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2)
몇 시간 전, 시아가 홀로 연화와 대화하러 가기 직전에 태주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했었다.
“너는 첫 번째 살인자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해?”
붉은 마스크 문제는 해결이 되어가고 있지만, 진짜 살인범에 대한 문제는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히 태주는 틈틈이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결론이 터무니없다. 그렇기에 태주는 선입견이 없는 의견이 듣고 싶었다.
“네? 저요?”
“그래.”
"어, 저도 생각한 게 있긴 한데…"
설이는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오자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던 답을 내놓았다.
“누가, 왜, 어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거기까지는 도저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주도 거기까지 바라고 질문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까진 나도 몰라. 그냥 살인을 저지른 게 어떤 괴물인지에 대한 추측을 말해 보라는 거야.”
틀려도 괜찮다는 태도로 태주는 말했다.
“부담 없이 말해 봐. 그냥 확인 좀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설이는 대답하기 부담스러운지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름대로 확신은 있는지 고민 없이 대답했다.
“전… 이번에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른 건 흡혈귀일 거 같아요.”
태주는 별다른 평가가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흡혈귀라.”
“뭐? 흡혈귀?”
정작 설이의 답변에 시끄럽게 군 것은 뒤에서 듣고 있던 월이다. 갑자기 들린 흡혈귀라는 단어에 월이는 황급하게 반응했다.
“그건 아닐 텐데?”
“어허, 지금은 네 차례가 아니야.”
태주는 잠시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로 월이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하지만 월이도 지금은 할 말이 있었다.
“아니 근데 흡혈귀일 리가 없잖아!”
“아, 좀! 잠깐 조용히 있어 보라니까!”
태주가 말했지만 흥분한 월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놈들 다 죽었다며!”
“뭐?”
설이에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태주는 조금 한숨을 쉬었다.
“에휴, 일단 지금은 저 말은 무시하고 네 생각을 말해 봐. 왜 흡혈귀라 생각했어?”
설이는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근거는 충분히 댈 수 있었다.
“어, 피가 사건 현장에 조금 적게 남았다는 점이랑, 남의 정신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이랑, 밤과 달에 대한 집착이랑, 귀족? 인 것처럼 구는 말투랑 창백한 피부에 붉은 눈이라고 하니까….”
태주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던 부분들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랑도 비슷하네.”
“어? 진짜?”
월이는 당황해 물었다.
“내가 이걸 설이한테 물어본 이유가 있지.”
태주는 월이를 살짝 흘겨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도 판단이 비슷할지 알고 싶었던 거야.”
선입견이 없이 봤을 때, 이것이 객관적으로 누가 한 일로 보이는지. 설이가 앞서 말한 정보를 모두 종합한다면 사실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정말로 흡혈귀 말고는 남는 게 없다.
“흡혈귀 이외에 생각나는 거 혹시 더 있었어?”
“아뇨. 없었어요.”
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두 가지씩 놓고 보면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할 수 있는 종류의 괴담은 많지 않다.
“그리고 나도 달리 생각나는 게 없어."
태주의 말에 월이는 당황했다.
“어….”
“그래서 물어본 거야. 내가 아니라도 같은 답이 나올지 궁금해서.”
그 말은 태주 역시 흡혈귀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까 설이가 말한 이유도 물론 있고, 그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심되는 것들이 있었거든.”
노숙자의 이상한 증언, 찌른 사람의 추정 키와 연화가 말한 괴물의 키가 다른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잘 추적하고, 죽일 수 있는지.
“만약 범인이 흡혈귀라면, 노숙자의 이상한 증언도 말이 돼.”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지 않고도 봤다고 착각하게 하거나, 아니면 직접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여주고 난 뒤 일부 사실을 흐릿하게 하거나.
혹은 아예 여자로 변신해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 자체를 노숙자에게 보여주거나.
설마 그렇게 변태 같은 방법을 썼을까 싶어 태주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어떤 방법을 쓰든, 그들에겐 노숙자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야.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고.”
“시아 언니는 뭐래? 다른 생각 나는 거 뭐 없대?”
자리에 없는 시아라면 태주의 가설을 멋지게 박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은근한 기대를 하고 월이는 물었다.
“뭐 없을걸? 그런 게 있으면 알아서 먼저 설명하러 왔을 거야. 그 누나도 말 많이 하는 걸 좋아해서.”
“끄으응.”
태주의 말에 월이는 전혀 반박할 수 없었다. 너무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진짜 흡혈귀일 리는 없는데….”
“그래. 사실 나도 이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태주는 그렇게 말하곤 어께를 으쓱이며 설이를 쳐다봤다.
“그런데, 흡혈귀가 다 죽었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요?”
“음, 상대가 정말로 흡혈귀라면 그때 알려줄게. 그냥 말하긴 조금 긴 이야기라서.”
태주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월이가 늑대인간이 된 것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야.”
월이는 기분이 나빠진 듯 손가락을 꺾어 우드득 하는 소리를 냈다.
“난 그래도 아직 흡혈귀가 있다는 사실을 못 믿겠는데.”
“사실은 나도 그래. 말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어.”
하지만 결론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태주는 조금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흡혈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 생각은 염두에 둬.”
월이는 혀라도 깨문 듯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 * *
“뭐? 공주?”
흡혈귀의 호칭에 월이는 소름이 돋은 듯 뒤집힌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진짜 너는 꼭 죽인다.”
저런 오글거리는 호칭은 누가 말해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저딴 녀석이 말하는 건 더 듣기 싫다.
하지만 흡혈귀는 그런 월이의 공격적인 말이나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왜 그런 호칭에 대해 거부하는지 의문을 품은 듯했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혈육은 아니라지만 왕이 직접 만든 후계이니, 그대를 공주라 칭해도 문제는 없겠지.”
듣고 보니 아예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게 더 열 받았다. 월이는 이를 갈았다.
“그 새끼가 왕이든 뭐든,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난 갑자기 늑대한테 물린 인간일 뿐이야.”
정말로 빠드득 소리가 입에서 났다. 거기에 담긴 힘이 어마어마했다.
“나한테 공주 같은 소리 하지 마.”
“하지만 그래도 그대라면 내가 존중하기에는 조금 합당한 상대지. 아무래도 요즘은 그럴 만한 상대를 만나기가 어렵거든.”
흡혈귀는 과장되게 양팔을 벌렸다.
“세상에, 귀족이 없는 시대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러니 나라도 그대를 공주라고 부르겠네. 귀족을 존중하지 않는 시대에 대한 내 자그마한 반항이라네.”
“내가 저거 팔이 아니라 혀를 잘랐어야 했는데.”
그럼 최소한 몇십 초는 말을 못 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긴 했겠지만, 정말로 아쉽기는 한 일이다.
“그리도 싫다면 다르게 부를 용의는 있지.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뭐라 부르면 되겠는가? 적절한 호칭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를 계속해서 공주라 부를 수밖에 없다네.”
“그냥 입을 다물어.”
“저런, 그렇다면 나는 계속 마음대로 호칭하겠네, 공주여.”
“시끄러. 말 걸지 마. 싸울 거면 싸우고 말거면 꺼져.”
월이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있는 한 이 뒤에 두 사람은 어차피 못 건드려.”
“흠, 그건 조금 어렵겠군. 하나는 내 적이고, 하나는 내 것이니. 둘 다 내 손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직성이 풀리지 않거든.”
“헛소리하지 말고 그냥 오라니까?”
월이의 말에 흡혈귀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솔직히 말해 그대에게 확실히 이길 거란 자신은 없다네.”
그다지 자신 없어 보이지는 않는 태도다. 역시나 흡혈귀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자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
“와, 표정 봐. 만만하게 보나 봐?”
“설마? 제아무리 나라도 자네와는 동격이니 만만히 볼 수 없지. 그것만은 겸허히 인정하겠네.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점이 있군.”
“뭘?”
“내가, 작정하고 저 남자를 죽이려 들면 과연 그대는 나를 막을 수 있을까?”
월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그대는 나보다 확실히 강해. 방금의 기습에서 확실히 알았다네. 단순한 속도와 완력으로 나는 절대 자네를 이길 수가 없겠더군. 그건 굉장히 단순하지만, 동시에 일 대 일의 결투에서는 참으로 치명적인 차이지.”
남자는 웃었다.
“하지만, 그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할 때의 이야기라네. 내가 팔 하나를 내주고 저 남자를 죽이려 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면 둘을 내준다거나? 내가 내 몸의 반쪽을 버려서라도 저 남자를 죽이고 도망치겠다고 한다면 그대는 막을 수 있겠는가?”
월이가 이긴다는 것은 상대가 싸워줄 때의 이야기다.
“그대는 변화한 나를 잡을 수 있겠는가? 나는 가루가 되고, 연기가 되고, 박쥐가 되고, 개가 되고 그림자가 될 수도 있다네.”
“될 수 있는 게 참 많네.”
비아냥대기는 하지만 난감한 일이다. 흡혈귀는 한층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래. 그리고 그건 흘러내리고, 끓어오르고, 날고, 뛰고, 녹아내릴 수 있다는 말이지.”
흡혈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내가 그런 수단을 쓴다면, 그대는 절대 나를 잡을 수 없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월이는 절대 흡혈귀를 붙잡을 수 없다.
“귀족이니 뭐니 해놓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거야?”
“그대도 귀족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지. 살아남은 자가 결국은 승리하는 법이니.”
수준 낮은 도발은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흡혈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선언하겠네. 나는 그대 뒤의 저것을 죽이고, 나의 것을 되찾아 갈 거라네. 그 과정에서 자네가 아무리 막으려 들어도 소용은 없다네.”
흡혈귀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사라졌다. 본인의 말대로 연기가 된 것인지, 그림자가 되는 것인지 월이는 구분하지 못했다. 월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지 못하다가, 아차 했다.
저건 도망치는 거다.
“이런 미친!”
월이는 곧바로 들고 있던 나이프를 던지기는 했지만, 나이프는 그 연기인지 그림자인지 모를 무언가를 통과해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혔다.
월이는 혀를 칫하고 찼다.
“야! 도망가지 마! 맞서 싸워!”
월이는 으르렁거렸다.
“전술적 사유로 피하는 것을 도망치는 것이라 말한다면 곤란하다네.”
“지금 너, 그대로 토낄 생각 아냐!”
월이는 소리쳤다.
“후후, 도망과 전술 역시 한 끗 차이라네. 제왕학을 배우지 않은 자네는 모르겠지만.”
흡혈귀는 모습을 숨긴 채로 웃었다.
“하하하, 좋은 소득이야. 오늘은 이대로 물러나겠지만, 나는 꼭 저자를 죽이고, 내 것을 되찾도록 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대와 결착을 내도록 하겠네.”
“저, 저 미친 새끼 저거!”
월이는 욕설을 내뱉었지만 당장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은 월이는 이를 갈며 흡혈귀가 사라지는 모습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 있으면 모를까, 뒤에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 추적도 힘들다.
그걸 알고 있는지 흡혈귀는 여유롭게 웃었다.
“오늘은 이만 가겠네. 좋은 만남이었다네, 공주.”
“으아아!”
마지막까지 흡혈귀는 성질을 긁었다. 월이는 이제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 잡히면 가만 안 둬!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