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5)
“…그 집이 편한 장소가 아니라는 걸 알아낸 건 좋은데 말이야.”
월이는 찌푸린 눈으로 말했다. 기분이 너무 좋지 않다.
나머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너무 끔찍해.”
설이의 말에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사연은 딱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고칠 수는 없겠지.”
보영의 말에 설이는 다시 한번 살짝 몸을 떨었다.
“이렇게 보니 대단한 거였네. 지금까지 그런 환경에서 견뎌낸 거잖아.”
“정말 그래….”
설이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영 좋지 않자 보영은 박수를 한번 크게 쳤다.
“깜짝이야, 갑자기 무슨 짓이야?”
월이가 놀라 불만을 표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보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억지인 표정이지만, 계속 울상인 것보다는 이게 낫다.
“우울한 분위기 박살용이야.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영무 선… 뭐라고 부르지?”
영무씨? 영무오빠?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보영은 가장 베이직한 호칭을 골랐다.
“어쨌든 영무를 끄집어내는 거니까.”
보영은 그렇게 말한 뒤 기지개를 켰다.
“일단 오늘은 조금 늦었으니 이만하자.”
설이는 이미 꽤 피곤한 상태고, 나머지 사람들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오늘은 이것저것 고민을 좀 해볼 테니까, 너희는 대신에 그 사람을 확실하게 끄집어낼 방법을 한가지 생각해줘.”
“끄집어내다니?”
월이의 물음에 보영은 큰소리로 외쳤다.
“당연히!! 영무 말이야. 우리가 조금 알아왔다고 해도 곧바로 순순히 따라주진 않을 거 아냐?”
“그렇겠네.”
집이 그 모양이라면 상대는 학교를 거의 자신이 있을 마지막 장소로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런 사람이 고작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고 해서 순순히 따라 나올 거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다.
이름을 알았다고, 사연을 알았다고 해도 고작 그 정도로 상대를 끌어낼 수 없다.
“그러니까 너희는 다른 방법을 하나 더 마련해 줘. 아무래도 너희가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은 잘 알 것 같으니까 말이야.”
보영은 대놓고 네가 그런 방법 한두 개쯤 알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치를 주며 말했다.
“…그래. 그건 우리가 어떻게든 해 볼 게.”
하기는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다. 이미 보영은 월이가 영화 감상부의 두 사람을 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 * *
설이는 사람을 설득할 방법을 찾기로 했고, 월이는 강제집행 수단을 생각하기로 분담을 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갑자기 막 떠오를 리가 없다. 월이는 오랜만에 생각에 폭 잠겼다.
“어떻게 할까…”
끙끙대며 생각하고 있는 월이에게 태주는 말을 걸었다. 심심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어때, 잘 돼 가냐?”
“잘 안돼. 카페인 좀 줘봐.”
월이는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태주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일부러 아메리카노를 하나 만들어 줬다.
“자, 여기.”
“…이거 안 달잖아. 단 거 줘 단!거!”
투정 부리는 월이에게 태주는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그럼 설탕을 달라고 하던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태주는 결국 다시 회수해 가서는 제대로 된 달달한 걸 하나 만들어 줬다.
“다음엔 원하는 거 있으면 자세하게 말하라고.”
태주는 가져간 아메리카노를 쭉 빨며 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자기가 먹을 생각이었다.
“…싫어. 알아서 해줘.”
머리를 쓰는 월이는 유난히 투정이 심해진다.
태도야 더 어린애 같아져도 저게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 같은 것이니 잘 하고 있는 거라고도 할 수 있다. 태주는 약간 웃었다.
“고생 좀 하나 봐?”
이번에 태주는 정말로 최소한의 정보만을 알려줄 뿐 그 이상의 도움은 주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이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는지가 조금 궁금했다.
“모르겠어.”
태주의 질문에 월이는 눈살을 조금 찌푸린 채 답했다.
“설이가 이야기하는 거 들어 보니 잘 되어가는 것 같던데?”
이미 태주는 설이에게 몇 가지 조언도 마쳤다. 이미 자연스럽게 상황이 어떤지는 파악이 된 상태인 것이다.
“그야 진전이 있냐 없냐 하면 있기는 한데….”
설이는 거의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 집 너무 이상했다구.”
이미 설이를 통해 어느 정도는 들은 이야기였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국은 이전에 한 말이 맞겠네. 학교가 그나마 그 사람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이라서 거기 매몰되어 있는 거야.“
“그게 좋다고? 아무한테도 관심을 못 받았을 텐데?”
월이는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지만, 태주는 당연하다는 듯 말할 뿐이었다.
“남한테는 원래 관심을 못 받아도 되니까.”
적나라한 말에 월이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과 둘이서 사는 것보다는 더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니….”
월이는 그렇게 말하기는 했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필터를 떼고 보면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그 사람에게는 학교가 집보다 더 안전한 울타리로 여겨졌다는 거 아닐까? 최소한 그곳의 사람들은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을 테니.”
그러니 그곳에서 도저히 나오지 못하고 그렇게 비굴하게 구는 것이리라.
“에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왜 하필 학교람. 살기 좋은 곳도 아닐 텐데.”
“아마 유일한 울타리였을 테니까.”
태주는 잠시 생각을 조금 하며 말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참 특수하지. 외부인이 들어가는 건 참 어려워. 하지만 또 닫힌 공간치고는 넓은 편이라 학생을 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래서 비슷한 또래가 같은 교복을 입고 있으면 그 사람이 자기 학교 학생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실 그냥 없다고 말하고 싶은데 네 친구 한 명은 알 것 같네.”
학교라는 공간은 굉장히 폐쇄적이면서도 또 은근히 느슨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처음에 투명인간처럼 숨어 있을 수 있었을 거라고 태주는 말했다.
어느 시점부터 정말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시작은 그런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가? 학교가 폐쇄적인가?”
월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작 본인이 학생이니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학교는 정문이 넓고 누구에게나 익숙해서 개방적인 공간 같지만, 굉장히 폐쇄적이야. 만약 내가 한낮에 아무런 통보 없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아마 체육 시간인 학급의 학생들이 보고 소리를 지를 것이고, 교사는 나가라고 할 것이다. 어쩌면 경찰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밤에는? 말할 것도 없다.
“아, 그러네.”
“반대로 그 안에 소속된 사람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그 공간에서 나가기도 쉽지 않지. 너 수업 중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 수 있어?”
“…아니. 할 수야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네. 차라리 자면 잤지.”
월이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학교는 학생을 보호해 주는 곳이기도 했지만, 의무를 지우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는 울타리야. 바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지.”
“울타리라···.”
“걔 바깥이 무섭다, 꺼려진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했지?”
“응.”
단지 반응을 보고 하는 추측이지만, 학교가 너무 좋아서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면 답이 보이네. 그곳에서 나오게 하고 싶으면 학교를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만들면 돼. 상황에 변화를 주는 거지.”
“엑, 그건 좀.”
태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위험한 발언을 했다. 질색하는 월이의 말투를 듣고서야 태주는 자신의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알 수 있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학교를 정말로 위험한 곳으로 만들자는 건 아냐. 당연히.”
태주는 변명하듯 말했다.
“다만 그곳에 계속 있는다고 해서 보호받을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줘야겠지. 울타리가 사실은 별 것 아니라는 걸 본다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 안에 있는 걸 그만둘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번 경우에는 상대를 더 이상 투명하지 않게 만들 방법을 마련하면 된다 해야 하나.”
“투명하지 않게 만들 방법이 뭐가 있을까?”
월이의 질문에 태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간단하지. 너도 생각해 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을걸? 이것까지 알려주면 소장이 너한테 보수 받아낼 거 같으니 그 부분은 한번 직접 생각해 봐.”
월이는 끙 소리를 냈다.
“생각나긴 하는데, 조금 난폭한 방법밖에 생각 안 난단 말이야.”
“그러면 그거라도 좋겠지.”
태주는 무심한 듯 말했다.
물론 아무도 다치면 안 된다는 등의 조건이 붙어야 하겠지만.
“어쩌면 그게 네 스타일이겠지. 너는 정작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말 그대로 귀신을 때려잡아서 문제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 월이다.
“나도 한 번쯤 스마트하게 가보고 싶은데—.”
월이는 말끝을 길게 늘였다.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반대로 나는 가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야.”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부러워하는 법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봤다.
“복잡한 것보다 간단하게 해결하는 게 더 똑똑한 방법일 수 있어.”
태주의 말에 월이는 마음을 굳힌 듯 말했다.
“그래! 텄다 텄어! 무슨 스마트야!”
월이는 태주가 준 달달한 카페모카를 원샷때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아주 그냥 다 때려 부숴야지!!”
* * *
“학교를 쪼-끔만 부숴 볼 예정입니다.”
세 사람이 모이자마자 월이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뜬금없는 월이의 말에 설이는 눈알을 굴렸고, 보영은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하면 투명인간을 나오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는 그렇게 시작하기도 전에 일시정지했다.
한 삼십여 초간 멍때린 보영은 작게 한숨을 쉰 뒤 말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아니! 정확히 들었어. 과장은 조금 있지만.”
“그래, 잘못 들은 건 아니구나. 어휴, 다행이다. 내가 미친 줄 알았네. 미친 건 너였구나?”
도끼눈을 뜬 보영의 말에 월이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이, 창문만 조금?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긴 뭐가 괜찮아? 투명인간이 아니라 너부터 붙잡아야 할 것 같은데.”
“…잘 안 풀린다고 물건을 부숴서 화풀이하면 안 돼, 월이야.”
설이마저 그리 말하니 조금 우울해진 월이였지만, 자신은 확신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생각해 봐. 학교에 숨어있는 사람을 학교에 못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있을 곳을 없애면 되는 거잖아!”
“뭐라는 거야 진짜….”
보영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학교를 부수겠다고? 벼룩 잡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 못 들어봤어?”
월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니! 다 부수는 게 아니라니까! 화재경보기 정도만! 아니, 화재는 아닌가? 어쨌든 유리창을 몇 개 깨버리면 당직선생님이 깨든, 아님 보안업체에 연락이라도 가겠지. 그 정도만 해도 투명인간은 그곳에 있을 수 없을 거 아냐.”
저번에 당했던 걸 역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투명인간이라고 해도, 본격적인 검증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영원히 숨을 수는 없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심약한 본인이 그렇게 들쑤셔지는 걸 참을 수는 없을 거다.
“…여전히 미친 생각 같은데.”
보영의 말에 월이는 이 방법은 안 되나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보영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재미있을 거 같아!
“역시!”
“그래서 계획은 세웠어?”
보영의 그 질문에 월이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즉흥적으로 한다는 계획을 세웠어.”
“무계획도 계획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보영의 시선에서 온도가 조금 내려간 걸 느낀 월이는 황급히 변명했다.
“윽, 그래. 사실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 어디서 어떻게 설득이라는 걸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변명하듯 하는 말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럴듯한 이유기는 하다.
“너희 이야기 듣고 결정하려고 했지!”
“어휴, 그래. 그 부분은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기로 하고.”
보영은 그렇게 말한 뒤 설이를 봤다.
“네 생각은 뭐야?”
“이번엔 좀 더 제대로 대화를 하는 거?”
“…월이랑 비슷한 수준인 거 같은데.”
“아냐! 좀 더 잘 생각해 놨다고.”
머릿속에 나름대로 시나리오야 있지만, 문제는 그 사실을 보영에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근데, 이거 우리 일하는 곳에서 알려준 거를 이용해야 하는 거라서….”
“비밀이다- 이거구나?”
보영은 의외로 순순히 넘어갔다. 하지만 이 뒤의 말도 보영이가 고개를 끄덕여줄까. 설이는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말했다.
“그리고 하나 더 필요한 게 있어…. 나 혼자여야 해.”
“뭐?”
“월이도 너도 없이, 그냥 나 혼자서 말하는 거야.”
설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투명해져 버린 사람과의 대화를 보영이 듣는 곳에서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재미있는 일은 다신 안 놓친다고 하지 않았나?”
“했어.”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혼자서 해야 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응.”
“말도 못 하고?”
“응.”
짧고 간결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보영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 확실히 상대를 끌어낼 수 있는 거야?”
“...아마도?”
“야, 하는 김에 거기까지 확실하게 말하지 그러냐.”
보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 하는 김에 어디 잘 해봐.”
설이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월이 역시 의외였기에 말했다.
“절대 허락 안 해줄 것 같더니?”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일 굴러가는 거 보니까 너한테 맡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직감이 생겨서.”
설이가 중간에 끼어들면 자연스럽게 일이 잘 풀린다. 단순히 행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영화감상부 일도 있고.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그런 방법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 대신, 나온 다음에는 내가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마. 오케이? 그게 조건이다?”
보영은 조금 사납게 웃었다. 그 미소가 어딘가 서늘하게 보여서 두 사람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