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3)
“…하는 일이 있었던 거야.”
월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훈은 아예 정신을 잃은 상황이고, 연화 역시 흡혈귀가 사라지자 긴장이 풀린 것인지 기절하듯 쓰러졌다.
결국 월이는 두 사람을 다시 사무소로 옮긴 뒤 상황을 하소연하틋 전했다.
차마 자신을 ‘공주’라 부른 부분은 전하기 싫어서 제외하긴 했지만.
“그래서, 다행히 큰일까지는 안 났다는 건가.”
심각한 표정으로 태주는 말했다.
“아니, 정정해야겠네. 큰일이 났지만 간신히 막은 거니까.”
조금이라도 부적이 떨어진 걸 늦게 알았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월이가 늦장을 피웠다면 그대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납치당했다.
“어휴, 이래서 가기 전에 조심하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태주는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가 부적을 놓고 간 걸 어째. 간신히 막아내긴 했으니 그저 다행이라 생각해야지.”
시아도 지금이야 진정했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진심으로 식겁했었다.
“일을 다 해놓고 그렇게 사람이 죽으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지.”
태주 역시 공감이었다.
“설마 당일에 바로 나타날까 싶긴 했는데,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시아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밤 정도는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시아는 한숨을 쉬고는 별생각 없이 왼손으로 커피를 들었다가 급히 다시 놨다.
“윽!”
붕대를 감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상처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프죠?”
태주는 착잡한 표정으로 시아의 손을 봤다.
“그래, 아프네.”
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태주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왜 오바해서 손에다 칼을 그렇게 크게 그어요.”
솔직히 피가 그렇게 많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시아가 칼로 손을 그을 때 그래서 다들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그어서.
시아는 겉으로만 보면 상처 한둘은 얼마든지 낼 수 있을 것처럼 쿨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사실 생각보다 아픈 걸 잘 못 참는다. 그런데도 그만한 상처를 냈다.
그만큼 이번 일의 연출에 진심이었다는 말이다.
태주는 조금 타박하듯 말했다.
“괜히 그러다 흉 지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흉은 안 지겠지. 설이가 자기가 산에서 만들어 쓰던 걸 발라 줬으니.”
“아니, 그러면 의연하게 잘 참기라도 하던가, 약 바를 때 진짜 그렇게 호들갑 떨면서 꿈틀거릴 거면 애초부터 살살 하라고요.”
효과야 보장이 되어 있다지만 그 연고에 통증 완화 기능은 없었기 때문에 상처는 심히 쓰렸고, 시아는 상처에 약을 바르는 내내 징징거렸다.
“그래도 이런 건 분위기라고 분위기. 조금 있어 보이는 연출 한 번으로 사람이 넘어오느냐 아니냐가 갈린단 말이다.”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시아는 울상을 지었다. 왜 하필 그 손으로 잔을 쥐어서.
“…그래도 네 말대로 몇 센티만 적게 그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는 되는데.”
“그래도 흉은 안 남을 거예요.”
연고를 즉석에서 만든 설이가 보장했다. 직접 많이 써 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야지. 그 정도로 아프면 흉은 남지 말아야지.”
시아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설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부터는 조심해야죠! 또 아프기 싫으면요!”
“내가 장담하는데.”
월이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확실히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 저 언니 또 저런다.”
“그건 그럴 거 같긴 해.”
태주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는 시아 자신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시아는 결국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곳에 시아 편은 없었다. 결국 본인 몸 걱정해서 하는 소리다 보니 더 투정 부리지도 못했다.
“아하하, 그럼 또 이거 발라야죠, 뭐.”
설이가 웃으며 하는 말에 시아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드문 표정이다.
“맞다, 이번에 상대가 흡혈귀면 이전에 있었던 일 이야기 해 준다고 하셨었죠?”
설이는 문득 떠오른 듯 물었다.
“엑… 싫어….”
이번엔 월이가 표정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대가 흡혈귀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이야기다. 이야기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엑은 뭐가 엑이야? 할 이야기니 하는 거지.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했어.”
“그…것도 그렇긴 한데.”
하지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월이는 눈을 찌푸렸다.
“난 그럼 일어날래. 나 빼고 해. 별로 안 듣고 싶으니까.”
월이는 방금까지 들고 있던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거까진 안 말린다. 그럼 방금 네가 들고 온 두 명 잘 있나 확인이나 좀 하고 있어.”
태주의 말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월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라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월이는 곧바로 기절한 두 사람을 눕혀둔 다용도실로 향했다.
저렇게 기분 나쁜 걸 티 내서야. 태주는 살짝 혀를 찼다.
솔직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을 하려면 자기감정을 숨길 줄은 아는 편이 좋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좀 기분 나쁠 일인가요?”
설이는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다.
본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이해가 간다는 듯 끄덕거리고 있으니 뭔가 이유는 있을 텐데, 그걸 모르겠다.
태주는 월이가 자리를 완전히 비우는 것을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그게 월이가 늑대인간이 되어버린 사건 때문인 거라서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월이도 태어날 때부터 늑대인간이었던 건 아니거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래도 벌써 연 단위가 지난 일이네.”
태주는 이제는 약간 오래된 기억을 꺼냈다.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대로 돌아버린 늑대인간이 하나 있었어. 그리고 그 돌아버린 늑대인간은 왕이었지.”
가장 강하고,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태주는 그놈을 떠올리기만 해도 싫다는 듯 살짝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돌았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글쎄, 뭐부터 말해줘야 할까.”
설이의 질문에 태주는 어떤 사건을 말해줄지 잠시 고민했다. 사실 어떤 사건을 말해도 제대로 미친놈이란 걸 알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미친 사건을 말하자면 이 부분부터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늑대인간은 자기만의 신념 때문에 자기 동족을 모두 죽이고, 연관이 있는 것들도 모두 죽였어.”
“네?! 갑자기요?”
전개가 너무 갑작스럽겠지만, 태주에게도 더 설명할 중간 과정이 없다.
“응. 갑자기.”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다. 마치 이번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전조도 없이, 근거도 없이.
“어, 다른 동족들이 뭔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거나, 뭐 잘못을 했나요?”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뭐, 늑대인간 자체가 인간 기준으로 보면 늘 죄를 저지르는 종족이지만 말이야.”
사람을 물거나, 혹은 죽이기도 하고, 혹은 평범하게 겁을 주거나 하기도 한다.
그런 행동들은 당연히 인간 기준으로는 잘못이지만 자기들 기준으로는 그렇다 할 수 없다. 최소한 그들의 수장이 갑자기 동족을 모두 죽여야 할만한 잘못은 아니다.
“특별히 뭔가 큰 잘못을 하지는 않았어. 그냥, 정말로. 자신이 어느 날 문득 깨달은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라.”
“어떤 사실인가요?”
“이대로 간다면, 자기 종족은, 그러니까 늑대 인간은 모두 멸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던데.”
지금까지와 같은 모습으로는 결코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다.
변하지 않으면 늑대인간 이야기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사람은 이제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리면 늑대인간이 되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밤마다 울부짖는 소리가 나더라도 귀찮아할 뿐이다.
이대로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고, 그저 소모적인 이미지만이 남는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도 이야기로 박제되어 보존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괴담으로서는 어떨까.
하지만 동족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너무 본능적이고 육체적 강함에 집착한다.
“변할 수 없다면, 아예 다 죽이고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 그게 범행 동기야.”
“자기들같이 낡은 것들이 이 자리를 지켜봐야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할 거라나 뭐라나. 그런 소리를 하더군.”
문제는 어느 정도 그 생각이 맞기도 했다는 점이다.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괴담으로써의 늑대인간은 100년 안에 죄다 사라지고 말았겠지.
“하지만 그 신념이고 뭐고 일단 대책 없이 다 죽인 거라서 말이야, 새로운 후계를 만들 필요가 있었어. 이왕이면 기존의 늑대인간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는 종류의 사람으로.”
그래서 늑대는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해 가장 평범한 사람을 물었다.
아마 미래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할 수 있는,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을 만한 그런 아주 평범한 사람.
아무나 고르면 된다. 그렇기에 늑대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물었다.
모든 늑대인간이 달을 좋아하듯,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물었다.
그게 월이다.
“월이는 환장할 노릇이었지. 정말로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늑대인간이 되어 있었던 거거든. 어떤 다른 이유도 없이, 그저 이름이 그래서 물린 거고. 그래서 트라우마도 하나 생기고.”
갑자기 생긴 힘은 월이가 다루기 어려웠다.
“트라우마요?”
“맨 처음에 자기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자각도 없는 상태로 움직이다가 사람 하나를 크게 다치게 했거든. 그래도 이 이후의 이야기는 그 사건과는 조금 다른, 월이 이야기니까 생략하겠지만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겠지?”
자세한 사정까진 여전히 모르겠지만 월이가 왜 이 이야길 싫어하는지는 알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야 떠올리기도 싫을 법도 하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그 늑대는 어떻게 됐는데요?”
“스스로 사라졌어. 자살한 거나 다름없지 뭐.”
설이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뭐예요?”
그냥 제대로 미친 괴물의 연쇄살인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원래 괴물이라는 게 그렇지.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부분, 혹은 두려워하는 부분만을 모아서 만들어진 거니까.”
시아는 말했다.
“사실, 그래서 괴물이 자신의 괴물성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오는 건 괴물로써의 몰락 뿐이다.”
그래서 아마 그 늑대는 동족을 죽였을 거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아….”
설이에게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본질을 버린 괴물은 결국 쌓아둔 것을 소모하며 조금씩 사라져 갈 뿐이다.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지 않는 이상에는 그대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늑대인간이 보기에는 늑대인간이 가지는 특유의 괴물성을 버리지 못하면 종족 전체가 더 오래 갈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죽였다.
“모순적인 일이지. 늑대인간이라는 종족을 보존시키기 위해 늑대인간을 죄다 죽여버리다니.”
시아는 짧게만 평했다.
“잠깐만, 그런데 그건 늑대인간 이야기지 흡혈귀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설이는 당연한 의문을 표했다. 태주 역시 설이의 생각 자체에는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이건 흡혈귀 이야기가 맞다.
“아냐. 이건 흡혈귀 이야기이기도 해.”
태주는 눈을 찌푸렸다.
“말했지? 그 늑대인간이 자신의 동족과 그 비슷한 것까지도 모두 죽였다고?”
“어….”
설이는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는 이내 알아챘다.
“혹시 그 늑대가…”
“그래. 흡혈귀나, 다른 웨어비스트같은 자신의 친척 계열도 모두 죽였어.”
단순한 늑대인간만을 죽인 것이 아니다. 비슷한 종류 모두를 죽였다.
“하나도 빠짐 없이요?”
“그래. 심지어는 본인조차도 빠짐 없이. 그러니 미친놈이라는 거지.”
사람으로 따지만 전 인류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고릴라나 오랑우탄같은 것까지 싹 다 죽여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그렇다 쳐도, 고릴라나 오랑우탄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날벼락이다.
그래서 세상에 흡혈귀의 이야기는 있지만, 진짜 흡혈귀는 없었다. 그렇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은 흡혈귀다.
“여전히 우리는 있을 리가 없는 괴물이 갑자기 나타난 상황에 처해 있는 거야. 환장할 노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