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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91화 (91/269)

9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8)

밤길은 한산하다.

아직 살인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밤에 산책 나오기는 꺼려질 시기였다.

그러나 아무도 없지는 않다. 사람들이 자주 걷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처럼 비어 있는 어두운 장소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언제쯤 나올까?”

연화는 지루하다는 듯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로등이 없는 곳에서 연화는 서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교사가 살해당하던 날과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만약 그 교사가 살아나 그 모습을 본다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유사한 모습이었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다. 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붙잡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니 더 그랬다.

이렇게 되어버린 뒤로는 확실히 몸에 생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이전과는 달리 뭐든지 할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마구 느껴졌다.

“그 녀석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연화는 중얼거렸다. 분명 그랬겠지.

“부러운 녀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 더 이상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남자의 말대로라면, 자신에게도 재능이 생겼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남자는 자신에게 힘을 줬다.

그 과정에서 물론 사람이 하나 죽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개의치는 않는다.

“애초에 죽은 놈도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갑작스러운 추모 분위기가 연화는 웃겼다. 좋았던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기에 지금 돌아가는 꼴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놈이 죽었다고 슬퍼하고, 애도하는 건 가족이면 충분하다. 그 밖의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슬퍼하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아무래도 좋다. 선생의 죽음은 당연히 슬프지 않다. 연화는 그 선생을 아주 싫어했으니까.

물론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런 일 따위를 신경 쓰기에는 자신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지금 신경 쓰이는 건 그런 것 따위가 아니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꽤 귀찮아졌어….”

어제저녁부터 갑자기 자신은 이전보다도 점점 더 빠르게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좀 더 힘이 강해지고 있으니 마냥 좋은 일인 줄 알았지만, 그게 대가 없이 강해진 힘이 아니라는 건 곧 알 수 있었다.

사람의 뒤에만 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반대로 사람의 앞에 서면 자신이 이렇게 되기 전처럼 얼간이가 되어버린다.

왜 그런지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짜증나, 정말.”

누군가가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가관이었다. 자신이 등짝만 노리는 변태라는 둥, 대신 마주 보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둥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퍼지고 있다.

“그 녀석이겠지.”

이름과 주소는 가렸지만, 내용을 보면 누가 그런 소문을 퍼트렸는지는 뻔했다.

아마 조금 골려 준 것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선생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이런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 것이리라.

“이번엔 안 봐줘.”

이전에는 자신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고 하니 그냥 놔주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저번처럼 쉽게 놓아 줄 생각이 없다.

애당초 지난번처럼 장난으로 쫓을 생각은 없다. 이번에는 조금 확실하게 괴롭혀 줄 것이다.

타닥, 타닥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달리는 소리였다. 연화는 그늘에서 조용히, 그리고 유심히 살폈다.

“그 녀석이네.”

뒷모습만 보였지만 확실하다. 저 센스가 이상한 녹색의 운동복은 그 녀석 말고는 입는 녀석이 없다. 옷을 빨 때 세제 대신 말차가루라도 넣고 빤 게 분명해 보이는 색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태평하게 운동이나 하고 있다니,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은 꼭, 그 녀석을 곱게 돌려보내지 않겠다.

“어디 한번 가 볼까.”

살금살금, 그러나 남자보다는 충분히 빠른 속도로 여자는 쫓아갔다.

상대는 눈치채지 못한 듯 앞만 보고 계속 달렸다. 이런 상태에서 평범하게 붙잡는 건 재미가 없다.

조금, 괴롭히고 싶다. 그런 생각에 여자는 일부러 소리 없이 달려 보았다.

어떻게 할까. 일단 넘어트려 볼까? 아니면 도망치게 내버려 뒀다 한순간에 따라잡아 줄까? 아주 천천히 가까워져 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자신이 강해진 것이 실감이 났다. 이전에는 이렇게 쉽게 달리지도 못했다. 운동장 한 바퀴도 완주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고작 운동장 따위는 백 바퀴를 돌아도 지치지 않는다.

뒤로 달려도 남들보다 빠르고, 제자리에서 높이뛰기를 해도 사람 키보다 높이 뛸 수 있다. 누구보다 빨랐던 그 자식을 따라잡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마침 보이는 것은 등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으면 감수해야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연화는 달렸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달리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다니, 몰랐던 일이다. 저 녀석은 원래부터 저런 세상에서 살았던 걸까.

말은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지만 그래도 조금은 질투가 난다. 자신이 모르던 세계다. 이전에 자신이 살았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원래 육체적인 능력이 이렇게 뛰어나 봤던 적이 없으니 조금 취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도취하여도 좋다고, 그 남자는 말했었다. 그러니 한 번쯤은 자유롭게 굴어 보자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그 녀석이 멈췄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식으로 쫓아오면 대체 누가 모르나요?”

어처구니없어하는 듯한, 혹은 놀리는 듯한 그런 말투. 하지만 연화가 놀란 건 내용 때문이 아니다. 목소리 때문이다.

연화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쫓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당황한 사이, 상대는 앞으로 돌아봤다. 낭패였다. 연화는 급격히 자신감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

“…누구세요?”

물어보고 나니 쫓던 자신이 할 말은 아니다. 여자는 그제야 조금 더 상대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키도 다르고, 체형도 다르다. 이렇게 보니 왜 착각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남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혹시 이름이 오연화 씨 되시나요?”

“…왜요?”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연화는 당황했다.

“저는 강태주라고 합니다. 사무소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명함이라도 챙겨왔다면 드렸을 텐데, 아쉽네요. 하여튼 연화 씨 맞으시죠?”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연화는 어버버했다.

“어어, 네.”

연화는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붉은 마스크에 대해 조사 중인 사람이에요.”

“조사 중이라고요? 저를요?”

“붉은 마스크라니까요.”

태주의 말에 여자는 얼굴이 갑자기 확 붉어졌다. 태주가 마스크 너머로 볼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태주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뭐 그만큼 확실한 증거가 더 없네요.”

태주의 짓궂은 말에 연화는 모른 척하고 물었다.

“…그래서, 붉은 마스크는 왜 조사하시는 건데요?”

“그건 뭐, 조금 이따가 알게 되실 거에요.”

“조금 이따가요? 언제-“

연화는 뒤에 이어지는 말을 하지 못했다. 곧바로 퍽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해, 해치웠나?”

“아, 진짜 그런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그러면 진짜 살아난다고. 아니, 죽어도 안 되긴 하는데.”

그리 대단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월이가 뒷목을 한번 툭 친 것만으로 연화는 기절하고 말았다.

물론 소리는 퍽 하고 나긴 했지만.

오히려 때린 월이 쪽이 당황할 정도로 상대는 너무 쉽게 쓰러졌다.

“그런데 이게 진짜 붉은 마스크라고?”

분명 엄청난 고수일 거라 생각했다. 첫 번째 살인의 결과물이 그 모양이니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력이 부족하다. 자신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데도 벅찬 모습이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짐작이 간다. 월이가 이전에 지나 본 길이다.

“근데 아무리 봐도 이게 그 소문 속의 괴물은 아닌 것 같은데. 튼튼하긴 하지만… 진짜 튼튼하기만 한데.”

월이는 눈을 찌푸린 채 말했다. 신체 능력이라도 뛰어나니 확신할 수 있었지, 만약 태주를 쫓는 걸 보지 못했다면 두 사람은 이게 정말 붉은 마스크가 맞나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확실히 미숙하네.”

“얘 설마 크게 다친 건 아니겠지?”

뒤통수를 맞아 쓰러진 자세 그대로 엎드려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월이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안심해. 아마 괜찮을 거야. 쉽게 쓰러지긴 했지만, 얘도 지금은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까.”

태주의 말에도 월이는 조금 심했나 싶어 오른손을 몇 번 쥐락펴락했다. 결국 태주는 재차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봐 숨도 고르게 쉬고 있잖아.”

“그래. 괜찮겠지.”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발로 연화의 어깨를 밀었다. 몸을 반 바퀴 돌리고 나니 이제야 얼굴이 보였다. 태주는 기가 막혀서 물었다.

“아까 너 이 사람 몸 걱정하고 있지 않았냐? 근데 그걸 발로 밀어?”

“아, 왜! 어쨌든 돌려놔야 할 거 아냐!”

“그래, 뭐 그대로 두는 것보다는 낫긴 한데….”

발로 사람을 미는 건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든다. 태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마스크 좀 벗겨봐도 되지? 숨쉬기 불편하겠네.”

“그래. 맘대로 해.”

월이는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벗겼다. 드러난 여자의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확실히 월이나 설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로 보였다.

어쩌다 이런 학생이 붉은 마스크가 되어버린 것인지. 태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사무소로 옮기자. 아무래도 중요한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중요한 이야기?”

“그래. 아무래도 상대가 너무 쉬웠어.”

태주의 말에 월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일이 쉬우면 좋은 거 아냐?”

“그것도 예상한 범주 내일 때 이야기지. 이 정도까지 약한 건 별로 좋진 않아.”

생각한 범주 내에서 약한 거라면 순순히 운이 좋았다고 웃을 수 있겠지만, 이 정도까지 쉬울 줄은 몰랐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는 말이거든.”

태주는 혀를 한번 쯧 차고는 말했다. 월이는 자기식대로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 거 하나가 올 것 같다는 말이네. 어쨌든 들고 가면 되는 거지?”

월이는 자연스럽게 여자를 들었다. 태주는 당황해서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쌀포대처럼 들고 가는 건 좀….”

“어? 안돼?”

“어떻게 잘 안아 봐- 그렇게 안으면 너무 납치하는 거 같잖아.”

“에잉, 귀찮게….”

월이는 연화를 앞으로 안아 들었다. 흔히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였다.

“이거 생각보다 들기 영 불편한데.”

“그야 한 손을 쓰는 게 아니라 두 손을 쓰니까 그렇지. 그래도 원래대로 들고 가면 다른 사람들이 납치하는 줄 알걸?”

“이건 괜찮고?”

월이는 새된 눈으로 쳐다봤다.

“그냥 조금 이상한 거랑 납치해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다르잖아.”

태주의 말에 월이는 입을 삐쭉거렸다.

“에이, 이런 걸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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