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0)
“손님이 연화 씨가 붉은 마스크라고 생각한 이유는 알겠어요. 그리고 붉은 마스크가 선생님을 죽였다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가 가요.”
밖에서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연화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전까지 그 결론은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왜 지훈은 연화가 선생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않았던 것인가.
“이상한 일이잖아요? 동급생이 교사를 죽였다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의문이 전혀 없는 건요.”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한 부분은 연화가 비현실적인 힘을 가졌다는 부분뿐이다. 지훈은 태주가 연화가 범인일 수 없다는 지적을 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연화가 범인이 아닐 거라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건…!]
“어느 정도는 제 실수죠. 맨 처음 묻지마살인으로 추정된다는 기사를 읽었던 영향이 남아 있었거든요.”
태주는 쓰게 웃었다. 쉬운 조사는 그만큼 선입견이라는 함정에 빠트리기도 좋았다.
“묻지마살인이라고 생각하면 동기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당시 손님은 그렇지 않았잖아요?”
묻지마살인이 아닌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면 당연히 동기가 필요하다.
심지어는 동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 설득력이 없다면 의문을 품게 된다. 정말로 그 사람이 범인이 맞을까 하는 그런 의문 말이다.
“그런데도 손님은 연화 씨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사실에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조금 단계를 뛰어넘은 추측이지만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연화 씨에게는 동기가 있었어요. 물론 진범은 아니지만, 연화 씨가 죽였다고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만한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지훈은 연화가 비교적 소극적인 학생이라 말했다. 그런 사람이 갑작스럽게 교사를 죽였다는데 그 동기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그 교사가 살해당해 마땅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태주의 질문에 지훈은 순간적으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적인 침묵이야말로 대답이었다.
“그렇군요.”
* * *
머리가 아프다. 조금의 신음소리와 함께, 연화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으…흐윽….”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이전에 무슨 일을 겪었던 건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그저 악몽을 꿨다는 것뿐이다.
‘너는 잘하는 것도 없잖아. 내가 널 위해서 왜 시간을 써야 하지?’
큼지막한, 심술이 가득한 선생의 얼굴이 자신에게 계속 그런 말을 하는 꿈.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기억 중 하나다. 간만에 느껴보는 불쾌한 기상이었다.
자신이 이렇게 변해버린 뒤로는 처음으로 느끼는 기분이다. 축축한 등허리가 불쾌했다. 연화는 그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털어내듯 저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여긴…?”
집이 아니다. 처음 보는 곳이다. 자세히 보니 애초에 자신이 누워있던 곳은 침대도 아니다.
지금까지 누워있던 곳은 책상 여러 개를 붙여 침대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거였다.
연화는 덮고 있던 담요를 치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런 곳에 누워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온전히 새까맸다. 빛조차 잘 들지 않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특정할 만한 특별한 물건도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일어났군. 충격이 컸던 건가? 한 두세 시간 정도는 잠든 거 같은데.”
갑자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연화는 황급히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여자였다. 검은 정장을 입은 단발의 여자는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고, 묘한 자신감이 가득한 눈이다.
“누구세요?”
“글쎄, 그게 궁금한가?”
여자는 조금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당연히 궁금한 거 아닌가. 연화는 조금 화가 나 물었다.
“누구시냐고요!”
“그래. 궁금하겠지. 일단 앉지? 그 테이블 위도 괜찮겠어.”
그러나 연화는 앉지 않았다. 상황도 모르는데 그냥 그 자리에 앉기는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시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한 가지 먼저 말해줘야 할 게 있군.”
여자는 느긋하게 전자담배를 입에 물었다.
“너는 잡혔다.”
“엇…!”
그제야 연화는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직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다가 정신을 잃은 것인지가 생각났다.
“그리고 널 잡은 건 우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연화는 시아에게서 멀어지려 달렸다. 그러나 시아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연화는 벗어날 수 없었다. 한 걸음, 책상에서 멀어지자마자 뭔가 검은 끈 같은 것이 생겨 자신의 다리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멀리 갈수록 다리가 아프고, 무거워졌다. 반대로 다시 책상 가까이 돌아오자 연화의 몸은 이전처럼 가벼워졌고 상태가 좋아졌다.
“도망칠 수 있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말을 걸 리가 없지 않나.”
여자의 말대로다. 뭔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지금 자신은 벗어날 수 없다. 연화는 여자를 쳐다봤다.
“너와 그 책상을 묶어 놨거든.”
“대체 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을 당한 건지 연화는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물론 실제로 있는 끈으로 묶은 건 아니야. 주술적인 개념에 따른 건데… 지금은 중요한 게 아니니 생략하지. 그리고, 날 습격할 생각도 접어둬. 마스크는 벗겨 놨으니.”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만졌다.
“이건….”
마스크가 만져지지 않는다. 자신의 힘의 근원인, 그리고 모든 소문의 근원인 마스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된 후로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어서 몰랐다. 마스크 하나만 벗는다면 자신은 이렇게 무력해지는 것이었던가.
“이곳은 일단 유치장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쉽겠군. 어쨌든 무리하게 탈출시도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다. 그래도 굳이 불만을 품고 싶다면 평범한 유치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본인의 상태를 탓하도록.”
연화는 여자의 말을 그냥 무시하려던 도중,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유치장이라고요?”
혹시 눈앞의 여자는 경찰이라도 되는 건가? 혹시 자신과 같은 것들을 붙잡는 국가 기관이라도 있는 걸까? 연화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그런 불안감에 연화는 도망치기보다는 일단 대화에 성실하게 응하기로 했다.
쉽게 말해, 쫀 것이다.
“무… 무슨 일인데요?”
“일단 너는 지금 살인사건의 용의자다.”
여자의 담담한 말투에 연화는 당황해서 말했다. 소문에 그런 오해가 있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오해 때문에 자신을 이렇게 붙잡아 가두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내가 안 죽였어요.”
연화의 다급한 말에도 여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안 죽였다니까요? 죽인 건 다른 사람이에요!”
“그래,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지금 질문할 건 따로 있으니.”
여자는 여전히 그 이야기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왜 지훈을 쫓았지?”
“…왜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히 자신이 했던 일이다. 시아는 별말을 하지 않고 그저 연기만 한번 쭉 빨며 상대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완전히 위축된 연화는 조금 더 당황해 말했다.
“그… 그냥요. 정말로 별 이유는 없는데요.”
“굳이 사람을 계속해서 쫓은 게?”
“그냥 우연히 봐서 그런 것뿐이에요.”
“우린 이미 두 사람이 같은 반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정말로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여자는 씩 웃으며 말했다. 연화는 살짝 당황했다.
“아까 내가 누군지 물었지. 나는 유시아라 한다. 일단은 너 같은 것들을 붙잡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서릿발 같은 눈으로 시아는 연화를 내려다봤다.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 * *
시아는 태주에게 자신이 심문을 맡겠다고 말했다.
“누나가 하겠다고요?”
의외라는 듯한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의외지? 원래 사람 대하는 일은 주로 네가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상대를 보듬어줘야 하는 상황이면 모를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내가 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조금 음침한 말투다. 이 누나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나 태주는 미심쩍은 말투로 물었다.
“뭐, 협박이라도 하시려고요?”
“협박은 아니야. 상대가 멋대로 위협적으로 느끼게 할 뿐이지.”
아니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게 그거다. 태주는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사람이잖아요.”
“아니, 어쨌든 괴물 종류지.”
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괴물이라면 내 영역이야. 아직 완전히 괴물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사람 대하듯 대하면 안 돼.”
“평소라면 그래도 제가 하겠다고 했겠지만요,”
태주는 조금 꺼림칙한 듯 말했다. 명백히 괴물처럼 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다. 여전히 괴물보다 사람에 가까운 존재다.
대화해 본 건 잠깐이지만 확실히 그랬다. 자신을 쫓는 동안에는 분명 평범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시작한 순간부터는 그냥 조금 어벙하고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그냥 평범하고 소극적인 여학생이에요. 최소한 성향은 그래 보여요.”
“하지만 살인마의 영향을 받고 있는 괴물이지.”
시아는 더 길게 말하지 않았다. 태주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실제로 그건 그랬다. 어쨌든 연화는 사람을 쫓았고, 결국에는 붙잡혔다.
태주는 결국 시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한가지 확인할 건 있었다.
“그래요, 마냥 평범한 사람처럼 대할 수는 없긴 하죠. 하지만 너무 몰아붙이는 걸 견딜 수 있을까요?”
태주의 지적 역시 지당했다. 상대는 아직 일선을 넘지 않았다. 시아 말대로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괴물처럼 대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한 명 더 데려가려고.”
“누굴 데려가시게요?”
“설이.”
“네? 저욧!?”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던 설이는 깜짝 놀랐다. 태주도 잠시 놀랐지만 이내 시아의 생각을 눈치챈 듯 말했다.
“좋은 경찰 나쁜 경찰이라도 따라 하려고요?”
시아는 씩 웃었다. 정답이라는 뜻이다.
“어차피 경찰 시늉을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지.”
“어,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보다는 오빠가 하는 게 낫지 않아요?”
설이는 조금 당황한 듯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없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 태주가 얼굴을 내미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태주한테는 이미 한번 속았잖나. 저 녀석 얼굴 보이면 상대가 더 경계할걸?”
여러 의미에서 태주는 지금 적절한 인선이 아니다. 결국은 그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은 두 사람밖에는 안 남은 것이다.
게다가 둘이라 해도 사실 적당한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네 생각에도 월이가 그 일을 할 수는 없겠지.”
“어….”
설이는 살짝 월이의 눈치를 봤다. 월이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 성격이 그런 데 안 맞는 건 나도 알아. 나는 그런 좀스런 일은 못 하겠더라.”
“…제가 해야겠네요.”
결국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하면 되나요?”
“크게 뭘 할 필요는 없어. 정확히는 해야 할 건 단 하나야. 내가 그 녀석을 몰아붙일 때, 옆에서 같이 듣고 있다가 나 몰래 위로해줘.”
“그거면 돼요?”
설이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라 안심한 듯 웃었다. 그 정도의 일이라면 평소에 하는 일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그래. 그거면 돼. 그리고 가끔 편도 들어주고.”
“시아언니 편이요?”
“아니, 저 사람 편.”
거기서 시아 편을 들어봐야 도움은 안 된다. 설이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열심히 할게요!”
* * *
“너무 그러지 마세요. 어쨌든 저희는 사람 돕는 일도 하는 거잖아요?”
갑작스럽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목소리가 들리자 연화는 놀랐다. 또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시아에게 집중하느라 사람이 하나 더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설아. 우린 사람을 돕는 일도 하지. 그래서 사람을 돕고 있지 않으냐.”
연화는 그래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나자 조금 용기를 얻은 듯 말했다.
“지금 이게 어디가 사람을 돕는 일인가요!”
“아까 말하지 않았나? 너는 지금 용의자라고.”
시아는 냉정하게 말했다.
“넌 설마 경찰이 범인에게도 선행과 봉사활동을 베풀어야 한다 생각하나?”
“하지만 전 범인이 아니라구요!”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시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린 그런 증거는 확실히 찾지 못했어.”
“그럼!”
연화는 조금 화색을 띠며 말했다. 하지만 시아는 전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사람 하나를 쫓은 경력이 있고, 또 너 스스로 붉은 마스크라는 점을 인정했지. 게다가 붉은 마스크는 사람을 죽였다는 살인범의 별칭이고. 이래도 우리가 너를 붙잡아 두는 게 불합리하다 생각하나?”
연화는 할 말이 없어진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굉장히 억울하다는 태도였다.
“적당히 하세요. 너무 몰아붙인다고 안 될 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너도 알잖나. 살인범을 자유롭게 풀어둘 수는 없어.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 한다는 건 너도 동의하겠지.”
“그건… 그렇지만요.”
설이도 결국 그렇게 침몰했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알겠다. 연화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혹시, 제가 사람을 쫓은 것 때문에 살인범으로 취급받고 있는 건가요?”
“아직은 살인범 취급이 아니지.”
시아는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증거가 나오면 그렇게 될 거다.”
“…제가 사람을 조금 쫓긴 했지만, 선생님을 죽이지는 않았어요.”
“죽이지는 않았다고? 죽이지 않는 정도는 했단 말인가?”
시아의 말에 연화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가요? 제가 한 일은 뒷담 좀 깐 게 다라구요. 설마 그걸 가지고 큰 죄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죠?”
연화는 자신이 한 건 그 정도가 다라고 항변했다.
“뒷담이라. 무슨 말을 했지? 죽은 교사가 평가는 괜찮은 것 같던데.”
시아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연화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좋은 선생이라고요?”
지칭하는 표현이 ‘그게’다. 시아는 지금 자신이 뭔가 중요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걸 느꼈다. 역시 뭔가 있다.
시아는 확인차 물었다. 연화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건 쓰레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