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9)
“아, 다녀오셨어요?”
돌아오자마자 설이가 인사했다. 태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다녀왔어.”
“말씀하신 대로 잡아 오셨네요?”
설이의 질문에 대신 답한 것은 월이였다. 월이는 일단 대충 책상 위에 여자를 내려놓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쉽게 낚이더라.”
월이가 그렇게 말하자 안쪽에서 앉아 있던 시아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마치 생선이라도 잡아 온 것 같은 대화인데.”
“난이도로 따지면 비슷했던 것 같네요.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을 만큼 쉬웠거든요. 아니, 예상보다도 쉬웠죠.”
그러나 태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시아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지나칠 정도로?”
“네. 지나칠 정도로.”
태주의 대답에 시아 역시 눈을 찌푸렸다.
“그건 별로 좋지 않은데.”
“좋지 않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설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왜 안 좋다는 건가요?”
설이의 질문에 태주는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다.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 전에 통화부터 한 번 하고 이야기하자. 아마 뒤에서 듣다 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거야.”
태주는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누나는 그럼 그 사람 좀 보고 있어 주세요.”
“당연한 거 아니냐.”
시아의 답에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자신의 차례다.
녹음 버튼을 누른 태주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 *
지훈은 몇 번의 신호가 채 가기도 전에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전화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걸 진짜 잡았다고요?]
지훈은 깜짝 놀랐다.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네, 당연하죠. 그렇게 약속드렸잖아요?”
[무슨 관우도 아니고….]
지훈은 중얼거렸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잡아오겠다는 말을 정말로 지킬 줄은 몰랐다.
“일단, 확인 결과 손님의 예상대로 붉은 마스크는 연화 씨가 맞았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역시, 인가요?”
태주는 잠시 침묵했다. 조금씩 짐작이 가는 구석은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떠봐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지훈이 먼저 물었다.
[그럼 이제 그 애를 경찰에 넘기는 건가요?]
“아뇨, 아직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일단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풀어주지는 않겠지만요.”
태주의 말에 지훈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네? 경찰에 안 넘긴다고요? 무조건 그래야 할 것 같은데요.]
조금은 비난 조마저 섞여 있는 지훈의 말에 태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수가 없어요.”
[왜요? 붙잡기까지 했으니 그냥 경찰에 넘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 말에 태주는 이마를 살짝 긁으며 말했다.
“어떻게 증명하시겠어요?”
[네?]
“그러니까, 어떻게 붉은 마스크의 연화 씨라는 걸 증명하고, 살인했다는 걸 증명하시겠어요?”
지훈은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잡기만 하면 모든 일이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경찰은 절대로 몇 가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연화를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런….]
경찰에게 넘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훈은 망연자실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두 가지 사실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실이요?]
“연화 씨는 붉은 마스크가 맞습니다. 갑작스럽게 소문의 주인공이 된 붉은 마스크는 분명 연화 씨가 맞겠죠. 그런데, 연화 씨는 과연 최초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일까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지훈은 즉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태주의 질문에 지훈은 순간적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손님이 연화 씨에게 쫓긴 건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그걸 근거로 사람을 죽인 거라는 확신을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사실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은 붉은 마스크가 당신을 쫓았고, 그 붉은 마스크가 연화 씨라는 점뿐이에요.”
[하지만, 붉은 마스크가 사람을 죽인 거잖아요?]
“누군가의 증언일 뿐이죠. 그것도 별로 신빙성은 없는.”
태주는 그렇게 말했다.
“게다가, 붉은 마스크가 살인을 했다 쳐도 의아한 점은 남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반신반의했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게 뭔가요?]
“마스크의 색입니다. 살인사건 이후, 붉은색 마스크는 살인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화 씨의 마스크 색은 어땠죠?”
[…하얀색이요.]
“네. 하얀색이죠. 그리고 지금까지도 연화 씨의 마스크는 하얀색입니다.”
[하지만 소문에서도 원래는 하얀 마스크잖아요.]
지훈은 항변하듯 말했다. 맞다. 이야기 속 살인마의 마스크는 맨 처음 하얀색이었다. 심지어는 붉은 마스크도, 빨간 마스크도 원래의 마스크 색깔은 하얗다.
그렇기에 연화는 하얀색 마스크만 쓰고도 붉은 마스크가 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네, 그렇죠.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그렇죠. 그러니 어떤 의미로는 그 하얀색의 마스크는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증거물 같은 겁니다.”
태주의 말을 들은 지훈은 숨을 헉하고 삼켰다.
[그건, 그러면….]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주는 조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연화 씨가 선생님을 죽인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에 연화 씨를 잡는 일은 너무 쉬웠습니다.”
[쉬웠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지훈은 물었다.
만일 연화가 저 정도 수준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월이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아예 태주 혼자서도 잡을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은밀한 발걸음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활용을 잘 못 한다. 갑자기 마주쳐 약점을 찔린 것만으로 오히려 역으로 당황한다. 여전히 자신이 더 강함에도.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첫 번째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하긴 어려워요. 그런 사람이 다른 상처가 남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리가 없죠.”
[쉽다 말씀하신 게 그런 의미였나요?]
“네. 신체 능력은 손님 말대로 확실했지만 정말로 초짜였습니다. 손님을 쫓은 것도 신체 능력이 압도적이라서 가능했던 일이지, 특별히 대단한 방법을 사용한 게 아니었단 말이에요.”
지훈은 이내 수긍했다. 지훈을 쫓을 때는 발소리도 그대로 들렸었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게 조용한 달리기나 효율적인 종류의 달리기는 결코 아니었다.
[이상하네요.]
뭔가 이상하다. 지훈이 느끼기에 그 붉은 마스크는 결코 초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훈이 느낀 붉은 마스크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괴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이상하시겠죠.”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을 태주 역시 이상하게 여겼었다.
“당신이 어딜 가도 쫓아온 그 추적자는 아무리 봐도 초짜가 아니었잖아요?”
붉은 마스크를 걸어놓은 추적자는 최소한 사람을 쫓는 법을 알았다. 어디로 도망가도 소용없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확실하게 사람을 쫓을 줄 알았다.
반면 이번에 잡힌 연화는 분명 붉은 마스크지만 동시에 생초보다.
모순일 수도 있지만, 사실 한 가지 전제만 깨부수면 그렇게 모순되는 일도 아니다.
“두 사람인 겁니다.”
[두 사람이라고요?]
“아니, 사람은 아닐 수도 있겠네요.”
태주는 약간 정정했다. 여러 가지 이상한 점이 그렇게 보면 해결이 된다.
“어쨌든 이번 일은 각기 다른 둘의 행동이 섞여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일은 연화 씨가 저지른 일이 아닐 거고요.”
[그러니까 저 애는, 살인사건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저를 협박한 사람도 아니라고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지훈은 말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정도가 되겠죠.”
하지만 정황이 그렇다.
“예, 아마도 연화 씨는 그저 붉은 마스크가 되었을 뿐일 겁니다. 유일하게 한 잘못이라 한다면 당신을 쫓은 것뿐이네요. 그리고 이번에 저를 노린 것 정도고요.”
그렇다면 아직 연화가 엄청나게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사람을 노렸던 두 번의 사례에서 연화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처음 쫓겼을 때 손님께서는 쓰러져 있었다고 하셨죠. 다리에 힘이 풀렸다고도 하셨고요.”
[…예.]
만약 죽이고 싶었다면 그때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연화는 죽이지 않고 그냥 놔주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죽이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손님을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뭐라 말하곤 돌아갔을 뿐이었죠.”
[살인할 생각이 없었다는 건가요?]
“그건 본인만 알겠죠. 죽일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건지, 아니면 그냥 당신을 따라잡는 건 재미로 해본 일일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는 것이 아닌가. 지훈은 무심코 그렇게 말하려 했다.
“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좀 복잡해지죠.”
만약 태주의 말대로 따로 존재하는 살인자가 있다면 꽤 많은 부분이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셈이다.
정말 그렇다면. 붉은 마스크를 붙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진범을 잡는 쪽의 일은 진전된 게 없는 거나 다름없다.
“만약 다른 살인자가 있다면 연화 씨는 살인사건의 소문으로 인해 붉은 마스크가 되었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그게 누군가의 의도인지 우연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요.”
굳이 연화를 데리고 온 이유였다. 누군가의 의도라면 연화를 조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살인사건을 저지른 살인 전문가의 존재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이래저래 맞아 떨어지는 구석이 있으니까요.”
[그럼… 선생님을 죽인 사람은 붉은 마스크와 관련 없는 제삼자인 건가요?]
“글쎄요, 연화 씨가 그렇게 되어버린 게 우연이라면 관련이 없을 가능성도 있지만, 참고로 저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연이 아니라면…]
태주가 쥐고 있는 핸드폰에까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의미로는 더 위험한 일이다. 연화, 그러니까 붉은 마스크가 아닌 진짜 살인범이 지훈을 추적하고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것도 사람을 추적하는데 능한, 그리고 아마 사람을 죽이는데도 실력이 뛰어난 그런 살인마가.
“예. 아마 짐작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부적만 잘 챙기셔도 며칠 정도는 괜찮으실 겁니다.”
하지만 안전과는 별개로 그게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지훈은 불안한 듯 물었다.
[범인은 잡을 수 있을까요?]
“시간이야 조금 걸리겠지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어떤 의미로는 지금부터 본론이었다.
사실은 맨 처음에 가져야 했던 의문이다.
“손님은 왜, 연화 씨가 선생님을 죽였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은 건가요?”
태주는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