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6)
“…저쪽도 긴장하고 있을까?”
설이는 긴장한 채 말했다.
이렇게 홀로 뭔가를 해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반면 월이는 별로 긴장하지 않은 채 말했다.
“글쎄, 나야 모르지.”
“불안해지게 왜 그래….”
작은 목소리로 항의하는 설이를 보고 월이는 나름대로 위로하기 시작했다.
“긴장하는 건 당연하단 말이야. 태주도 그렇고, 시아 언니는 어떻고? 그 둘도 가끔 이상한 짓을 한단 말이지.”
나만큼은 아니지만. 월이는 그 뒷말을 삼켰다.
“어쨌든 사람은 실수를 하고, 해도 된다는 말이야. 아마도?”
“마지막 그 말만 안 했으면 조금 긴장이 풀렸을지도 모르겠는데…. 그거 때문에 전혀 긴장 푸는 데 도움이 안 되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이는 배시시 웃었다. 월이도 함께 웃었지만, 눈만은 날카로운 채다.
월이는 설이를 한쪽 팔에 안고 뛰어올랐다. 이번에는 보영에게 들은 안전한 루트라는 건 전혀 필요 없다. 카메라에 찍히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랐다.
“와, 빠르다.”
무서워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던 월이는 설이가 해맑게 말하자 조금 안심했다.
“유리 조심해.”
월이는 창문을 당겨서 열었다. 옆으로 여는 창문을 당겼으니 결과야 당연했다.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창틀째 부서졌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같은 방법으로 학교에 몰래 들어올 수 없겠지만, 어차피 이젠 두 번 다시 한밤중에 몰래 학교를 들어올 일은 없을 거다.
“와. 근데 이래도 돼?”
“안 될 건 뭐야?”
난폭한 방법이지만 효과적이고 빠르다.
“나중에 익명으로 유리값만큼 학교에 기부라도 하지 뭐.”
월이는 그렇게 말한 뒤 창문에 기대섰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잘 갔다 와.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길 것 같으면 말하고.”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젠 정말로 혼자다. 긴장한 탓인가 자기 마음대로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2층의 복도 앞에서, 설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왔네.”
목소리는 이번에는 숨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래요. 저도 반성을 좀 하고 왔죠. 당신 말이 아주 틀린 말들은 아니었어요. 저는 당신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죠. 그래서 조금 알아 왔어요.”
“뭐를?”
“당신을요.”
설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긴장이야 했지만, 그 말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한번 말 해봐. 어디 얼마나 정확한지 한번 보자고.”
“당신의 이름은 영무에요. 오영무요. 맞죠? 2년 전 졸업생이고요.”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든 알 방법이 있죠! 제가 혼자 알아낸 건 아니지만요.”
보영이 없었다면 알아낼 수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저는 당신이 학교에서 소외당하여서 투명인간이 된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아냐.”
“네, 아니죠.”
설이는 긍정했다.
“당신은 학교에서 소외된 게 아니라,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거였어요.”
사람은 학교에서 배운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먼저 가정에서 배운다. 하지만 영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 왔다.
소극적이고 조용한 영무는 어느 곳에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학교가 집보다 나았다는 게 문제였죠.”
“그 집에 가본 거야?”
“네. 아버지와 어떤 관계인지 들었어요.”
“…”
영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설이는 영무의 기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아버지라는 분을 뵈었거든요. 친절한 분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절대로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죠. 저는 아버지가 없어서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의 기분은 몰라요. 하지만 분명 엄청나게 불편했겠죠.”
“화해라도 하라는 말을 할 거면 그만해. 관심 없으니까.”
영무는 시린 목소리로 말했다. 설이 역시 그런 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런 사람을 아버지랍시고 화해하라고 권할 만큼 순하지 못해요, 저.”
무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그 한순간만, 그리고 한 쪽만 보고서도 그걸 알 수 있을 정도였던가 하는 깊은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만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울타리였던 거죠? 집에 최대한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요.”
졸업 후 성인이 되는 자신이 두려웠을 것이다.
“졸업하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이대로 이곳에 있고 싶었겠죠.”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도 영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그게 당신에게는 잘된 일일까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는 거니까요.”
그 학교생활이 즐거웠는지는 모르겠다. 설이가 보기에 그건 전혀 즐거웠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밖에는 살아갈 길이 없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자립하는 법을 배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유일하게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며 있을 수 있었던 곳이니까.
“당신은 그래서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그렇게 변해서 지금처럼 이곳에서 사는 게 가능하게 된 거죠.”
“하….”
영무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제가 한 말 중 틀린 부분이 있나요?”
없었다. 없기에 영무는 침묵했다.
“대답이 없으면 일단은 맞았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대화해 주는 거예요?”
사실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아직 이야기는 본론으로 가지도 않았다. 정말 중요한 건 뒤의 이야기였다.
“대답하지 않고 계속 여기 계시게요? 하지만 본인도 알 거예요. 계속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아니! 난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너희만 날 내버려 두면 돼.”
영무는 그렇게 말했다.
“너희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잖아? 눈치챈 사람도 없고, 아무도 내게 관심 없어. 너희만 그냥 모른 척해줘, 다른 사람들처럼. 이제 와서… 그렇게 도와준다 말해도 나한테는 이미….”
갈 곳이 없다. 있을 곳이 없다.
“너희들이라고 해서 날 도울 수는 없어.”
“아니요. 그럴 수는 없어요”
설이는 말했다.
“생각보다, 세상에 사라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러니 생각보다 그런 경우는 흔하다는 거예요. 정도는 좀 심한 것 같지만요.”
“…그럼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 그냥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내버려 둘 수 없어요. 흔한 일이라도, 겪는 사람에게 고통스럽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래, 그 고통이 문제지.”
영무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나가면 고통뿐이야. 그냥 난 사라지고 싶어.”
설이는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사라지고 싶다고 말한 건 진심일 거예요. 하지만 도움받고 싶은 것도 사실일 거예요.”
“도움 따위 필요 없,”
“당신은!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은 사람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잖아요. 입학식에 오셨고, 제가 전학 오는 날 구경도 하러 오셨잖아요.”
설이의 말에 영무는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다 방법이 있죠. 어쨌든, 보세요! 사람은 사람한테 관심이 많은 걸요?”
“그저 심심했을 뿐이야.”
“그저 심심했다고요? 에이~”
설이는 웃었다.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사람을 잡아주고, 잃어버린 지갑도 찾아주고 또 누군가가 피해입는 것의 증거물도 대신 모아다주고.”
“너… 그걸 어떻게…?”
“숨길 생각도 없었잖아요. 보이지 않아서 누가 했는지 모를 뿐이지.”
거기까지 해놓고서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구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소문으로 도는 투명인간이 당신이잖아요?”
“크흑….”
영무는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자, 말해 보세요!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걸 붙잡아 줬습니다! 하고!”
“…시끄러워.”
이쯤 되면 반박할 수 없다. 그걸 안 설이는 우쭐하며 말했다.
“그게 어디 관심 없는 사람의 태도인가요?”
“…아니야. 그냥 심심했을 뿐이야.”
여전히 그렇게 말하는 영무의 태도에 설이는 반박했다.
“그냥 심심하면 책을 읽겠죠. 아님 뭐 다른 걸 하던가요. 왜 굳이, 사람들을 몰래몰래 도왔을까요? 그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말이에요.”
이전, 설이는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다. 두 가지 감정이 모두 진실이라고.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고 있으니, 누군가를 남몰래 돕는다. 언젠가, 누군가가 자신을 봐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아무도 영무를 도와주지 못한다. 보이지 않으니까.
“문제는 다른 한쪽도 진심이라는 거죠.”
동시에 영무는 진심으로 사라지고 싶어 했다.
“사라지고 싶다고요?”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정말로 사라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괴로워서,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두려울 뿐이다.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 덜 나빠 보이는 쪽을 골라놓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살아지고 싶다는 말이네요?”
영무는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뭐?”
“그건 다 거짓말이라고 하더라고요.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설이는 말했다.
“당신은 사라지고 싶은 게 아니에요. 살아질 자신이 없을 뿐이에요. 아무도 당신을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학교 바깥에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모르니까.”
따듯한 목소리로 설이는 말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고요?”
설이는 자신 있게 말했다.
“사람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요!”
회심의 말이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 삼십 초 정도를 조금 뻘쭘한 채로 서 있던 설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저기… 무슨 말이라도 해 주실래요…?”
* * *
“사람이 떨어졌어요!”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영무가 사라지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물에 빠져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면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점찍어둔 장소엔 이미 먼저 떨어진 사람이 있었다. 경찰도 사람들도 잔뜩 있었다.
‘오늘도 나의 날이 아니구나.’
영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영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려 결심한 그 날조차도 결국 영무의 날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지.”
하지만 돌아갈 곳은 없었다. 영무는 그렇게 정처 없이 걸었고, 그러다 다시 학교로 오게 되었다.
영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달리 갈 곳도 없다. 영무는 그렇게 학교에 숨어들었다.
처음에는 숨죽인 듯 있었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꽤 있을 만했다. 마치 유령처럼 아무도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곳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라질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게, 없는 것처럼.
몇 달이 지났을까, 영무는 정말로 투명해져 버렸다. 자신은 정말로, 소문 속 학교의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험 삼아 이것저것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했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유령 같은 존재.
영무는 사라지지도 살아지지도 못한 채 학교에 머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착각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정말로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 * *
“그때 눈이 마주친 게 시작이었던 건가.”
긴 시간의 침묵 끝에 영무는 중얼거렸다. 대답만을 기다리던 설이는 냉큼 대답했다.
“당연하죠!”
어쩌면 그때, 관심 없는 척하고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영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몰라.”
순순히 인정하자 월이는 조금 놀랐다.
“…솔직하게 대답하시네요?”
“굳이 거짓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그건, 그냥 재미로 한 거야. 나는 여전히 나가고 싶지 않아. 나는 사라지기로 했어. 이곳이 편해.”
그건 영무의 진심이었다.
“심지어 나는 너희를 알지도 못해. 내가 어째서 너희 말을 믿고 나가야 하는 거지?”
영무의 말에 설이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하네요. 알지 못하면 도와주면 안 될까요? 저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도움받았는걸요.”
“…그건 네가 이상한 거야.”
“그럼 당신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죠 뭐!”
남들을 보이지 않게 도운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 영무는 입을 다물었다.
“게다가, 저희는 선배가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은 걸요?”
“날 아는 사람이 있다고? 그 남보다도 못한 사람?”
설이는 고개를 저었다.
“남보다 못한 건 아니고… 그냥 남이에요. 그 왜, 핫도그 파는 할머니 계시잖아요?"
“핫도그?”
이 분위기에 나올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떠오르는 얼굴은 있었다.
“…그분이 왜?”
“거스름돈을 못 돌려주셨대요.”
“그건 필요 없어. 그냥, 사라질 생각이라서 드린 거야.”
“하지만 그분은 꼭 돌려주셔야 하겠대요.”
“바보 같은 할머니야….”
그냥 그 돈을 가지면 되었을 것을. 영무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영무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가는 건 무서워.”
“무섭겠죠.”
“…네가 뭘 알아? 너도 어디선가 이렇게 지내본 적은 없을 거 아냐?”
“저도 그래 본 적 있는데요? 학교는 아니지만.”
스스로 갇힌 것과 다른 사람에 의해 가둬진 것의 차이는 있지만, 닫힌 세상에서 바깥으로 나갔다는 점만은 같았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을 공감해 줄 수 있는 건 설이 뿐이었다.
“있다고?”
“있어요. 그래서 저 혼자 왔어요. 있던 장소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게 무섭다는 걸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강요한다고 될 게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요.”
그렇기에 홀로 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딱 한 번만, 모습을 드러내면 돼요. 그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요.”
“다음 단계가 뭐야?”
“일단 얼굴을 마주하는 걸까요?”
“그걸로 뭐가 바뀌지?”
“꽤 많은 게 바뀌죠.”
설이는 자신있게 말했다.
“고작 그걸로?”
“그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한 거라구요.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하다면…
영무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아주 조금씩, 남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주 오래간만의 일이었기 때문에 어색했다.
“이걸로 뭐가 바뀐다고…”
영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할 때, 설이가 소리쳤다.
“나왔다!!!”
“뭐???”
영무는 갑작스럽게 난 큰 소리에 경직되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설이는 한번 더 크게 말했다.
“거기까지 왔으면 도망 못 쳐요!!!”
“무슨 짓이야! 아니, 일단 목소리부터 줄여!”
혹시 당직 서시는 분이 깰지도 모른다. 영무는 그 생각에 크게 당황했지만, 설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상관없어요!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 정도 소리는 이제 신경도 못 쓸걸요?”
멀리서부터 챙강, 쨍그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그 소리는 가까워져 왔다.
영무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말했죠? 여기 더 있을 수 없을 거라고요!”
설이는 미소지었다.
“우리가 데리고 나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