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3)
초조하다. 연화는 기분이 묘했다.
단순히 갇혀 있어서 갑갑하거나 혹은 불안하거나 하는 차원의 기분이 아니다.
마치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이 있는 것 같다.
이 기분을 연화는 분명 느껴봤던 적이 있었다.
“언제지?”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이렇게나 강렬한 감정이면 기억이 나야만 하는데도 그 기억은 묘하게 흐릿했다.
-끼이익
연화가 좀 더 깊게 생각하기 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화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그쪽으로 향했다.
“아직 잘 있나?”
들어온 것은 시아였다.
“…덕분에요?”
연화는 비꼬듯이 답했다.
“몇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어서 왔지. 살인 용의자 취급은 더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잘됐네요. 지금도 머리 아픈데. 더 아프지는 않게 될 테니까요.”
“그건 미안하게 됐군.”
“그래서, 절 언제까지 이렇게 두실 생각이세요?”
“마음이 급한가? 혹은 다른 급한 일이 있는 건가?”
“…집에서 걱정해서요.”
시아는 작게 웃었다. 아직 이런 부분을 보면 인간성이 남아있으니 안심이 됐다.
“그리 오래 잡아둘 생각은 없다. 다만 몇 가지 ‘협조’를 해 줘야 하겠지.”
시아의 말에 연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협조를 안 하면요?”
“글쎄, 나보다는 본인이 더 힘들지 않으실까?”
시아는 웃으며 말했다.
“집에 못 가서 곤란한 건 우리가 아니거든.”
연화는 뭐라 욕을 하려 했지만, 그 전에 시아가 선수를 쳤다.
“조사를 조금 해 봤지. 말한 대로 그 선생,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더군? 네가 말한 그 폭언이나, 각종 희롱성 발언들을 실제로 한 건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의 허영이나, 태도 같은 것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조사를 했다는 거죠?”
“조사가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꼭 좋은 건 아니지. 게다가, 사람들은 요즘 자신의 치부를 아무렇지도 않게 온라인상에 드러내니까 말이야. 너도 알지 않나?”
“윽….”
연화가 지훈을 찾은 방식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그 인간 SNS를 보면 학생 다수가 아닌 잘 나가는 학생들에 대한 글로 가득 차 있더군. 속내가 너무 훤히 보이지.”
가끔은 같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만으로도 호의를 살 수 있다. 시아는 그래서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그런 인간을 싫어하기도 했고.
“…맞아요. 굉장히 앞뒤가 다른 사람이었어요.”
“흥,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아무 조사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이 죽은 이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이해하겠지.”
“…”
“그래서 일단 묻고 싶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연화는 찌푸린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그 살인범에 대한 증언은 지금 더 할 게 없는데요.”
“그쪽 이야기는 잠시 미뤄두도록 하지. 그건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급하진 않으니까.”
시아의 말에 연화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급한 문제가 아니라고요?”
“상대적으로는 그렇지. 지금 더 급한 문제는 사실 너거든.”
연화는 당황스러운 듯 눈을 끔뻑였다.
“저요?”
“그래, 너 말이다.”
“저는 그냥 여기 갇혀 있을 뿐인데, 제가 문제라고요?”
“지금 네가 조금 착각하는 게 있다.”
시아는 이전보다는 친절하게 말했다,
“아까 설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알겠지만 우리는 지훈 씨를 보호하는 동시에 너 역시 보호하고 있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사실 넌 이미 꽤 위험한 상태거든.”
“제 어디가 위험한가요? 이렇게 묶여 있는데 말이에요.”
연화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시아는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너는 여전히 그 힘이 어떤 힘인지도 모르고 있어. 당연히 의미도 모르겠지.”
“붉은 마스크가 되는 데 별 대가는 없다고 그랬어요!.”
그건 그 남자가 보장했었다. 연화는 그래서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리고 그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하는 말이고.”
시아의 말을 듣고서야 연화는 그제야 그 부분에 의문을 가졌다.
“대가가 있다고요?”
“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지.”
시아의 말에 연화는 점점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혹시 이미 마음속에 어떤 충동이 있지 않은가?”
연화는 무심코 시아를 바라봤다.
“충동… 이요?”
연화는 방금의 그 감정을 떠올렸다. 그건 확실히 충동이었다.
“그 충동은 지금은 제어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겠지.”
힘이 있다면, 그리고 그 힘을 적절하게 사용할 상황이 된다면, 게다가 본능적으로 그걸 강하게 원하게 된다면. 과연 연화는 참을 수 있을까.
“지금은 자각조차 없는 모양이지만 그건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야. 네가 손에 넣은 힘은 그렇게 되기 위해 있는, 강하지만 질이 나쁜 힘이지.”
시아는 연화의 가슴 속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했다.
“살인마가 된다는 건, 그런 의미다.”
“전 아직 아무 사람 안 죽였어요!”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한 일은 그래 봐야 사람을 쫓은 게 다다. 고작 그 정도로 자신을 살인범이라 몰아붙이는 건 확실히 기분 나쁜 일이었다.
“아직이라.”
시아는 넌지시 말했다.
“아직이라 표현하는 걸 보면 너도 사실 알고 있었던 거겠지.”
시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대로는 네가 사람을 죽이고 말 거.”
“뭐라구요?”
“빨간 마스크 괴담을 알고 있나? 이번 살인사건과 상관없는 원래의 빨간 마스크 말이야.”
시아는 침전된 목소리로 말했다. 연화는 영문을 몰라 멀뚱히 시아를 바라봤다.
“그건 너와는 딱 맞는 종류의 괴담이야. 그러니 그 괴물도 이 방법을 사용한 거겠지.”
“어떤 점이요?”
“빨간 마스크는 피해자였지. 교통사고의 피해자, 의료사고의 피해자라는 말도 있고.”
“들어본 적 있어요.”
“평범한 사람이 나중에는 사람의 입을 찢는 괴물이 된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거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시아의 말에 연화는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빨간 마스크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말이다.”
연화 역시 피해자였다
“네가 지훈을 영문도 모르고 쫓은 이유는 그 사람이 선생에게 수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도 있겠지만, 네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아이라서 이기도 하겠지.”
지훈이 연화에게 한 잘못은 없다. 최소한 직접적으로는 전혀 없다.
“결은 다르지만, 그래서 너는 빨간 마스크와 유사한 점이 있는 거다. 아직 네가 큰 잘못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 문제야.”
“…그래도 아직 별 잘못은 안 했잖아요.”
“그래. 고작 사람을 쫓고, 넘어트리고, 그 결과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면서 이곳으로 오게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지. 물론 그게 살인에 비해 정도가 심한 잘못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만.”
시아의 말에 연화는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이야 아직 그 정도지만, 너도 알 텐데. 그건 평소에 네가 하던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연화가 당연스럽게 납득할 리는 없다.
“…그래서 결국은 제가 사람을 죽일 거라고요?”
“정확히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게 되겠지.”
시아는 딸깍하고 자신의 전자담배의 뚜껑을 한번 열었다 닫았다. 욕구를 참는 건 그게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참기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다. 시아는 이미 그걸 알았다.
“한가지 짚어 두자면 그런 충동을 느끼는 걸 비난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네가 괴물이 된 건 네가 말한 금발의 괴물 때문일 테니.”
“그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그 충동을 느끼는 건 잘못이라 할 수 없지만, 만약 네가 정말로 사람을 죽이고 난다면 그때부터는 네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이야.”
시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런 아마 네 타고난 선성 때문이겠지.”
남에게 잘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선생에게 화를 낸 것도 자신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학생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했을 뿐이다.
“아마 오히려 진취적이고 경쟁적인, 예를 들면 지훈과 같은 사람이 너와 같은 힘을 얻었다면 이미 충동을 이기지 못했을 거다.”
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이 생각한 방법은 어쩌면 연화에게는 조금 고통스러운 방법일 것이다.
조금 측은한 마음도 있지만 계속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상대는 아직은 사람이지만, 지금은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존재다.
“너는 그래도 지금까지 잘 참았다. 그게 몰라서 그랬든, 알고도 그랬든 어쨌든 확실히 잘 참은 건 사실이지.”
“갑자기 칭찬이에요?”
“그래. 칭찬이다.”
시아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던 연화는 말이 막혔다.
“그러니 네게 일단 한 가지를 물어보마. 그리고 난 뒤 거부해선 안 되는 제안을 하나 하겠다.”
연화는 눈을 떴다. 마음의 정리는 끝났다.
“너는 네가 가진 힘을 어떻게 하고 싶지?”
“어떻게 하냐니요?”
“가지고 가고 싶은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 * *
“연화는 힘을 포기할까? 아닐까?”
월이의 물음에 태주는 어깨만 한번 크게 으쓱할 뿐이었다.
“나도 모르지. 한 가지 확실한 건 포기하는 게 이래저래 깔끔하고 편해.”
“포기하지 않으면요?”
설이의 질문에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붉은 마스크가 되겠지. 평생 사람을 죽인다는 욕구를 참을 수 있다면 그쪽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글쎄, 영원히 욕구를 견디며 살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 힘을 포기하는 게 올바른 거예요?”
“글쎄. 뭐가 맞는지는 몰라. 난 미래를 모르거든. 하지만 글쎄, 나라면 어떻게 할까?”
태주는 설이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나라면 힘을 포기한다…. 이전에 힘을 얻을 수도 없겠네. 나는 그런 힘을 딱히 원치 않아서.”
태주는 턱을 괸 채 말했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지는 게 싫거든. 무섭다면 무섭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갑자기 뛰어난 힘을 얻게 되는 대가로 평소에 자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하게 된다.
“보통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를 때가 많으니까. 작은 힘이라면 조금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그런 건 월이한테 물어보는 게 나을걸?”
“어, 왜요?”
“그야 월이도 어느 날 갑자기 강한 힘을 얻게 됐으까.”
태주의 말에 설이는 자연스럽게 월이 쪽을 바라봤다. 시선을 느낀 월이는 무안했는지 발칵 화를 냈다.
“아니,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월이는 투덜거렸다. 그 시절 이야기만 하면 조금 쪽팔리고 화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떡하냐. 가장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 있던 게 넌데.”
“됐어, 노코멘트!”
월이는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려 했지만 설이의 그래서 어떤 쪽을 선택하게 되는데? 하는 눈빛 공격을 버틸 수는 없었다.
“…말 안 할 거라니까.”
월이는 조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설이는 그 돌아간 시선 쪽으로 쪼르르 이동해 다시 쳐다봤다.
“나 좀 궁금한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 물어볼 테니까 그냥 지금 결정이 어떨지만 설명해 주면 안 돼?”
월이는 마지막까지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거 생각보다 끊기 힘들 거야. 고작 뛰어난 신체 능력과 감각이 다라고 해도 자신감이 생기거든.”
결국 월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데도, 마치 자기 것 같고 그렇지.”
“그럼 포기 안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글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아마 본인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머리로는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을걸? 그러니까… 내 말은 그걸 포기하는 게 생각보단 힘들다는 말이야.”
“하지만 어느 쪽 선택이든 우리가 개입할 수는 없는 문제지.”
태주는 명백히 선을 그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분은 어떻게 하신다고 했나요?”
“누구, 아 지훈 씨?”
태주는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시아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긴 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았다.
“뭐, 예상외의 답변을 하더라.”
“예상외라고?”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다는 아니라는 말이지.”
“엑, 할 일이 많아졌다는 말로 들리는데.”
월이는 약간 불만스럽게 말했다.
“보람 있는 일이면 그래도 좀 괜찮지 않냐?”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거기다 이미 말했잖아? 한동안 못 쉰다고.”
* * *
시아가 한 말의 의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연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월이의 짐작대로, 이미 연화는 망설임이 생긴 것이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연화는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일까지도 할 수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확실히 뛰어난 무언가 사라지는 게 아까웠다.
“저는….”
머리로는 안다. 이 힘을 포기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뒷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대답은 나중에 듣지.”
시아는 조금의 손짓만으로 연화의 발목에 묶여 있었던 힘을 제거했다. 연화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풀어줄지는 몰랐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갑자기 뭔가요?”
시아는 대답하지 않고 품에 보관하고 있던 연화의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조금 뒤 돌려주지.”
그걸 돌려받으면 연화는 분명 힘을 되찾을 것이다. 대답도 듣지 않고 하는 것 치고는 꽤 파격적인 일이다.
“갑자기 왜요?”
연화는 눈이 계속해서 마스크로 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그러다가 문득 너무 강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청나게 뚫어지라 쳐다보는군. 말하지 않았나, 조금 뒤 돌려줄 거라고.”
“윽, 아니 그럼 그걸 눈앞에 두지 마요.”
시아는 하지만 계속 눈앞에서 마스크를 팔랑거렸다. 결국 연화는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흠, 일단 따라와.”
다른 뾰족한 수도 없다. 연화는 시아를 따라갔다.
“풀어주기라도 하시려고요?”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
시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있다가, 너는 한 사람 앞에 서게 될 거다.”
“누구요?”
“그건 아직 알려주지 않을 거야.”
시아의 말에 연화는 한숨을 쉬었다.
“저도 본 적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