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8)
“…죽겠는데.”
영무는 헥헥 숨을 몰아쉬었다. 뒤에 있던 보영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벌써부터 그렇게 지쳐서야… 운동 좀 해야겠는데.”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 보영의 말을 들은 영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네가 이상한, 거야…”
당연히 영무가 평소에 운동 비슷한 것도 하지 않았기에 힘이 약한 것도 맞지만, 일단 이곳은 할 일이 너무 많다. 영무는 힘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발이 멈췄다.
“어허, 누가 발을 멈추지? 빨리 일 안 해? 지금 누가 잘 곳을 마련해 줬다고 생각하는 거야?”
보영은 마치 악덕 주인처럼 이야기했다.
“일해, 일!”
이렇게 보면 보영이 마치 나쁜 사람 같지만, 사실 보영도 옆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보영은 지금도 양손에 12리터씩 있는 물통을 들고 쌩쌩 움직이고 있다.
“뭐지 쟤….”
영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의 저 멀리 앞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보영을 보니 대체 저게 사람인가 싶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건 이번만 나르면 끝난다. 영무는 이를 악물었다.
“딱… 한번….”
물론 그 한번이 너무나 힘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영무는 발걸음을 옮겼다.
겨우 마지막 배달을 끝낸 뒤에야 영무는 쓰러졌다.
맨 처음, 봉사활동을 간다 말했을 때는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다. 리어카도 밀 수 없는 동네에서 물을 손으로 들어 나르는 건 생각보다도 엄청난 중노동이었다.
영무는 그 자리에 앉았다가, 그냥 아예 뒤로 드러누웠다.
영무는 ‘죽겠네…’ 하고 말조차 내뱉지 못했다. 내일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의문이 드는 수준의 통증이었다.
“왜 그리 힘이 없어?”
한심하다는 듯 보영은 영무를 내려다봤다.
“힘을 다 써서….”
영무는 간신히 말했다.
“음, 체력은 확실히 없네.”
보영은 품평하듯 말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말대꾸할 힘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근성이 있어. 사실 난 끝까지 못 할 줄 알았거든.”
“…망할,”
그럼 조금 쉴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보영은 히히 웃으며 말했다.
“끝까지 해냈잖아? 대단한 일이라고. 꾸준히 하던 사람도 가끔 도망가는 일인데.”
“그걸 칭찬이라고…. 그래서, 대체 이걸, 왜? 돈 되는 일도 아니잖아.”
“네 돈은 내가 주기로 했잖아. 불만이야?”
봉사활동이다. 당연히 돈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하루 치 돈은 보영이 챙겨준다 했으니 영무에게는 손해가 아니지만, 보영이 얻는 이득은 없었다.
“불만은… 없는 건 아닌데. 그보다는 이해가 안 가. 왜 자기 돈까지 줘가며 나한테 봉사활동을 시키는 거야?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
“으음, 원래 이런 데서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어서, 는 사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구실에 가깝고.”
보영은 이걸 말해줄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말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인지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이건 테스트였어.”
“테스트?”
“그래, 테스트. 오늘 하루 빡세게 굴려보니, 그럭저럭 합격이네. 체력이야 붙이면 되는 거고. 능력이야 뭐, 학교에 몇 년씩이나 잠복할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뛰어난 편이고. 이래저래 괜찮은 점이 많아.”
영무는 무슨 말이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보영은 그에 대한 대답은 알려주지 않았다.
“너, 혹시 하고 싶은 일 있어?”
보영은 물었다.
“하고 싶은, 거?”
숨을 몰아쉬면서 영무는 대답했다.
“없어.”
“아니, 학교에 숨어있을 때야 당연히 없었겠지. 지금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말이야.”
“없어.”
아직은 없다. 그저 갑작스럽게 바깥으로 나왔을 뿐이다. 아직도 영무는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야심이 좀 없네. 하긴 이야기 들어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긴 한데…. 아니지, 오히려 잘 됐어!”
보영은 그렇게 말한 뒤 씩 웃었다.
“너, 내 조수 할래?”
“...?”
“조수 말이야 조수!”
“무슨 조수?”
영무는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밀물 썰물 이야기겠어? 당연히 내 부하 하라는 말이지.”
“허,”
어처구니없는 말에 실소가 조금 나왔다.
“네가 뭔데?”
보영은 그래 봐야 학생이었다. 조수씩이나 둬야 할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
하지만 보영은 자신 있게 외쳤다.
“나는 나중에 탐정이 될 사람이야!”
“탐정?”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셜록홈즈 같은 게 되고 싶다는 말이야?”
“아냐.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야.”
보영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창작물 속의 탐정은 별로 관심 없어. 나는 그냥 궁금한 게 있으면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야. 궁금한 게 생기면 참을 수가 없어. 그걸 들쑤시는 과정은 너무나도 즐거워. 이런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탐정 정도밖에 없을걸?”
“…말도 안 돼.”
웃기는 소리다. 하지만 영무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보영의 열의에 찬 눈과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력을 생각하면 그저 웃어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글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보영은 조금은 간절한, 하지만 여전히 심지가 굳은 눈으로 말했다.
“…아니.”
영무는 고개를 저었다.
“될 거 같기도 해.”
제대로 본 건 단 한 번의 사건이지만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고작해야 자신을 한번, 입학식에서 목격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찾아내고야 만 사람이다. 만약 투명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 분명히 눈앞의 이 사람에게 걸리지 않았을까.
영무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너라면 가능할 것 같아.”
“보는 눈이 있네. 하지만 될 것 같은 게 아니야. 되는 거야. 되는 건 확정인데, 아무래도 혼자서 이것저것 다 할 수는 없잖아?”
보영은 그렇게 말했다. 영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감이 넘치네.”
“그래. 자신 있어. 나는 능력도 열정도 있으니까. 그래서, 너 내 조수 할래?”
“왜 그걸 나한테 묻는 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글쎄, 어째서일까?”
정말로 아무에게나 이런 제의를 하고 보는 걸까. 영무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 표정을 읽었는지 보영은 물었다.
“너, 내가 아무한테나 스카우트한다고 생각하나 본데.”
“…아냐?”
“아니야. 애초에 탐정이 목표라는 말을 직접 한 것도 네가 처음이야. 다른 놈들은 나랑 같은 걸 봐줄 생각이 없거든.”
그나마 자신이 본 중 가장 그럴듯한 사람은 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과는 지향점이 너무 다르다.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비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가능하다고 말할 만한 사람에게만 이런 말을 하기로 했어. 놀랍게도 네가 처음이고!”
처음 하는 제의라는 말에 영무는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다시 물을게.”
그리고 보영은 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내 조수 할 거지?”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생각보다 중요한 기로 같았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뭘?”
“그래서 내가 네 조수라는 걸 하면, 재미있을까?”
보영은 조금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재미, 재미라.”
잠시 생각하던 보영은 말했다.
“나는 재미로 이것저것 파헤치는 사람이니까. 재미있지 않을까? 이번처럼 말이야.”
영무는 조금, 눈앞의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다른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이번처럼 또 끼어들 거야?”
“당연하지!”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재미있으니까!”
보영의 가벼운 대답에 영무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별로 재미있지 않으면 다음에는 사람을 돕지 않을 거야?”
“아니.”
보영은 피식 웃으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다 듣는다는 듯 답했다.
“문제가 있는 걸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건 더 재미가 없어. 가끔 덜 재미있고 더 재미있는 일의 차이 정도는 있겠지만, 그냥 방치했다가 문제를 손쓸 수 없이 커지는 경험은 정말이지 불쾌하거든.”
보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내 재미를 위한 행동이야. 사람을 돕는 건 덤인 거고. 그냥 그편이 재미있으니까.”
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런 사람을 자신은 기다렸던 건지도 모른다. 그저 복잡한 생각 없이, 그러고 싶어서 사람의 일에 참견해 돕는 사람.
“그럼 하지 뭐.”
달리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런데, 너 지금부터 바로 탐정을 할 것도 아니잖아.”
“그거야, 뭐.”
보영은 아직 학생이다. 아직 제대로 된 직업인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목표 정도는 미리 정해둬도 괜찮잖아?”
“목표….”
영무는 속으로 그 단어를 여러 번 되뇌어 보았다. 지금까지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동안 준비 좀 해놓으라고. 내 조수도 쉬운 일은 아닐 거니까 말이야.”
“…일단 지금은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가 목표가 되어야 하려나?”
“첫 목표로는 적당하네.”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무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보영은 물었다.
“아직도 사라지고 싶어?”
영무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고 싶냐고.”
“…조금은.”
사실 아직도 세상은 두렵다. 이전처럼 자신은 한 곳에만 박혀서 없는 것처럼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게 나은 것 같아. 어차피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고.”
“솔직하니 좋네.”
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그럼, 그런 생각 할 틈 없이 바쁘게 살아야겠네?”
영무는 방금 자신이 뭔가 잘못 대답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그걸 깨달은 것이 조금 늦었다는 점이다.
“알아서 혼자 잘 일어나는 거 보면 아직 몸이 괜찮은 부분이 있나 본데, 하는 김에 거기까지 조지고 가자. 내가 도와줄게.”
“어?”
“내 조수가 되려면 그 정도 체력은 있어야지!”
“어휴… 악마야 악마….”
*다음 이야기*
“사람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네?”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던지는 질문 치고는 영 질이 좋지 않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죽어도 되는 이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내 견해와도 비슷하군.”
남자는 양팔을 벌리며 놀랍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마치 고전영화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나도 사람이 죽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네.”
따뜻한 미소.
마치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다. 여자는 그것을 느끼고 나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아아…”
여자는 그제야 눈앞의 남자가 괴물이라는 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대도 나와 같은 존재가 되려면, 이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한다네.”
남자는 싱그럽게 웃었다. 그 미소는 눈부실 정도로 싱그러웠다.
“그대에겐 재능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