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2)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타이밍이 너무하다.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는 판단하에 태주는 물었다.
“붉은 마스크라 하면 그 최근 살인사건의 범인을 말하는 게 맞나요?’
남자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속으로 탄식했다. 차라리 다른 사건이면 좋았을 텐데.
불안한지 다리를 조금씩 떨고 있었다.
“거의 확실해요.”
“붉은 마스크가 왜 당신을 죽인다는 건가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새하얗게 질렸을 뿐이다. 붉은 마스크와, 죽인다는 말만 듣고도 남자는 다시 패닉에 빠지고 만 것이다.
태주는 말없이 찬물을 따라 남자에게 건네줬다. 잠시 남자가 진정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말을 듣기는 힘들 것 같았다.
“자, 심호흡하세요.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이곳은 안전하니까,”
“안전한가요? 정말요?”
“네,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이곳에 찾아올 수 있는 건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뿐이에요.”
심지어는 한번 와 본 사람이라도 사무소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남자가 진정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이곳은 안전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으려면, 그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남자가 진정하는 동안 태주는 그동안 남자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나이는 많아 봐야 고등학생, 혹은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키는 큰 편이었고 피부는 조금 검었다. 머리카락은 짧게 쳤고, 몸은 다부졌다.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붉은 마스크와 만나버린 것인지, 태주는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보통 괴담이라 하면, 심신이 연약한 사람이 만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괴담과 연결된 건 그저 우연일 확률은 낮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저, 이곳은 확실히 안전한 게 맞죠?”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조금 안정을 찾은 모양이었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전합니다.”
“정말로 안전한 거죠?”
남자는 눈을 떨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태주는 미소와 함께 말을 걸었다.
“방금은 상황이 급해 자기소개도 못 드렸네요. 제 이름은 태주라고 합니다. 손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제 이름은… 방지훈이에요.”
지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이신가요?”
“네. 고등학생이요.”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이렇게까지 좋다면 분명 체육계열 진학을 준비 중인 학생일 것이라는 짐작이 되었다.
“자, 그럼 지훈 씨,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왜 붉은 마스크 사건의 범인이 당신을 죽일 거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건….”
“말하기 어려우신가요?”
여전히 지훈은 조심스러워했다. 지훈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어렵지는 않지만… 혹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말이에요.”
“저는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문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요.”
태주의 담담한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을 듣고 놀라지 마세요.”
태주는 이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관심이 갔다. 지훈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저는, 저는 붉은 마스크가 누구인지 알아요.”
“잠시만요, 누구인지 아신다고요?”
지금까지 범인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유일한 목격자라 자칭하는 노숙자도 그게 붉은색 마스크를 낀 여성이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단순히 인상착의 정도를 아시는 게 아니라 정확히 누구인지를 아신다고요?”
지훈은 부들거리며 말했다.
“네, 알고 있어요. 범인은 저랑 같은 반인 아이예요.”
“그건 좀 믿기 어려운데요. 범인이 학생이라니요?”
태주의 말에 지훈은 불안한 와중에도 의아하다는 듯 눈을 올려 떴다.
“고등학생이 살인범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지훈의 떨리는 눈을 본 태주는 고개를 저었다.
“살인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한해서는 조금 의아하죠.”
태주는 조금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실력이에요.”
태주는 한숨을 살짝 쉬면서 말했다.
“사람을 칼로 찌르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에요. 즉사가 아니라면 사람은 무조건 비명을 지르니까요. 주택단지 한복판에서 하기엔 최악의 선택이라 해도 되겠죠.”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의 범인은 칼을 썼어요. 보통이라면, 뒷 일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맛이 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엔 좀 달랐죠.”
비명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폐가 찢어지면 비명을 지를 수 없다.
“범인은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로 칼을 찔러서 정확히 폐를 찔렀어요. 심지어 칼질이 너무 정교해서 불필요한 상처가 없었다고 하죠.”
상처는 등에서 폐를 관통해 앞을 뚫은 단 한 개의 관통상과 멍든 무릎뿐이다.
“이건 잡히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고 밖엔 설명이 안 되겠죠.”
그러니 이건 우발적이라기에는 너무 전문적인 살해다. 하지만 고의적이라기에는 그럴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런 연습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납득이 안 되잖아요?”
이 부분이 바로 이번 살인사건이 미제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어디 뭐 특수부대원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오히려 덜미가 잡혔을 거예요.”
결국 경찰은 현재로서는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렇다 할 용의자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런데 그 범인이 학생이라고요?”
칼을 그렇게 잘 다루는 고등학생이라니, 사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이 남자는 이곳에 왔고 그렇다면 최소한 괴담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다.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지훈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훈은 지금까지 용케 살아있었다고 말해도 된다.
범인은 분명 자신의 정체를 아는 이를 절대로 살려 두고 싶지 않을 테니까.
“완전히 믿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손님의 말을 무시하기도 어렵네요.”
미심쩍으나 믿지 않기엔 위험하다. 결국 태주는 결국 한껏 눈을 찌푸린 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럼 손님이 생각하는 범인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가 상대를 조사해 봐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믿어 주시는 건가요?”
“전부는 아니지만요. 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손님을 보호해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고요.”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 정도만 하더라도 감지덕지라는 입장인 것 같았다.
“범인은….”
지훈은 긴장한 채 말했다.
“범인은 풍석고의 오연화에요.”
태주는 일이 묘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화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그 학교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풍석고등학교라면 지금 학교 선생이 죽은 학교의 이름이며, 동시에 월이와 설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이름이었으니까.
“그 말이 정말인가요?”
그렇기에 태주는 다시 물었다.
“그 애가 맞아요. 제가 잘못 본 것도 아니고요. 저를 쫓아오기도 했으니 확실해요.”
덜덜 떨면서 남자는 말했다.
“괴물이었어요. 그건.”
태주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괴물이라.”
괴물이라는 건 흔히 살인자에게 할 수 있는 표현 중 하나기는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살인자의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더 곤란했다.
“어떤 점에서 괴물이라는 건가요?”
“그냥, 그냥 그건 사람이 아니에요. 절대로요. 달리기도 엄청나게 빠르고, 절대 도망칠 수 없어요. 그리고 또….”
지훈은 말하다 말고 갑자기 주변을 살폈다. 굉장히 황급한 모습이었다. 태주는 남자가 원하는 만큼 두리번거리게 내버려 뒀다.
“뭘 찾으시는지는 몰라도 여긴 저희 둘밖에 없습니다.”
태주의 말에도 남자는 주변을 계속 주시하며 작게 말했다.
“그리고 그 애가 자꾸 붉은색 마스크를 제가 숨는 곳에 놔둬요.”
“마스크요?”
“집 안에 있어도, 마스크가 어느새 집 안에 들어와 있어요. 피에 푹 절어있는 채로요. 다른 곳으로 피신해도, 그곳에도 마스크가 있어요. 그건 분명히 협박이에요….”
태주는 눈을 조금 찌푸렸다. 무시하기 어려운 메시지였다. 이쯤 되면 자신이 붉은 마스크라는 홍보나 마찬가지인 수준이다.
“그걸 그 연화… 라고 하는 분이 했다는 근거가 있나요?”
“증거는 없지만….”
지훈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제가 겪은 일들은 말씀드릴 수 있어요.”
* * *
지훈이 붉은 마스크에게 쫓기기 시작한 것은 삼 일 전부터였다.
당시 지훈은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살해당한 이후로 지훈은 마음이 영 진정되지 않았다.
지훈에게 담임선생님은 각별한 사람이었고, 은인이었다.
‘너, 메달도 딸 실력이잖냐. 그 실력으로 그만두는 건 아깝지 않을까?’
그 말 하나 때문에 지훈은 그만두려 했던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전에 운동선수가 꿈이었던 적도 잠시나마 있다고 말한 교사는 지훈을 꽤 긍정적으로 봐 줬는지, 다양한 방면으로 관련 입시 정보에 대해 알아봐 주었다.
지훈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사실, 운동을 그만둘 생각으로 진학한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담임은 자청해서 도왔다.
일반적인 학생들이 가는 길과 많이 달랐기에 알아보는데 꽤 품이 들었을 텐데, 담임은 지훈을 열심히 도왔다.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돕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살해당했다.
슬픔도 허탈함도 강했다. 동시에 한가지 생각이 같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 어쩌지?
그러나 걱정한 것만큼 별일은 없었다. 지훈의 진학과 관련한 부분은 이미 정리가 되어 있었던 데다, 부담임 역시 지훈을 좋게 봐 줬는지 신경을 써 줬다.
그러다 사람이 죽었는데 진학 걱정만 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지훈은 그 마음에 죄책감이 들어 달렸다.
그러던 중, 문득 주변을 봤다. 아무리 생각에 잠겨서 뛰고 있었다지만 주변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뭔가 이상한데.”
아무도 없었다. 물론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길 위에 자기 자신만 있는 건 처음이었다.
“아, 살인사건 때문인가?”
연쇄살인은 아니라는 경찰 발표가 있긴 했지만, 불안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살인사건에 대해 생각하니 기분이 다시 싱숭생숭해졌다. 지훈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잡생각 없이 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곳의 모습은 지훈이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살인범에 대한 공포보다는, 익숙한 공간에 아무도 없다는 게 확실히 조금 꺼림칙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너무 없는데.”
그렇게 지훈은 달리기에 집중하지 못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멀리 가로등 아래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봤다. 실루엣은 여자인 것처럼 보였다.
호기심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봤다.
“마스크? 이 더운 날에?”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익숙한 얼굴이라 알아볼 수 있었다.
“어라?”
스쳐 지나가며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흘렸다.
“연화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