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90화 (90/269)

9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7)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나?”

늘 그렇듯 태주는 느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젯밤 하던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일은 나름대로 수월하게 끝났다.

“역시 이런 건 내가 잘하지.”

태주가 자화자찬할 정도로 이번엔 일이 꽤 잘 풀렸다.

소문을 만들어 퍼트린다는 건 계속해서 손을 댄다고 해서 좋을 일이 아니다. 특정 방향으로만 흘러가도록 밑밥을 깔아두고, 굴러가게만 만들어 두면 개입하는 건 불필요하다.

특히나 저연령층 위주로 퍼트려야 하는 종류의 소문이라면 더 그렇다.

자신이 처음 전달한 것보다 한술 더 떠서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는 건 무서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게 우리 편일 때는 이만큼 든든한 것도 드물었다.

가끔 너무 이상해지지만 않도록 통제하면 된다. 순조롭게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야기가 전파되는 상황을 본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약간 폭주 중이긴 하지만, 상정범위 내니 괜찮다.

“행운의- 파랑새-”

흥얼거리며 태주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냈다. 곧 두 사람이 돌아올 터였다.

“뭘 꺼내면 좋을까….”

어떤 걸 줘야 두 사람이 시원하게 음료수를 마실 수 있을까 싶어 태주는 잠시 고민했다. 나름 고생했으니 좋은 걸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채 결정을 내리기도 전, 두 사람이 돌아왔다.

“다녀왔어….”

“저두요….”

“야, 너희 거의 녹고 있는데.”

태주가 살짝 당황할 정도로 두 사람은 흐느적거렸다.

“날이 더워서요….”

산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고 설이가 덧붙였다. 월이가 투덜거리는 거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어지간하면 불평은 잘 안 하는 애가 이러는 걸 보면 정말로 덥긴 더운 모양이었다.

“슬슬 여름이긴 한가 봐.”

그러고 보면 어제 시아 역시 더워서 죽겠다는 말을 하긴 했다. 담배 한번 피우러 나가는 것도 힘들다며 투덜거리는 시아에게, 태주는 그럼 담배를 끊으라고 말했었다.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다.

“요새 갑자기 더워지긴 했지.”

“날도 날인데 옷이 문제야.”

월이는 투덜거렸다.

이미 이번 주부터 혼용 기간이었지만, 아직 두 사람은 하복이 없어서 춘추복이었다. 작년 가을에 전학 온 월이나, 올해 봄에 전학 온 설이 모두 하복이 없었다.

“그러니까 하복 사달라!”

갑작스럽게 월이가 제창했다.

“사… 사달라?”

두 사람은 같이 말하자고 준비라도 했던 듯 그렇게 말했다. 태주는 어이없고 조금 웃겨서 피식 웃었다.

“갑자기 무슨 종로의 지배자 같은 소리야?”

“우리는 하복을 사 입을 권리가 있다고!”

태주는 피식 웃었다.

“월이 너는 지난주에 살 거냐고 물었을 때 귀찮다고 다음번에 사자며.”

“윽, 그땐 이렇게 빨리 더워질 줄 몰랐지!”

“그럼 그거 결국 니 탓 아니냐?”

태주는 월이의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월이는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설이 너도.”

“네?”

“너도 뭐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된다면서 그 비녀 품에 안고 온종일 있느라 사러 안 갔잖아.”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박동이 느껴진다며 설이는 하루 정도 방에 틀어박혔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긴 했던 모양이지만 그날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으, 그래도….”

“내가 혼자 가서 너네 교복을 사 오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

“음, 아니 뭐… 그렇죠….”

두 사람은 결국 더 이상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어쨌든 필요한 건 알겠으니까 이번 일 정리되면 사러 갔다 와.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안 되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더워서 일을 못 하는 건 확실히 문제다. 태주는 기교를 부린 음료를 만들기보다는 그냥 냉장고에 넣어 놨던 보리차를 꺼냈다.

얼음까지 띄워주니 두 사람은 바로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좀 살 것 같냐?”

태주는 그렇게 말하며 에어컨도 틀었다. 두 사람은 금세 기운을 차렸다.

“극락이네요.”

“단어 선택이 참….”

“어라, 뭐 문제가 있나요!?”

“그건 아닌데.”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문제야 당연히 없지만, 가끔 이럴 때마다 확실히 평범한 여학생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제 얼음 그만 씹고 말 좀 해봐. 학교 상황이라거나. 뭐 그런 거.”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이를 다칠 수 있을 정도로 큰 얼음을 아작아작 씹던 월이는 얼음을 급히 씹어 삼키고는 말했다.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좋아.”

“어? 좋다고?”

그럴 리가 없다고 태주는 생각했지만, 월이는 강조하듯 고개를 거세게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좋아.”

“네, 맞아요. 저도 똑같이 느꼈어요.”

두 사람이 똑같이 느꼈다면 그건 절대로 그냥 착각은 아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괜찮아졌나?”

하지만 그건 어둡지 않은 분위기가 되는 이유여야 하는 것이지, 밝을 수 있는 이유는 아니다.

태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알아보고 오라고 하길 잘했네.”

이걸 몰랐다면, 분명 중간에 크게 뒤통수를 맞았을 것이다. 지금 알아서 다행이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었어.”

두 사람은 분위기가 좋다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 점심 시간을 틈타 한 가지 더 확인했었다.

“어떤 점?”

“어떤 사람은 굉장히 슬퍼하는데, 어떤 사람은 별로 슬퍼하지 않아.”

“당연한 일 아냐?”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그 편차가 좀 컸거든요.”

설이 역시 맞장구를 칠 정도면 단순한 오해는 아닐 것이다. 태주는 조금 진지하게 들었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어떤 사람들은 어둡지 않은 게 아니라 아주 밝은 느낌이었어. 분명히 그 반 학생인데 말이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영 입맛 없는 듯 깨작거리다가 올라가고요. 굉장히 우울해 보이더라고요.”

“그건 확실히 좀 특이한데.”

태주가 보기에도 그건 확실히 이상한 점이었다.

감정은 전염된다. 그래서. 다 같이 슬퍼하거나 혹은 다 같이 좋아하는 경우가 많지, 한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우울해하고 누군가는 좋아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다.

단순히 ‘죽은 선생은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다’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뭔가 조금 미심쩍은 부분들이 있다. 태주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도 좀 찾아봐야 하겠네. 거기부터는 내가 알아볼게.”

“그 외에 사실 더 알아낸 건 없어요. 죄송해요.”

설이는 뭔가 미안한 듯 말했다. 하지만 태주는 정말로 그 이상을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황급히 덧붙였다.

“어? 아냐. 잘 해왔어. 그 정도면 지금은 충분해. 그거랑 뭐, 얼굴 정도만 알아왔으면 충분하지. 거기까진 알아봤지?”

태주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진 않는다고!”

월이의 자신만만한 말에 태주는 물었다.

“너 전에 그런 실수도 했었냐?”

“앗, 아니 뭐 말하자면 그렇다고.”

월이는 시선을 피했다. 설이는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느낀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거면 되나요?”

“그래. 지금은 그거면 돼.”

태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신 다음에 할 일들은 준비 단단히 해.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네, 당연하죠.”

설이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있는데 누굴 다치게 두겠어?”

월이 역시 웃으며 말했다.

“붉은 마스크고 뭐고 하여튼 잡히기만 해봐.”

* * *

딸랑-

두 사람이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우고 나서 조금 뒤에야 지훈이 왔다.

“조금 늦으셨네요.”

“아, 네. 상담을 좀 하느라고요.”

지훈이 생각한 것보다도 조금 더 늦었다. 이전에 약속한 날에 학교를 나가지 못했기에 방과 후로 시간이 미뤄진 탓이다.

“마스크는 어땠나요? 여전히 돌아가신 장소에 걸려 있나요?”

“아니요. 없더라고요. 부적이 효과가 있었나 봐요.”

“뭐, 사실 아직은 하루밖에 안 지났으니까요. 부적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알겠죠.”

“어, 그런가요?”

하지만 안심하고 하루라도 잠들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부적 덕분이다. 지훈은 숙면했는지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소문 퍼지는 건 보셨나요?”

“네 봤어요. 어떻게 퍼지는지 궁금해서 낮에 조금 검색해 봤거든요.”

아직은 그렇게 많이 퍼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기 시작했으니 이미 반 이상은 끝난 일이나 다름없다.

“그 정도만 해도 사실 꽤 영향력이 있을걸요? 맨 처음으로 생긴 규칙 같은 거라 이제부턴 그 붉은 마스크도 꽤 불편해질 거에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불안한 표정이었다.

“근데 이래도 되는 건가요?”

“뭐가요?”

태주의 질문에 지훈은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그, 퍼진 소문들이 점점 저열해지는 것 같아서요.”

지훈이 본 글들의 내용은 약간의 일관성은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비난에 가까워져 갔다.

사실 붉은 마스크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더라.

사실 붉은 마스크는 앞에서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더라.

사실 붉은 마스크는 사람의 뒤만 노리는 변태라더라.

사실 붉은 마스크는 뒤쪽을 노리는 것밖에 못 하는 놈이라더라.

소문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는 아예 등짝만 노리는 이상한 놈 취급이 되기도 했다.

“그, 살인자가 나쁜 놈 취급받는 건, 혹은 멍청이 변태취급을 받는 건 사실 아무래도 좋은 일인데요.”

실은 조금 쌤통이기까지 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저런 식으로 굴면 아무래도 단단히 열을 받지 않을까 싶거든요.”

만약 자신이 그런 헛소문의 주인공이 된다면 지훈은 상대방을 분명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사람이라면 법이 있으니 그게 어느 정도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지만, 상대방은 괴물이니 법이고 뭐고 없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상관없어요. 일부러 한 일이기도 하고요.”

“일부러 그랬다고요?”

“네. 상대방이 화가 나는 것까지 의도해서 한 일이거든요.”

지훈은 당황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이점이 있지만, 나머지는 곁다리고, 핵심은 두 가지에요.”

“뭔가요?”

“일단 한 가지는 화가 나서, 불편하게 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목적이에요. 사실 이게 꽤 효과가 좋거든요.”

한 가지는 그럴듯했다. 일부러 도발해서 평정심을 잃게 하는 건 스포츠에도 종종 있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요?”

“일부러 노릴 만한 표적이 될 사람을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붉은 마스크가 가장 먼저 노릴 대상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말이다.

“화가 나면 분명히 이 짓을 처음 시작한 게 누군지 찾으려 하겠죠.”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요?”

“위험하죠. 거기 올려둔 계정에 쓰여 있는 정보들이 진짜 정보라면요.”

당연히 태주가 만들어 둔 계정은 가짜 주소와 가짜 이름으로 만든 계정이었다. 그러니 실제로 검색해보면 없는 지명이고, 없는 이름이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한 번 더 열 받을 거예요.”

태주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위험하진 않겠네요.”

지훈은 그러나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면 대상을 확정할 수 없도록 하는 거 아닌가요?”

“아뇨. 그런데 사실, 자세히 보면 알 법한 정보는 있거든요.”

최근, 자신의 학교에서 교사가 살해당했다는 정보를 흘렸다. 한번 자신이 쫓긴 적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늘 운동하던 곳에서 오늘부터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다시 달린다는 내용을 올렸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썼다. 체대 준비 중이라는 내용을 말했고. 교사가 죽어서 슬프다는 글을 올렸다. 물론 그 계정은 가짜지만, 누가 봐도 가리키는 대상은 명확했다.

“어, 그거 제 이야기….”

지훈이 무심코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제 이야기 맞죠?”

“네. 손님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그 녀석이 화까지 났는데, 그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자신이 한번 쫓은 적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과연 진정할 수 있을까요?”

태주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지훈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만약 이번에 쫓긴다면 무조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요?”

“네, 당연히 위험하죠. 아마 산책로에 그 녀석은 무조건 다시 나타날 겁니다. 오늘 저녁부터, 다시 뛸 거란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때 대비를 하고 있다가 붙잡을 생각입니다.”

“아하, 그럼 굳이 정말로 뛸 필요는 없겠네요?”

지훈의 질문에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연히 누구 하나는 뛰어야죠.”

“네? 굳이요?”

“낚시할 때도 확실하게 낚고 싶으면 떡밥이나 미끼는 쓰잖아요.”

그 말은 미끼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훈은 당황해 외쳤다.

“그, 그걸 누가 하는데요?”

설마 자신이 해야 하는 건가 싶어 지훈은 당황했지만 태주는 미소를 지으며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죠, 달리 누가 하겠어요?”

태주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 밤이 가기 전에 잡아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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