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99화 (99/269)

9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6)

붉은 마스크로서의 충동은 진정되긴 했지만, 아직 연화 본인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때문에 지훈은 잠시 바깥에 나가 있기로 했다.

가로등이 깜빡거렸다. 조금 낡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무섭지는 않았다.

어쩌면 방금 너무 충격적인 것을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정말 이걸로 끝난 건가요?”

“붉은 마스크는 그렇죠.”

하지만 정말로 사건이 끝난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직 선생을 죽인 존재의 정체도 파악되지 않았고, 애초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건 제가 도울 일이 없겠죠?”

"하하, 그건 없죠. 게다가 방금 감수하신 위험 정도는 애들 장난인 수준일 정도로 위험할 걸요?”

태주는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그래도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도움이야 뭐, 사실 이미 충분히 되셨죠.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저희 이거 공짜로 하는 일 아니에요.”

“어, 맞다 그랬죠.”

지훈은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태주는 조금 웃었다.

“벌써 주머니 뒤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훈은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연화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질문 하나 더 해도 될까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요.”

연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다. 지훈은 아마도 이게 마지막이 될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선생님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도 되는 걸까요?”

지훈에게는 아직도 좋은 선생님이었다. 한번 그만둘 뻔했던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은인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선생이 아니었다는건 알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나쁘기까지 한 선생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 선생은 지훈에게 은인이었다.

“글쎄요. 그게 제가 결정해 드릴 수 있는 걸까요?”

하지만 태주는 대답하지 않고는 웃으며 역으로 되물었다.

하긴 그렇지는 않다. 지훈은 조금 실망했다. 그래도 뭐랄까, 조금 대단한 답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지훈이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태주는 계속 말했다.

“사람의 행동은 말만큼이나 주워 담을 수 없죠. 이미 한 행동은 바뀌지 않아요. 의도야 어쨌든, 그리고 그 사람의 본성이야 어쨌든 그래서 이미 한 행동은 바꿀 수 없죠. 시간이라도 돌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에요. 연화 씨가 들은 말은 평생 사라지지 않겠죠.”

태주의 말에 지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이 애써 외면했을 뿐 선생은 교사로서는 정말로 최악의 인간이라 해도 좋았다.

그런 지훈의 실망을 짐작이라도 한 듯 태주는 이어 말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선행도 사라지지는 않는 거잖아요? 연화 씨에게 선생이 한 좋지 않았던 행동들은 앞으로 절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훈 씨에게 선생이 준 도움도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그럴까요?”

“그런 거죠. 사실, 세상에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약간은 명쾌한 기분이었다.

“다만 본인이 받은 것 때문에 그 사람의 악행을 덮으려 든다면 그건 확실히 잘못이겠죠.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사람을 감싸고 싶다면… 뭐 거기서부터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걸로 봐야겠죠.”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생각보다 세상엔 그런 사람이 많거든요.”

지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은 자신도, 선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손님이라면 앞으로도 그 정도 구분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태주의 짓궂은 말에 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

“으, 아니 그게….”

다시 떠올려보니 오글거린다. 지훈은 갑자기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연화는 언제 나오는 거야?”

“오래 갈 부상은 없지만 아마 근육통 정도는 있을 거라서요. 정리하고 나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근육통이라. 어쩐지 현실감이 있는 단어다. 이젠 괴물이 아니던가.

“그런 부분은 묘하게 현실적이네요.”

“진짜 붉은 마스크가 아니게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회복력이 꽤 좋아서 내일이면 나을 거에요.”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연화는 거의 들려서 문 바깥으로 내보내 졌다. 제 발로 걷는 걸 너무 힘들어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가셔야겠네요.”

태주의 말에 지훈은 당황했다.

“어, 이대로 가면 되나요?”

“네. 저희는 아직 일이 좀 있어서요. 바래다 드리기는 좀 어렵겠어요. 연화 씨를 데려다드리는 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주는 기대있던 벽에서 몸을 바로 일으켰다. 들어가려는 것이다.

“아, 저기!”

지훈은 큰 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아직 받을 때가 아니에요. 처음 의뢰하신 내용은 이제야 시작지점에 온 셈이라서요.”

태주는 잠시 쓴웃음을 지은 뒤 표정을 바꿨다.

“그러고 보니 의뢰가 범인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거라 하셨죠?”

“네, 그랬죠.”

태주는 드물게도 사나운 눈으로 웃었다.

“그거, 제가 꼭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라서요.”

* * *

결국은 사무소 앞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전신 근육통이라고?”

지훈은 물었다.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걸을 수는 있고?”

“아니. 못 걷겠는데.”

연화의 신체는 이미 한계였다. 맨 처음 지훈이 뛰다 넘어졌을 때처럼 연화의 다리도 지금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결국 지훈은 말했다.

“업힐래?”

“아니.”

질색하는 표정으로 연화는 말했다.

“방금까지 죽이네 사네 하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런 사람 등 뒤에 업히라고?”

“그래도 너 못 걸을 텐데.”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한 표정이었다. 연화도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자존심 문제다.

연화는 지훈의 손은 별로 빌리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주저앉아 집에 못 돌아가더라도 차라리 그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업혀. 부모님 걱정하시지 않겠어?”

“윽….”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동안 집에 못 들어갔잖아.”

“…안 들어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화는 더 이상 집에 가는 걸 미룰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사실 요 며칠간 학교에 안 가는 건 숨길 수 있었다. 고작 학생 하나가 며칠 등교하지 않는 사소한 일 따위에 신경 쓰기에는 학교의 상태는 너무나도 개판이었다.

하지만 집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잘 학교 다니는 줄 알고 있는 딸이 어느 날 저녁에 안 들어온다면 당연히 집안이 뒤집힌다.

결국, 연화는 지훈의 등에 업힐 수밖에 없었다.

“너는 무섭지도 않아? 충동이야 없다지만 아직도 난 너를 죽일 수는 있는데.”

연화의 말에 지훈은 작게 웃었다.

“내가 운동을 좀 해서 아는데, 원래 사람을 죽이는데 별 대단한 기술은 필요 없어. 네가 원래 상태의 평범한 몸이었어도 지금 상태로 있으면 날 죽일 수 있을걸?”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이야 그런 충동은 없지만 업혀있는 지금 작정하고 목을 조른다면 지훈은 아마 죽을 거다. 연화가 평범한 사람이었다 해도.

“…그딴 소리 하지 마.”

자신이 그런 짓을 하려 했다는 것에 몸서리가 쳐졌다. 등 뒤에서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던 건지 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 안 들지?”

“안 들어! 미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걷기나 해.”

그렇게 지훈은 걸었다. 말이 없어지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어색했다.

“야, 이렇게 된 김에 말이나 좀 해봐.”

조금 더 어색했던 건 업혀있었던 연화였다.

“너는 그 선생이 왜 그리 좋았냐? 그냥 조금 챙겨줘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연화의 질문에 지훈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운동을 하게 해 준 사람이라서.”

“뭐? 너 계속 운동하던 놈 아냐? 체전 나가는 게 한 학년 만에 뚝딱 되는 건 아닐 텐데.”

“그래. 사실 정확히 말하면 그만두려던 걸 말린 거지. 그 선생님이.”

그건 처음 듣는 말이다. 연화는 호기심이 일었는지 물었다.

“왜 그만두려 했는데?”

“운동은 말이야. 사실 재능이거든.”

지훈은 말했다. 연화는 살짝 발끈해서는 말했다. 그 재능이 넘치던 게 지훈 아니었던가.

“자랑하는 거야? 지금?”

“아냐. 자랑처럼 되긴 했지만.”

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메달까지 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나 싶긴 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운동을 잘해. 지금도 학교에서는 제일 잘하겠지.”

“그런 놈이 재능 이야기를 하냐?”

연화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로 밖에는 안 들렸다.

“좀, 들어보라니까.”

“그렇잖아. 메달까지 딴 사람이 무슨 소리래? 너 그래서 그 선생한테 편애받은 거 아냐.”

“그건 뭐, 부정하지 않겠지만.”

지훈은 말했다.

“내가 딴 건 동메달이었잖아.”

“그게 왜?”

동메달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지역구 수준에서는 가장 잘하는 거고, 동 세대의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 중 삼등이라는 건 분명 최상위권의 성적이라는 말이다.

“엄청난 거 아냐?”

“그건 알아.”

“그런데 뭔 말이야?”

“나는 4강에서 졌어. 내 상대가 결승전에 올랐지.”

“한번 졌다고 그 지랄하는 거면 뒤진다 진짜.”

“아니, 져서 그런 거긴 한데 그냥 져서 그런 건 아니고.”

지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눈앞의 이 사람은 못 이기겠다 싶었거든. 내가 모든 걸 다 쏟아부어도 못 이기겠다 싶었어. 아, 이놈은 진짜 천재구나 싶었지.”

미련도 후회도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졌다. 지금까지 중 가장 선전했지만 그럼에도 이길 수가 없었다.

“내가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건 명승부였어. 아마 내가 평생 운동을 해도 다시 그런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한 승부였지. 3, 4위 결정전이 오히려 훨씬 쉬웠을 만큼.”

그건 지훈이 만나서 처음으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느꼈던 벽이었다.

“난 옛날에 그렇게 지면 분할 줄 알았어. 그런데 분하지도 않더라. 아쉽지도 않고.”

그때 지고 나서 지훈은 아마 웃었던 것 같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그런 미소.

“천재를 만나서 절망했다, 뭐 그런 이야기?”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도 있긴 한데.”

지훈이 동메달 결정전을 이기고 난 뒤에는 결승전이 일어났다. 순서가 그렇다. 동메달을 확보한 지훈은 결승전을 보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경기를 봤다.

“내가 만났던 상대가 은메달을 따더라고.”

“어….”

“그리고 아마 내가 그 사람한테 지고 나서 지었을 표정을 그 은메달 딴 사람한테서 봤어. 점수 차도 좀 났고 말이야.”

스스로 아쉽지도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서도 졌다. 은메달을 딴 사람의 얼굴에서 보이는 미소는 바로 그런 미소였다.

“내가 벽을 느낀 상대가, 벽을 느끼고 진 거지.”

평생을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상대가, 마찬가지로 평생을 해도 이길 수 없을 상대를 만나서 은메달을 땄다.

그때 지훈은, 그 길을 더 걸을 자신이 사라졌다.

“다행히 나는 성적도 좀 좋은 편이었으니까. 접고 나서 할 일도 있었던 거지.”

지훈은 그리고 침묵하다가는 말했다.

“그리고 사실, 그때 나를 도와준 건 그 선생님이야.”

“그 인간이 뭘 했길래?”

“별 건 아니고… 아깝지 않냐는 말을 하더라고. 그만한 재능이.”

연화에게는 폭언을 일삼은, 그리고 본인이 해야 할 일도 해 주지 않은 나쁜 교사였을지 몰라도 지훈에게 선생님은 정말로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이었다.

“더 재능이 없어도 그 길로 가는 사람은 많아. 사실 맞지. 나는 동메달이고, 같은 또래 중에 3등이라는 거니까.”

그런 사람이 그 종목을 포기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일등이 아니더라도, 좋은 선수는 많고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 길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정도의 재능을 그대로 버리는 것은 아쉽다.

선생은 그렇게 지훈을 설득했었다.

최고의 선수가 아니더라도 그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많다고.

“글쎄, 지금 와서 보면 아마 자기 명예욕을 채울 생각이었을 지도 몰라. 어쨌든 체전에서 메달을 딸 정도의 실력은 되었던 사람인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정신 부여잡고 준비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거든.”

그렇기에 지훈에게는 명백한 은인이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연화는 조금은 기분이 나빠져서 말했다.

“그 사람이 생각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날 선 연화의 말에 지훈은 황급히 말했다.

“아니, 아냐. 그건 아니야. 너한테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어. 그냥 그 선생님이 나를 설득할 때 했던 말이 기억이 나서.”

“뭐라고 했는데?”

아무리 연화라도 그 선생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조금 궁금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고.”

“뭐야 그게.”

시시하다는 듯 연화는 말했다.

“당연한 말이잖아.”

“당연하지만 말이야. 나는 그 말이 참 좋았거든.”

지훈에게는 큰 도움이 된 말이었다.

“아깝다고, 내가 운동을 그만두는 걸 나보다 더 아깝다고 해 준 그 말이 나는 너무 좋았어.”

“네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좋은 사람인데 말이야.”

하지만 그 선생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연화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걸 지훈도 알았다.

“그래. 나한테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그렇기에 지훈은 딱 그 정도로 말을 마무리했다.

“자, 여기랬지?”

지훈은 아파트 앞에서 연화를 내려 주며 물었다.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오래 걷는 것은 무리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한테 혼나겠네….”

무심결에 연화는 중얼거렸다.

“글쎄, 편이라도 좀 들어줄까?”

조금 진지한 얼굴로 지훈은 그렇게 말했다. 차라리 그냥 늦게 들어가는 편이 낫지 남자한테 업혀서 집에 돌아오는 꼴을 엄마한테 들키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 녀석을 남자친구로 오해받기라도 하면 차라리 죽고 싶어질 것 같았다.

“제발 그냥 내려놓고 빨리 꺼져.”

그렇기에 연화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이 조금 웃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렸다.

“꺼지라니? 레이디의 말치고는 너무 험하군?”

“어?”

익숙한, 그리고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였다. 두 사람의 저 멀리 뒤쪽에서 괴물이 나타났다.

“매너가 모자라지 않은가. 아무리 여자가 남자를 고를 때 우선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중한 매너가 없으면 결국 원망을 사게 된다네.”

붉은 눈의 남자가 연화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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