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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89화 (89/269)

8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6)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조금 적다. 그렇군요. 사실 그런 게 괴담에 영향받기 쉬운 성격이긴 하죠.”

지훈에게 약점을 들은 태주는 몇 가지 확인을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훈은 당황했다.

“어, 어디에 가시나요?”

“여론조작 하러 갑니다.”

“네?”

태주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지훈이 당황해서 아무 말 못 하는 사이 태주는 곧바로 자리를 비웠다. 이 작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기 때문이다. 대신 시아가 답했다.

“요즘은 소문 퍼트리는 데는 인터넷이 제격이니까요.”

“인터넷이요?”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무슨 일을 하러 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훈은 결국 그렇게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예,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지훈은 시아를 어색한 눈으로 봤다. 그나마 태주와는 꽤 오래 대화를 했으니 괜찮지만 시아와는 이제 막 본 사이다.

차라리 평범하게 생겼으면 그래도 말이라도 쉽게 붙여보겠는데,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미인이니 말을 걸기도 어렵다.

결국 지훈은 조심스럽게 시아가 뭘 하는지 살폈다. 그러고 보면 시아는 아까부터 뭔가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시아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시기는 좀 어려우니,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셔야 할 겁니다.”

“이대로요?”

지금 돌아가라는 건가 싶어 지훈은 당황했다. 시아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냥은 아닙니다.”

시아는 작은 나무토막으로 된 조각을 건넸다.

“방금 만든 겁니다. 들으면서 조각하고 있었지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을 들고 나무토막 같은 것을 조각하고 있었기에 그게 부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부적은 다 종이 같은 건 줄 알았어요.”

지훈의 질문에 시아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종이가 제일 흔합니다. 효과 보기도 좋고 손도 덜 가지요. 하지만 종이는 찢어지니까요.”

“아, 확실히 그냥 들고 다니기에는 이게 좋겠네요.”

“예, 그럭저럭 완성도 있는 모양새니 가방 바깥에 걸어 두는 식으로 활용하셔도 좋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지훈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궁금하신 게 있다면 지금 질문하셔도 좋습니다.”

“그, 부적이라는 게 있으면 전 안전한가요?”

아무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지훈의 질문에 시아는 잠시 눈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안전… 하다기보다는 에어백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

“추돌사고에서 탑승자를 보호하는 데 에어백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유리창을 뚫고 무언가 날아오는 경우라면, 그건 여전히 도움이 될까요?”

지훈은 멍하니 부적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지금 이 부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붉은 마스크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좀 더 정확히는 당신을 몰래 노리는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 골탕을 먹이는 정도의 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악의는 없는 다른 존재로부터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순 없습니다.”

“부적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건 아니네요. 뭔가 그런 이미지가 있었는데요. 행운을 높여주는 부적이라거나.”

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만능 부적 같은 것의 이야기도 종종 있습니다만.”

시아는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찌푸린 눈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런 만능 부적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건 죄다 사기꾼이니 무시하십시오. 다른 질문도 있으십니까?”

“어, 꽤 단호한 태도시네요.”

“이전에 그런 헛소리하는 녀석 때문에 조금 골치 썩은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이전에 귀찮은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지훈은 멋대로 짐작할 뿐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주는 것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을 보니 믿음이 갔다.

“그러고 보니 이 부적은 공짜인가요?”

지훈은 물었다. 꽤 정성 들인 조각이니 공짜로 받는 건 좀 미안했던 탓이다. 하지만 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뭔가 지불하게 되실 테니 공짜라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최종 금액은 요구하시는 내용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순 있겠습니다만.”

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의뢰 내용은 생각하셨습니까?”

“아, 네. 그런데 추상적이라서… 가능할까요?”

지훈의 질문에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들어나 보지요.”

지훈은 조금 어두운 눈으로 말했다.

“붉은 마스크가, 혹은 붉은 마스크가 아니더라도 뭔가 그런 괴담이라는 것에 있는 것들이 선생님을 죽인 거잖아요?”

“높은 확률로 그렇습니다.”

시아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생님을 죽인, 그것이 죗값을 치르게 해주세요.”

지훈은 자신의 의뢰를 그렇게 정했다.

“솔직히 용서가 안 돼서요.”

슬픔이 보이는 눈이다. 아마 지훈에게 선생의 죽음은 단순히 교사의 죽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리라.

“죗값이라, 그건 또 어려운 부탁입니다.”

시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단순히 자신을 살려달라, 붉은 마스크를 퇴치해달라는 것 이상의 의뢰다.

“많이 어려울까요?”

“글쎄요.”

시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죗값을 치른다는 것이 어느 정도를 원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딱 잘라 말씀드리긴 어렵겠습니다. 일단 아직 저희는 맨 처음 살인을 누가 한 것인지도 저흰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사람이라면 쉽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라면 재판을 받게 하는 것으로 ‘죗값을 치른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아직은 잘 짐작이 가질 않습니다.”

시아 역시 그 난이도가 얼마나 될지는 몰랐기 때문에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결국 해봐야 알겠군요.”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 * *

딩- 동- 댕-

아침 종이 울리자마자 월이가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뒤를 설이가 따랐다.

첫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두 사람은 곧바로 한 학년 위의 교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정탐을 갔다.

어제는 자신들이 나설 일이 없었으니 그 김에 제대로 쉴 수 있었지만, 오늘은 자신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했다.

“아무도 우리 못 봤겠지?”

설이의 질문에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마 못 봤을 거야. 애초에 우리가 자리 잠깐 비우는 걸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사실 두 사람이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조심스레 이동하는 이유는 보영 때문이었다.

“우리 편일 땐 엄청 든든했는데….”

보영이 몰래 뭔가 하는 걸 들킨다면 그 정보망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다.

물론 몰래 뭔가를 한다고 그 애가 자신들에게 크게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겠지만 재밌는 일이 있었다는 생각 정도는 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렇게 흥미를 가진 보영에게서 사실을 숨기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두 사람은 움직이기로 했다.

평소라면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지금 학교는 보영이 두 사람이 몰래 움직이는 ‘사소한 일’ 따위에 신경을 쓰기엔 지나치게 어수선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몰래 조사할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두 사람은 움직였고, 실제로 누구에게도 관심을 끌지 않고 다른 학년의 복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건 꽤 성공적인 움직임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은 은밀하게 행동하는 것은 숙련되어 있었지만, 조사능력은 처참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런 정보 조사는 죄다 한 사람에게 떠넘긴 업보였다.

“그래서 이제 어쩌지?”

이동이야 문제없이 했지만, 그 뒤에 뭘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설이의 물음에 월이도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러게?”

‘학교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살펴줘, 특히 죽은 교사가 있는 반을 중심으로.’

내용은 간단하고, 더해서 조사해야 할 내용도 복잡한 건 없었지만 문제가 조금 있었다.

그저 학년이 다르고, 반이 다른 곳이라면 한번 밀고 들어가 볼만도 하지만, 아무래도 담임이 죽은 반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는 건 조금 눈치가 보였다.

심지어는 상급생의 교실이다.

“거기 들어가는 건 굉장히 어색할 것 같지?”

“아하하, 하려면 할 수도 있긴 한데.”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평소보다도 더 눈에 띄는 일이 될 거고, 그렇다면 두 사람이 원하는 평범한 분위기를 알아내는 것은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결국 그래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설이는 난처하게 웃었다.

“이번에 오빠가 부탁한 건 단순히 특정 사실을 알아오는 게 아니니까….”

그런 정보는 필요가 없다. 정말로 태주가 원하는 건 학교의 분위기뿐이다.

연화가 원래 어떤 학생이었는지는 그냥 지훈에게 들으면 되는 일이다. 두 사람이 단편적인 조사를 해 가는 것보다 지훈 본인에게 듣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두 사람이 알아가야 하는 것은 지훈이 대답해 줄 수 없는 것. 예를 들면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느끼는 분위기와 같은 것 정도다.

하지만 막연한 것을 알아가려 하니 방법도 막연하다. 두 사람은 결국 죽은 담임이 있던 교실 앞에서 팔짱 끼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 수상한 거 같은데.”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

“아니, 걔는 대체 지금까지 그런 걸 어떻게 알아내서 알려준 거야? 괴물 아냐?”

월이는 한탄하듯 말했다. 한 사람의 부재가 생각보다 크다.

“무리해서 알아올 필요는 없다고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잠깐이라면 괜찮겠지.

두 사람은 창문 너머로 빼꼼 교실 안을 바라봤다.

“어라?”

예상대로 분위기는 당연히 그리 좋지 않았다. 통상적인 수준의 분위기보다는 진정되어 있어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사람이 죽은 것 치고는 꽤 좋다.

아니, 늘 죽어가는 것에 가까운 고3의 반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 평상시와 다를 것도 없는 수준이다.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은데?”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바깥에서 언뜻 봐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의 모습은 어둡지 않았다.

“생각보다 다들 그리 슬프거나 하지는 않은가 본데.”

물론 초상집 분위기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당일이면 모를까 이미 일주일 이상이 지났다. 당연히 슬픔이나, 괴로움은 조금씩 무뎌지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조금 들뜬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조금 은은하게 침체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은은한 밝은 분위기. 이건 좀 예상외였다.

“그냥 노는 게 좋은 걸까?”

월이는 의문을 던졌다. 설이 역시 그건 알 수 없었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생각나는 이유는 없네. 진짜 공부를 안 하는 게 좋은 건가?”

워낙 대사건이니 한동안은 야자도 없다. 공부를 조금 쉬기에도 딱 좋은 핑계였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분위기가 좋은 건 여전히 이상하다.

“이상하네. 왜 분위기가 좋지?”

월이의 의문에 설이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담임이 맞이한 비극적인 죽음에 비해 반 분위기는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다.

“이해할 수가 없네…”

오히려 이쯤 되면 두 사람이 지내는 반이 더 어두운 것 같기도 하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일단 돌아가자. 곧 쉬는 시간 끝날 것 같아.”

설이의 말대로였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은 더 없었다.

“그래, 일단 돌아가자! 지금은 이 정도의 느낌만 파악해도 충분할 거야. 어차피 점심시간도 있잖아?”

빈손도 아니고, 날도 덥다. 게다가 이 이상 시간을 들여봐야 더 말할 거리가 있는 걸 알아내서 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두 사람은 다시금 몰래 교실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보영에게 자기 몰래 뭘 했냐고 추궁당하는 것은 한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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