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마지막 흡혈귀 (1)
“아아….”
지금 나타나서는 안 될 괴물이 나타났다. 연화는 곧바로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애초부터 이렇게 느긋하게 굴어도 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작은 문제가 하나 해결되었다고 이렇게 방심한 채 웃어도 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대는 오직 연화를 괴물로 만들기 위해 사람을 죽일 정도의 미치광이다. 절대로 그냥 놔 줄 리 없었다.
“보아하니 붉은 마스크로 각성하는 것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군. 아, 이런! 내게 변명할 필요는 없다네. 분명 그대 스스로 실패한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 확실해 보이니까 말이야. 음, 그렇지. 정확한 사태의 파악은 중요한 부분이지.”
남자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공허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온도가 없다. 그저 자상하기만 할 뿐 그 안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그렇기에 남자의 목소리는 듣기에는 부드러우나 동시에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쉽군. 참으로 아쉬워.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좋은 계획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남자는 아쉽다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건 마치 인형이 인간의 표정을 배워 따라 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보였다.
과장된 연극조임에도 별다른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그렇기에 연화는 소름이 돋았다.
왜 지금까지는 저걸 알 수 없었던 걸까.
연화는 팔이 덜덜 떨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당신은 대체…!”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다.
“대체 뭐야…!”
저건 괴물이다. 자신 같은 되다 말았던 괴물과는 다른.
그러나 남자는 묘하게도 아직 연화에게는 상냥했다. 태도뿐이긴 하지만 그랬다.
“와인을 만드는 것처럼, 한번 작업을 거친 후에는 순리에 맡기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했던 내 잘못이라네. 참을성이 없는 인간들처럼 첨가물을 넣는 건 취향이 아니었거든.”
남자는 자상하게, 그러나 동시에 연화 자신의 두려움과 공포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짓했다.
“의도한 것보다 조금 그러한 성향이 옅어지는 것 정도야, 천사의 몫으로 넘겨줄 생각도 있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건만 그렇다 해도 아예 통째로 날아가는 것은 원했던 바가 아니지.”
대답이 없음에도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해도 울타리 정도는 쳐야 했다는 후회가 드는군. 이걸 이 나라 말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하던가? 참으로 적절한 속담이로군, 그래. 하지만 아직 돌이킬 방법도 없는 건 아니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건 웃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불길했고, 또 공포스러웠다.
“야, 정신 차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연화는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참으며 황급히 지훈에게 외쳤다.
“정신 차리라고!”
하지만 지훈은 이미 눈에 초점이 없었다. 연화는 지훈의 몸을 흔들어도 봤지만, 눈만 잠시 깜빡일 뿐이었다.
연화는 이를 악물었다.
“아하, 그건 내 마지막 자비이니 그대로 두게.”
남자는 여전히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하지만 내 외양간을 망친 이를 내버려 둘 만큼의 자비는 없다네.”
“설마 죽일 건가요?”
“그래. 고통스럽지는 않겠지.”
남자는 너무나도 산뜻하게 긍정했다.
마치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지를 집는 것처럼 당연한,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다. 그게 너무나도 소름 끼쳤다.
연화가 공포에 찬 태도를 보이자 그제야 남자는 조금 설명을 덧붙였다.
“너무 그러지는 말게. 친구에게는 와인으로, 그리고 적에게는 피로 대접해야지. 그것이 전통적인 방법 아닌가?”
“이 녀석은…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요.”
연화는 물론 지훈도 싫었다. 처음에는 아예 죽어도 별로 개의치 않을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그게 죽이고 싶다는 건 아니었다.
“그, 그러니 이 애가 죽을 이유는 없어요!”
“하지만 자네가 죽이고자 하던 이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지.”
남자는 웃었다.
“적의 친구는 적이니까.”
“전… 이 애를 용서했다고요. 이 애도 저를 용서했고요.”
그 말에 남자는 처음으로 연화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을 약간 찌푸렸다.
“용서라, 그건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지, 약자가 강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닐세.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한번 교육을 할 필요가 있겠어.”
아주 천천히 남자는 걸어왔다. 하지만 지훈은 도망치지 않았다. 여전히 넋을 놓은 채였다.
다른 방법이 없다. 연화는 조금 세게 지훈의 뺨을 때렸다. 뺨이 조금 시뻘겋게 부어오를 정도였으나, 지훈은 정신 차리지 못했다.
“야! 정신 차려!! 그러다 진짜 죽어!”
“일어나도 죽는다네.”
조금 놀리듯 남자는 말했다. 어느새 남자는 연화의 눈앞에 서 있었다.
“고작 평범한 인간 따위가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훈을 깨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상대는 그래도 자신에 대해서는 아직 호의적이다. 거기에 기대서라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연화는 그런 기대를 품었다.
“혹시 이 친구를 죽이지 않으실 생각이 있나요?”
“전혀 없다네.”
“방법이 아예 없나요?”
“아예 없다니? 그런 고민 자체를 지금 처음 해 보는군.”
남자는 처음으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흠, 하나 생각이 나는군.”
“뭔가요?”
연화는 조금 화색을 띠고는 말했다.
“뭔지는 몰라도 그렇게 할게요.”
“내가 저 인간을 죽이지 않는 방법. 후후, 그건 그대가 저 인간을 죽이는 거라네.”
남자는 웃었다. 제 딴에는 위트있는 농담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웃었다.
“그건….”
연화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결국은 살려줄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겠나?”
괴물은 웃으며 물었다. 연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어버렸다.
눈앞의 남자는 정말로 괴물이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내 기대 이상의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러긴 힘들어 보이는군. 뭐, 당장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네.”
이젠 방법이 없다.
“원래는 그대가 본능적으로 해야 했던 일이라네. 하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시범은 한번 보여줘야 하겠군.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 그 선생을 죽일 때 보여주는 것이 합리적이었겠어.”
괴물의 팔이 천천히 뻗어 나갔다.
“안돼.”
연화는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이대로면 지훈을 죽게 둘 수 없었다. 제발 누군가 도와주길 연화는 간절히 빌며 몸을 지훈에게 내던졌다.
그리고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쾅!
“어휴, 한참 찾았네!”
마치 유성처럼, 하늘에서 월이가 떨어졌다. 동시에 은색의 원이 그려졌다.
“큭-!”
괴물이 무심코 신음을 낼 정도로 강력한 기습이었다. 어떠한 전조도, 예상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일격. 공격은 빨랐고, 막을 수도 없었다.
월이는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괴물을 노려보았다.
타격을 입은 괴물은 십수 걸음 이상의 거리를 밀려났다.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인 괴물은 그래도 잠시 뒤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군.”
괴물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나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종류의 기습이라?”
월이는 손에 든 칼로 상대를 삿대질했다.
“야! 팔 한쪽 잘려 놓고 태연한 척하지 마!”
그제야 툭, 하고 손목까지 보이는 팔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확실한 이득을 챙기는 견실한 수법이군.”
괴물은 칭찬이라도 하듯 말했다.
“완벽해. 그대는 이 일격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네. 참으로 아름다운 일격이었어.”
“뭐라는 거야? 진짜 제대로 미친놈 아냐 이거?”
월이는 어처구니없다는 태도로 말했다.
“흠, 칭찬은 순순히 받아들이는 버릇을 기르게. 겸손은 좋은 자세지만, 그 말투가 감점 요인이니.”
금발의 괴물은 무심코 잘린 왼팔로 포즈를 취하려다 지금은 팔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무안하게 말했다.
“아, 그래. 팔이 잘리는 일은 내가 드물게 겪은 일이라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조금 어색하긴 하군. 수십 년을 사는 동안 몇 번 겪어보지 못한 일인지라.”
“수십 년? 그동안 헛살았나 봐?”
월이는 날 선 태도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기습에 걸려들지.”
월이는 곁눈질로 방금 사용한 나이프를 확인했다. 날에 이는 빠져있고, 몸체에는 금이 가 있으며 검신 자체도 조금 휘어 있다. 월이는 살짝 혀를 찼다.
하지만 지금 당장 버릴 수는 없다. 아마 어떻게든 한 번 정도는 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자, 이거.”
약간의 소강상태를 틈타 월이는 등 뒤로 뭔가를 살짝 던졌다. 시선도 경계도 모두 다 눈앞의 괴물에게 쏠려 있었지만 던지는 방향만큼은 정확했다.
“으앗,”
갑자기 날아온 물건을 받으려 연화는 황급히 손을 뻗었다. 손에서 물건이 한번 튕겨 나갔지만, 그래도 떨어트리지는 않고 간신히 받아냈다. 그것은 작은 나무토막이었다.
“이게…?
“그거, 부적이야. 이전에 그 남자애한테 준건데 바보가 놓고 갔더라고. 에휴, 정말!”
이걸 사무소에서 발견했을 때 태주는 식겁했고 시아는 뒷목을 잡았다. 그리고 월이는 긴급출동 당했다.
“그게 있다고 날 막을 수 있진 않을 텐데.”
“시간은 벌잖아? 그리고 그 정도 시간이면 내가 올 수도 있고.”
“틀린 말은 아니군.”
괴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저게 있다면 몇 분 정도는 확실히 시간은 끌릴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 월이가 올 수 있다면, 확실히 저건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
“그걸 보니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가는군. 방법의 역전을 생각한 건 그대, 혹은 그대가 속한 집단의 누군가인 게로구나?”
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히 더 말해서 정보를 줄 필요는 없다. 그 태도를 본 괴물도 짐작한 듯 웃었다.
“그래, 말하지 않을 셈이군. 그런다고 내가 못 알아낼 것도 아닐 텐데.”
“입 다물고 덤비시지?”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월이는 언제 상대가 달려들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달려들지 않았다.
“너무 그러진 말게, 라이칸스로프. 간만에 숙적을 만나서 반가울 뿐이니. 그대 종족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자 가장 큰 원수이니, 조금 감상에 젖는 정도는 괜찮겠지.”
갑작스럽게 정체가 까발려진 월이는 기분이 더욱 상했다.
“그딴 말을 하는 거 보니까. 넌 정말 흡혈귀가 맞나 보네.”
“물론 그렇지. 혹시 의외였는가?”
금발의 남자는 이번엔 진심으로 웃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처음으로 소름 끼치지 않는 미소라고, 연화는 생각했다.
“그래. 의외지.”
월이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흡혈귀는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말이야.”
“물론, 다 죽었다네. 나 하나만 빼고 말이야.”
남자는 어느새 다시 생긴 왼손을 가슴 쪽에 가져다 대고, 오른쪽 팔을 앞으로 뻗으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마지막 흡혈귀가 인사하겠네. 우리 종족을 절멸시킨 라이칸스로프의 공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