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87화 (87/269)

87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4)

“마스크를 낀 살인자, 저랑 선생님을 아는 것 같은 말투, 그리고 그 날 이후로도 꾸준히 제가 도망치는 곳마다 걸려 있는 피에 젖은 마스크…. 이쯤 되면 붉은 마스크가 연화가 아니라는 것도 말이 안 돼요.”

“그렇군요.”

그러나 태주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지훈은 자신이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는지 눈에 핏발까지 세우고는 말했다.

“게다가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의 말과 연화의 특징도 일치해요. 경찰이 발표한 살인자의 추정 키와도 똑같고요. 뭔가 연관이 있는 게 확실하다구요.”

지훈은 태주의 미묘한 표정을 보고는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인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설명은 더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연관성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태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은 연화라는 사람이 진짜 붉은 마스크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제가 본 건 확실합니다. 정말이라구요!”

“네네. 그건 믿습니다. 그런데 다른 게 문제에요. 지금이 처음의 살인사건이 있은 지 딱 일주일 된 날이죠.”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님이 겪은 일은 그 살인사건이 있은 지 삼일 뒤고요.”

“네. 정확해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태주는 종이를 꺼내 살인사건이 있었던 날부터 날짜를 나열해 적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그 인터뷰가 있었다고요. 아니, 인터뷰야 조금 더 빨랐겠지만, 기사화된 건 그날이죠.”

태주는 각 날짜에 표시를 하며 말했다. 살인사건과 인터뷰 기사의 날짜는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손님이 말대로라면 기사가 나기 전에 이미 괴물이 있었던 거겠죠?”

“…네.”

“그런데 말이에요.”

“네?”

“그게, 말이 안 됩니다.”

태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훈은 되물었다.

“무슨 말인가요? 제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요?”

“네. 괴물의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고요.”

태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붉은 마스크라는 괴물이 있기 전에 지훈 씨가 괴물을 만났다는 말이에요.”

지훈은 영 이해하기 어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기에 태주는 좀 더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괴담은 이야기입니다.”

태주는 괴담이 만들어지는 순서를 설명했다.

“그냥 살인자가 있는 건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살인자가 괴담 속의 존재로 여겨지면서 서로 비슷해지는 것 역시 가능하고요. 하지만 괴담 속의 존재가 먼저 있고, 그래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훈은 상대를 괴물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태주가 보기에도 이번 사건의 범인이 괴물이라는 건 충분히 합리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야기보다 우선해서 등장한 괴물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순서가 반대라는 말이다.

“붉은 마스크라는 이름은 당신이 그 연화 씨로 추정되는 분에게 쫓긴 다음에 언론에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렇죠…. 그럼 저희가 모르는 사이에 소문이 있었을 가능성은요?”

지훈은 혹시나 싶어 물었다. 하지만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희는 이미 붉은 마스크를 조사하고 있었거든요.”

“조사를 이미 하셨다고요?”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사실 오늘로 마무리니 거의 끝났죠.”

“…혹시 제가 올 걸 이미….”

지훈은 소름 돋는 표정을 지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요…! 사건의 이름 때문에 그래요.”

“이름요?”

“네. 괴담이란 건 유독 이름의 유사성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이름이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합쳐지거나, 이름이 여러 개인 탓에 갈라져 버린 괴담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마스크는 눈여겨볼 이유가 있었어요. 빨간 마스크와 이름이 너무 비슷하잖아요?”

심지어는 그 마스크의 색이 피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것 역시 같으니 더하다.

“그래서 조사를 하신 거군요.”

“네. 그리고 조사 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괴담으로서의 붉은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은 분명히 없었어요. 빨간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시들해진 지 오래고요.”

붉은 마스크는 지금은 그저 살인자에 대한 호칭일 뿐이다. 아직 붉은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 중 괴담처럼 유명해진 소문은 없다.

유명한 살인사건에 대한 괴담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나중에는 당연히 생길 수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실존하는 살인사건과 이야기 속의 살인마를 사람들은 당연히 구분할 수 있다.

“애초에, 이름은 비슷하지만, 사실 빨간 마스크와 붉은 마스크는 전혀 다르죠.”

빨간 마스크의 살인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입을 찢은 것도 아니고, 그냥 등에서 칼을 찔렀다. 나중에는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지금은 아니다.

“물론 오늘 하루 만에 조사를 뒤집을만한 사실이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엄청나게 희박해요.”

그래서 태주는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니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붉은 마스크에 대한 소문은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기사가 쓰인 다음이었습니다.”

이건 또 처음 겪는 일이다. 이런 류의 사건경험이 비교적 풍부한 시아도 이런 일은 예상치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있을 수 없어야 하는 괴물이, 지금 나타난 겁니다.”

* * *

“이건 좀 아닌데.”

시아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이 너무 덥다. 게다가 뙤약볕을 피하지 않고 맞고 있으니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지친다. 그나마 선크림이라도 바르고 나와서 다행이다.

“붉은 마스크고 뭐고 내가 먼저 죽겠군.”

진지하게 그만둘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도저히 땡땡이를 칠 수가 없다.

결국, 시아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시아는 땀을 닦으며 다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혹시 요즘 소문 아는 거 없니?”

머리 두 개는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 이러고 있으니 자괴감이 들었다.

“사탕 줄 테니 언니가 뭐 좀 물어봐도 될까?”

시아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대사였지만, 더 좋은 방법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렇기에 시아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는 계속 말했다.

“과…과자도 있어…!”

그래도 중학생들까지는 그럭저럭 대할 수 있었지만, 상대가 초등학생쯤 되니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아이들은 이상한 사람 보는 눈으로 시아를 피해 갔다.

‘그냥 사무소로 돌아갈까….’

시아는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기, 언니!”

“어, 어?! 사탕?!”

시아에게 말을 걸어준 건 작고 귀여운 여학생이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시아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사탕 먹을래?”

아이는 사탕을 받고는 시아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언니는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 말에 시아는 상처받은 눈으로 말했다.

“어… 언니는 수상한 사람이 아닌데….”

“누가 봐도 수상해 보여요….”

시아는 그걸 알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래서야 별 도움이 되는 대화는 할 수가 없다.

“…사탕이나 하나 더 먹을래?”

“아뇨, 하나면 돼요. 그리고 요즘 사탕 주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고 배운다구요.”

“윽, 아니 그래, 교육받은 걸 잘 기억하는구나….”

시아 역시 낯선 사람이 주는 사탕을 받아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로 수상한 사람은 아니란다.”

당연한 항변이지만 설득력은 없다.

“그럼 방법이라도 바꾸셔야 할걸요.”

시아는 조금 좌절했다. 그 틈을 아이는 그 뒤 아무렇지도 않게 가던 길을 갔다.

“요즘 애들이 너무 무서워…”

담배가 물고 싶어지는 상황이지만 이곳에는 애들이 많으니 그럴 수도 없다. 시아는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옷깃을 살짝 풀었다. 안 그래도 잘 안 풀리는데 날까지 더우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슬슬 여름이구나.”

시아는 잠시나마 진지하게 복장을 조금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조금 했다. 검은 정장은 여름에 입기엔 영 좋지 않다.

“아니, 그래도 역시 내 옷은 이게 최고지.”

본인에게는 아이덴티티이기도 했기 때문에 옷을 바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옷을 입고 더 바깥을 돌아다닐 자신도 없었다.

“그냥 야외 활동은 진짜 관둬야 하나… 환장하겠군.”

목 뒤로 땀이 조금 흘렀다.

그래도 다행히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확실히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빨간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는 알지도 못하는 것 같았고, 붉은 마스크도 잘은 몰랐다.

확실히 빨간 마스크 괴담이 유행하던 시절과는 달랐다.

애초에 이런 미스테리한 살인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건이긴 했다.

“사실 그곳에서 가장 경계 받던 건 그냥 나였지.”

시아는 조금 시무룩한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통학로에서 가장 아이들이 수상해 했던 건 이상한 소문 따위가 아니라 시아였다.

“평화로우니 잘 됐다고 해야 하나...”

초등학생만 그런 게 아니다. 중고등학생도 크게 다를 건 없다. 살인사건을 조금 의식하긴 하지만 그게 다고, 빨간 마스크 이야기와 연결하지 못했다.

빨간 마스크는 이미 한물간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겨우 이런 결론을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조사를 한 건지….”

시아는 그렇게 한숨을 쉬고는 통학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절실하게 니코틴이 필요했다.

띠리리리릭-

“음?”

시아가 막 전자담배의 뚜껑을 열자마자 낡은 착신음이 울렸다. 태주였다.

“쯧, 간신히 찾은 흡연 구역이었는데.”

시아는 아쉬운 마음에 혀를 한번 차고는 전화를 받았다.

“뭐야?”

[아, 하던 일은 끝났죠? 초등학교 애들 하교 시간은 좀 넘긴 것 같은데.]

시아는 조금 의아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을 텐데, 먼저 전화를 건 것을 보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충은. 이상한 건 없었어. 그 사이에서 가장 수상한 건 나더군.”

시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태주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거기서 그런 옷을 입고 다니면 당연히 그렇겠죠.]

“그래도 옷을 바꿀 생각은 없어.”

[그래요. 그래야 누나죠. 그래서, 뭔가 성과는 있었어요?]

아마도 본론일 태주의 질문에 시아는 담백하게 답했다.

“이상한 소문 같은 건 없었다는 정도.”

[붉은 마스크 소문이 그닥 널리 퍼지진 않았단 말이네요.]

“그래. 아마 평범한 살인사건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아직 그 둘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무소의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아는 그래서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나중이면 모를까, 당장은 괜찮아.”

[그럼 아직은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네요.]

태주의 말을 들은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문제가 있구나.”

[네. 붉은 마스크에 쫓겼다는 사람이 찾아왔거든요.]

“붉은 마스크? 빨간 마스크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 보고 온 것 아닌가?”

붉은 마스크 때문에 빨간 마스크가 되살아나는 방향을 경계했지, 붉은 마스크 괴담이 벌써부터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 거라는 가정은 애초에 한 적도 없었다.

[아뇨, 붉은 마스크가 맞아요. 이야기 녹음해 뒀으니 돌아와서 들어 보세요. 이게 붉은 마스크와 연관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니까요.]

태주가 잘못 파악했을 리는 없다. 시아가 아는 태주는 확실하지 않으면 말을 안 하고 말지 섣부른 추측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태주의 말이라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 이번 일은 그만큼 있을 리 없는 일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기에 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태주 역시 공감했는지 한숨을 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예, 그렇죠. 원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데도 괴물이 나타났다. 시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일은 아니구나.”

그럼 이렇게 조사한 게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마.”

괴물이라. 시아는 다시 한번 혀를 차고는 전화를 끊었다. 못내 아쉽다는 듯 시아는 주머니 속의 담배를 한번 어루만지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목의 땀은 이제는 다른 이유로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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