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괴담 전문 사무소 : 보이지 않는 사람 (13)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듣던 보영은 마침내 소리치고 말았다.
“이번엔 쌍으로 들어갔다고!?”
“아니… 그래도 이번엔 네가 알려준 길로 잘 갔다 왔어. 안 위험하게 잘 갔다 왔다고.”
“쌍으로 미쳤구나.”
한번 혼나고도 또 들어갔다는 소리에 보영은 이제 화를 내는 것도 아니라 어이없어할 뿐이었다.
“진짜로 안전했다니까.”
월이는 변명하듯 말했다. 보영은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들어가는 방법이 위험한 것만 문제가 아니잖아. 수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들어갔다는 게 문제지. 하긴 학교 벽을 기어서 들어가는 사람한테 내가 무슨 걱정을 하냐….”
보영은 그냥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그나마 이번에는 안전한 길을 통해 들어갔다고 하니 차라리 낫기는 했다.
“에휴.”
보영은 그게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이쯤 하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중요한 건 그게 다야?”
“으, 응. 쟤가 그럼 그 투명인간이 누군지, 왜 그러는지 알아내면 이야기를 해 주겠냐고 말하니까 어디 한번 해 보라는 게 다였어.”
월이는 그 뒤에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았다. 안 걸리고 다시 도망 나오는 건 나름대로 큰일이었지만, 안 걸리고 나올 수 있었으니 장땡이다.
“어쨌든 별일은 없었단 말이고… 확실히 그건 괜찮은 성과 같긴 해.”
생각해 보면 대자보와 쪽지 같은 것 모두 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 부분을 모두 뺏긴 게 괜히 샘이 난다.
“왜 하필 나 없을 때 그런…,”
아쉽다 못해 화가 난다.
“왜 그런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나한테 연락을 안 했어?!”
보영은 월이를 째릿 쳐다봤다.
“어쩔 수 없었어. 설이가 갑자기 들어가고 싶다 그랬는걸.”
월이는 설이를 바라봤다. 설이는 아직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보영 역시 조금 멍청해 보일 정도로 잘 자는 설이를 보고는 말했다.
“그게 더 열받아!”
보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어제 그 고생을 했는데.”
“그 고생 덕분에 투명인간이랑 얘기할 수 있게 됐잖아~”
월이는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보영은 하긴 그렇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투명인간과의 만남은 결국 보영이가 알아내는 것들이 없다면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휴, 하여튼 다음에 그런 재미있는 일 생기면 나 꼭 불러, 알았어?! 그러면 나는 일단 반으로 돌아갈게.”
보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그 마지막 한 명에 대해서 좀 알아보러 가 보겠다고?”
월이는 물었다.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원래는 나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거 그냥 같이 가자!”
“…이번에는 재미있는 일을 안 뺏기려고 우리 데려가는 거지?”
“당연하지!”
“알았어, 따라갈게. 그럼 얘, 계속 재워야겠네.”
월이는 설이를 보며 말했다.
“그래, 방과 후까지는 멀쩡하게 만들어 둬.”
보영은 정말로 아쉽다는 듯한 눈을 하고는 말했다. 그래도 왠지 운이 좋은 이 친구를 옆에 붙여 놓으면 분명 다시 사건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내내 졸고 있었던 설이는 다행히 방과 후가 되고 나니 괜찮아진 것처럼 보였다.
“으으… 태주오빠랑 시아언니는 어떻게 밤을 새우는 거지….”
설이는 고개를 한번 세게 흔들었다. 아직도 졸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 졸음은 이상하게 잘 못 참더라? 체력은 좋은데.”
월이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평생을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고를 반복한다면 원래 그렇게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은 괜찮은 거지?”
보영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영은 조심하라며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중요한 이야기니까.”
“응 그럴게.”
보영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요약해서 알려줬다.
“일단 다시 정리하면 이름은 오영무, 나이는 우리보다 두 살 많고,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당시 졸업생 중엔 아무도 없었어. 같은 반 사람이 사진을 보고서야 아, 이런 사람이 있었나? 하는 수준이니까 사실상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봐야지.”
“완전히 소외당했다는 거구나….”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학생들 전원이 가해자라는 이야기일 수도….”
보영이는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렇다 해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이야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면, 사람들이 악의를 가지고 이 사람을 괴롭히거나 무시한 건 아닐 거야.”
한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고 보영은 덧붙였다.
월이는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 말하는 걸 들어보면 아무래도 어느 정도는 그런 상황을 스스로도 원했던 것 같기도 하던데.”
사라지고 싶다 말했다. 그 말의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설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월이한테는 말한 적 있지만, 학교가 끔찍한 장소로 그 사람에게 기억되고 있었다면 숨어있을 장소로 굳이 학교를 선택할 이유는 없을 거야. 끔찍한 기억뿐인 장소에서 숨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보통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으로 사람은 도망치고 싶어 한다.
태주의 추측이었지만, 설이 역시 동의하는 이야기였다.
“히키코모리… 같은 건가?”
보영은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말했다.
“집도 아니고 학교에 숨는 히키코모리라는 게 어디 있는데?”
세 사람 중 누구도 학교에서 벗어나기 싫어하는 히키코모리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장소에 숨어버리는 사람이라…”
보영은 눈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그분 이름이 영무라고?”
설이의 질문에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무라… 흔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흔한 것 같기도 하고… 내 취향의 이름은 아닌데.”
애매한 이름이라고 월이는 말했다.
“확실히 크게 임팩트 있는 이름은 아니긴 하지. 네 이름에 비교하면.”
“…이름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
“네가 시작했는데?? 아니, 우리 이런 데 낭비할 시간 없어!”
순간 탈선할 뻔한 이야기를 보영은 다시 원 궤도로 돌렸다.
“어쨌든 이름을 알면 또 거기서부터 알아낼 수 있는 게 꽤 많지.”
“뭐, 주소라도 알아왔어?”
월이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너흰 너무 나를 잘 알아.”
이미 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여러 가지 경험하고 나니 이제 고작 그 정도는 놀랍지도 않다.
“그래, 그 집 주소 알아왔어. 그래서 물어보려는 게 있었는데,”
보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두 사람의 눈을 봤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나도 나지만 너희도 참 막 나간다. 안 갈 생각 없지?”
“없지.”
“없어.”
* * *
“근데 주소가 정확한 게 맞아?”
월이의 물음에 보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건 출발하기 전에 물었어야지. 그리고, 나도 정확한지 몰라. 졸업하고 이사했을 수는 있어.”
“그리고 이 분 어머니가 안 계신대.”
그 말에 설이는 조금 서글픈 눈으로 물었다.
“힘드셨겠다.”
보영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집보다 학교가 편했으니까 학교에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드네.”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게 더 편하다면 대체 집에서는 어땠길래….”
월이의 말에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확인해 보려고 가는 거지.”
세 사람은 기분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저기 보이네.”
보영은 분위기 전환 삼아 말했다. 월이와 설이는 보영의 시선에 따라 건물을 보았다.
“낡았네.”
월이는 무심코 한 말에 보영은 피식 웃었다.
“집값이야 생각보다 비싸지만….”
하지만 낡은 것은 사실이다.
“뭐, 집값이 중요한 건 아니지. 문제는 어떻게 들어가야 하느냐인데.”
월이는 자연스럽게 아파트의 정문을 살폈다.
“이거, 나중에 단 건가 보네.”
처음에는 없던 것을 나중에 단 것이니 허점이 많다. 월이는 주변을 휘휘 살피고는 중앙현관 옆 복도에 나 있는 창을 연 뒤, 가방을 던져 넣었다.
센서는 가방을 감지했고, 문이 열렸다. 월이는 자연스럽게 안에 들어가 가방을 다시 주웠다.
“뭐해? 안 들어오고?”
“아니, 나는 인터폰을 눌러보려고 했는데….”
보영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자연스러운 월이의 행동을 보고 기묘한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으, 아니 옛날에 나 살던 데도 문 이런 식으로 열렸었거든.”
아차 싶은 월이가 변명했지만, 이미 늦었다.
“음, 그렇다고 쳐도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데. 너 사실 빈집털이 전문가 아니냐?”
보영은 농담 삼아 말했지만 월이는 찔리는 구석이 있어 그냥 모르는 척했다.
“뭐래, 일단 올라가 보자.”
월이는 황급히 올라갔다.
“…쟤 저런 거 처음 아니지?”
보영은 의심스러운 듯 설이 쪽을 보고 물었다.
“아니… 아하하, 아닐걸…?”
설이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말했다. 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처음이 아닌가.”
“야! 안 오고 뭐 해!”
월이는 뒤에 사람이 아무도 안 따라오자 외쳤다.
“간다 가!”
보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버튼 눌러놔! 4층이야!”
* * *
위세 좋게 집 앞으로 간 건 좋았지만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월이는 말했다.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그런가. 하긴 지금 평일이니까 집에 아무도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긴 했는데.”
아쉽다는 말투로 보영은 말했다. 설이 역시 아쉽다는 듯 말했다.
“차라리 누가 있으면 좋았을 걸…”
“어쩔 수 없지.”
월이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이렇게 되면 관리 사무소에 가서 이 여기 이사한 적 있는지 물어보기라도 할까?”
보영이 그런 말을 하는 사이 설이는 무심코 도어락을 잡아 돌렸다. 문고리는 기묘하게도 그냥 돌아갔다.
“이거 열리는데?”
“뭐?”
두 사람은 경악해서 문을 봤다.
“아니 이게 왜 열려? 니가 열었냐?”
“어… 내가 열긴 했는데, 그냥 열린 건데….”
세 사람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야?”
보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남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는 것은 범죄다.
“원래는 안 되겠지.”
월이 역시 들어가는 것은 조금 꺼려졌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고민했다.
“그런데 애초에 이게 왜 열려 있을까?”
열쇠로 잠그던 시절에야 잊어버리고 문을 안 잠근다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집이 자동 잠금장치로 바뀐 시대에 문을 실수로 열어 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글쎄. 아마도 일부러 열어놓기는 했을 텐데… 음….”
보영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신음을 냈다.
“아니 그래서 들어갈 거야 안 들어갈 거야? 어떻게 할 거야?”
“어… 글쎄. 이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서….”
세 사람이 그렇게 열린 문 앞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 땡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은, 이 층에 사는 사람이 왔다는 말이다. 피할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은 시끄럽게 떠들다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제집 앞에서 뭐 하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가 본 것은 열려 있는 자신의 집 문과 그 앞에서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세 여고생이다.
남자는 황당한 눈으로 세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설이는 슬며시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으며 말했다.
“어… 그게요.”
이때, 셋은 표현의 정도만 다를 뿐 같은 생각을 했다.
‘큰일 났네.’
‘...망했네.’
‘X됐다….’