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7)
쨍그랑!!!
“으아아아!”
영무는 하늘을 날았다. 월이는 두 사람을 붙잡고 학교 담 바깥으로 뛰어올랐고, 그 주변으로 유리조각이 별빛처럼 흩날렸다.
삐이익-
시끄러운 경비 시스템 소리를 뒤로하고 월이는 양팔에 사람 하나씩을 안은 채 착지했다.
영무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사전에 설명을 들은 설이마저 그렇게 말할 정도다.
두 사람을 바닥에 안전하게 내려놓은 월이는 변명하듯 말했다.
“원래 약속했던 거잖아. 내가 분명히 깬다고 말하지 않았어?”
“나는 한두 개만 깰 줄 알았는데….”
“설마? 한두 개로는 부족하지. 범인을 어떻게든 찾아야 할 정도로 일을 벌여야 한단 말야.”
“그치만 이거, 너무 많이 깼잖아….”
“음….”
그건 월이도 할 말이 없었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영무는 비틀거리다 다시 주저앉았다.
“…설마 이럴 줄은….”
영무는 경악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강제로 데리고 나온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애꿎은 유리창은 왜 다 부숴놨단 말인가.
“네가 다시는 저 안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해야 했거든.”
월이는 그 시선을 느꼈는지 말했다.
“모든 유리창은 안에서 바깥으로 부순 거야. 유리조각은 그래서 죄다 바깥쪽으로 떨어졌어.”
맨 처음 창문 하나를 당겨서 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럼! 당연히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그렇다면 안에 누군가 있을 수 있는지를 조사할 거다. 혹시, 유리창을 깬 범인이 학교에 있는지를 조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거야. 지금 너는 내가 들고 나왔으니까. 사소한 흔적 정도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연히 그게 너라는 건 알 수 없겠지.”
영무는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다시 일어났지만, 아직도 조금 어지럽다.
“와… 이 정도로 막 나갈 줄이야….”
“우리 원래 막 나가. 근데 그게 일을 이 지경을 귀찮게 만든 사람이 할 말이야?”
월이는 네가 그 귀찮게 만든 녀석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영무는 움찔하고는 움츠러들었다.
“겁먹었잖아! 용기 낸 사람한테 무슨 짓이야!”
“아니! 난 그냥 쳐다만 봤다고!”
억울하다는 듯 월이는 항변했지만, 사실 저지른 짓이 있으니 쳐다만 봐도 겁먹을 만했다.
한밤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창문으로 뛰어 올라오고, 이젠 아예 미친 것처럼 창문을 깨부수고 있으니 아무리 봐도 가까이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사람이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야?”
영무는 조금 떨면서 설이에게 물었다.
“음, 제 친구요. 보셨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요.”
별로 도움이 되는 답은 아니다. 영무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강제적으로 데리고 나와서 미안해요, 하지만 선배도 나올 의사가 있었던 거잖아요?”
설이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미안해요.”
영무는 잠시 침묵했다.
“너희는 왜 날 돕기로 했지?”
이유를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을 돕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할머니는 그렇다 쳐. 그럼 너희는 왜?”
“글쎄요. 저희 둘은 그냥 그런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특히 저는 이유 없이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이유 없이 남을 돕고 싶은 것뿐이에요.”
“이유 없이 돕는다?”
“세상에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선배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설이는 말했다.
“저는 사무소라는 곳에서 일해요. 저랑 얘는 그곳에서 살고 있고요.”
“무슨 사무소?”
“이름은 없어요. 안 정했대요. 하지만 괴담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무소에요.”
“…일이라는 건가.”
“아니지.”
월이는 옆에서 고개를 저었다. 영무는 움찔했다. 겁먹은 기색을 느낀 월이는 기분 나쁜 듯 말했다.
“안 잡아먹거든? 그리고 이번엔 무보수니까 사실 일도 아냐. 그냥 오지랖이었지.”
결국, 받아 내는 것이 없으니 이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봉사활동인 셈이다.
“일도 아니면 왜 도와준 거야?”
영무도 자각은 있다.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울 수 있는데 돕지 않는 건 제 마음에 영 내키지 않아서요.”
“나는 얘가 한대서.”
두 사람은 각자의 대답을 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보영이는… 글쎄요, 저희와는 조금 이유가 달라요.”
“비밀 같은 건가?”
“그런 건 아니긴 한데, 본인 없는 데서 할 이야기는 또 아닌 것 같아요. 일단 본인은 재미라고 말하긴 하던데, 나중에 직접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설이는 조금 미안한 듯 웃었다.
“어차피 이제 나머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일은 그 애가 하기로 했거든요. 참고로 그 애는 저희 같은 ‘비현실적’인 일은 잘 몰라요.”
그러니 비밀로 해 주면 고맙겠다고 설이는 말했다. 안 그래도 딱히 영무도 그런 걸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봐야 미친놈 소리 말고는 더 들을 게 없다.
그렇기에 영무는 다른 부분에 대해 물었다.
“나머지 일?”
“네. 당신이 있을 장소를 마련해 보겠다고 말한 건 보영이거든요.”
설이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웃었다. 하지만 영무는 그냥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아마, 뭔가 자기 잇속도 있겠지만 그게 뭔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학교에서 그렇게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에요.”
“낫다고?”
“네. 이제 당신은 투명인간이 아니니까요. 보이는 사람이에요.”
설이는 그렇게 말했다.
“학교 안의 투명인간은 이제 없어요.”
* * *
“이런 미친년들아!”
약속한 장소에 가자, 보영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채로 말했다.
“학교를 개박살을 내면 어떡해!”
“아니! 창문만 조금… 미안….”
월이는 뭔가 변명을 조금 하려다가 전혀 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창문 조금? 한두 개, 잘 쳐줘서 서너 개가 조금이지 거의 스무 개 가까이 박살을 내 두고 조금이라고?!”
솔직히 중간부터는 흥이 올라서 한 짓이었다. 월이는 시선을 피하며 변명했다.
“필요 경비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아! 대체 뭘 한 거야!”
“하지만 봐, 그래도 그 사람 데리고 왔어!”
월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말이야?”
서슬 퍼런 보영의 말에 월이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야, 넌 안 말리고 뭐 했는데?”
월이가 답을 안 하니 설이에게 불똥이 튀었다.
“으, 아니 말리기도 전에 저렇게 되는 걸 어떻게 해….”
설이는 시무룩하니 말했다.
“둘이 아주 그냥 똑같네, 똑같아. 다친 데는? 두 사람 다 없지?”
아무래도 유리를 박살을 내 버리면 당연히 다칠 게 뻔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라면 충분히 손에 상처가 날 수 있다.
“으, 응 다친 데는 없어.”
“그래, 다행이네. 그럼 같이 가서 저기 손들고 서 있어.”
“진짜…? 나 손들고 서 있어야 해?”
월이는 당황한 듯 말했지만, 보영은 완고했다.
“싫으면 안 해도 되긴 하는데, 그럼 나랑 다시 볼 생각하지 말고.”
“으윽….”
월이는 설이의 눈치를 봤지만, 설이는 이미 순진하게 손을 든 채였다.
“으아, 이걸 진짜로?”
월이는 떨떠름하게 손을 들었다. 어째서인지 보영이에게 세게 나갈 수가 없다.
“자, 그럼 저쪽은 정리가 됐고.”
영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삼인방 중 실세는 이 눈앞에 있는 보영이라는 여자애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진짜 투명인간은 아니었잖아.”
보영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영무는 슬쩍 보영이 너머에서 손을 들고 있는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두 사람은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영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다물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네. 물론 조금 꾀죄죄하긴 한데.”
흥미롭다는 듯 보영은 이리저리 관찰했다. 그다지 보기 좋은 몸 상태는 아니었기에 영무는 당황해서 몸을 비틀었다.
“뭐, 뭐 하는 거야?”
“관찰. 궁금했거든, 입학식에서 내가 봤던 게 대체 누구였는지.”
“입학식… 인가….”
부러워서 보러 갔었던 기억이 났다. 학교를 떠나는 자신과는 달리, 학교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사람들.
“그때도 분명 그 자리에 있었지.”
“역시! 정확했네.”
보영은 씩 웃었다.
“응, 그걸 확인하고 싶었어. 이제 목표 달성!”
보영은 기지개를 켰다. 영무는 허탈해졌다. 이유라는 게 조금 거창할까 싶었더니, 정말로 보잘것없다.
“고작 그게 궁금해서?”
“응, 그게 궁금해서. 재밌잖아, 이런 거 알아내는 거?”
정말로 고작 그 이유 하나로, 보영은 그 모든 걸 알아내고자 했다.
“사실 네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는 너를 알아내려고 했을 거야. 내가 이 일을 시작한 동기는 그저 단순히 흥미니까.”
보영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낸 결과, 조금 더 재미있을 일도 하나 생각났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영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보영은 그 표정을 보고는 웃으면서 물건 하나를 던졌다.
“…자.”
갑작스러웠기에 영무는 간신히 떨어트리지 않고 받았다.
“오, 잘 받는데~”
“무슨 말이지?”
“그냥 혼잣말. 그보다 그게 뭔지나 보지?”
영무는 자기 손에 쥐어진 물건을 바라봤다.
“열쇠?”
“그래. 집열쇠야 그보다 싼 집은 없더라고. 알바 조금만 하면 월세 정도는 낼 수 있을 정도의 집이야. 그만큼 후지지만. 요즘 세상에 도어락도 아닌 집이라는 데서 대충 짐작은 가지?”
“이걸 나한테 준다고?”
“그래. 사정 딱하니 보증금은 빼주겠다던데? 집세랑 뭐 그런 건 네가 내야겠지.”
잘 안 나가는 집이라 선심 쓰는 것도 있긴 하지만 하고 보영은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영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딘가 품평하는 것 같은 그런 태도다.
“왜?”
“지금 소개해 준 집 말인데, 설마 소개비 없이 넘어갈 생각은 아니지?”
보영은 씨익 웃었다. 조금 불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공짜는… 당연히 아니겠지?”
“그래, 당연하지.”
“그럼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는 거야?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뒤에서 손들고 있는 두 사람은 몰래 속삭였다.
‘쟤도 이 일 했으면 잘했겠다.’
‘소장님 하는 말이랑 똑같아!’
“야, 제대로 반성 안해?”
“…”
두 사람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래. 당연히 공짜는 아니고. 며칠 정도 나 좀 따라다녀라.”
“따라다니라고?”
“그래. 알바 비슷한 것도 해야 하잖아? 일당 나오는 것도 있어서 손해는 아닐걸.”
“…그래. 그 정도야.”
어차피 갈 곳도 없다.
“좋아, 그럼 된 거다?”
보영은 그렇게 말한 뒤 말했다.
“내일 열두 시에, 내가 말한 곳으로 나와. 일요일마다 내가 하는 일이 있으니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