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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전문 사무소-84화 (84/269)

84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붉은 마스크 (1)

컴컴한 새벽, 골목길은 조용하다. 가로등만 가끔 깜박거린다.

높지 않은 빌라와 다세대주택이 잔뜩 있는 그런 동네다. 근처에 술집도 없고 큰 도로도 멀다. 종종 들려오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가장 시끄러운, 그런 아주 평범한 동네다.

누군가의 발소리마저 멀리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조용하다.

다들 잠을 자는지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은 없다.

그런 골목길을 걷는 한 사람이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있었다면 몇 걸음 바깥에서도 진하게 나는 술냄새를 맡고 얼굴을 찌푸렸을 것이다.

“어우, 죽겠다. 땅이 왜 이렇게 흔들리냐?”

딸꾹질을 한번 하고는 남자는 잠시 멈춰 한숨 돌렸다.

이렇게 많이 마신 것도 오랜만이고,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올해는 처음이다.

“어, 돌겠다. 이렇게 보니 처음 보는 길 같네.”

히끅- 하고 남자는 한 번 더 딸꾹질했다.

그렇게 잠시 멈춰선 순간, 저 멀리 이상한 것이 보였다. 마치 유령처럼 한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서 있다. 여성처럼 보이는 실루엣이었다. 가로등이 없어 은은하게 비치기만 하는 곳에 서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뭐야?”

분명 남자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저 여자는 언제 나타난 걸까. 그 조금 섬뜩해서 남자는 조금 겁먹었다.

“이봐요, 거기서 뭘 해요?”

겁먹은 것을 숨기려는 듯 남자는 그게 외쳤다. 그러나 여자는 대답이 없다. 그저 여전히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뭘 쳐다보고 있어?! 사람 짜증 나게.”

퉁명스럽게, 센 척을 하며 남자는 말했지만, 여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시시하다며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그냥 미친 여자였나보다 했다.

“에이- 쒸!”

남자는 그렇게 땅을 한 번 발로 차곤 가야 할 길을 가기로 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집이었다.

그렇게 남자는 다시 술냄새를 풍기며 여자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음?”

그렇게 몇 걸음 더 갔을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소리지만 확실하다.

그 여자가 따라오고 있다.

남자는 뒤를 살짝 돌아볼까 했지만, 눈이 마주치기 싫었다. 그래서 그냥 걸음을 조금 더 빨리 했다.

타박타박-

타박타박-

하지만 그 발소리는 남자의 걸음에 맞춰 따라왔다.

일부러 맞춘 걸까? 한 발을 걸으면, 한 발자국을 따라온다. 조금 느리게 걸으면 맞춰서 따라온다.

등에 소름이 돋았다. 남자는 걷는 속도를 올렸다.

자신의 발걸음이라면 미친 여자 한 명은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떨쳐 낼 수 없다.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발소리는 전혀 멀어지지 않는다.

어느새 남자는 달리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슬슬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뒤따라 오는 발소리는 멀어지기는커녕 가까워지고 있다.

탁, 타닥, 타다닥.

남자의 발걸음에 맞춰 소리가 났지만, 분명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다.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소리는 바로 등 뒤에서 멈췄다.

“헙!”

남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한 채, 가슴을 뚫고 튀어나온 뾰족한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소리를 지르려 입을 벌렸지만, 바람이 빠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남자의 뻐끔거리던 입에서 피가 차올랐고, 더 이상 쌕쌕거리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될쯤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났다.

“후후, 크크큭-”

그 목소리가 남자의 등 뒤에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아직도 못났나요?”

목소리는 미칠 듯 달콤하게 들렸다. 남자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려 했지만, 목이 막혀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다.

대신 남자의 입에선 피가 넘쳐 흘렀다.

“대답은 안 해 주시네요?”

목소리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당연히 대답할 수 없겠죠. 그럼요, 그럼~ 제가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죠.”

조금은 장난스러운, 그리고 과장된 말투를 들으며 남자의 몸은 천천히 기울어졌다.

몸이 앞으로 슥 밀려나며 칼이 뽑혔다.

풀썩-

남자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고개를 돌려 자신을 죽인 그녀를 쳐다봤다. 하얀색이었던 마스크는 피에 젖어 붉게 물들어있었다.

남자의 숨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붉은 마스크의 여자는 흥미가 떨어진 듯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뭐가 재미있는지 갑자기 고개를 번뜩 들곤 눈꼬리를 크게 휘었다.

“잘 있어, 선생님?”

여자는 허공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곤 조용히 사라졌다.

* * *

사람이 죽었다. 살인사건이었다. 금방 잡힐 줄 알았던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 전 있었던 살인사건은 지금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가 봐도, 텔레비전을 봐도, 신문을 봐도 어딜 가나 살인사건 이야기가 있었다.

“아직도 죄다 살인자 얘기네.”

태주는 하품을 하며 신문을 훑었다.

“근데 이렇게 관련된 정보를 다 풀어도 괜찮나? 얘네 덕분에 앉아서 조사할 수 있는 거라 좋긴 한데.”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이번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를 썼다.

주택가 한복판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남성에 대한 사건은 꽤 자극적인 뉴스거리다.

“하긴 병 주고 약 주고 지. 애초에 얘네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태주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신문사 덕분에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긴 하지만, 애초에 일을 이렇게 만든 것 역시 신문사였다.

“어휴, 그렇다고 뭘 어쩌냐.”

물론 태주가 하는 것은 그냥 하소연에 가까웠다. 팔릴 만한 기사를 많이 싣는 걸 뭐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걱정인 게 있었다. 바로 사람들은 자극적인 사건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이번 살인사건은 자극적인 데 더해서 미스터리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사건을 만나면 누가 범인인지 찾으려 든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에 근거를 붙여 새로운 추측을 한다.

그 추리가 정말로 맞았는지는 상관없다. 그저 자신들이 보고 생각한 것 중에 가장 그럴듯한 추측을 사실이라 믿을 뿐이었다.

그래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괴담이 퍼지는 방식과 유사하다.

태주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이번에도 별일 없으면 좋겠는데.”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사람들이 마구 추리를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소문에 점점 살이 붙어서 그 자체로 힘을 가진 괴담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건에는 그럴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수많은 사람이 사는 주택가에서 새벽 내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도 비명을 듣지 못했다.’

‘칼에 찔렸는데도 흘린 피의 양이 기묘하게 적다.’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람도 없다.’

‘목격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은 노숙자 단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노숙자는 아니지 노숙자는.”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아니, 이 신문사는 대체 노숙자 인터뷰를 왜 실은 거야?”

그리고 바로 그 기사 때문에 사무소는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태주는 불만에 차 말했다.

“돈이 되면 다야?”

태주도 이해는 됐다. 노숙자의 인터뷰는 꽤 먹음직스러운 기삿거리였을 것이다. 일부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있지만, 또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상처가 난 위치가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 노숙자는 살인자가 뒤에서 칼로 찔렀다는 말을 했다.

아직 부검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이미 피해자가 찔린 직후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는 증언을 했다.

물론 여자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었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정보들은 단순히 찍어서 맞췄다고 하기에는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노숙자의 말을 믿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범인은 붉은 마스크를 낀 여자다!’

노숙자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붉은 마스크에 대한 갑론을박을 펼쳤다. 사실인지는 신문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노숙자의 말이 굳이 진실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 때문에 이번 살인사건은 이렇게 불렸다.

“붉은 마스크 사건이라.”

사무소 쪽에서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는 이유였다.

“괴담 생기기 딱 좋은 이름이잖아, 이거.”

태주는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시아는 잘 하지도 못하는 조사를 하고 있었고 학교에 다니는 두 사람 역시 하교 후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동네 분위기를 정찰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살인자와 관련된 괴담이니, 허투루 볼 수가 없단 말이지.”

심지어는 소장조차 이번 일에는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다.

보통은 그런 일이 있거나 말거나 당연히 일어날 줄 알았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소장이 드물게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겠다며 나선 것이다.

그리고는 며칠째 안 돌아오는 중이다.

“대체 뭘 알아보느라 아직도 안 오는 거지?”

태주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확실히 뭔가 심상치가 않아.”

태주가 그렇게 홀로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난폭하게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오…”

“사, 살려주세요!”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들어온 탓에, 어지간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태주였지만 뒷걸음질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그도 그럴 것이 덩치도 큰 남자가 거의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눈앞까지 뛰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당황한 태주의 손을 붙잡고는 다시 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이요!”

두려운 건지, 혹은 슬픈 것인지.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태주는 침착함을 되찾은 뒤 말했다.

“일단 진정하세요.”

태주는 일부러 남자의 손을 떼어내지는 않았다. 남자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남자가 스스로 손을 놓을 때까지 기다렸다. 남자의 아귀힘은 꽤 강했다. 잡힌 손이 조금 아파 오자, 태주는 아주 약간 눈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본 남자는 자신이 너무 경우 없이 굴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손을 놓았다. 자신이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자는 자기 손을 봤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태주의 질문에 남자는 곧바로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 한 남자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말했다.

“저는, 쫓기고 있어요. 죽을지도 모릅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전후 사정 없이 듣기엔 난처한 종류의 말이었다.

“하필 이럴 때….”

태주는 눈앞의 남자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소리로 말했다.

살인사건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신경 써야 할 것 같았기에, 태주는 이 상황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음, 죄송합니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더 자세히 부탁드려도 될까요?”

침착한 목소리로 태주가 물었다.

남자는 덜덜 떨며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붉은 마스크 아시죠? 그, 빨간 마스크 이야기 말고요, 살인사건 말이에요!!”

“잘 알죠. 안 그래도 저희도 조금 조사 중이에요.”

태주의 말에 남자는 조금 화색을 띠었다. 그 표정에 태주는 두통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설마.

“그 붉은 마스크가 절 쫓고 있단 말입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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