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95화 (95/269)

9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2)

다음 날 아침, 학교에 선생은 오지 않은 것이다.

“대체 아침부터 무슨 일이래?”

“몰라? 지한테 필요한 건 기가 막히게 챙기는 사람이, 학교를 못 나오는 일도 다 있나 봐?”

“내 말이.”

1교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표정이 좋지 않으셨지만, 별다른 말을 해 주지 않았다.

2교시는 담임이 들어오는 수업이었다. 하지만 교감 선생님이 자습이라고 말하고 떠날 뿐 그때까지도 담임은 오지 않았다.

담임이 죽었다는 소식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들을 수 있었다.

“야, 아침에 살인사건 기사 봤냐? 그거 우리 담임이래!”

“엥? 무슨 기사?”

“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갑작스러운 소식에 교실은 어수선해졌다.

5교시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고, 그제야 그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았다.

“혼란스러울 거 안다. 그런데 너의 수능 얼마 안 남았어. 흔들리지 말고 공부하자.”

그 죽음이 슬프지는 않았다. 당황하고, 놀라기는 했지만 어떤 연민도 들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도 이런 감정밖에는 들지 않는다는 게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잘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잘…?”

그 마음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어젯밤 했던 말과 그때의 마음.

그 금발의 남자에게 가슴 속에 있는 모든 말을 전부 내뱉었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남자가 잘생겨서? 밤이라서? 그날따라 더 우울해서?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아무리 돌이켜봐도 단 하나뿐이었다.

그 붉은 눈.

그때 그 감각이 떠오르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 남자가 자신과 한 대화 때문에 선생을 죽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가봐야겠어.”

그래서 다시 그 자리로 향했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장소.

어째서인지 남자가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은 밤이로군, 그대도 어제와 같은 시간에 이곳으로 오다니, 뭔가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낀 건가?”

예상대로 남자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요,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좀 궁금한 게 있어서요.”

“그 또한 좋은 일이지.”

남자의 말투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동시에 유창했다.

“어쨌든 앉으시게, 이곳에는 그대와 나 단 둘뿐이니. 이곳에 그대와 나, 그리고 저 하늘의 달밖에 없다네!!”

남자는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괜히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것 같았다.

“…별은요?”

“하늘을 보게. 별들은 이미 다 땅에 떨어졌다네. 보이는 게 없잖은가?”

마치 시인 같은 표현이었다. 왜 저런 말투를 쓰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 말에 남자는 황홀할 정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음, 기분이 좋고말고. 원래는 내가 그대를 찾아가려 했으나 그대가 나를 찾아왔으니, 이 또한 운명 아니겠는가. 여기 앉으시게. 시간은 빠르지만 밤은 기니 말이야.”

자신이 오지 않으면 찾아오려 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저를 찾아오려 했다고요?”

“음, 저번에 말하지 않았던가. 줄 것이 있었거든. 하지만 그대가 먼저 찾아왔으니, 먼저 말해 보시게. 왜 나를 찾아온 건지.”

남자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전히 피처럼 새빨간 눈동자였다.

“당신이 죽인 건가요?”

잠시 주저하다가 물었다.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 물어볼지 걱정이었지만, 남자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물음을 남자가 기다렸을 거라는 걸.

남자는 예상대로 웃으면서, 그리고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

“공식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죽이지는 않았지. 그건 붉은 마스크의 짓이니.”

“붉은 마스크요?”

그때까지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음, 이런. 아직 말할 때는 아니었는데. 깜짝 선물이었는데 실패해 버렸나? 낭패로군.”

남자는 과장된 몸짓으로 이마에 손을 짚었다. 하지만 장난기 있는 말투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분명히 의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된 김에 더 미룰 필요는 없겠지.”

남자는 과장된 몸짓으로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곱게 포장된 마스크였다. 새하얀, 어딘가 고급스러운 봉투에 담겨있는 그런 마스크였다.

“받게. 이건 오직 자네만을 위한 것이니.”

“이게 뭔가요?”

마스크를 받아들며 물었다.

“마스크라네. 당연하게도 조금 특별하지.”

“특별하다고요?”

연화는 조금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 이걸 쓴다면 그대는 마스크를 쓰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네. 불가역적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지.”

“그냥 마스크처럼 보이는데요?”

“하지만 누가 쓰는가에 따라 가치는 달라지지.”

남자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이 마스크는 조금 특별한 힘을 얻게 해 줄 거라네.”

“어떤 힘이요?”

그 질문에 남자는 입이 귀 끝까지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 죽은 선생이 결코 그대를 무시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힘.”

남자의 말에 무심코 마스크를 팔랑거리던 손을 멈췄다.

“이 마스크를 쓰면…?”

“그래. 그 마스크를 쓰면.”

남자는 붉은 눈으로 연화를 봤다.

“써 주겠지?”

이상하게 저 눈을 보면 거절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화의 손이 천천히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는 남자는 물었다.

“사람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 * *

“어, 그렇게 붉은 마스크가 되었다는 건가요? 그게 다예요?”

“네. 그게 다인데요.”

설이마저 조금 당황할 정도로, 연화가 붉은 마스크가 된 과정은 정말로 단순했다.

“그냥 그때 한 말 몇 마디로 그런 힘을 받았단 말이에요? 지금까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네.”

무언가에 홀린 듯 힘을 받았고,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연화는 조금 더 밝고, 활기차고, 자유로워졌을 뿐이었다.

사무소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연화의 말에 한설은 다시 물었다.

“그 뒤로는 뭐 다른 이야기가 없나요?”

“글쎄요, 다 아는 이야기일 텐데요.”

연화는 지훈을 쫓았고, 그 결과로 이 사건이 사무소로 흘러들어 올 수 있었다.

“그래서, 궁금한 건 다 들었나요?”

연화는 설이에게 물었다.

“어어, 네. 한번 잘 말해 볼게요. 진짜 살인범 이야기나, 아니면 저희가 따로 도움을 줄 만한 게 있는지 말이에요.”

“고마워요.”

연화는 그렇게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다. 설이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자리를 떴다.

* * *

“확실히 알겠군.”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만족보다는 짜증에 가까운 감정이 가득했다. 반면 월이는 그냥 평소와 같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뭘 알아?”

“어째서 붉은 마스크의 등장이 소문보다 빨랐는지를 말이야.”

“왜 빨랐는데?”

연속된 월이의 질문에 시아는 한껏 찌푸린 눈으로 답했다.

“순서가 반대였던 거야.”

살인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연화가 붉은 마스크가 된 것이 아니다.

“살인사건의 영향을 받아서 연화가 우연히 힘을 받은 게 아니야. 애초부터 저 사람을 붉은 마스크로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거다.”

첫 번째 살인은 애초부터 새로운 살인마를 만들어내기 위한 살인이다.

“악취미인 짓을 하는군. 관계의 역전이라니.”

“왜 그딴 짓을 하는데?”

“그걸 모르겠다. 아마 본인만이 아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겠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시아는 눈을 찌푸린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지.”

“뭔데?”

“제대로 미친놈이다. 이거지.”

“살인범이야 원래 미친 놈인거 아니야?”

월이의 질문에 시아는 말했다.

“물론 그렇지.”

사고 같은 것은 예외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하지만 이번 일은 더 위험해.”

시아는 그렇게 운을 띠고는 말했다.

“저 말에 따르면 이번 살인은 어떤 이해관계도 없고, 그저 어떤 목적을 위해 한 일이지. 그냥 단순히 그게 필요한 작업이라 수행했을 뿐인 거다. 필요하다면 몇 사람이고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야.”

시아의 말은 그래서 무거웠다. 지금 한 사람만 죽은 이유는 딱 한 사람만 죽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세 사람, 열 사람이 필요했다면 그만큼 죽을 수도 있다.

“그건 진짜 평범한 미친놈이 아닌데.”

월이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할 정도로 그건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래. 아주 침착하게 미친 녀석이지.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기도 해.”

“뭐?”

“무작위로 아무나 죽이는 건 아니라는 말이니까. 연화를 괴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인원은 아마 정해져 있을 거야.”

그러니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근데 그 말은 그 사람을 죽이려면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다는 말이잖아요?”

시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월이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개미친놈 아냐, 그거?”

“결론부터 말해줘요. 누나가 보기에는 이게 완성되려면 몇 사람이나 더 필요해요?”

태주는 우선 물었다.

“모른다.”

시아는 드물게도 딱 잘라 말했다.

“이건 사람이 쓰는 방식이 아니라서 말이야. 최종적으로 몇 명이 필요한지 나는 몰라.”

눈을 찌푸린 채 시아는 말했다.

“확실한 건 최소한 하나는 더 필요하다는 점이야. 그게 누구인지는 짐작이 이미 가겠지.”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좀 곤란하네요."그렇다면 지훈은 적절한 타이밍에 온 거라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애를 쫓은 게 그것 때문일까?”

월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아는 진지한 와중에도 피식 웃었다.

“남자애라니?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아! 됐거든! 엄마가 남자는 다 애랬어.”

“뭐 부정은 안 한다만.”

“여기 남자 하나 있는데요.”

태주는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는 조금 풀렸다.

“어쨌든 비관적인 이야기를 잔뜩 하긴 했지만, 지금은 괜찮아. 붉은 마스크를 잡아둔 채고, 아직 새로운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 맨 처음에 일어난 일이 선제 대응을 할 수 없는 종류의 사건인 것 치고 지금 상황은 나쁘지 않아.”

딱 한 가지를 제외하면.

“하나 문제가 있다면 연화 씨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문제겠죠.”

태주의 말에 시아는 눈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그래. 유일하게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이겠지.”

“왜? 마스크 벗었으니까 된 거 아니야?”

월이의 질문에 대신 답한 것은 태주였다.

“연화 씨가 이미 살인사건과 관련한 부분은 이미 많이 무뎌졌다는 거 너도 느꼈지?”

“응? 어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월이는 어색하게 말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랑 만나고도 무서워하지 않았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쫓을 때 쫓기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이해하지 못했어. 아무리 싫어하던 사람이라도 죽은 사람에 대해 말하는 데 조심하지도 않았지.”

다른 부분은 대부분 정상이다. 여전히 소시민적인 부분이 남아있고, 같잖은 협박도 통한다. 조금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어디에나 있는, 그냥 조금 소극적인 여학생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그 이상한 부분에 대한 갭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확실히 그랬던 것 같네.”

듣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만 아직 모를 뿐, 정신이 이미 조금씩 침범당하고 있는 거야.”

“하긴 그래. 나도 이렇게 되고 바뀐 점이 많은데.”

“이미 영향은 많이 받았고 서서히 변하고 있어. 그리고 얼마 안 가면 자신도 이미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정도가 될 거야. 아마 그 뒤로는 완성되려고 하겠지.”

괴물로서, 살인자로서, 붉은 마스크로서 연화는 완성되려 할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지금 남아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떼어내려고 할 것이다.

연화가 그걸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는 상관없다. 견딜 수 없는 충동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제어 가능해. 그럼 지금이 기회야.”

아직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기에, 아직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맛이 가지 않았기에 기회는 지금뿐이다.

혹시나 싶어 월이는 물었다.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돼?”

“일선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어. 그리고 우리는 선택해야 하겠지. 인간과 함께할 수 없게 된 연화 씨를 영원히 가두거나, 죽이거나, 혹은….”

“윽, 안 들을래! 끔찍한 이야기를 하네.”

월이는 무심코 찡그렸다.

“그래. 그러니 그건 꼭 막아야 해.”

태주는 말했다.

“끔찍한 이야기는 나도 싫어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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