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4)
밤의 러닝.
요 며칠 동안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 않기는 했지만,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훈은 오랜만에 다시 뛰었다. 연화가 잡혀 있는 이상 안전할 거라 태주는 말했었다.
‘연화 씨가 선생님을 죽인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당신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죠.’
‘그래서요?’
‘연화 씨도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태주가 마지막 순간에 한 질문이었다. 지훈은 곧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분명 연화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연화가 선생님을 죽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지훈은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연화는 과연 자신이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잘못을 했던 걸까.
‘그럼, 다른 걸 부탁드리고 싶어요.’
‘다른 거요?’
‘네. 저는 뭐랄까, 도와주고 싶어요.’
태주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니까 연화 씨를 돕고 싶다는 말이죠?’
‘너무 어려운가요?’
‘아뇨, 불가능한 일은 아니에요. 안 그래도 저희도 지금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었거든요. 사실 그쪽도 생각보다는 급한 상황이에요.’
‘그럼 뭐가 문제인 거죠?’
‘그냥 조금 의외였거든요. 손님께서는 연화 씨를 돕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가요.’
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입 바깥으로 이 말을 내뱉기 전까지, 지훈 역시도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네. 연화 씨가 손님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시죠?’
태주의 질문은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지훈은 조금 멈칫했다. 질문의 의도를 알았기에 더 그랬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만큼이나 손님도 연화 씨를 좋아할 이유도 없고요.’
태주의 말은 정곡이었다. 지훈은 연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그쪽도 피해자라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실 감정적인 문제는 별개다. 실질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리고 그게 본능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해도 자신을 쫓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는 손님이 진심으로 연화 씨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돕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훈의 질문에 태주는 잠시 침묵 후 말했다.
‘정말로 돕고 싶으시다면, 제가 좀 이따 말씀드리는 시간에 이곳으로 와 주세요.’
태주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으로 돕고 싶은 게 아니라면 오히려 오지 않는 게 나으실 수도 있습니다. 위험할 수 있거든요.’
태주의 말에 이번에 말이 막힌 것은 지훈이었다.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혹은 측은함을 느껴서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고작 그 정도 감정으로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이고 싶으신 건 아니잖아요?’
그 말에 지훈은 마지막까지 대답하지 못했다.
‘연화 씨가 선생님의 죽음에 잘못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화 씨는 선생님이 죽어서 이득을 본 사람이에요. 그래도 돕고 싶으시다면, 그때는 오세요.’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었다.
지훈은 아직도 조금 무서웠다. 게다가 고민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을, 좋아할 이유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할까.
심지어 자신에게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다. 죽은 선생님이 원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훈은 그러고 싶었다.
“선생님은 그런 짓 좀 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지훈은 쓰게 웃었다.
“전 그래도 해야겠어요.”
* * *
“이 사람 앞에 서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연화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 뒤통수 때린 사람이잖아요!”
“제가 때리진 않았는데요.”
태주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전 앞에서 시선만 끌었을 뿐이라고요.”
“그게 그거죠. 어쨌든 당신 때문에 뒤통수 맞은 거 아니에요?”
연화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앞에서 시선 끈 놈이나 직접 퍽치기를 한 놈이나 공범인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연화가 열 받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당신들 공무원 아니죠! 무슨 공무원이 카페에서 일을 해?! 그것도 새벽에!”
“저흰 공무원이라고 한 적 한 번도 없는데요.”
“무슨 소리예요. 분명히… 그… 어라?”
생각해보니 상대방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적은 없었다. 연화는 갑자기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저 연화는 맨 처음 시아가 유치장 운운하는 것 때문에 착각했을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연화는 홱 하고 태주를 바라봤다.
“봐요, 그런 적 없죠?”
물론 착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태주는 조금 얄밉게 웃었다.
“저흰 거짓말은 잘 안 해요.”
태주는 그 와중에도 ‘잘’이라는 말을 붙였다. 그게 괜히 더 열 받은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이이익!”
“거기다 열 내서 어쩌려고? 애초에 태주를 만나러 온 게 아니야. 멋대로 착각하긴.”
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만날 사람 있다면서요. 이 사람이었던 게 아니에요? 그럼 이 사람? 아니면 저 사람이에요?”
연화는 뒤편에 있는 설이와 월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월이는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쳐다봤고 설이는 난처하게 웃었다.
“그쪽도 아니야.”
하지만 이곳엔 다른 사람은 더 없었다. 연화는 물었다.
“그럼 누구 만나러 온 건데요?”
“곧 올 거다, 아마. 하지만 그 전에 준비는 좀 필요하겠지.”
“준비요?”
시아는 시계를 한번 본 뒤 시기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이쪽을 좀 보지?”
시아는 품에 넣어두었던 마스크를 꺼냈다. 연화는 잠시 열 내던 것을 멈추고 홀린 듯 다시 마스크를 봤다.
“왜, 왜요?”
퍼뜩 정신을 차린 연화는 시아가 마스크를 돌려주겠다고 말한 게 기억났다.
“맞다! 돌려준다면서요!”
“돌려줄 거다. 한 가지만 하고.”
시아는 칼을 꺼내 들었다.
“뭐, 뭐에요? 갑자기?”
연화는 순간 크게 당황했다.
“말했지? 거부해서는 안 되는 제안을 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시아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연화는 소리를 질렀다.
“그거 진짜 칼이잖아요!”
“그럼 가짜 칼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나?”
시아는 그렇게 핀잔을 주더니 자신의 왼손을 슥 긁었다. 눈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시아는 자신의 손에 꽤 큰, 그러나 깊지 않은 자상을 냈다.
연화는 당황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사람을 죽이면, 마스크는 피에 젖어 붉게 변한다. 네가 붉은 마스크로 완성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겠지.”
시아는 상처 난 손으로 마스크를 쥐었다. 마스크는 조금 찌그러지면서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 아무도 저 짓을 말리지 않는다. 연화는 그 광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아무도 안 말려요? 저게 뭐 하는 짓인데요?”
하지만 연화가 원하는 대로 저 행동을 멈추려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윽고 연화는 마스크의 거의 전부가 붉게 물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시아는 연화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말을 계속 말했다.
“붉은 마스크와 빨간 마스크라. 굉장한 편법이야. 나조차 쉽게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독창적이고. 하지만 그런 짓을 하기 위해 일단 사람부터 냅다 죽이고 보는 건 나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가 않는군.”
시아는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잠시 보고는 말했다.
“어떤 놈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놈이 순서를 반대로 하겠다면, 나도 순서를 반대로 하겠다. 너는 붉은 마스크가 되지만, 결코 완성되지는 못할 거다. 사람을 죽이지 않은 채로 이 마스크는 피에 젖을 테니까.”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말투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 모습에 압도당한 연화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시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연화에게 피에 푹 젖은 마스크를 내밀었다.
“자, 써라.”
“시… 싫어요.”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거절했다. 시선은 여전히 그 마스크에서 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저런 걸 손에 쥐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무섭나?”
“…무섭고 뭐고 이전에 그런 걸 어떻게 만져요?”
조금 센 척을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운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아의 말에 연화는 태도를 바꿨다.
“지훈은 이미 이런 마스크를 여러 번 봤다. 네게 그 힘을 넘긴 녀석이 한 짓이겠지. 너는 고작 이 정도도 두려워서 만지지 못하는 건가?”
“그 애가 이런 걸 봤다고요?”
연화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연화는 몰랐던 일이다.
“그래.”
더 이상의 설득은 필요하지 않았다. 연화는 손을 덜덜 떨면서 그 마스크를 받아들었다. 지훈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연화는 이미 조금 평정심을 잃었다.
“그 애는 분명 그걸 두려워했지만, 만지지도 못하지는 않았다.”
그 말에 연화는 마스크를 받아들었다. 손에 축축한 피가 느껴졌다.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걸 쓰면 어떻게 되나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동에 사로잡히겠지.”
시아는 말했다. 여전히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였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그쪽으로 향했다.
“그때, 네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너를 붙잡아두지 않을 거다.”
“쓰고, 제정신을 유지만 하면 된다고요?”
“그래. 하지만 통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너를 강제로라도 무력화할 거고.”
일종의 딜이다.
하지만 연화 입장에서는 확실히 나쁘지 않은 그런 교환인 것도 같았다. 애초에 연화 역시 아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살인마가 되는 걸 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정신만 차리면 된다 그거죠.”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몇 시간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제정신을 못 찾으면 우린 더 못 기다려줘.”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늘이 지나면 돌아갈 수 있을 거란 말이다.
“나쁘지 않네요.”
쓰기로 했으면 오래 끌 필요 없다. 아주 잠시만 망설인 뒤, 연화는 축축한 마스크를 썼다.
생각만큼 기분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조금 고양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괜찮은 거 아닌가요?”
생각만큼 자신이 막 달라지지는 않았다. 연화는 그렇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시아는 연화를 보고 있지 않았다.
“어딜 보는 거예요?”
연화는 시아가 보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연화는 그제야 시아가 말한 ‘만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잠시,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동이 올 거다.”
시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정신 못 차리면 이야기는 끝인 거지.”
이미 연화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