 하기도 그렇지. 이쪽에는 흡혈귀가 나타나지 않아서 사실상 일이라 할 만한 건 하나뿐이었으니.”

“두 분의 부모님을 다 설득하려면 좀 어려웠을 텐데요?”

“그걸 위해 이걸 쓴 거 아니겠나.”

시아는 팔에 두르고 있던 가짜 깁스를 풀었다. 가짜라고는 해도 무게가 꽤 있어 묵직한 물건이다.

“자식이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다친 게 다른 사람이라면 꽤 안심하게 되는 법이니까.”

그 낙차를 이용해서 약간의 허점을 덮어버린다. 사람 심리를 나쁜 의미로 잘 이용한 방법이다.

“부모님이라는 게 그렇죠. 자식 걱정을 이용해 먹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긴 한데.”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생각보다 수월했다. 특히 지훈 씨 쪽은 쉽다 못해 별거 없었지.”

“어라? 어땠길래요?”

“본인이 며칠 체육관에서 묵겠다고 전화 한 통 하면 되던데?”

딱히 꾀병도 필요 없다. 그냥 한마디면 됐다.

쉬울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쉬웠다.

“그나저나 이거 생각보다 무겁던데. 좀 더 가볍게 만들 순 없었나?”

시아는 투덜거렸다.

“누가 만지면 어떡하냐고 물은 건 누나잖아요.”

“그걸 감안해도 좀 무겁… 그래,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말한 건 나지….”

결국 또 비슷한 후회다. 시아는 투덜거렸다.

“그래서, 그새 진전된 건 있나?”

시아는 좀이 쑤신 듯 물었다. 하긴, 궁금할 만하기도 했다.

“어차피 뒤에 손님들도 같이 들어야 할 문제 같으니, 아예 같이 이야기할까요?”

시아는 조금 저린 손목을 주물럭거리며 말했다.

“나쁘지 않지.”

태주는 시아 뒤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일단 앉으시죠. 저희가 손님 모셔다 놓고 저희끼리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두 사람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며 태주는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태주는 두 사람에게 아이스티를 주며 말했다. 평소라면 주문을 받았겠지만, 지금은 솔직히 피곤하다. 가루만 타서 내줄 수 있는 거로 때우고 싶었다.

“뭐부터 들으실래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뜸 그런 말을 들어도 곤란한 것이다.

“그럼… 일단 좋은 소식부터 들을까요?”

지훈이 어색하게 말했다. 연화 역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소식은 이제 흡혈귀가 연화 씨에게만 집착하려 들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에요.”

연화는 놀랐다. 그전까지 상대는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라 외치지 않았던가.

“정말요?”

“네, 물론이죠.”

“그럼 저희 안전한 거예요?”

연화는 조금 기대를 품고 질문했다.

“아, 그게 안 좋은 소식이에요. 이젠 손님들을 정리하려 들 거거든요.”

“정리요?”

연화는 순간적으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곧 표정을 굳혔다.

“그 정리가 혹시….”

“네 아마 짐작하시는 게 맞아요.”

정작 지훈만 못 알아들었다.

“해고요?”

“아니에요. 왜 정리 다음에 바로 해고가 나오는 거예요?”

태주는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리한다는 건 당신들을 세상에서 지운다는 말이에요. 그쪽 입장에서는 그게 깔끔하잖아요?”

“아.”

지훈은 순간적으로 이해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사색이 되었다.

“사실, 지훈 씨 입장은 크게 달라질 건 없긴 하네요.”

말하고 보니 조금 농담 같다. 하지만 맘 편히 듣기 좋은 농담은 아니다. 연화는 목소리가 뒤집혀 물었다.

“아니, 어쩌다 일이 그렇게 된 거예요?”

“조금, 그 흡혈귀와 대화를 나눴거든요.”

태주는 조금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뭐랄까, 사건이 하나 있어서 흡혈귀가 이제는 연화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원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 말은 연화로서는 꽤 의외인 말이었다.

“저를 이렇게 만들기 위해 사람까지 죽였는데요?”

흡혈귀의 총애를 원했느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까지 죽이면서 붉은 마스크가 된 자신을 원하던 흡혈귀다. 그리 쉽게 물러날 거라 생각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태주는 그저 짧게 답했을 뿐이었다.

“네.”

“그럼 대체 흡혈귀는 왜 절 원했던 거에요?”

“흡혈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신부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태주의 말에 연화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무슨 농담이에요?”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요. 정작 본인은 진지하다는 게 문제죠.”

태주도 눈을 조금 찌푸리며 말했다.

“있었던 일을 들려드릴게요. 듣기 좋은 내용은 별로 아니지만요.”

* * *

태주의 말을 모두 듣고 난 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크게 지르고 말았다.

“그딴 이유로요!?”

“네. 그런 이유로요.”

태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게 이유의 전부라고요?”

지훈 역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이유가 그 정도 수준이면 화가 나기 이전에 그냥 어이가 없다.

“자기 취향의 여자를 만들기 위해서 이 짓을 했다는 거예요?”

한치도 틀리지 않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요약이네요.”

연화는 그 말을 듣고는 부아가 치민 듯 오만상을 썼다.

“뭔가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게 아니라 정말 그게 다예요?”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게 다다. 그러니 괴물이다.

“그리고 본인 딴에는 이상적인 신부가 될 후보자를 하나 찾았으니 이전까지 하던 일은 필요 없다 여기고 있는 거겠죠.”

“…그 모든 일이 말이죠.”

“개인적인 감정 정도는 조금 섞였는지도 모르지만, 그것까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연화는 조금 조용해졌다. 물론 그것이 진정했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한계를 넘어버린 탓에 표출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연화는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다시 한번 말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이 죽었다. 싫어하는 사람이었다지만 그랬다.

사람을 죽일뻔했다. 역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지만 그랬다.

정작 죽을뻔했던 지훈은 이전에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상태가 비교적 낫지만, 아무래도 그 꼴을 눈앞에서 봤던 연화는 그때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그때 흡혈귀는 진심으로 지훈을 죽이려 했다. 자신을 붉은 마스크로 만드는 것이 이미 실패했는데도, 그저 그렇게 하고 싶기에 그랬다.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다시 손이 떨린다.

그렇기에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람을 죽여야 할 만큼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흡혈귀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상황이 조금 기묘하죠?”

태주는 쓰게 웃었다.

“기묘하고 뭐고를 떠나서….”

지훈 역시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제가 연화 씨에게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태주는 물었다.

“뭔가요?”

잠시 충격을 받아 말하지 못하는 연화 대신 지훈이 물었다.

“지훈 씨에게는 부탁드릴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굳이 따돌리고 말할 만한 내용도 아니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말했다.

“흡혈귀를 잡기 위해 위험을 조금 감수해 보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위험을 감수한다뇨?”

정신을 차린 연화가 물었다.

“지금까지도 위험했던 것 아닌가요?”

“네, 그렇죠. 하지만 사실 정말로 위험했던 때는 딱 한순간뿐이었어요. 지훈 씨가 그 부적을 놓고 갔을 때 말이에요. 아, 맨 처음에 연화 씨가 지훈 씨를 쫓았을 때도 그렇기는 했네요.”

지훈은 머쓱한 듯 웃었고 연화는 조금 가슴 속이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은 지훈을 죽일 수도 있었고, 그럴 마음도 잠깐이나마 가졌었다.

“그때는 저희가 간신히 늦지 않게 지원을 할 수 있었죠.”

태주의 눈은 한없이 진지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요청은 태주 역시도 처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잖아요? 연화 씨도 슬슬 등교는 해야 할 거고, 지훈 씨도 뭔가 계속 해야 하는 모양이니까요.”

그렇기에 아예 써먹을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단기결전을 낸다.

“조금 위험하겠지만 주말 내로 끝낼 수도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 방법이 많이 위험한가요?”

지훈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한 듯 말했다.

“얼마나 위험한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마 목숨까지 위험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 예상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저희 예상보다 더 위험하게 되면 당연히 작전을 포기해야겠죠. 하지만 계획이 들어맞는다 해도 크고 작은 부상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상대는 괴물이니까요.”

그렇기에 연화는 괜찮았다. 아주 큰 부상이 아니라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반대로 지훈에게는 쉽게 부탁할 수 없었다. 몸이 좋아 봐야 일반인이다. 게다가 체육계열 입시를 준비한다면 현시점의 부상은 치명적이다.

태주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면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이 아니에요. 연화 씨가 거절한다면 저는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을 거고요.”

“그럼 왜 제게 부탁을 하시는 건가요?”

연화는 태주를 보며 물었다. 태주는 눈을 잠시 감았다.

“이번에 연화 씨가 도와주신다면 흡혈귀를 잡을 수 있어요. 시간을 끌지 않고, 다른 피해자도 생기지 않고요. 기물파손 정도는 발생할지도 모르겠지만요.”

“바로 붙잡을 수 있다….”

그건 연화에게 매력적인 말이었다.

“내일 바로도 붙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오히려 내일이 넘어가면 점점 더 실패에 가까워져요.”

아직 흡혈귀가 흥분해 있을 때, 냉정함을 되찾기 전에 바로 시행하지 않으면 성공률이 점점 떨어지는 작전이다.

상대의 감정에 의존하는 작전이라는 게 그렇다. 하지만 다른 약점은 보이지 않기에 이런 방법밖에는 쓸 수 없었다.

연화는 망설였다. 그 흡혈귀는 떠올리기만 해도 무서웠다.

“물론 월이가 손님을 지켜드린다는 약속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잠깐 정도는 단둘이서 흡혈귀의 앞에 서야 할 거예요. 만약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면 작전을 바꾸는 편이 옳겠죠.”

“…해 볼게요. 어쨌든 저분이 저를 지켜주신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 거죠?”

연화는 월이를 가리켰다. 월이는 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그렇게 될 거다.

“네. 이번에 월이는 연화 씨를 보호하는 데 집중하게 될 거에요.”

“그럼 할게요.”

그럼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두렵기는 하지만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럼 준비하고 계세요. 저녁에는 움직여야 할 테니까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진짜로 포획작전을 한번 해 봐야겠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