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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98화 (98/269)

9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5)

지훈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으악!”

지훈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하며 눈을 감았지만, 정작 눈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고, 어떤 충격도 오지 않았다.

“안심하세요. 그 선 바깥에 있으면 안전하니까요.”

익숙한 태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살그머니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끔찍한 광경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보기에 연화는 이곳까지 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반투명해 보이는 어떤 막 같은 것 안에 연화는 갇혀있었고, 그 안에서 연화가 너무 폭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월이가 있었다.

지훈은 잠시 쿵쾅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은 뒤 가슴을 한번 쓸어내렸다.

“아니, 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에요?!”

지훈은 조금 진지하게 다시 나가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솔직히 문을 열자마자 있는 게 피에 젖은 붉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연화고, 그 연화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인 건 심장에 영 좋지 않았다.

“테스트 중입니다.”

정작 태연자약한 태주의 모습에 지훈은 나만 이렇게 심각한가 싶었다.

“테스트요?”

“네. 당신을 보고 정신을 차릴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테스트에요.”

“…아무리 봐도 못 차리는 것 같은데요.”

솔직히 스플래셔 무비라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성을 잃고 붉은 마스크를 낀 채 달려드는 사람이, 안에 있는 뭔가 대단해 보이는 사람에 의해 튕겨 나가고 있는 모습은 영 보기 좋지 않다.

가장 끔찍한 점은 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는 사람이라는 거다.

“지금은 못 차릴 겁니다. 연화 씨를 붉은 마스크로 만든 놈이 순서를 바꾸는 트릭으로 연화 씨를 붉은 마스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죠?”

“네.”

솔직히 반 정도밖에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듣긴 들었다.

“이번엔 저희가 순서를 바꾼 겁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마스크만 붉게 만드는 거로 해결을 한 거죠. 연화 씨가 스스로 각성하기 전에, 먼저 깨워버리는 겁니다.”

일부러 순서를 바꾼다. 서서히 충동이 강해지다가 사람을 죽이고 붉은 마스크가 되는 것을, 일단 붉은 마스크가 되고 난 뒤 서서히 사람을 죽이지 않고 서서히 충동이 약해지는 것으로 역전시킨다.

성공한다면 연화는 다시 평범한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충동을 견디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이기는 하지만.

“그럼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죠?”

“아무것도 아닌 게 되겠죠. 그래도 아마 이름값 때문에 일반인들보다는 많이 튼튼하고 강한 정도의 어중간한 무언가 정도는 되겠지만요. 괴담 기준으로는 아마 그리 오래 안 갈 겁니다.”

아마도 몇십 년. 그동안 서서히 사람처럼 돌아올 것이니 연화가 죽지도 못하고 다른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저희는 원래 살인을 저지른 놈의 계획도 망쳐놓을 수 있는 거고, 연화 씨에게도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정도의 힘은 남겨놓을 수 있겠죠.”

이전의 소극적인 자신과 달라질 수 있을 정도의 힘. 성공만 한다면 나쁠 것은 없다.

“…그런가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이대로라면 연화 씨가 스스로 정신을 차릴 확률은 반 정도입니다.”

태주의 말에 지훈은 태주를 돌아봤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어느 정도로 실패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아슬아슬한 실패라면, 연화 씨에게서 붉은 마스크를 강제로 적출하더라도 그리 큰 피해는 없을 거예요. 대실패라면, 좀 더 큰 피해겠죠.”

뭐, 죽을 정도는 아니라며 태주는 덧붙였다.

“그래도 한 달 정도 요양에 전념하면 회복할 수 있을 정도는 될 거에요.”

“한 달이라고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서, 한 달 정도 쉬면 끝나는 문제로 줄어들었다면 확실히 별 것 아닌 문제처럼 보인다.

“그래도 더 줄일 수는 없는 건가요?

아마 일 년 전이라면, 혹은 일 년 뒤라면 한 달 쉬는 건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간에 한 달은 너무나 큰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의 1학기를 마쳐가는 이 시기에 한 달은 너무나도 컸다.

“성공한다면 아무 문제도 없겠죠. 실패하더라도 그보다 적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지훈이 다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도와줄 방법이 있다고 하셨죠?”

“있기야 하죠. 하지만 그러시려면 저 안으로 들어가셔야 할 겁니다.”

태주는 손가락으로 경계선을 가리켰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요?”

지훈은 조금 꺼림칙해 하는 기색을 보였다.

“네. 지금도 이곳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있잖아요? 뭔가 이야기를 전하려면 안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물론 들리게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들어가셔서, 본인이 생각하시는 말을 하면 됩니다. 어떤 것이든 좋아요. 원망의 말도 좋고, 혹은 아예 놀리는 말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연화 씨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만한 말이어야 해요.”

뭐라도 좋다. 잠시 멈춰서 말을 듣게 만들면 된다.

처음부터 최대치가 된 충동은 한번 꺾어내고 나면 결코 다시 강해지지 않는다. 점점 약해지는 것이 역전시킨 뒤의 규칙이므로.

“저희가 하는 말로도 가능하다면 저희가 했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손님에게만 집중하고 있을 거라서.”

결국은 지훈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듣지 못한다는 말이다.

“…제가 실패하면요?”

“뒤에서 보고 있다가 끌어내 드리죠.”

조금의 망설임이 있는 듯 지훈은 망설였다. 태주의 예상대로의 일이었다.

“애초에 들어가지 않으시더라도 제가 실망하진 않을 겁니다.”

“네?”

“실망하지는 않을 거라고요.”

태주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곳에 오신 것 자체가 큰 결정이시잖아요? 저는 사실 손님께서 안 오실 줄 알았거든요.”

태주의 질문에 지훈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겁이 없으시거나, 혹은 단순히 선행을 하기 위해서. 다 정확한 이유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의 짐작대로 그 모든 이유가 지훈에게는 없었다.

“그런데도 오셨어요. 연화 씨를 도우려고요.”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될 겁니다. 굳이 여기까지 오셨잖아요? ”

태주는 단언했다.

“이전에, 사무소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만이 올 수 있다고 했었죠. 마찬가지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올 수 있는 곳이거든요. 매우 한정적인 경우이긴 한데.”

태주는 지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이곳에 오신 이상 도우실 수 있습니다.”

태주의 말을 들은 지훈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경계 안으로 들어갔다.

* * *

경계 안은 공기부터 달랐다.

솔직히 지훈은 겁이 적은 편은 아니다. 이미 지훈은 크게 각오한 채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밖에서 봤던 모습과 안에서 보는 모습은 박력부터 달랐다.

잠시 소강상태였던 안쪽이었지만, 지훈이 들어오자마자 상태는 다시 급변했다.

“키아아악!”

붉은 마스크가 더 심하게 날뛰었다. 이전에는 바깥에 있어 손에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손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삼십 초!”

지훈이 들어오자마자 처음으로 들은 의미가 있는 소리였다. 지훈은 당황했다.

“그 안에 정신 차리게 못 할 거면 나가!”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소녀가 자신의 동급생을 다치지 않을 정도로 제압하면서 외친 소리였다.

단순히 제압하는 수준이 아니라, 몸에 큰 상처가 나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면서 제압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훈은 기분이 묘했다.

자신조차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이 정신을 잃고 날뛰는 걸, 적당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아주 잠깐, 지훈은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렇게 오 초가 지났다.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나가라고!”

여자아이는 소리를 빽 질렀다. 지훈이 생각하기에도 꽤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기에 지훈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신 게 아쉬워.”

“크으아아!”

연화가 그 말을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연화는 그저 괴성을 지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널 좋아할 이유는 없어! 너도 그렇겠지!”

이번엔 말도 없었다. 다시 한번 연화는 달려들기 위해 손을 뻗다가 다리 관절 쪽을 제압당해서 다시 넘어졌다.

“십오 초!”

지훈은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싫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선생님이 죽지는 않았을 거야. 네 책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할 수가 없어!”

지훈의 말에 연화는 더 심하게 날뛰었다. 아무리 월이라도 더 이상은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월이는 이제는 초도 말하지 않고 말했다.

“별로 도움 안 될 거 같으면 나가라고! 위험하니까!”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없다. 지훈은 그걸 알았기에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용서할 거야! 용서하기 위해서 노력할 거라고!”

지훈은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그건 조금 뜬금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훈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한참을 네가 싫다는 이야기만 하다가, 결국엔 너를 용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라니.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이 안으로 들어온 거야?”

월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할 정도로 그건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말이었다.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고, 중요한 상황에 맞지도 않는 그런 말.

“어이가 없네.”

말 그대로 실로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로 어이가 없었는가 하면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의 연화가 순간적으로 정신이 들 만큼.

“뭐? 누가 누굴 용서해?”

“용서하겠다고. 너 때문에 선생님이 죽은 걸 가지고 원망하지 않겠다는 말이야.”

지훈의 말이 연화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일까. 연화는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너를 쫓은 건 그래도 내 잘못이 맞아. 그건 미안하게 됐네. 하지만 선생이 죽은 걸 가지고 네가 날 용서니 뭐니 할 정도가 되나? 지가 뭐라고.”

선생의 죽음에 연화의 책임은 없었다.

“그래, 거기 네 책임은 없지. 하지만 나는 그래도 네가 싫었어.”

지훈은 긴장했는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너도, 그만큼이나 내가 싫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금도 싫어.”

아직 연화가 완전히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월이가 지훈을 바깥으로 내보내려던 순간에 지훈은 한마디를 더 했다.

“선생님이 죽은 건 원망하지 않더라도, 선생님이 죽어서 네가 이득 본 게 나는 정말 싫었어. 무슨 특별한 힘 같은 걸 얻고, 이번에 네가 정신만 차리면 부작용도 거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조금 원망스러웠어. 방금도 차라리 잘못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지훈의 솔직한 감정이었다.

고작해야 한 달.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한 달을 망쳐버리게 만드는 것은 사실 지훈에게 조금 매력적인 말이었다.

지훈에게 선생은 고마웠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지훈은 연화를 돕기로 결심했다.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 그리고 이곳에 오고 나서도 나는 그래서 망설였어. 네가 잘되는 꼴이 별로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았어. 그렇지만 그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

반의 누구나 지훈이 특혜를 받는다는 걸 알았다. 성적에 따라 다른 사람도 챙겨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선생이 가장 신경 써준 것은 지훈이었다.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었어. 최소한 나한테는 확실히 그랬지."

아무리 그래도 전국체전 동메달 타이틀은 강력했으니까. 잘 될 것 같은 학생을 밀어주는 선생 입장에서 가장 구미가 당기는 학생이었으리라.

“그러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데 너는 날 원망하지 않았어. 아니, 원망은 했으려나? 하지만 너는 나한테 그걸 돌리지는 않았어. 붉은 마스크가 된 뒤로 나를 쫓기는 했지만 그래도 딱히 나를 해치지는 않았지."

그럴 수 있는 힘을 얻고도 연화는 지훈을 해치지 않았다. 조금 겁만 주는 데서 그친 것이다.

그렇기에 지훈은 연화를 돕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도 너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어. 감정이야 바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고작 그 정도의 일 때문에, 그리고 고작 그 정도의 말로, 붉은 마스크는 진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용서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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