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1)
“쓰레기라.”
반응이 너무나도 확실하다.
이전까지 시아에게 보였던 소극적인 태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자신이 살인범이라 오해받는 상황에서도 앞뒤 가리지 않고 선생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이건 절대로 평범한 감정이 아니다. 역시, 지훈이 연화가 선생을 죽였다 생각한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죽어서 잘 됐죠.”
연화는 조금 과격할 정도로 강하게 의견 피력을 했다.
“죽어서 잘 됐다 말할 정도인가.”
시아는 침착하게 말했다.
“들은 바로는 그렇게 들리지는 않던데.”
“누구한테 들었죠? 지훈이? 걔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죠. 전국체전 나가서 동메달까지 딸 수 있는 실력에 공부까지 잘 하는 사람이니까! 편애받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교사겠죠!”
연화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말했다.
“그 애가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절대! 제가 그 녀석을 쫓은 게 잘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저는 그 애도 싫어요. 온갖 혜택은 다 받아먹고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있으니까요.”
시아는 잠시 듣기만 했다. 지금은 굳이 더 자극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술술 불고 있었다.
“저 말고도 그게 죽어서 고소하다는 사람은 널렸을걸요? 그 인간이 동료 교사나 우등생들한테는 좋은 선생일지 몰라도 다른 애들한테는 나쁜 선생이었어요. 제가 쓰레기라고 말하는데 전혀 죄책감이 안 들 정도로요.”
연화의 말에 설이는 어느 정도 동조하며 말했다.
“그건 그래요. 저희가 돌아봤을 때도 학교 분위기가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았어요.”
연화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좀 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거봐요. 저 사람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래, 그 정도는 인정하도록 하지. 솔직히 내가 그 선생 평판을 열심히 조사한 적은 없었으니까.”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납득이 가는 구석이 있었다.
선생은 지훈에게 엄청난 관심과 지원을 보냈다. 그건 그 자체로 보면 분명 대단히 좋은 선생으로 보이지만, 사람인 이상 개인이 들일 수 있는 노력과 시간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모든 이에게 그렇게 공을 들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아마도 연화의 주장은 많은 부분이 사실이리라.
그 선생은 지훈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연화나 다른 학생들에게 그 선생이 그리 좋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선생이 좋은 교사가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할 말은 있었다.
“네가 하는 말이 어느 정도 그럴듯하긴 하군.”
시아는 그 점은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남았다.
“하지만 그럼 너에게 동기가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죽이고 싶다, 죽어도 싸다는 말이 제가 죽였다는 말로 연결되나요?”
연화는 선생에 관해서는 확실히 분노가 많았다. 태주에게 들었던, 그리고 지훈에게 들었던 소극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확실하다. 연화가 붉은 마스크가 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게 지훈을 쫓은 동기 정도는 되는 거겠지.”
“윽.”
연화는 그 부분은 확실히 마음에 걸리는 것인지 의표를 찔린 표정으로 말을 멈췄다.
“왜 쫓았지?”
“…그건 저도 몰라요.”
연화는 뭔가 희미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소리지? 본인이 모르면 누가 안단 말이야?”
“그냥… 조금 본능적인 거였다고요.”
“자기도 모르게 했다는 말인가?”
시아는 물었다. 연화는 뭔가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 입을 뻐끔거리더니 결국 더 좋은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한 듯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네요.”
하지만 곧이어 연화는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처음엔 그냥 놔주기도 했잖아요! 문제 있나요?”
“놔 줬다?”
시아는 그 발언이 조금 신경 쓰였다.
“그 부분은 나중에 조금 자세히 듣지.”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다른 부분을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지훈 외에 다른 사람을 쫓거나 습격한 적 있나?”
“아뇨! 대체 절 뭘로 보시는 건가요?”
“붉은 마스크지. 심지어는 자기가 그런 존재라는 자각까지 있는.”
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각이 없는 모양인데, 네가 아직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쳐도 너는 살인자에 대한 괴담과 엮여 있어. 그러니 우린 너를 끝까지 경계하고, 쉽게 마음을 풀지 않을 거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단 잠시 나갔다 오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설아, 네가 잠시 보고 있어다오.”
시아는 그렇게 말한 뒤 걸어나갔다. 몇 번의 발소리 끝에 이곳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저, 당황스러우시죠?”
설이는 연화에게 물었다.
“…네.”
연화는 경계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시아보다는 만만해 보이고, 자기편을 들어줬던 것도 있어서인지 시아를 대하는 것보다는 누그러진 태도였다.
“원래는 저런 분이 아니신데 지금은 조금 상황이 그래서요.”
“…살인사건 때문에요?”
“아무래도 그렇죠.”
한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큰일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죠.”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태일 때의 연화는 확실히 평범한 여고생이다. 설이는 연화에게 물었다.
“혹시, 어쩌다가 붉은 마스크가 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무래도 이유를 알면 저희가 도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은근한 질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압적으로 풀어내게 시킨다면 분명 연화는 왜곡할 수 있었다. 악의가 없어도, 자신에게 불리한 점은 자기도 모르게 편집해버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어쩌다가 붉은 마스크가 되었냐고요?”
“네.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신 거라면, 일종의 피해자이시니까….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까 들으셨죠? 저희는 원래 사람을 돕는 일을 하거든요. 근데 이번에야 아무래도 엮인 게 살인사건이라서….”
설이는 조금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조금 더 진실해 보이기도 했다. 연화는 조금은 마음이 풀린 듯 말했다.
“저도 이게 의도치 않게 된 거긴 하죠. 그런데 왜 된 건지는 저도 몰라요. 갑자기 누가 이렇게 만들어 줬어요.”
연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요한 말을 던졌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인지 원래 그리 숨길 생각은 없었던 건지 설이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지금 나오는 내용이 중요한 내용이라는 건 알았다.
“어… 그게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예요.”
연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 마스크, 누가 주고 갔어요.”
* * *
그 사람. 아니, 그것과 처음 만난 건 붉은 마스크가 되기 며칠 전, 아직 선생이 살해당하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시간은 아마 새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도 없어서 울기 좋았다.
울었던 건 선생 때문이었다.
“선생이 어떻게 학생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원래부터 선생과 그리 사이가 좋진 않았다. 선생은 자기 입으로 자신은 편애가 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고, 심지어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다.
자신의 밑에서, 잘 된 제자가 나오는 것이 아마 인생 목표라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
솔직히 모든 사람을 완벽히 같게 대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고, 또 제대로 봐 주지도 않는 건 납득할 수 없었다.
“왜 다른 학생들은 그렇게 안 챙겨줘요?”
내 질문에 선생은 당당하게 말했었다.
“뭐? 야, 너 같으면 가망 없는 애들 챙기겠냐?”
그 말이 너무 화가 났다.
“가망이 없다뇨! 선생님이 그렇게 말 하시면 안 되죠!”
“나니까 하지. 누가 하냐? 꼭 보면 잘하는 것도 없는 년들이 그런 소릴 해. 야, 넌 밀어줄 게 없어. 지훈이 반만 됐어도, 내가 널 안 챙겼겠냐?”
“뭐라고요?”
선생은 더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후로 선생은 나를 대놓고 깔아뭉개고, 비난하고, 비웃었다.
“죽이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할 정도로 그 선생이 미웠다.
“왜 그러는 걸까. 그 자식은.”
그날 낮에도 선생은 말했다.
‘야, 생각을 좀 해봐라. 니 성적으로 갈 대학은 없어! 어디 뭐 지방이나 가면 있을걸? 아님 눈치게임이라도 한번 해 보시던가.’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내 항변에도 선생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웃기고 있네. 공부나 좀 하고 그런 소리 하라고 했지?’
물론 애매한 성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제대로 된 행동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놈.”
우울한 기분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위선자 새끼.”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욕하기는 했지만, 선생의 말대로 나는 특출난 것이 없었다. 그리 잘하는 것도 없고. 사실 그렇게 성실하지도 않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듣지 못하는 데다 욕을 퍼붓고 나니 기분은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옆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건 자네가 말인가? 혹은 다른 사람이 말인가?”
너무 깜짝 놀랐다.
분명 방금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세요?”
경계하며 말했다. 말을 건 사람은 외국인으로 보였다. 금발에 하얀 피부, 그리고 아주 약간 붉은 눈. 창백한 피부는 백옥같이 하얗다.
“아, 지나가다 문득 재미있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지. 죽음이라, 그 얼마나 가깝고도 먼 단어란 말인가!”
누가 보더라도 외국인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한국어를 잘했다. 사극이나 드라마 같은 거로 한국어를 배운 건지 말투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솔직히 조금 호감이 가기도 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이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연예인 준비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죄송해요. 누가 들을 줄은 몰랐거든요.”
“음,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네. 조금 흥미로워서 다가온 것뿐이니.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늘 흥미롭지. 그러니 묻도록 하지. 누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겐가?”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모르는 사람에게 누가 싫고 누가 좋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
“듣자 하니, 자네는 아직 학생이고, 교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데. 맞나?”
“…다 듣고 있었던 거에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무래도 사람들보다는 귀가 훨씬 좋아서 말이야. 의도치 않더라도 종종 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네.”
나는 조금 눈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요, 전 갈게요.”
“음, 하지만 나의 순수한 호의를 무시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호의요?”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하하, 그래. 마음속에 담긴 걸 말해 보게나? 그럼 뭔가 달라지는 게 생길지도 모르지.”
금발의 미남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붉은 눈이 조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에 담긴 말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선생에 대한 원망, 잘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 그리고 분노.
“그렇군, 그런 거였다고.”
남자는 웃으면서 그 모든 말을 들어줬다.
“그대는 약자로군.”
남자가 다 듣고 한 말은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연화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죽이고 싶다는 겐가?”
죽이고 싶다는 말에 흠칫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솔직하군, 그건 그거대로 중요한 자질이지.”
“자질이요?”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은 얼마 만이었을까.
“자네에겐 소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어째서인지 눈동자가 요사스러웠다. 붉은색의 눈동자, 그러고 보니 사람의 눈동자가 저런 색일 수가 있던가?
“곧 선물 하나를 주겠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
“기쁘게 받았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