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전문 사무소-86화 (86/269)

86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3)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 보였다. 같은 반의 학생이었다.

연화는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운동을 좋아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운동을 하던 사람인지 아닌지는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본 연화는 최소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잘못 본 걸까. 마스크도 있고 하니 사실 그럴 수 있다.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속 달렸다. 생각은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는 온전히 뛰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있을 줄 알았다.

탁탁탁탁, 탁탁

지훈의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길 위에 다른 사람은 없었으니 이 소리는 아마 그 마스크를 쓴 여자일 것이다.

잠시 쉬던 중 누군가가 옆에서 쌩하고 지나가니 자극을 받아 달리기 시작한 거겠지.

지훈은 미소를 지었다. 운동하는 이들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호승심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발소리가 쫓아온다. 지훈은 재미 삼아 속력을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와 여자다. 따라 잡히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다.

발소리는 여전히 따라오고 있다. 아무리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라지만 잘도 따라온다 싶었다.

자신이 평범한 남자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나름 자신은 체대를 준비 중인, 운동깨나 하는 사람이다.

그런 자신에게 따라붙으려 시도를 한다는 게 어쩐지 재미있어서 지훈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최대한 올렸다.

“으음?”

탁탁, 탁탁탁탁

그러나 달려오는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상한 일이다.

왜 자신이 따라 잡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이미 자신보다 빠른 사람은 없다. 적게나마 있는, 같이 체대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이곳을 돌면서 자신보다 빨리, 그리고 오래 달릴 수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 자신이 따라 잡힌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저기, 방금 내 이름 말했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 그러고 보니 자신이 연화라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흘렸던 것 같기는 했다.

그런데 이게 연화의 목소리인가?

알 수 없었다. 평소에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말했잖아? 내 이름?”

숨이 차오르고 있어 대답할 수 없었다. 지훈조차 신경 써서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힘들 정도의 속도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건 티끌 한 점의 불편함도 없는 목소리였다.

지훈은 그제야 뭔가 심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깔깔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지훈은 대답하지 않고 더욱 빨리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 정도로 체력을 소모한 상태에서, 이렇게 앞뒤 생각 없이 스퍼트를 걸어본 적은 없었다.

어떻게든 뒤에 따라오는 무언가를 떨쳐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강렬한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뒤에서 따라오는 목소리는 결코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가까워졌다.

만약 완전히 따라 잡히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훈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아하하, 이제 내가 너보다는 확실히 빠르네? 선생님 안목도 별거 아니잖아?”

선생님? 무슨 소리지? 그 급한 상황에서도 뇌리에 박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던 중 그만 지훈은 다리가 풀려 넘어지고 말았다. 한순간에 너무 빠르게 뛰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닥에 굴러 무릎과 팔에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지훈은 웃을 수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파출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자신은 안전하다.

“저런 걸 보고 안심하다니, 바보 같아.”

쓰러진 지훈의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는 은은한 화가 섞여 있었다.

지훈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마치 몸이 얼어버린 것처럼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이대로면 죽고 말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훈은 긴장한 몸을 억지로 뒤척여 뒤를 돌아봤다. 이대로 끝나는 건 너무 억울했다.

가로등 때문에 역광이 져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연화였다.

연화는 그렇게 누워 있는 지훈을 내려다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하- 기분이야 나쁘지만, 오늘은 됐어. 이상한 기분이 드네.”

조금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연화는 사라졌다.

연화가 사라지며 느껴지던 기묘한 압박감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잠시 지훈은 움직이지 못했다.

지훈은 넋을 잠시 잃은 채 그렇게 누워 있었다.

살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훈은 덜컹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는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은… 안 되겠지?”

바로 앞이 파출소였지만 경찰에 말할 수는 없었다. 경찰에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지훈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꿈인가? 헛것을 본 걸까? 아마 그럴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된다.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착각해서 자신은 전력질주를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간신히 자신이 사는 아파트로 돌아온 지훈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무래도 자신도 알게 모르게 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였나 보다. 은사가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빨리 샤워만 하고, 일찍 자자.

그러나 지훈은 그럴 수 없었다.

“뭐야? 이거?”

지훈의 집 문 앞의 문고리에는 피에 젖은 마스크가 걸려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똑-

핏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누가 이런 장난을….”

연화가 쓰고 있던 하얀 마스크와 비슷하게 생긴, 그러나 피에 젖은 마스크.

“같은 마스크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죽어라 달리느라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처음에 힐끗 본 것만으로 이게 그것과 같은 마스크라는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뭔가 연관이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못 본 척하고 들어갈까 생각도 해 봤다.

그러나 무시하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눈에 띄었다. 마스크에서는 지금도 피가 조금씩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지훈은 걸려 있던 문고리에서 마스크를 빼내 창문을 열어 아예 저 멀리 바깥에다 던졌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려다보고는 흠칫 놀랐다. 손에는 피가 듬뿍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거 진짜 피인가?”

지훈은 이렇게 많은 피를 본 적 없었다. 피에 푹 절은 천을 만져본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본 피라고 해봐야 어릴 때 운동 중 넘어져서 생긴 상처에서 흘린 피, 이전에 친구가 흘린 코피, 아니면 영화 같은 곳에서 본 피 정도가 다였다.

그래서 지훈은 이게 진짜 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비릿한 냄새와 끈적거리는 것 같은 촉감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진짜 같다.

“대체 뭐지?”

지훈은 아연하게 말했다.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이게 우연히 자신의 집 앞에 걸려 있을 리는 당연히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지훈은 비틀거렸다. 이미 무리한 육체에 정신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살해당하고, 이상한 괴물 같은 것에 쫓기고, 그러고 난 뒤 집 앞에는 이런 게 걸려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간신히 집 앞에 있는 핏자국을 지우고 손과 몸에 묻을 피를 지우고는 지훈은 비틀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곧바로 잠들지 못했다.

몸이 피곤한데도 너무 불안하니 잠들 수가 없다. 결국, 새벽 늦은 시각에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아침, 지훈은 학교에 가지 말까 하는 고민을 했다. 너무나 불안했다.

“그래도 가야겠지.”

아직 임시 담임과 입시 상담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도 있었다.

과연 자신이 만난 것은 정말로 연화가 맞는 것일까?

자신이 알던 연화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조용조용한 데다 성격도 심약하다.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은 없지만, 그 정도로 흥분해서 자신에게 달려들 거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야 하는데….”

하지만 자신을 쫓아온 괴물은 연화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선생님에 대한 말을 했다. 그리고 묘하게 자신을 아는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알 수 없었다.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빈자리를 바라봤다. 연화의 자리에 사람은 없었다. 오늘도 결석한 것이다.

혹시, 괴물이 되었기 때문에 오지 못한 것일까?

“아냐. 그런 거로 단정할 순 없어.”

살인사건이 있었던 직후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은 꽤 많았다. 이 반에는 특히 많았다.

상황이 이러니 수업도 제대로 진행될 턱이 없었다. 원래 담임이 맡던 수업은 자습시간으로 처리가 되었으나, 아이들이 그런 상황에서 자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지금처럼 자습시간은 죄다 떠드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지훈은 가만히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이야기들이 계속 들렸다. 지훈은 앞자리에 있는 여자애 둘이서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범인은 마스크를 낀 여자래.”

“마스크를 낀 여자?”

지훈은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에서 말하고 있는 두 사람은 지훈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원래는 하얀색 마스크였는데, 칼로 사람을 찌르면 피가 묻잖아? 그래서 붉은색의 마스크가 됐다던데?”

“으엑, 무섭다. 뭔가 현실감 있어. 붉은색의 마스크라니. 옛날에 비슷한 괴담 있지 않았어?”

“그게, 어디서 나온 말이야?”

지훈은 불쑥 말했다. 목소리가 꽤 거칠게 나왔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어?”

앞에서 대화하던 두 사람은 당혹했다. 지훈의 얼굴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자신의 상태가 말이 아닌 것을 알았다.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 있을 것이고, 표정은 아마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범인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데?”

딱딱한 목소리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놀랄 만큼 날카로웠다. 두 사람은 당황해 서로 마주 보더니 말했다.

“그, 뉴스에 나오던데?”

“뉴스?”

“응. 오늘 아침 뉴스. 인터넷 기사로도 있을 거야.”

지훈은 홀린 듯 핸드폰을 열어 검색하기 시작했다.

“붉은 마스크?”

인터넷을 열자마자 수십 개의 기사가 보였다.

“뭐야, 이게?”

인터뷰와 인상착의는 맞아떨어진다. 키도 경찰이 발표한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어떻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도망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내용까지….

“살인범이… 연화라고?”

* * *

“그 뒤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집은 안전하지 않으니까, 집 바깥의 아는 곳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잘 수 있는 곳으로.”

지훈은 말하면서도 계속 손가락을 쥐락펴락했다. 아무래도 불안함이 영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숨어다녔어요. 도망 다닌 거죠. 헬스장 관장님께 부탁해서 하루를 거기서 보내기도 하고, 밤새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장소로 바꾸면 괜찮을 거라고, 지훈은 안심했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지훈이 머문 장소에는 그 붉은 색의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어딜 가도 그 마스크가 있다. 지훈조차 가보지 않은 곳에 가 봐도 그 마스크는 걸려 있었다. 그게 며칠이나 반복되니 지훈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도망가다가 간신히 사무소에 대해 알게 된 지훈은 학교도 내팽개친 채 곧바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지훈은 분명히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