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4)
“안녕하세요. 영무 선배의 아버님 맞으신가요?”
보영은 어떻게 변명해야 의심받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반면 월이는 지금 뒷목을 잘 치면 잠시간의 기억을 잃게 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다음 행동을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은 한설이었다.
“제가 아버지… 예.”
조금 어물쩍한 답변에서 세 사람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걸 캐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피로한 얼굴의 중년의 남성은 물었다. 설이는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좋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저희가 사람을 찾았는데요, 그분이 본인에 대해 알지 못하면 대화를 해 주지 않겠다고 해서요.”
“그래서요?”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과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의문인 듯했다.
“그런데 저희 생각엔 그게 영무 선배인 거 같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여기 사시는 게 맞는지 확인하러 왔어요!”
조금 날아가는 설명이기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남자는 조금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설이는 당당하게 계속 서 있었고 뒤에서 보영은 망했다며 속으로 되뇌었다. 월이는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서 기절시킬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 일단 들어오시죠.”
그렇기에 남자의 말이 그렇게 이어졌을 때 두 사람은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뜨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기, 저희 안 수상하세요?”
보영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신들의 생각에도 이 행동은 무척 수상했다.
“수상해요.”
남자는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무… 아니, 그냥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 싶어서요. 마침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그런데 문은 왜 안 잠가 두신 거예요?”
보영의 이어지는 질문에 남자는 뭐라 말하려 입을 열다가 멈칫했다.
“안에 들어가서 말씀하시죠. 복도라서 오래 떠들면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가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을 지나 문을 열고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은 조금 망설임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들어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설이였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이는 정중하게 인사했다. 남자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딱히 초대한 건 아니었지만요.”
뼈가 있는 말이었기에 세 사람은 조금 찔려 하며 남자의 집으로 발을 들였다.
세 사람은 남자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오시죠. 갑작스러워서 손님 맞이할 상황은 아니라 내어 드릴 건 없긴 한데요.”
“아, 아뇨. 괜찮아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걸요.”
설이는 남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다. 그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간단히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다행이지.”
월이는 이전에 배운 대로 집안 상태부터 살폈다. 집안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신발장만 봤을 뿐이지만 깔끔하게 정렬된 모습이었다. 나와 있는 신발은 단 하나, 지금 벗어 둔 신발뿐이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한 명뿐인가?”
월이는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보영은 의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런 거 같네. 너, 진짜 이런 짓 많이 해봤지.”
“아니라고….”
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대화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렇게 일방적인 대화 후 보영은 뭔가를 발견했다.
“어라, 이 사진은….”
꽤 큰 액자에 옛날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있었다. 집주인 아저씨의 젊었을 적 사진 같았다.
“부인분이셨나요?”
보영은 사진을 보고 물었다. 과거형의 질문이었다. 영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멈칫하더니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여기 없을 뿐이죠.”
하지만 말투는 평온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앗…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남자의 말투는 정중했고 또 차분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보영은 미안해졌다.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기에 네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설이는 조금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저희는 어디에 있으면 될까요?”
“아, 그렇네요. 잠시만요….”
남자는 잠시 고민을 하다, 구석에 있는 방 앞으로 가 문을 열며 말했다
“일단은 그러면 이 방에서 기다려 주세요. 그 애의 방입니다.”
세 사람은 이래도 되나 싶기는 했으나 일단은 시키는 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자신은 잠시 차라도 타 오겠다면서 남자는 자리를 비켰다.
“역시 한설이가 운이 좋아.”
조금 좋은 정도면 그냥 순순히 좋아하겠지만, 이 정도로 좋은 건 신기할 정도였다.
“어른한테는 솔직하게 인사하면 대부분 잘 봐 주신댔어!”
“아니, 이건 그 정도 차원이 아닌 것 같은데….”
보영은 미묘한 표정을 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월이는 문 옆에 기대서서 방을 둘러봤다.
“이 방이 그 영무라는 사람 방이라는 거지?”
작은 침대 하나와 낡은 책상 하나, 낡은 교과서 몇 권만이 있다. 컴퓨터도 없고 제대로 된 옷도 없다.
서랍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없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말이었다.
세 사람은 방을 조금 둘러보고는 한 사람은 의자에 나머지 두 사람은 침대에 앉았다.
“이 방에도 어머니 되시는 분의 사진이 있네.”
설이는 무심코 말했다. 실제로 방에는 젊은 어머니의 사진이 작은 액자에 끼워진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아마 이 방안에서 가장 깔끔한 물건일 것이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쟁반에는 인스턴트커피가 타진 종이컵이 네 개 놓여 있었다.
“혼자 살다 보니 잔이 따로 없어서 종이컵에 드릴 수밖에 없네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저희가 대접을 받을 입장도 아니고요.”
보영은 황급히 말했다. 세 사람은 불법 침입 미수자나 다름없었고 오히려 이렇게 대해주는 것은 환대에 가까웠다.
“그래서, 영무를 만나셨다고요.”
남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만 질문드릴게요. 영무 선배의 아버님이 맞으신 가요?”
보영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중요한 질문이었나요?”
“조금… 가족이 아니신 분께 말씀드리기 어려운 내용이라서요.”
남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 아이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남자는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미안해하는 투도 아니었다.
“제가 아버지 노릇을 잘 하지는 못했거든요. 그러니 그 애가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거겠죠. 이제는 성인이 될 나이니 따로 실종 신고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만.”
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의무 정도는 있다며 남자는 말했다.
“듣자 하니 어디 이상한 일에 휘말린 모양이군요.”
하지만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마치 관심 없는 것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
설이는 조금 소름이 돋았다. 아직 정확히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지금 이 상황은 아주 이상하다.
“…혹시 한 가지만 질문드려도 될까요?”
“네. 뭔가요?”
“혹시 이 집에 영무 선배가 돌아오지 않은 지 얼마나 된 건가요?”
설이의 질문에 남자는 손으로 턱을 짚었다.
“글쎄요. 정확한 날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졸업식 전에는 이미 집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다. 조금 납득이 가지 않아서 설이는 다시 물었다.
“그걸 모르세요?”
하지만 남자는 별것 아니라는 태도로 말했다.
“뭐, 항상 저는 늦게 오고 그 애도 늦게 오니까요. 서로 얼굴도 안 보고 각자 집에 있다가 각자 알아서 나가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이미 너무 옛날 일이니까요.”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들과 조금 서먹한 사이였거든요.”
남자는 여전히 온화한 표정 그대로였다.
한 달 용돈을 식탁 위에 올려 두면 알아서 챙겨가곤 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너무 심하게 드라이한데요.”
듣고 있던 보영이 무심코 그렇게 말할 만큼 남자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 정도면 저는 할 만큼 했다 생각합니다.”
세 사람은 반응하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남자는 셋의 반응을 보곤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그 애가 자신에 대해 알아 오라고 했다고요.”
“네에, 지금 꼭꼭 숨어 계시거든요. 혹시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설이의 말에 남자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상관없다는 듯 다시 표정을 풀곤 말했다.
“사실은 말입니다, 제 아내는 그 애 때문에 죽은 거예요.”
“네?”
대뜸 던져진 말에 한설은 놀라 되물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물론 그 애가 죽였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애를 낳고 몸이 약해져 죽었으니 아주 틀린 말은 또 아니죠.”
남자는 책상 위의 사진을 아련하게 바라봤다.
“그 애만 아니었다면….”
그 아이는 남자에게 축복이기보다는 저주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잡아먹은 괴물이었다.
“아이도 알았을 겁니다. 제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집을 나간 거겠지요.”
하나뿐인 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는 알았을 것이다.
“하루는,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과 다르냐고 묻더군요.”
남자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건 너무한데요!”
설이는 대놓고 말했다. 얼굴을 찌푸린 채였다. 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은 듯 말했다.
“글쎄요? 좋아할 수 없는 걸 강제로 좋아할 수도 없는 법이죠.”
보영은 얼굴을 찡그렸다. 남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유일하게 흔들린 부분은 아내의 죽음에 대해 말할 때였다.
그게 끔찍하다 못해 무서웠다.
“그러니 더 말씀드릴 만한 사실은 별로 없겠네요. 그 아이에 대해 더 궁금한 게 있을까요? 물으셔도 아는 게 없겠지만….”
남자는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온화했다. 마치 맨 처음 만날 때와 같은 태도.
설이는 그게 침착한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그저 빈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마치 빈 껍데기 같다고만 느껴지는, 그런 사람.
“음, 일단은 저희가 들으러 온 건 그 선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으러 온 거긴 했는데요.”
설이는 처음으로 사람이 무서워졌다. 자신을 해칠 리 없는 것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손을 조금 떠는 설이를 본 월이가 대신 말했다.
“더 들을 필요는 없겠네요.”
알려고 했던 건 다 들을 수 있었다.
왜 그 투명인간의 성격이 그리도 비굴한지, 그리고 왜 집이 도피처가 아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됐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보영 역시 불쾌한 감정은 들었다. 하지만 설이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다. 그렇기에 대신 인사했다.
“하려는 일이 잘 해결되셨으면 좋겠네요.”
남자는 마지막까지 담백하게 말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뭐 하고 지내는지와 같은 것 따위는 더 묻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설이는 그게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다인가요?”
“네. 제가 뭐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궁금하신 게 있다면 알려 드리기는 할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아드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으신가요?”
설이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이게 불필요한 자극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돼도 좋으신 거예요?”
남자는 쓰게 웃었다.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으나 목소리에서 그것이 씁쓸한 느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만약, 그 아내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여기는 꽤 화목한 가정일 수 있었을 텐데. 설이는 뒷말을 삼켰다.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문은 왜 안 잠그신 건가요?”
보영은 문득 떠오른 듯 물었다. 약간의 기대도 섞인 질문이었다.
“아, 문 말인가요? 그 애가 돌아올 수도 있으니 잠가 놓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도둑이 들어온다 해도 딱히 훔쳐갈 것도 없는 집이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사무적으로 말했다.
영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대화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